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사회에 개입하는가
김남시, 신제현
분량14,220자 / 3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5년 7월 2일
유형대담
신제현 작가는 사회적 장소 내 사각지대를 찾아 그곳에 예술의 둥지를 트고, 새로운 빈틈을 노린다. 최근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했던 철거용역을 관객으로 한 공연처럼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김남시와는 《리얼 디엠지DMZ 프로젝트》에서 작가와 기획자로 만나고 있는데, 이들은 철원보다도 밀양, 4대강, 강정, 광화문이 ‘디엠지적 공간’이라는 데 공감하며,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사회적 작업이 갖는 고민과 입장을 나눴다.
김남시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에서 미학과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신제현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사건과 아이러니한 지점들을 장기간의 리서치를 통해 사운드 퍼포먼스, 영상, 출판,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풀어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예술
김남시 신제현 작가는 늘 에너지가 넘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에 입주 작가로 있으면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신제현 지금 하는 사운드 작업은 6년 전부터 진행했습니다. 첫 퍼포먼스 장소가 인사동이었는데, 그곳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면서 한때 융성했던 대안공간들이 많이 쫓겨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 쫓겨난 집들에 버려진 물건을 주워 악기를 만들어서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2년 후 진행했던 서교동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망한 악기점들이 많았는데,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걸려있는 해금도 그때 만든 겁니다. 이처럼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지역, 쫓겨난 가게에서 주운 물건으로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그 소리를 아카이빙합니다.
김남시 그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에서 주운 물건을 가지고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는데, 이번엔 의도치 않게 테이크아웃드로잉 문제와 직면하게 됐습니다. 이번 사태에 작가로서, 또 대책위원으로도 활동하시는 걸로 아는데, 이 두 입장 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신제현 양쪽을 다 취한 것 같습니다. 대책위는 현실적인 행동가로서, 예술가로서는 이곳에서 공연을 하거나 악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좀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 행동주의activism가 너무 직접적인 의미의 행동이 되어버리면 예술적 가치 또는 그 맥락이 희미해지고, 행동이 정치적 도구가 되어 버리는 지점들을 사실상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미디어 자체가 ‘도구’가 되어도 상관 없으나, 행동 이상의 것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좀 어려운것 같습니다.
이번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경우 가수 싸이 측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물건들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서 자본의 힘으로 빼내는 것인데, 저는 2층과 1층에 낚싯줄로 물건을 연결해 놓은 작업을 함으로써 오히려 이를 예술의 영역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싸이 측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물건들을 빼내려면 제 작품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작품에 사용한 낚싯줄은 물속에 들어가면 물고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재질이고 이런 요소가 지금의 상황과 연결되는 듯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죠. 법조계에 있는 사촌에게 저작권법에 대해 문의하니, 건물에 설치한 조형물은 법적 효력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김남시 그 작품을 파손시키면 싸이 측에서 변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군요.
신제현 네. 그렇습니다. 사실 법조계에서는 제가 굉장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고 하더군요. 건물의 세입자임에도 월세를 내지 않고, 오히려 돈을 지원 받고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화적 활동을 해주고 돈을 받는 갑인 것이죠. 법적으로 싸이는 갑을 관계에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갑이고, 제가 만약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돈을 내고 공간을 임대한 세입자였으면 제가 싸이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 작품이 싸이 쪽에 의해 파손되더라도 저는 싸이 측이 아닌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요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저와 싸이 양쪽이 ‘갑’이고 테이크아웃드로잉만 ‘을’이기 때문에 싸이 측이 제 작품을 파손했을 때는 제가 집행 공무원에게 제 작품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여 명도 집행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례가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일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김남시 저 낚싯줄 작업은 그런 법적 자문을 구한 다음 설치하신 거군요.
