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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문제

박창현

공고한 아파트 방벽

현재는 모든 유형의 집합주택에서 거주자 간의 관계가 이미 다 끊어져 있고, 그것이 익숙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사는 방식이 과연 좋은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그런 문제를 대비해서 건축가는 어떤 부분들을 준비하거나 제안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세대 또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저층형 집합주택에서 이야기하는 이슈를 아파트로 대표되는 고층형 집합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건축가들도 끊임없이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특히 그런 부분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주거 공간의 영역에서 LH나 SH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여전히 공급 물량에만 연연하는 모습이 아쉽다. 그런 걸 보면 국가 차원의 시스템, 방향성이 약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필요하다. 건축가가 할 일이나 역할에 공공성을 강요해서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공성에 대한 부분들을 한 번쯤은 의식하고 생각해야 되지 않겠어?’라고 건축가 스스로 반문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는 공공에서 공급하는 집합주택이 더 늘어날 것 같다. 그것이 물량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LH나 SH에서 다른 방도를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기업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생산하는 주체는 다 규모가 큰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건축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럽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반면, 저층형 집합주택은 예전에 비해 건축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시장도 형성된 것 같다. 개인 대 개인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일도 많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안에도 열려 있다. 그래서 집합주택의 롤 모델을 보여줄 방법이 될 수 있다. ‘공동체주택’이라고 하는 서울시 인증 프로그램에서는 일반 시장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웠던 제안도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공동체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를 더 낮게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미분양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기회를 통해 저층형 집합주택에서 시범적으로 세대 간의 관계를 맺는 디자인 모델을 개발한다면, 아파트에도 서서히 아이디어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LH나 SH 등 공기업에서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요즘 공기업에서 공급하는 집합주택과 민간 영역의 집합주택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입주민끼리의 관계나 공용 공간의 구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드물며 수익률과 물량을 우선으로 한다. 최소한 공기업만큼은 공공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의 방향성이라든지 아파트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에 그런 생각이 포함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사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는 아이디어를 아파트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리켄의 전향적 아파트

야마모토 리켄은 LH와 두 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판교 월든힐스 2단지 작업도 했다. 월든힐스 1단지는 핀란드 건축가 페카 헬린, 3단지는 미국 건축가 마크 맥을 불러 꽤 큰 규모의 단지를 거의 동시에 지어서 분양했다. 1, 3단지는 익숙한 주거 형태여서 금세 매매가 이뤄졌고, 2단지는 미분양이 생겼다. 이유를 살펴보니 리켄 선생 작업에는 강력한 실험이 곳곳에 있었다. 건축가로서 보기에는 좋은데, 여기에 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주택 유형이나 삶의 방식과 너무 달랐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집에 들어갈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1층에 거실과 현관이 있는데, 이 공간의 외벽이 모두 다 유리로 돼 있다. 1층 세대에는 지하 공간도 있는데 햇빛이 들어오도록 앞쪽으로 낸 성큰이 공용 데크에서 다 들여다 보인다.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지켜지는 집에서만 살았거나 옆집 사람과 관계 없이 사는 게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디자인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파트라는 구조와 유형에 길들여진 것이다. 리켄 선생은 그로 인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제안과 방향성을 실현했다. 하지만 4~5년 동안 미분양 상태로 남겨져 있었고 결국 LH가 염가에 처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몇 년 지나고 나니 입주민 스스로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웃 관계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이유를 찾아보니 리켄 선생의 설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입주민들은 건축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리켄 선생을 초대해(비행기 표도 마련해주었고)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당신이 설계해 준 건물에 살면서 우리가 이렇게 어울리며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 일화는 꾸며낸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거기에 살면서 오랫동안 경험하고 실제로 깨달은 것이다. 나는 바로 그런 가능성을 믿고 있다. 현실 감각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건축가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게끔 노력하고, 그 결과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리켄 선생은 그뒤에 서울 강남 지역에 현상설계에도 당선했다. 거기는 저소득층만 들어올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인데, 복도형에 세대 규모가 작고, 공용 복도의 쓰임이 다양하고, 복도와 단위 세대가 만나는 방식이 다채롭다. 복도에 소파를 내놓고 쓰기도 하고, 빨래를 복도 난간에 널기도 하고, 항아리를 놓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저분하게 버릴 것들을 내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용자들이 그만큼 공간을 적극적으로 잘 쓰고 있다는 의미고, 그 건물에 생활이 스며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리켄 선생의 프로젝트는 어떤 강력한 인자를 가지고 있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앞으로 이런 집합주택이 더 나와야 되지 않을까. 아파트도 패러다임이 전환될 기회만 만난다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 박창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아파트 문제

분량2,951자 / 6분

발행일2022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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