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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비목적공간의 발견

서종현, 최은석


서종현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최은석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비목적성 공간은 목적성을 가진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항상 목적성 공간과 비목적성 공간을 교차적으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목적공간에 한정적이다. 공간을 소유하고 싶어하며 그 안에 사유물을 채우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유물이 개인에게만 한정될 수는 없다. 어떠한 공간이든 벽 한쪽은 ‘내 것’이 될 수 있지만, 반대편은 타인의 공간이고 사회적 역할을 한다. ‘내 것’의 다른 한 면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내 것’이 된다. 결국, 모순적으로 개인의 사유물은 결코 개인의 것만은 될 수 없다.

기술의 발달은 의무적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의무적 공간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가는 공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개인의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물을 얻기 위해서 ‘우물’이라는 공간을 가야만 했다.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의무적 공간들을 자발적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의무적 공간의 기능은 개인에게 종속되고 소유되었다. 자연적으로 인간의 의무적으로 가능 공간은 축소되고 있다.

인터넷과 같은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기존에 의무적인 관계가 소홀하게 되고, 비의무적이고 자발적인 인간관계가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인간관계는 많은 이들과 교류하게 하고, 사람을 선택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사람과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 공간을 초월하여 관계 맺을 수 있다. 과거의 인간관계와는 변화된 형태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는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온전한 친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150명 정도에 불과하며, 이러한 사유로 호주, 뉴기니, 그린란드 등의 오지에 남아 있는 부족 형태의 구성원이 평균 150명 안팎이고, 군대에서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중대 규모도 150명 정도로 편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무적인 공간의 상실을 통해 직접적이고 긴밀한 인간관계의 끈이 약해진다면, 의무적인 공간을 늘리는 것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비목적성 생활공간을 제안한다. ‘비목적성 생활공간’은 ‘목적성을 가진 공간’을 연결하거나, ‘비목적성을 가진 공간, 혹은 비목적성 공간을 연결하는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목적성 공간과 비목적성 공간을 교차적으로 만난다. 우리에게 목적공간은 명확하다. 용도나 사용방법 등과 같은 명확한 목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욕망과 소유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개인의 사유물이 개인에게 한정될 수 있는가? 어떠한 공간이든 내 것의 반대편은 남과 닿아있다. 모순적으로 인간의 개인적인 사유물을 결코 온전한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건축주는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디지털은 물질의 특성을 0과 1의 조합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 논리를 사용해 각종 조합을 만든다. 물질이나 물질에서 나오는 신호는 연속적인데 반해 그것을 디지털로 바꾼 신호는 0과 1의 단절적인 조합이 된다. 이러한 디지털은 단순히 인공물(기계, 컴퓨터, 인터넷 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사고는 이미 철저히 디지털화 되어있다. 우리는 우리의 편의 때문에 만들어 놓은 디지털 논리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고,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나누게 된다. 단절적인 논리들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설계 내용

우리는 한 공간 안에 60㎥를 두고 한 공간에 개인의 물건(혹은 공간)을 배치한다는 것은 인터뷰 대상자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사회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기억이 있는 장소, 개인의 소유물, 개인이 소유한 공간을 디자인하고 장소는 비목적 공간에 두는 것으로 하였다. 개인에게 맞춰졌지만, 그 반대편에서 타인(특정 타인뿐만 아니라 불특정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하였다.

옥상 위의 벽

우리는 삶의 순간에서 수많은 벽에 부딪힌다. 좌절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련들을 이겨내야 한다. 원초적인 단절의 공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벽’을 통해 위로 받고, 벽을 통해 성장한다.

돗자리

우리는 사회적 공간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사회 속의 공간을 임시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다시 돌려주는 방법으로 인간은 살아간다.

라디오

라디오로 세상과 소통한다.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라디오를 듣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도 라디오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공간의 영역을 규정하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벽만이 아니다. 공간의 영역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공간에 있는 사람의 수, 개인의 기분에 따라서, 외부에 사람의 유무에 따라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다.

가마 공간의 FAÇADE

가마는 우리에게 ‘우물’을 기억하게 한다. ‘우물’이라는 공간은 원초적으로 물을 얻기 위한 공간이지만, 우물의 영역 주변에서는 물을 얻기 위한 행동 이외의 많은 행위가 일어난다. 목마른 자들의 만남의 공간이고, 아낙네들 소통의 장이고,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기술은 발달하지만, 인간은 인간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마’는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우물’이 된다.

도자기를 가마에 넣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건조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건조되는 도자기를 보관할 때는 입면을 닫고, 가마에 불이 들어오면서, 도자기를 가마 속에 넣고 입면을 개방함으로써, 가마 온도를 표현하고, 하나의 이벤트로 만든다.

벤치

우리는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산다. 의자라는 일상적인 것 아래 자신만의 화분을 일상적인 것을 더해서 특별함을 만든다. 남들에게 일상은 나에게는 특별한 일상을 만든다.

문+벽+혹은 다른 것

‘벽을 쌓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벽은 공적인 공간의 사적은 영역을 표현하는 원초적인 기준이 된다. 우리는 벽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호하고 사적인 사유물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공적인 영역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수단이 된다.

벽은 개인의 소유물인 동시에 사회적 역할을 한다. 벽은 개인의 것이지만 개인의 것일 수만은 없다. 개인 이 사용하지 않은 부분이 외의 부분은 사회의 개방을 하여 개인이 영역과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한다.

사람들은 횡단보도로 건너고, 차들은 정지선에 맞춰서 정차하고 주차장에 차들은 선에 맞춰서 주차한다. 단순한 선이지만 공간을 규정하고 있다. 프리마켓은 제한이 없다. 자유롭지만 그 영역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공간에 더욱 강한 영역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묘비

모든 살아있는 것은 유한하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유한하다. 아무리 한 사람에 맞춰진 것일지라도 그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면, 의미를 잃게 된다.

‘죽음’은 우리의 영역을 나누는 극단적이면서 원초적인 ‘벽’이 된다. 인간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마지막이지만 가장 영원한 개인적 사유물이 된다. 이 사유물은 죽은 사람에게는 삶의 흔적이 되고,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삶의 위안이 된다.

일상, 비목적공간의 발견

분량3,555자 / 7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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