신제현 그렇습니다. 공연도 철거용역을 환대하는 퍼포먼스로, 그들을 관객으로 대상화 했습니다. 사실 미술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이게 굉장히 폭력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철거용역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예술과 관객들 사이의 오해에서 발생한 폭력성을 행사하여 함께 융화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인연합회나 과거 철거용역을 했던 사람들의 조언에 의하면, 철거용역이 오면 가장 먼저 유리를 깰 것이라고 하길래 유리에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 장면을 그려 유리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죠.
김남시 짧은 시간에 멋진 기획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그 개입의 지점들이 아주 절묘합니다. ‘예술’ 행위가 실질적인 법적, 정치적 방어효과를 갖도록 하는 방법이요.

법과 예술의 사각지대
신제현 싸이의 철거집행은 ‘법의 사각지대’를 잘 노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기도 전에 철거집행이 가능한 것은 어떻게 보면 ‘법의 사각지대’와 ‘돈의 논리’가 작용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잘 모르는 ‘예술의 사각지대’로 그들의 행위를 덮어버리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싸이를 이겨서 공공성이 살아나는 것도 좋지만 저는 그것이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예술이 사회적 법적 문제에 개입했을 때 어떤 지점들이 발생하는가’가 저의 물음입니다.
김남시 ‘법의 사각지대’란 말은 실제로 법이 모든 것을 규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TV프로그램 ‘아트스타코리아’(편성 Story on, 2014.3.30~6.22)에 신제현 작가와 함께 출연했던 유병서 작가는 공공장소에 조성된 꽃을 몰래 다른 곳에 옮겨 심는다던가, 허가 없이 육교에 페인트 칠을 하는 등의 개입 작업을 했습니다. 유 작가는 설마 법이 이런 사소한 것까지 규제하거나 문제를 삼을까, 라는 법적 관용에 기대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법의 힘과 조건 안에서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법이 우리의 소소한 일상 모두를 일일이 규제하지는 않으리라는 ‘법의 빈틈’에 대한 기대감 또는 방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기대감은, 법이 우리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처벌이라는 방식으로 우리 삶에 엄정하게 개입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법에 이런 빈틈이 있다는 것을 불안해 하면서, 법이 아주 구체적인 삶의 영역까지 개입해서 우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그것이 민주주의의 확장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시위를 할 때 경찰이 경찰차로 방어벽을 세우는 게 ‘불법’이기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 비판에는 ‘법이 우리의 자유 및 기본권을 지켜준다’, 그래서 ‘법대로’ 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 분쟁에서도 고소나 고발 등 법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바람직한 방향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시기에는 법이, 말 그대로 벌거벗은 폭력과 억압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정당한 요구를 ‘불법’ 시위라고 가로막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해고를 적법하다고 판결하는 법에 우리 삶의 보호를 위탁하고, 나아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영역까지 개입하여 관철되도록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오히려 우리는 법의 빈틈을 찾아내고, 법이 개입하지 않는, 삶의 영역을 더 확장시키는 것을 시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신제현 작가의 작업은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신제현 저는 법이라는 것을 광물과 같은 자원의 개념으로 봅니다. 기득권인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만든 것이 지금의 임대차 관리법입니다. 사실 저는 시민사회 안에서 국민들이 헌법에 의해 보호된다는 순진한 시선으로 법을 보지 않습니다. 법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기득권 혹은 부자이기 때문에 당이 있지만 그 안에서 바른 방향으로 법치주의의 기본이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그 법들을 바꾸기 위해서 많은 단체들이 노력하며, 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익적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병서 작가가 법의 관용에 대해 작업한다면, 저는 제임스 파우더리James Powderly, 예스맨 그룹Yes man group, 스페이스 하이젝커Space Hijackers처럼 법을 예술로 이용하거나 허점을 적극 파고드는 입장이 더 강합니다. 사실 관용으로 접근하는 것이 법을 신뢰하는 입장이라면, 저는 국민이 국가와 사회, 법을 좋은 의미에서 의심하고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김남시 굉장히 위험한 작업인데요. (웃음) 신제현 작가의 방식처럼, 차벽이 불법인데 왜 설치를 하는냐고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대신, 그렇게 설치된 차벽을 이용하는 어떤 창조적 실천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회에 개입하는 데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제현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가를 직접 개입과 은유적 접근으로 나눈다면, 저는 양쪽에 다 속하지만 작업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분명 작가가 문제에 개입했을 때 실질적인 효력이 생기는 부분과 아닌 부분들이 있다고 봅니다.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의 대형재난 관련 전시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제 본가가 고리핵발전소 바로 옆 지역인데 핵발전소 문제는 법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진짜 대형재난과 관련된 문제로 저에게는 직접적으로 건드느냐 간접적으로 접근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꼭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이죠. 개인용 포르노그라피를 만들어 주는 작업 또한 한국여성들의 인권과 관련된 분명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순수미술fine art의 영역에서도 일부러 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라던가 공공미술 정도로 작업을 아예 분류시킵니다.
