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과 자립이라는 낭만적 연결에 대해
최빛나
분량3,396자 / 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7월 2일
유형비평
노동의 풍경
우리가 닿았던 이 시대의 노동의 풍경을 적어볼까?
- 창문도 없는 산업사회의 공장에서 분업으로 생산된 콜트·콜텍 기타 공장은 해외로 이전했고 노동자는 해고되었으며, 그들의 싸움은 3,000일을 넘겼다.
- 누군가의 자유노동 덕에 오픈소스로 올려진 도면, 그리고 그것을 내려받아 레이저 커팅 기계로 만들어낸 기타.
-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생산된 키트에 레고와 온갖 센서를 덧붙여 만든 자작 기타. 그리고 이들을 아우르며 후경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최근의 우버 등의 ‘공유경제’ 논쟁에서 볼 수 있듯, 효율을 극대화 하는 알고리즘 플랫폼에 기반한 ‘대중 외주형 티끌 일자리들crowd sourced micro-job.
지금 노동의 풍경이다. 여전한 산업사회의 맷돌, 핑크 칼라들의 분투, 새로운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노동 분산의 시대에 당신은 어떤 미래와 자립을 꿈꾸며 살고 계신가?
너무나 사회적인
제작이 자립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순간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가? ‘소비 보다는 생산, 촘촘한 자본의 구조에 빚지고 있는 의식주, 그것에서의 자립, 그리하여 노동하는 인간’이 떠오르는가? 대량 소비 사회의 헛헛함을 ‘만들기’ 라는 행위를 통해 ‘인식’하고 ‘자기 가치화’ 해 보자는 것. 그렇게 다른 몸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들 – 괜찮은 연결이다.
제작과 자립이란 키워드의 결합에는 이처럼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혹은 대안적 삶에 관한 질문들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사고에 하품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만들기가 일종의 계몽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 탐탁치 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이라는 폭넓은 스펙트럼 중 이런 담론의 층위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 오히려 이런 관점들은 물건의 생산 보다는 주체성을 만드는 문제에 더 가까운데, 대안 경제의 모델처럼 종종 흐릿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다. (제대로된 숙련과 유통의 문제를 통한 경제 시스템의 차원으로 바뀌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관점은 3D프린터와 같은 ‘데스크탑 생산 시스템’과 결합하여 독립적 경제활동의 기반에 대한 기대로 바뀌어 가고 있고, 여기에서 자작 문화는 ‘분산 제조’와 ‘자기 고용’이라는 전략을 통해 하나의 산업적 위치로 일.단. 배치된다. 그것이 ‘청년’ 일자리 문제나 사회적 경제 영역과 활발히 조응하기 시작하면 제작과 DIY는 어느새 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또 한편에서는 행정이 추동하는 제작 공간들의 생산을 통해 혁신 제조업 혹은 창조경제의 담론과 연결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어느 편이든 기금 지원-사업 시행-평가라는 특정한 가속의 플랫폼으로 재편되는 구조는 또다시 작동하고 있고, 그 위에 당신이 자립이란 깃발을 꽂을지 말지는 자유.
전통 제조업과 디지털 제조업 사이
메이커 스페이스라는 창조적 공장, 그리고 그 공간들을 휘감고 있는 해커윤리와 기풍들은 우리가 직면한 제조업의 재편, 노동 구조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개인 분산적 생산 시스템’을 공유하는 이 글로벌 공간 모델과 메이커maker라는 새로운 창작자의 존재 – 그렇다면 머리에서 맴도는 질문 하나를 꺼내보자. 3D프린터로 대표되는 개인 제조 장비들의 보급과 제작 공간은 ‘개인이 (노동자가) 생산도구를 가지게 되는 시대’라는 오랜 사회주의적 꿈과 연결이 될까? 3D프린터를 만드는 페이스북 친구의 “생산도구의 민주화를 통해 계급적 질서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라는 일말의 신념이 보이는 포스팅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글쎄 모르겠다. 사실 최근의 3D프린터, 레이저 컷터, CNC와 같은 개인 DIY 장비와 그것들을 떠받치는 오픈소스 생태계는 사실 그들이 탄생한 맥락이기도 할 전통적 제조업의 노동을 소멸의 길로 보내는 기술들이기도 하니, 그 기술이 전통적 제조업 노동자에게 친화적 기술이라고 하기엔 무리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계급적 기반을 이루던 산업자본사회라면 모를까, 정보자본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메이커’ 라는 존재는 지금의 붐이 지나가고 나면 새로운 유형의 분산적 디지털 노동자로 안착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모습은 사뭇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현실의 태를 나타내며 확산되어 갈 것이고, 수많은 기식 플랫폼에 작업을 쪼개어 파는 DIY 노동자부터 성공적인 테크 제조업을 일굴 노동자까지 다양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한편으로는 분산적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팔며 디지털 노마딕 라이프라는 새로운 유목적 삶의 형태가 유효한 이들도 있겠다. 당신이 영어를 꽤 자유롭게 쓰고 디지털 툴에 익숙한 이라면 치앙마이나 발리로 떠나 몇 년 간은 유유자적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엔 국제적 젠트리피케이션을 욕하며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제작 혹은 DIY는 이렇게 신경제의 각기 다른 꿈과 요구들과 활발히 조응하며 사회적 공장을 짓고 있고, ‘니 알아서 사세요’와 ‘자기 기반의 자립경제’라는 제스처를 동시에 취하고 있다.
DIY 생존 키트
‘DIY 생존 키트DIY Survival Kit’라고 구글링을 하면 별별 타입의 키트들이 화면을 채우는 걸 볼 수 있다. 의약품은 기본이요, 개인 구호 물품의 차원에서 상당히 시민과학적 접근을 보이는 생존 키트까지 다양하다. 세이프캐스트Safecast와 같은 방사능 측정 도구는 후쿠시마 원전 이후 차단되어 명확하지 않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소스 가이거 계수기이다. 연속적인 파국의 시대에 이러한 키트들은 ‘알아서 살아내야 하는’, 말 그대로 ‘생존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기본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된다. 탈소비사회의 대안에서 자율적 개인의 취향, 그리고 ‘스스로 삶을 (알아서) 제조하라’는 요구와 조응하는 DIY 정신까지, 이처럼 우리는 DIY의 기풍이 다양하게 구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식과 자율의 장치들이 분간 안 되게 뒤섞이고 있는 시대에, 자립이란 표현을 듣게 되면 어떤 긍정적 부정적 감각도 없이 그저 낭만의 기운에 살짝 몸을 떨게 된다. 또한 궁금해진다. 자립이란 표현에 수긍하는 듯해도 결국 강한 생존의 본능에 어떤 태도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시대의 각자도생 세대들에게 자립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과연 ‘자립’이라는 단어는 점점 강해지는 이 시대의 기식-자율의 이중의 플랫폼 사이를 예민하게 뚫고갈 수 있는 단어일까? 그리고 공공과 사회적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되는 외면적 정체성 조성의 장과 가속의 플랫폼 위에서 제작이란 행위는 그 조급함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도 낭만적이다.

최빛나
청개구리 제작소(www.fabcoop.org)에서 활동하며 시각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제작기술 문화가 여러 사회 분야와 일으키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떠한 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나타나는지를 수집, 기록하고 있다. 일시적 제작기술연구실 ‘언메이크랩unmake lab’ (www.unmakelab.org)을 열고 있다.
제작과 자립이라는 낭만적 연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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