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하는 관심
박창현
분량3,715자 / 7분
발행일2022년 10월 28일
유형인터뷰
공예와 조형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내 성향이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사이건축에서 SKMS 연구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피상적인 개념을 앞세워 설계했었다. 그 다음에는 가구, 조명, 손잡이, 디테일처럼 손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재료에 대한 쓰임을 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형대학 학부 시절, 큰 기계 톱으로 나무와 쇠를 자르고, 돌을 깎고, 흙으로 도자기 빚는 작업을 4년 내내 하다보니 그런 것이 내게 친숙했고 점차 건축과 접점을 살리게 된 것이다. 빛을 쓰는 방식과 조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기도 하고, 쓰임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자극적이어서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었다. 최근 지인들이 나의 예전 작업에서 두드러졌던 공예적인 부분을 짚으며 ‘그런 접근법을 좋게 봤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야?’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와 중첩되거나 조연처럼 뒤에서 받치고 있을 뿐이다. 매 프로젝트마다 조형에 대한 관심이나 표현, 제스처가 분명히 있고,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형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동네 안의 경계들
나무282와 조은사랑채 작업을 하며 관심사가 또 한 번 바뀐 셈인데, 이 작업들을 통해 동네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실제 구성원인 가족 관계와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건축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하고 작업으로 풀어간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 낼 때 건물 내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공용 공간인 도로와 건물 사이, 대지 경계석이 있는 안쪽이면서 건물 외벽의 바깥쪽인 사이 공간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런 땅은 대부분 관리하기 편한 재료로 포장하고 끝낸다. 나는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에 대한 관심을 드러낼 수 있는 접점으로 보고 더 많이 신경쓰려 한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홍은동의 경우, 이 동네에 40~50년 산 연로한 분이 많은데, 길을 걷다가 쉴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래서 우리 대지의 적절한 위치에 식재하여 그늘을 만들고, 조명이나 의자, 평상 같은 어반 퍼니처를 두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할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힘이 미치기 어려울테니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실천하려 한다.
동아시아의 건축가들
2012년 말, 에이라운드건축을 시작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중에 건축가 인터뷰를 가장 먼저 실천했다. ‘하다가 재미 없으면 그만 두면 되지 뭐’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여전히 하고 있다. 한국 건축가 인터뷰를 일본어로 출판해서 일본 서점 책꽂이에 꽂겠다는 무모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일본에 방문했을 때 서점 한쪽 서가에 일본 건축가 인터뷰 책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상황이 너무 부러웠다. 물론 그만큼 소비되는 시장이 있으니까 수많은 책과 매대가 만들어졌을 테고, 나는 그곳에 내가 만든 인터뷰 책을 두고 싶었다. 아직 출판하진 못했지만, 기회가 있다면 진행하고 싶다.
인터뷰의 맛은 시점(時點)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한 시점을 중심으로 앞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까 사람에 따라서 그 폭이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계획 단계에서부터 한 건축가를 5년 정도의 간격으로 세 차례 정도 만나려 했다. 장기간 동안 만남을 거듭하며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묻고, 현재와 미래를 말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노출된 이들은 제외했고, 나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고, 내가 인터뷰를 하자고 했을 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선배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건축 매체는 아무래도 신인을 발굴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새로운 얼굴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자연히 중견 건축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목천건축아카이브에서 구술집을 지속적으로 발간하여 몇몇 원로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를 한 번에 풀어놓는 것이라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시간 간격을 두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김준성 선생 정도만 진행했었다.
일본 건축가 인터뷰를 하면서는 여러모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가 깊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2012년 한일 현대건축 교류전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연락하게 되었고, 나루세 이노쿠마 건축과는 인터뷰를 한 인연으로 같이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또 그들의 친구와 연결이 되기도 한다. 스키마타 건축의 나가사카 조, 디앤디파트먼트와 같이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를 디자인하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만나기도 했다. 계속 접점이 생기고, 자극도 된다. 그들이 유럽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건축계를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건축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진행해 일단락 했다. 제주 무진도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색다른 기후와 건축의 관계를 생각하다보니 남쪽에 있는 해양국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 중심에서 동남아시아로 관심을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건축계는 동남아시아 시장, 문화, 건축에 관심이 전무하다. 반면 일본 건축계, 기업, 비평가 들은 동남아시아에 관심도 많고 정보도 많다. 사람과 관심이 차곡차곡 모이다보니 이 지역의 건축 관련 이슈를 선점하게 되었다. 우리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20년 초부터 동남아시아 5개국을 지정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획에 많은 시간을 투입했고 리서치도 많이 했다.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왜 그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 나라에 어떤 건축가를 인터뷰할 것인지 등등 모든 단계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각 나라에 건축가가 수천 명이 있을텐데 그중에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어떤 데이터를 통해서 적합한 사람을 찾을 것인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건축가가 국가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향후에 어떤 대표성을 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뷰나 아카이브 사업을 수행하는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서울대학교 등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들여다보았다. 아쉽게 그들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우리도 자체적인 기준을 세워 진행했다. 그러던 차에 「SPACE」로부터 1년 연재를 제안 받았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니 여러 장벽에 부딪혔다. 우선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서로 서투르다보니 내용의 이해나 전달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서면 인터뷰 방식을 택했는데, 이 방식이 갖는 한계가 명확했다. 많아야 두 번 정도 서신을 주고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 덕분에 동남아시아 건축계의 분위기나 관심사를 알게 됐다. 한국과 약간의 교집합도 있고, 그들이 한국 건축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보이고, 자극도 되고 반성도 됐다.
인터뷰 프로젝트는 내 나름대로 건축계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건축가 대 건축가로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각자가 생각을 거듭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건축가 인터뷰가 끝났으니 김수영(숨비), 서재원(aoa), 김사라(다이아거날써츠), 이정훈(조호) 등등 예전에 만났던 국내 건축가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지역의 건축가 리서치도 시작하고 싶다.
인터뷰이 박창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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