김남시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예술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현실에 개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제현 비난을 많이 받기도 합니다. 이번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의 제 작업이 예술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행동이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테이크아웃드로잉도 법 대로 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것인데 왜 예술을 앞세워서 버티고 있냐는 비난이 들리기도 합니다. 잘못된 법을 맹신하거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런 비난은 견디기 쉽지 않죠.
김남시 아방가르드 이후 예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정치적 문제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실에서 일어나고 만들어지는 것이 예술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예술가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작가들이 현실에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그리고 현실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특히 정치적인 제약이 강한 한국에서는 더 어렵습니다. 현 정권에서는 이전에는 별문제 없었던 것들 조차 법적 개입으로 처벌이 가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사실상 그저 평범한 ‘표현의 자유’ 를 이용하는 정도의 작업이 도리어 갑자기 현실 개입적이고 정치적인 작업으로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이하 작가는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풍자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이런 작업이 가지는 성격과 신제현 작가의 작업의 성격 사이에서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하 작가가 ‘표현의 자유’로 이야기될 수 있는 ‘법의 빈틈’ 혹은 ‘법의 관용’을 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 신제현 작가는 구체적인 영역에서 법과 사회적 체계에 들어가 그를 역으로 이용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를 위해서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긴장감 있는 거리감이 필수적입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 이후 작가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 세월호는 작가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심대하게 연루시킨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데 있어 일반인으로서와 태도와 작가로서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면 그 사건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거리감이 사람들의 눈에는 그만큼 진지하거나 치열하지 않은, 어떤 무관심과 냉소로 비춰질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세월호 사건의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했던 사진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장의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작가로서의 의식과 유가족의 반발이나 요구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신제현 세월호 참사를 작가가 과연 작업으로 다룰 수 있는가, 재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제가 취하고 있는 ‘적과의 동침’과는 약간 다른 맥락인 것 같습니다. 저도 세월호와 관련 작업을 하고 있고, 전시 요청도 여러 차례 왔는데 사실상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순수예술 쪽에서는 윤리나 도덕적인 기준이 작업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인데, 그럼에도 작가가 어떤 사건을 대상화 하거나 소재화한다는 혐의가 발견되면 이것은 분명히 작가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는 요청 받았던 전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좀 비겁하지만, 피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세월호를 다루는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리서치입니다.
김남시 한국에서의 예술의 역사를 보면, 80년대 민중미술에는 그림의 주체이자 관객일 민중들과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사회·정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의식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브레히트의 연극처럼 관객들을 얼떨떨하고 낯설게 만들어, 다른 무엇을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은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열악한 정치적 상황은 또다시 그런 ‘거리두기’ 예술의 등장을 저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작가들로 하여금 많이 고민하도록 합니다.
