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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하시죠?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이미래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상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이지웅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한국인과 유행

한국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 대상들이 달라졌을 뿐, 패권 국가들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습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재 문화산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 시장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한국의 문화산업은 수많은 K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선진 국가의 생산물을 따라잡는 것에 열중했지만, 이제는 처지가 다르다. 선도하는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실체는 없다

비전은 역시 한국성이다. 하지만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한국성을 전통문화와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다.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근대화에 대한 편협성, 디자인 모티브에 대한 폐쇄적인 시선 등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애초에 찾고자 하는 대상과 그 방향성이 다른 것이다. 현시점에서 주목받는 한국의 K시리즈는 전통성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에 뿌리내린 대상을 한국인이 선택하고 가공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다. 그 때문에 현재의 한국인들이 어떤 시대 의식과 생활양식 속에서 살아가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달라진 시대 의식과 뉴트로의 순기능

당대의 시대 의식을 바로 정립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지배적 형태의 시대 의식은 쇠퇴했다.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수준으로 더욱 분산되었다. 이때 레트로의 유행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재소환’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의 레트로 유행은 이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 재현에 그치는가, 혹은 현시점의 개인들이 각각의 가치판단으로 재평가/해석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렇게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세대의 재해석은 중요하다. 대상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로부터 시간적으로 동떨어진 세대는 자유롭다. 당시 윗세대의 그늘에 대한 반항적 반감이나, 직전의 뒤쳐진 유행으로 바라보는 냉담함이 없다. 오히려 알게 모르게 사회 속 깊이 뿌리내린 대상을 인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기성세대에게는 더럽고 촌스러운 기피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에 깊이 뿌리 내린 과거의 유산이다. 이를 선별하고 재평가하고, 재생산할 때 지금의 한국인이 골라내고 만들어낸 한국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비닐하우스

비닐하우스는 현대에 들어서 크게 평가 절하된 대상 중 하나다. 언론과 매체에서 불법 가설 건축물로 사용되는 모습으로 자주 접했다. 불법 도박이 성행하는 하우스,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교의 기도원을 위한 장소 따위로 사용되었으며, 사회 빈곤층의 주거 공간으로 등장한다. 또한 방치, 그대로 땅에 묻기 등 무책임한 후처리 과정 때문에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의 상징이자 불법 가설물, 낙후된 환경으로 기피 대상이다. 아름답고 이국적인 농가의 풍경에 비닐하우스 몇 개를 합성한 이미지만으로도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국에 잘 뿌리내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비닐하우스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연교차가 극심한 한국에서 사계절 내내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효과는 서울이라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유효하다. 도시 내 접근할 수 있는 녹지와 주거 내 외부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식물원이나 온실 등을 표방하는 공간들이 이미 많은 수요를 차지하고 있다. 부정적 상징으로 소비되었던 비닐하우스는 이분법적인 내외부 경계를 흐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도 한국적인 방식이다.

문래동

문래동 공업지대는 제조업 불황과 외환위기 이후로 쇠퇴했다. 주요 공업지대가 철수한 후 남은 부지에 문화예술공단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일대에 여전히 철공소와 소규모 정밀 제조업 시설들이 밀집해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철물을 가공하는 풍경이 보이며, 그 일대는 장식이나 가림막은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건물을 세웠다. 효율과 필요성의 극단을 달리는 슬레이트 지붕, 노출된 철골, 비닐 천막 등이 눈에 띈다. 누군가에겐 노후화된 흉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과거의 유산이다. 문래동 중 대상지는 낮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도림천 변과 문래역 주변의 아파트 단지 사이에 정사각형 블록으로 일정하게 나누어진 사이트 일대가 보인다. 블록 안에서는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3겹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상지는 가운데에 위치한다. 주변 골목엔 필요 없는 살림이 방치되고, 지금은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사용되지 않는 ‘뒷간’이 위치한다. 하지만 대문이 들어서고, 장독을 내놓고, 빨래를 널어두거나 화초를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으슥한 뒷골목이자, 다른 누군가에겐 현관이자 앞마당 같은 곳이다

누가 사는가

우리는 어떤 할아버지들을 마주치곤 한다. 과도한 장식과 옷차림, 강력한 선글라스, 절제된 동작으로 노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깬다. 당대의 같은 세대들에겐 별종, 현세대에서는 속칭 ‘1호선 빌런’처럼 괴랄한 노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많은 나이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멋을 유지하는 노신사이다. 그와 그의 연인을 위한 집을 상상했다. 별나고 처량한 노인부터 기품있고 자유로운 노인까지 한 사람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평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양상은 현재의 가족 체제가 담지 못하는 소외자를 위한 곳이자 미래의 파편화된 개인(가족)을 위한 주택으로 표현하였다.

