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적 건축
박창현
분량3,242자 / 6분
발행일2022년 10월 28일
유형인터뷰
관계 설계
건축가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부터 관리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기획력이다. 건축가는 물리적 공간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구체적으로 1층 근생에 입주할 업종을 고민하고, 적절한 입주자를 섭외하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 건물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건축가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사업성 분석 결과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상가나 상점을 입주시키는 게 아니라, 동네를 다시 만들고 이웃 관계를 재조직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종의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건물 프로그램에 따라서 건물 디자인은 물론이고 구성, 유형, 쓰임,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관심의 범주는 개인의 관심사보다는 훨씬 더 넓고, 사회적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다. 통칭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건축’, ‘관계 조직에 일조하는 건축’이 우리가 취하는 태도이자 방향, 관심이다.
문도호제의 임태병 소장이나 스테이폴리오와 접점이 있는 것 같고, 두 팀에 비해 나는 소규모, 공공 영역에 좀더 관심이 있다. 공공을 논할 때, 국가, 지자체는 관계가 옅거나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한 공공 영역에서 건축을 관장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훨씬 규모가 작고, 사용자 간의 관계가 좀 더 밀접한 집단의 공용 공간이다. 구체적으로 2~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잘 아는 사람은 아닌데 자주 마주치는, 인사하기는 애매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닌, 또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친밀감이 있는,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데 연락을 할 때에는 살짝 고민되는 정도의 범주다. 그런 영역은 건축가가 공공재로서의 건물을 디자인할 때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집합이나 레이어를 섬세하게 나누고, 관계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조절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 설계를 의뢰하는 분들의 목적은 대부분 수익이다. 세대를 몇 개 더 만들지, 전용 면적을 얼마나 더 확보해야 수익률로 넘어가는지와 같은 숫자 놀음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건축가는 공공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계획하여 건축주를 설득해야 한다. 건물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건축주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시도조차 없다면 건축가는 자본에 귀속된 하수인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건축주를 설득하려면 경험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도 첫 출발이 힘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저층형 집합주택 프로젝트를 이어오면서 욕심 내지 않고 조금씩 실험했고, 작은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다음 프로젝트에 다시 적용하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더하는 식으로 진화시켜왔다.
협력 관계
건축을 하면서 내게 남은 재산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다. ‘좋은 프로젝트를 할 것인가’와 ‘좋은 건축가로 남을 것인가’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후자에 가깝다. 개별 프로젝트의 성패에 매달리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스탭, 동료, 협업자들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얼굴 보고 웃고, 만나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협력자를 떠올려보자면, 먼저 20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가구회사가 있다. 가구는 실제 사용자와 건축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건축의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물건이다. 따라서 완성도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어떻게 계획되고 제작되어 어디에 놓이는지에 따라서 건물이 생각한 대로 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 건물의 가치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건축에서 말하는 공간 개념을 가구로 조금 더 실체화할 수 있게끔 가구의 쓰임을 포함해 소재, 디테일 등 계속 새로운 것을 가구팀과 함께 논의하고, 현실적인 해결법을 거쳐 생산한다. 한편, 가구는 순서상 건축 공사가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 놓이기 때문에 타이밍과 규격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팀과는 함께 오래 일하다보니 호흡도 잘 맞는다. 사장님과는 일로 만나긴 했지만 그의 인생을 다 같이 공유하고 있고, 작업을 할 때도 많이 의지한다.
시공사는 바뀌더라도 금속, 목공, 전기 기술자들과는 같은 팀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쓰는 디테일에 어느 정도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팀이 우리 디자인을 맡으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기존에 함께 해온 팀들은 이미 해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거의 20년 정도 같이 일한 인테리어 팀이 있고, 그들이 함께 일하는 목수와도 2~3년에 한 번씩은 일을 같이 한다. 전기팀도 같은 경로로 알게 되어 함께 일한지 15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조명 가게도 한 곳 있다.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의 조명이 있으면 바로 구해준다. 창호도 국내에 들어온 PVC 창호 회사가 많은데 디테일, 내부 구성, 금액 등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일곱 개 회사의 창호를 여러 프로젝트에 다 써보고 시공, 관리, 전반적인 하드웨어, 내구성, 디자인 해결 능력 등을 확인한 뒤 최종 한 팀과 계속 일하고 있다.
이런 협력체계를 만들기까지 15~20년 정도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시공사 한 곳을 알기 보다 외장, 창호, 골조, 전기, 설비, 금속, 목공 등 시공의 개별 영역에 속하는 팀들을 알고 있다. 이들로부터 도움과 힘을 얻는다. 우리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주위에서는 ‘언제 시공사 차릴 거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동안 두 명의 사진 작가와 함께 일해왔다. 사진 작가는 협업자라기보다 우리가 기대는 조언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가 대신해서 사진으로 말해주고,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전반기에는 진효숙 작가와 주로 작업했고, 후반기에는 김주영 작가와 작업하고 있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김주영 작가는 2D 그래픽,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사진은 취미였다. 그런데 창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 찍을 법한 뷰가 아닌 낯선 장면이 많다. 그 중에 ‘이런 새로운 시각으로 찍었네?’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왜 찍었는지 의문이 드는 장면도 있긴 하다. 어쨌든 그 와중에 보석 같은 장면이 탄생할 때마다 서로 좋아하고 만족한다. 사진 작가들도 우리의 성향, 방향, 내용 등 이해가 맞아 떨어져야 잘 표현하거나 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인터뷰이 박창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관계적 건축
분량3,242자 / 6분
발행일2022년 10월 28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