뮤즈로서의 한국 사회
김남시 권미원은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오늘날, 본래 장소 특정적으로 시작된 작업이 여러 미술관을 순회하면서 작품이 장소의 실제성과 어긋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제현 작가의 작업은 대부분 장소특정적인데, 장소성이 탈각된 화이트큐브에서는 힘들지 않나요? 이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대한 신 작가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신제현 솔직히 저는 어느 장소든 상관없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했을 때도 가장 먼저 한 것은 미술관이 되기 전에 그곳이 일제시대 법원으로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미술관이 된 후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의 리서치였습니다. 아이디어 중에는 시립미술관 자체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트레일링>(2014)은 두 달 동안 닭 일곱 마리를 미술관에서 키우는 것이었는데, 사실 닭은 관리도 힘들고 동물학대 문제도 제기될 수 있어서 미술관에 굳이 가져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특히 냄새가 지독해서 미술관에서도 굉장히 싫어했고요. 그런데 리서치를 하던 중 ‘트레일링trailing’이라는 전시 주제에 반에, 시립미술관이라는 장소는 너무 깨끗다는 것을 발견했고, 대형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락스와 살균제가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다 보니 핵발전소, 조류독감, 아토피라는 큰 재앙이 되어 돌아온 것에 대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미술관에 닭을 키워 인위적인 공간에 닭의 냄새가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에겐, “이 큰 공간에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는 사실은 아주 많은 락스와 세제를 쓴다는 것인데, 내가 닭의 배변과 박테리아로 이곳을 오히려 정화시키고 있다”고 답했고, 그럼에도 계속 비난을 받으면서 반문하게 만들었습니다.

김남시 시스템 속에 들어가 그를 이용하면서 그 시스템 자체의 문제점을 가시화시키는 전략이 아주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신제현 ‘아트스타코리아’에서의 핵발전소 관련 작업은 당시 이재현 회장의 구속특사 문제 때문에 CJ 측에서 굉장히 힘들어 했습니다. 방송이 거의 안 될 거라고 했고, 저희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원래 하려던 작업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세월호와 관련된 작업을 하려고도 했으나 아까 말씀드린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2, 제3의 세월호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는데, 바로 저희 집 옆(고리원자력발전소)에 있었습니다. 당시 시립미술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으로 이용했습니다. 미술관 바로 옆에 한국수력원자력 건물이 있기도 했고, 실제로 핵발전소를 관리직하는 꽤 여러 명의 직원들도 제 전시를 관람했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김남시 신 작가는 전시가 예정된 미술관을 하나의 장소로서 조사하고 바로 그 장소가 가진 역사와 시스템을 이슈화 했습니다.
신제현 ‘장소특정적’이라는 말 안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리서치와 상황, 관계, 네트워크 등 모든 것들을 장소의 특성이라고 보았을 때 이 지구상에 제가 못할 전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주 상업적인 공간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남시 신 작가의 작업 방식은 어떤 시스템든 장소이든 이슈화 할 문제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혹은 은폐된 문제들이 있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규범들이 있다고 보는 거죠?
신제현 네. 다른 인터뷰에서 ‘당신의 뮤즈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은 조금만 조사를 해도 너무나 많은 문제와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작업하고 싶은 생각도 크게 없습니다. 어쨌든 저의 작업은 한국이 가진 컨트라스트, 즉 옳다고 생각하는 논리와 그것이 벌어지지 않는 현실, 본능, 욕망 간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훨씬 많은 것이 드러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문제제기와 표현의 방법론
김남시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가시화 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본인의 작업들이 왜 상을 받고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제 생각에는 문제 많은 우리의 시스템이 그만큼 유동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런 식의 문제제기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포용력이 큽니다. 신 작가 작품의 비판적 지점이 오히려 시스템이 포섭됨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신제현 일단 제 작업은 문제의식 자체는 아주 예민하고 불편하지만, 표현 방식은 심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닭 냄새가 굉장히 불편한 점이 있었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라진 이름표를 모아 외우면서 그것을 거꾸로 적는 지점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트레일링>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 내 가족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작업이었지만, 나름 공공성을 포함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김남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야기 하면서, 그 이후에 작가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이나 시스템에 담긴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들이 예술이라는 틀 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서울시립미술관의 순환circulation 문제, 이성 간의 문제, 핵발전소의 문제를 신제현 작가가 사회운동가로서 제기했다면 이렇게 전시로 보여지거나 공중파에 반영이 될 수는 없는, 오히려 차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회운동가가 핵발전소 문제를 제기하고 데모하고, 이에 대해 시립미술관에서 신제현 작가가 다루었던 문제들을 예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했다면 이만큼 가시화되어서 보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제현 저는 그런 점이 예술의 힘이라고 봅니다.
