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집
한현수
분량3,732자 / 7분 / 도판 7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한현수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한국 건축의 이기적 유전자와 21세기의 방향성
지금, 한국 건축은 경계의 포화상태에 놓여있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이뤄낸 초고속 경제성장은 우리 사회를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였고, 결과적으로 도시는 점점 이기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갔다. 우리가 경계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영역 간의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분명한 차이였고, 욕망에 충실했던 우리는 이 차이를 소유하고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는 경쟁에 발을 들였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폐쇄적으로 변모하는 한국의 이질적 경계는 자연적 또는 인공적이기도 혹은 비물질적이기도 한 형태로 지금까지 도시 곳곳에 증식해 갔다. 본래 강남과 강북을 나누는 자연적 경계인 한강의 조망권은 자본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이제 흔하디흔한 ‘○○캐슬’, ‘ㅇㅇ 파크’ 등의 브랜드로 포장된 아파트 단지들은 서열화를 통해 사회의 양극화를 가속했다. 또한 이 불편한 현상의 쟁점인 수도 서울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권력의 쏠림으로 ‘서울 공화국’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지금까지 경계 밖 모든 것의 거부와 이로 인한 경계 사이의 충돌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단절을 초래했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든 지 22년이 흐른 지금, ‘MZ 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추구하는 ‘욜로(Yolo)’와 ‘노마디즘(Nomadism)’,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해체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건축은 이 흐름에서 논외로 치부될 순 없는 노릇이며, 그러므로 한국성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서로 배척하던 건축에 경계를 통해 다시금 우리 사이의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숨통을 조여오던 경계에 느슨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골목길
프로젝트 대상은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이 가진 경계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 담장이 떠오를 것이다. 담장은 사적 영역의 보호와 공공의 개방감 사이를 중재하며 나타난 사회적 산물이다.1 개방이란 단어는 단독주택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이 또한 기성 사회와 건축이 만든 통념일 수도 있고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점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슨한 경계를 통한 사회적 소통을 목적으로 무작정 담장을 없애는 것은 굉장히 불친절한 건축으로, 판교에 있는 주택단지에서 공동체를 위해 담장을 설치하지 못하는 규제가 생기자 건축주들이 건물 자체가 담장의 기능을 하는 요새화 된 주택을 지은 선례가 있다.
옛 동네처럼 오래 살며 쌓인 신뢰가 없는 신도시 단독주택지에서 담장을 없애라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2 하지만 느슨한 경계라는 건축언어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골목길이다. 욕망의 굴레에 빠진 도시에서 소외된 골목길은 열악한 건축환경이 아직 자본에 잠식당하지 않은 상태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렇지만 불편한 경계의 충돌과 무관할 것 같은 골목길도 우리 도시 주변과 비슷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웃과의 소통을 바라기 때문에 경계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소중히 키우는 화분이 길거리에 나와 있고 집마다 설치한 방범창과 담장이 무색하게 대문은 열려 있으며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거주민은 주변 행인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골목길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훨씬 이전부터 경계의 느슨함을 도모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지만, 경쟁사회에서 도태된 장소는 외면받기만 할 뿐이었다. 허울뿐인 경계를 가진 골목길의 건축환경은 이미 한국 건축의 미래가 투영되어 있으며 경계의 느슨함이 실현될 가능성을 보인다.
돌산, 벽에서 벽으로
단독주택이 지어질 창신동에 위치한 골목길 부지는 어딘가 특별한 점이 있다. 골목길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가파른 돌산은 위아래로 떨어져 있는 집들로 더 눈길을 끈다. 이 돌산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과 서울역 등의 건물을 짓기 위해 채석을 했던 화강암 절개지로, 한국전쟁 직후 갈 곳 없는 피난민들이 모여들고 집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이 나타났다. 평면상으론 여느 골목길 동네처럼 건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행정구역상으로도 같은 동에 속해 있지만 절개지가 만드는 물리적 거리감이 돌산을 기준으로 이웃한 집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까지 멀게 만든다. 돌산 마을의 탄생 배경과 물질만능주의라는 사회상이 형성된 이유가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동일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커뮤니티라는 점은 사이트에 부여할 수 있는 상징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에 논리의 깊이를 더한다.
돌산에 걸친 4층짜리 단독주택은 돌산과 일체화된 것처럼 보이며 사용자는 돌산 자체가 구조이자 벽 그리고 옥상이라는 착각이 든다. 돌산 상단 레벨과 동일한 옥상 레벨로 주 진입이 이루어지며 골목길의 건축환경과 동떨어진 옥상의 열린 공간이 마을의 ‘아고라 (Agora)’로 작동한다. 옥상의 출입구를 지나 돌산 내부로 들어가면 주택 출입구와 돌산 아래 골목길까지 이어지는 계단 코어가 나온다. 이때, 돌산 윗마을 아랫마을을 연결해주는 동선 역할인 계단 코어는 층마다 위치한 주택의 베란다와 연결되며, 각기 다른 프로그램과 주민들의 참여가 만나 공동체가 이뤄진다. 전통 건축에서 모호한 경계를 통해 공간의 중첩과 상호 관입이 나타나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마당은 집과 외부를 물리적으로 이어주는 동시에 이웃과의 관계를 맺어 준다. 각 베란다는 이러한 전통 건축의 마당을 ‘오마주 (Homage)’한 공간으로 가족 구성과 주거형식의 변화 및 커뮤니티의 요구라는 사회 양상을 반영하였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김효영 선정한 사이트 자체가 프로젝트 대부분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얼마나 공공에게 내주고 접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평면에서도 느껴지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배분했는지 설명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공용 계단과 주택 내부로만 연결되는 계단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는 공용 계단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 같은데, 주택 내부로 이어지는 원형 계단이 상징적으로 부각된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한현수 돌산이 새로운 경험의 주체가 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계단 코어도 돌산 내에 종속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결과적으로 감춰진 모양새를 하게 됐다. 그리고 프로그램 배치 아이디어는 아파트의 공용 피난 계단에서 얻었다. 화재시 베란다를 통해 윗집 아랫집이 연결되는데, 사적인 공간이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착안해서 베란다에 프로그램을 배치했고 방의 성격에 따라 깊숙이 두거나 바깥에 면하게 배치했다.
박정현 지나치게 특정 지형에 의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건축이 가능한 대지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각 층마다 마당을 설정했고, 설명에 따르면 외부에 공개되는 공공 영역이다. 그렇다면 결국 특정한 지형을 괄호치고 나면 참가자가 설정한 한국성은 골목길인가?
한현수 현재 주택이 지어져있는 땅이긴 하나 돌산 밖으로 건물이 돌출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공모전이므로 자유롭게 설계했다. 한때 ‘골목길’에 한국성이 투영되기는 하였으나 굳이 지금 한국 건축이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대지로 삼은 장소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골목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
서재원 이번 주제가 워낙 추상적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설명을 듣지 않아도 ‘한국적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반적으로 좋은 작업이다. 참가자들이 대부분 한국 사회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데 반해 이 분은 한국 사회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낭떠러집
분량3,732자 / 7분 / 도판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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