열린 집 혹은 닫힌 집

양쪽 건물의 뒷공간을 마주한 사이트는 주택에 불리한 환경으로 읽히기 쉽다. 이러한 뒷공간에 벽과 울타리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문래동의 좁은 길은 주택을 향한 자연스러운 위계 전이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뒷공간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응한다. 비닐하우스는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동시에 흐리게 하는 도구이다. 비닐하우스의 긴 옆면은 고정된 형태로만 일관하지 않고 들창처럼 개방할 수 있다. 적재와 전시 사이의 창고는 방치된 주변 건물들의 기물과 대조와 대구를 이룬다.

주택에는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 도시 그리드가 만들어낸 사이트에 대응한다. 비닐하우스와 박공지붕을 얹은 영역으로 나뉘며, 수평 방향으로 이어진 3개의 솔리드 벽면이 존재한다. 이 벽은 투명한 곡면 공간과 만나 주택 프로그램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계 역시 누군가에게 구분점이자 다른 누군가에는 통합점으로 보였으면 한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박정현 제목을 이렇게 시적으로 지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문래동 영단주택단지라는 예외적인 사이트, 예외적인 건축 재료, 예외적인 건축주와 같이, 모든 것들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예외성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예외적인 대상이 주는 인상, 놀랍거나 당혹스럽거나 어쩌면 싫을 수도 있는 면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들은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서 자리잡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지금 우리 입장으로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이런 저런 면모를 뜯어보고 그 대상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해서 발전시키면 사랑스러운 모습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그것이 예외적인 요소들만 모아서 주택을 구성하게 된 이유다.

박정현 한국성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성’이라 붙인 것은 보편성을 염두에 두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수한 것으로부터 한국성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 건축적 행위의 결과물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문래동에서 벗어나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에도 누군가에게는 더럽거나 피하고 싶은 대상이 모여있는 곳이 여러 군데가 있지만, 좀 더 계획된 도시적 맥락에서 갑자기 개입한 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의 일원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는 사이트 조건이 있기 때문에 문래동이라는 사이트가 중요하다. 발표에서 언급한 을지로나 높은 담장이 있는, 혹은 아파트가 많은 동네와 같이 다른 사이트에 우리의 안을 놓는다면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거나, 재평가의 기회도 없이 단순히 흉물로 인식되거나, 혼자만의 일탈로 치부될 수 있다. 그렇게 오해받기를 원치 않는다.

김효영 나는 이번 공모전에서 보편적인 주거 양식을 제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건축가 김광수는 실제로 비닐 하우스로 작업한 적도 있고, 윤도현 같은 록 가수들이 비닐 하우스에 살면서 자기 작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재밌게 봤다. 그런 한편 문래동은 공장 지대이기 때문에 비닐 하우스가 있는 동네는 아니다. 오히려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공장 유형의 철골조 건물을 만들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닐 하우스를 차용한 이유를 그저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것 같다. 비닐 하우스는 가장 가볍게, 저렴하게 구조물을 지을 수 있는 방식이기는 한데 사용자로 설정한 괴랄한 노인과 어울리는 것인가? 또한 비닐 하우스는 단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거로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는지가 궁금하다. 또한 평면을 보면 그런 문제 해결에 주목하기보다는 알도 반 아이크의 손스빅 파빌리온(Sonsbeek Pavilion)이 명확하게 떠오른다. 그런 것들이 매치되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비닐 하우스가 들어가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문래동은 가장 싸고 경제적이고 기능에 충실한 구조물이 많은 곳이다. 그와 태도가 비슷하지만,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강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성이라는 주제를 비닐 하우스로 표현했던 이유는 한국에 살면서 어떤 것들을 보았을 때 지독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비닐 하우스가 그런 대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비닐 하우스라는 개념을 들고 왔을 때, 누군가는 이것은 외부이고 집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것은 집이고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렇게 판단이 달라지는 지점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손스빅 파빌리온의 벽, 공간과 같은 구성 원리를 사용했다.

서재원 비닐 하우스를 선택한 것은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비닐 하우스는 그런 사회적 상징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빠르게 설치하고 돈이 적게 드는, 가성비의 절정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비닐 하우스의 정신과 이 아이디어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벽체가 솔리드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고 콘크리트 슬라브도 보인다. 비닐 하우스 파이프의 사이즈에 한계가 있고, 단열이 안되는 한계가 있는데 그런 것을 최대한 어떻게든 집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보인다. 비닐 하우스로 한국성의 어떤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도리어 이것이 가진 한계를 더 끌어내야 하지 않았을까? 거기 사는 사람이 1호선 빌런같은 사람이라면 아마 그 벽체를 폐휴지나 폐조각으로 만든다는 설정도 가능할 것 같다. 미완성이든 어설픈 주택이든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식,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식으로 만들었을 때 이상한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비닐 하우스를 설정한 것까지는 좋은데 건축적인 생각을 발전시키는 연결고리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그래도 사랑하시죠?

분량5,729자 / 11분 / 도판 8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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