김남시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실과 예술 사이의 관계는 이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착종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장착한 낚싯줄 작업처럼 철거용역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예술의 힘일 수도 있지만, 반면 예술이기 때문에 현실과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는 데 한계도 있는 거죠. 예술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예술 자신의 한계라는 것은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평가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신제현 그것은 작가 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사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작업과 분리합니다만, 예술은 다양한 지점에서 직간접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예술은 모든 상황을 그 상황 자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지금 당장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느냐 마냐의 문제만을 본다면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많은 관객에게 의식을 확장하고 다양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대립의 장소가 DMZ
김남시 아트선재센터가 주관하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이하 ‘리얼 디엠지’)는 2012년부터 시작했는데 올해는 예년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는 전시가 주로 민통선 안쪽에 위치한 ‘안보관광’ 코스에서 이루어지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매번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그랬고, 관람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민통선 바깥으로 나와 철원군 동송읍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기는 더 큰 장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DMZ라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무겁고 큰 데다가, 땅굴이나 전망대 등에서 전시를 해야 하는 조건은, 작가들로 하여금 DMZ라는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제한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실체로서의 DMZ는 냉전과 전쟁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분단 지역이라는 역사의 산물이지만, 이것을 ‘전쟁, 죽음, 통일’과 같은 과거의 문제로 국한시키기보다,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 작용하고 있는 분단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군사적인 경계선으로서 디엠지는 철원에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적, 사회적 경계선으로서의 디엠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일베 또는 어버이 연합이 대치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화된 경계를 더 잘 보여주는 곳은, 안보 관광지인 민통선 내부 보다는 광화문광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DMZ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가들의 작업 역시 전쟁과 분단의 문제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의 이와 연관된 문제들로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서도 민통선 밖으로 나온 것은 좋은 조건입니다.
신제현 저는 사실상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DMZ가 심각하고 긴장감 도는 경계선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오히려 관광지나 모뉴먼트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빨갱이’, ‘좌파’, ‘좌종북’, ‘애국’ 등을 분단을 상징하고 갈등을 발생시키는 키워드로 봤고 이러한 단어가 오가는 곳을 진정한 DMZ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철원보다 고리 핵발전소나 밀양송전탑, 사대강, 광화문이 DMZ인 것이죠. 작업을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설명하다보면, ‘니 빨갱이가?’, ‘김정은이가 보냈나?’ 같은 질문을 합니다.
