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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겹의 나 여러 명의 나

박재용, 정유정, 조예원


박재용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건축학전공
정유정
홍익대학교 건축디자인전공
조예원
홍익대학교 건축디자인전공


모든 가치가 동일화되고 타자의 욕망을 따라다니는 요즘 상황에서 자신만의 고유함을 찾고자 하는 현상은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공통적 기질은 찾을 수 있어도 나만의 고유성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한국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수없이 많은 공통적인 기질에 한국성을 꿰맞춰 규정해버리는 시도들만 이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를 규정하는 시도보다는 먼저 긍정하려는 시도에서 설계를 시작했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러 겹의 내면을 가지면서도 다양한 나를 표출하고 싶은, 여러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은 주택이 나오게 되었다.

겹裌

세상 속에서 나는 여러 모습을 만들어낸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나의 모습들이 중첩되어 입체감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 나는 더 많이 두르고 싶다. 그러면서도 메아리처럼 적절히 나를 표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첩첩산중 – 다겹의 구조

풍경이라는 것은 다양한 겹(layer)의 중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떠한가? 그 누구보다 배산임수를 중요시하며 경치를 중시하던 한국인의 풍경은 어떠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담에 오히려 갇히고, 나를 둘러싼 주위 요소에 대한 것은 닫아두고, 자신만의 것을 지키기 위해 급급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나 또한 어느 정도의 투명함을 지닌 채, 주위 환경에 중첩되어 포개지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집안의 풍경은 외부로 연장되어 하나의 경관을 이루지 않을까?

단段

단段(층계 단)으로 단斷(끊을 단)을 없애겠다. 누구나 보호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단절되기는 싫다. 숲속에 있으면 적절한 개방과 둘러싸임으로 인해 그 두 가지 욕망이 충족되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삶 또한 다양한 레벨로 경계 짓되 연속되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강의 옛말인 가람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곳이 산이고, 깊이 패여 물이 고인 곳은 바다가 된다. 사람들이 발붙이고 사는 곳은 땅이 되며, 산과 땅과 바다는 제각기 높낮이가 있어서 세상의 어느 한 곳도 꼭 닮은 곳이 없으며, 각기 떨어져 다른 것 같이 보이는 요소들은 강으로 연결되어 유기체를 이룬다.

주거도 작은 세상이다. 벽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열린 다양한 높낮이의 공간을 생성하면 제각기 알아서 공간화되고 그것들이 가람을 이루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어느 때는 모자처럼 살짝 덮어서, 어느 때는 밥그릇처럼 품어 열린 영역성을 만들고자 한다. 그것들은 각자 자기들만의 특징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진다.

명名

여러 가지 가능성의 층을 가진 나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규정되고, 구체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제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격을 동시에 갖는 존재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은 불리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삶의 터전인 주거 환경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분리와 기능 부여를 위해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고, 각가지 자유로운 공간은 거실, 주방, 화장실 등으로 규정되며 성격이 부여된다. 하나의 공간에 한 가지 성격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공간에 얼마나 큰 실례인가.

우리는 주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두 가지 기준으로 분리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내밀한 공간과 무언가를 생산하며 내보여줄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 그리고 하나의 공간에서도 여러 가지 겹을 지나며 그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질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김효영 겹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평면을 재미있게 풀었다. 복잡하고 오밀조밀한 평면에 비해서 단면은 형식을 갖춰 설계한 것이 대비를 이루어 흥미로웠다. 한국성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개인적인 부분을 찾아서 모아 나가다보면 결과적으로 한국성을 말할 수 있지 않겠냐’라는 설명에 공감이 되면서도, 아직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단면에서 무언가를 캐치해서 찾아낼 수 있는데, 그 단면이 어떤 성격을 대변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집의 유형, 건축 형식을 설명하진 않았는데, 중정형에 여러 겹이 있고 채나눔 형태가 보이기도 한다.

박재용 정유정 조예원 겹, 단면이 기존의 형태를 따라가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어휘를 사용하고 그로부터 시작하는 것에서 한국성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여러 겹을 쌓는 시도는 이미 많다. 그런데 동일한 겹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돌담, 커튼, 유리, 자연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도입하여 다양한 겹을 만드는 시도가 기존의 것에서 발전된 우리만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정현 한국성이 내밀한 욕망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참가자의 생각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욕망이 개인의 순수한 욕망인가를 묻는다면, 아니다. 벌써 근대성을 시작할 때 헤겔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을 정식화한 이후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 자체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욕망에서 출발하되 그 욕망이 만들어진 사회 경제적 조건이라든가 한국적인 조건 등을 건드릴 때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이게 내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이게 한국적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고리들을 조금 더 설정해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설명할 때는 그 설정이 약했다. 그리고 주택을 점유하는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주택에 어떤 사람이 산다고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박재용 정유정 조예원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시간도 필요하고 생산적인 활동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평면에서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데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루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작업물을 전시하거나 생산활동을 하는 공간도 있고, 사적인 영역에서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여러가지 방면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사람이 살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서재원 한국성을 찾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 주택이 물리적으로 한국성을 띠느냐, 한국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느냐,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성을 찾는 하나의 방법은 작가의 태도에도 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한국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입장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성을 찾을 때 왜 그것이 더 중요한가를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는 “내가 한국 사람이므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한국적인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갈 수 있는 문제다. 그러므로 최초의 시작점에서 그런 설정 혹은 당위성을 조금 더 찾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여러 겹의 나 여러 명의 나

분량3,304자 / 7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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