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김찬중, 이혜선, 김홍중
분량9,228자 / 18분
발행일2014년 7월 10일
유형비평
심사위원 김찬중
이번 학생 건축상 주제는 ‘the space for me: micro-customization’이였다. 공모전의 취지는 산업화의 변화가 한 개인의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의 창의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적으로 구체화한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제 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범위는 미래 산업의 변화 예측이라는 비교적 객관적 변화에 대한 추론 이외에도, 한 개인의 성향이라는 다소 주관적일 수 있는 분석의 특성이 서로 적절히 섞여야 한다는 데서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공모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제시된 안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분류되었다. 하나는 매우 미시적인 관찰에서 시작해 독창적 해석을 기반으로 높은 완성도를 이루어 낸 작업들과 또 하나는 거시적인 관점들이나 일반론에 따라 특수해 라기보다는 안정적인 해석에 기초하여 예상할 수 있고 타당한 결론에 일찍 도달한 후, 공간적 작업 그 자체의 완성도를 추구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정된 12개의 작업은 대부분 전자에 해당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선정되지 않았던 작업들 가운데서도 미시적 관찰에서 출발한 작업들이 많이 있었으나 해석과 결과물에서 새로운 방향에 대한 적극적 제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선정된 작업들의 관찰-해석 그리고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은 예상을 뛰어넘는 우수함을 보여 주었으며 특히 5개의 대상 작업들이 보여준 성과는 매우 도전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상, 비목적공간의 발견>은 개인의공간을 도시 안에서 개인이 점용할 수 있는 공간 또는 요소들의 조합으로 산업화와 개인의 특화된 욕망을 결합하고 있다. 매우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와 깊이 있는 담론을 끌어내고 있는 수작이다. 60㎥이라는 제한된 체적을 과감하게 미분하여 도시에 뿌려냄으로써 그 가능성을 미래의 생활방식과 도시라는 광범위한 주제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공장집>은 놀랄 만큼 섬세한 제안이다. 모빌리티를 접목하면서 오토바이라는 매체가 주는 복고적인 뉘앙스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의 작품이 주는 미래상을 보는 듯하다. 논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도 감성적인 톤과 매너를 잃지 않고 있다. 새로운 산업화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의 과도기적인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안토니오 죽기로 결심하다.> 이 작업은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자살이라고 하는 가장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행위를 지원(?)하는 특화된 시설로서의 공간은 상상하기 힘들었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갈등과 함께 산업화의 어두운 측면이 드러나는 것 같은 불편함도 있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의 마침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공간의 설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드라마틱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공간은 죽음이 아닌 힐링이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건축하기> 가장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작업으로써 현시점에서도 바로 적용이 가능한 유일한 안이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지만 범용적인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 개개인의 복잡한 상황들에 적절하게 대처함으로써 사실 건축가라는 직능의 한계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 작업은 주제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반응하나 세련된 유머와 위트를 통해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화하는 공간> 근미래 산업에 대한 창의적 해석이 뛰어났다. 개인생산이라는 관점을 개인의 물리적인 행동까지도 재생산의 과정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가설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설득력이 있다. 그것을 위해 선정된 무용가와 그를 스캔 하면서 유기체와 같이 반응하는 공간의 설정은 건축의 영역이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매우 명확한 가설에 근거하고 있지만 프로젝트가 좀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었다.
심사위원 이혜선
Micro-Customization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공모전은 3D프린팅 기술의 보급에 따른 생산, 유통의 변화를 건축 분야에 적용해 본 과제였다. 기술의 변화, 인간 욕구의 변화, 시장환경의 변화를 60㎥의 공간 안에 존재하는 10가지의 요소로 풀어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customization의 대상에 대한 통찰을 얻어가는 과정이 필요하였으며 작업에 재해석하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대상을 받은 5팀의 작품은 각기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과 주제를 해석하는 방식이 독창적이고 진지하였다.
<일상, 비목적공간의 발견>은 주어진 공간 제한을 외부 공간으로 풀어낸 것이 흥미로웠다. 도예가 최엘림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흥미로웠다. 대량생산 방식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수공예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대상을 선정하고 평범함 속에 개별성을 가진 대상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내용을 비목적성 공간이라는 주제 아래, 일관되고 담담하게 풀어냈다. 대치되는 두 가지 가치: 목적성과 비목적성, 대량생산과 수공예, 사유와 공유, 양극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공존하고 있는 개념들을 양쪽의 시각을 동시에 작동시키며 해석한 부분이 매우 창의적이었다.