DMZ 인근 지역에 가면, 거대한 숫자판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숫자판의 역할은 그 지역이 DMZ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으로 비행기나 헬기가 DMZ로 진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저는 이것을 광화문이나 그 부근인 아트선재센터 건물의 옥상 등, 몇 개의 지점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 숫자판 설치문은 너무 크고 숫자가 위로 향해 있기 때문에 길을 지나가는 행인이나 관객들은 이 숫자판에 어떤 숫자가 적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드론을 사용해 공중에서 숫자를 촬영하고 마치 이 숫자판이 철원 DMZ 인근에서 찍은 사진인양 전시할 계획입니다. 주변에 말도 안 되는 비석에 “양지리”라고 새겨, 하나만 세워도 DMZ가 되고 그 주변에 있는 나무가 진짜 DMZ의 나무인지는 아무도 구별 못할 것 같아요. (웃음)
김남시 땅굴을 가면 내려가는 길에 군에서 만든 포스터가 있는데, ‘총성이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라고 쓰여 있어요. 이 표어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보수 정권들이 정권 창출과 유지를 위해 계속 활용해 왔던 안보논리의 요약문이지요. 평화로와 보이지만 우리는 휴전 상태이고, 언제든지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위협이, 지금까지 또 지금도 간간이 자유와 민주주의에의 요구를 억압하는데 활용되고 있지요. 그런데, 기묘하게도 작가들이, 특히 외국작가들이 민통선 안에서 작업을 하려고 하면, 작업이 위 표어와 비슷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지만 사실상 이곳은 전쟁 중’임을 드러내는 미술 작업이라는 역설적 결과가 등장하는 것이지요. 군과 지금까지의 정권이 이용했던 이데올로기를 작가들이 작업으로 표현하게 되는 셈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년관
김남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청년관’ 문제 입니다. 《건축신문》 지난 호에서 윤원화 선생은 청년관을 위한 청년 작가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13호 Focus <서울관의 시대, 청년관의 질문>) 그런데 저는 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시스템 문제인데, 그 시스템 안에 청년들을 위한 공간을 하나 내어달라는 요구가 저에게는 역설적으로 보였습니다.
신제현 한 명의 권력형 비평가의 진두지휘 아래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해야 할 젊은 작가들이 왜 귀속되어야 하는지, 또는 함께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좋은 뜻에서 가진 분이 있으면 함께 갈 수도 있지만, 이는 청년 작가의 개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면 분명이 다른 문제를 만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청년관이 굳이 관료적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안에 있을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과연 청년관이 잘 운영될 수 있는가, 입니다.
김남시 별도의 새로운 기획과 조직을 이루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미술관에 제도적 공간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여지가 너무 많습니다.
신제현 사실 그 문제를 이야기 하려면 한국에 있는 미술대학의 수와 배출되는 작가의 수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때 종합대를 만드는 것이 열풍이었고 그때 미대가 많이 생겼습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미대의 수는 독일, 프랑스의 7~8배 정도라고 하고, 졸업하는 미대생의 숫자도 1년에 몇만 명 정도로, 수치로는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많은 공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자를 모두 수용하지 못해서, 작가들이 스스로 공간을 만드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 또한 하나의 대안공간 현상입니다. 그런 시점에서 봤을 때는 청년관 이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졸업자가 너무 많은데 대안공간에서 수용 가능한 작가 수가 몇 명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전시공간에 지원하면 경쟁률이 기본적으로 100:1을 넘습니다. 게다가 작가를 선정하는 사람도 항상 같기 때문에 선정 작가가 중복되고 되풀이 됩니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청년관’ 문제는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남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최근 한국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담론 중에 하나가 사람이 바뀌는 것 –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 어떤 자리에 누가 가는지- 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고, 사회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노무현 정권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정치가 제도화된, 이전처럼 정치 밖에 학생운동이 있었던 때와는 다른 분위기 입니다. 결국 그 제도권 정치 안에서 인물 싸움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지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사회영역에서도 이 현상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있는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그 기관 자체가 바뀔 것 같은 기대감이 많이 있고 청년관에도 그런 이런 생각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청년관 담당 큐레이터가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사람이 아닌 뭔가 다른, 크리틱컬한 사람이 되면 새로운 것이 앞으로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있는데 과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가 의문입니다.
신제현 그런데 시립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리시스템이 큐레이터가 있고 그 위에 과장급 큐레이터가 있고 마지막으로 관장의 직인을 받고 전시가 승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관장에서 독립된 시스템을 갖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큐레이터가 정치적인 면을 가진 어떤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조직 안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서울관 안의 청년관을 짓는거보다, 차라리 인사미술공간처럼 따로 독립을 시켜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관 자체가 하나의 운동으로서 유효할 것이나,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예술은 어떻게 사회에 개입하는가
분량14,220자 / 3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5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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