<공장집>은 micro-customization, 3D프린팅, 산업의 변화를 대상자의 일생과 절묘하게 배치하며 충실히 주제를 해석했다. 배종호 씨의 일과를 관찰하고 면적과의 관계를 파악하여 대응시킨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인포그래픽과 시계열적 구조로 정리한 프레젠테이션은 Phase 1의 연구와 Phase 2의 디자인 과정이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며 디자인에 녹여짐을 보여주었다. 흔히 발생하는 연구와 디자인의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탄탄한 각본, 명연기, 훌륭한 연출이 조화를 이룬 웰메이드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안토니오 죽기로 결심하다.> 는 무거운 제목에 압도되었고 프레젠테이션을 읽어가며 작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윤리적 문제를 차치하고, 문제의 본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건축가가 발견한 삶에 대한 일말의 집착을 주어진 공간 안에서 세련되게 풀어냈다. 완성도 높은 비주얼프레젠테이션visual presentation이 대상자의 감성을 읽는 이에게 명쾌하게 전달하였다. 도발적인 주제였지만 제시된 디자인은 감성적이고 창의적이었다.
<스스로 건축하기> 는 주제를 던진 이들에게 도전을 던져준 과제였다. 공간의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이 건축가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절제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그래픽디자이너인 대상자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었고, 적용의 과정은 무겁지 않지만 재치가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하였다. 1인 작업이 많은 디자이너의 작업방식에 따른 배치가 정직하게 표현되었다. 주제에 대한 사고의 역발상과 매뉴얼 형식으로 전달한 방식은 많은 고민을 함축적으로 풀어내는 성숙함을 엿볼 수 있었다.
<대화하는 공간> 은 웹 3.0의 기반인 시멘틱웹Semantic Web의 개념을 대상자와 공간의 문제를 푸는데 적용하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물리적 환경에서의 개인화는 아직 초기 단계이나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빅 데이터Big Data등을 이용한 개인화 작업이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작품의 핵심적 문제해결 방법은 안무가인 대상자와의 인터뷰 보다는 움직임을 기록하고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 시키는데 있었다고 본다. 이론적 근거를 위한 선행연구 고찰도 성실한 노력으로 이해되었다.
이외에도 입상한 7팀의 작업들 또한 흥미로운 문제를 던지며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연결시켰다. 1차 심사 과정에서 280여팀의 작업을 읽어가며 280여명의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대상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건축주와 함께 하는 작업의 과정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과정들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정도로 요약 될 수 있겠다.
첫째, 대상자를 선정하고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건축가가 대상자의 삶에 대해 공감하게 된 부분은 비교적 잘 설명되었으나,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사실과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현상과 사실 속에 내재 된 욕구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연결 시키고 걸러내는 과정이 누락된 점이 매우 아쉬웠다. 조금 더 집요하고 면밀하게 대상을 이해 하다 보면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모습과 더불어 건축가가 관찰로서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건축가의 역할은 건축주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꿈을 이루게 하여 주는 것은 아닐지? 공감을 바탕으로 한 관찰자적 시선은 대상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돕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 3D프린팅 기술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적용하는데 있어 10가지의 사물이 표현된 조형언어는 대량생산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아쉬웠다. 수공예적 생산 방식이 기계화 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개념이 출현했고, 미술공예 운동과 바우하우스를 거치며 기계생산 방식에 적합한 신조형을 정립하게 되었다. 생산 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유통 환경의 변화를 넘어 조형언어의 점진적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이번 주제는 전통적인 건축 방식과 디지털 기술의 보급에 의해 새로이 실험되는 건축 방식이 혼재한 현 시점에 조금 더 진보적인 새로운 건축방식에 대한 조형적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생산기술의 변혁기는 이제 출발점 근처에 머무르고 있으나 도전적 주제로서 숙제를 남기고 싶다.
멘토 김홍중
정림학생건축상에 응모된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자 했던 것은 다음의 네 가지 사항으로 집약된다.
첫째, 건축주(interviewee)의 소망/욕망을 얼마나 심층적으로 이해했는가? 둘째, 작업에 물질화된 기술적, 공간적, 사회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새로운가? 셋째,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축학적 테크닉과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신뢰할만한가? 넷째, 이 모든 과정을 자신들의 언어로 집약하여 풀어내는 ‘개념’이 얼마나 적절한가? 이 중에서 세 번째의 평가사항은 나의 능력과 권한을 벗어나는 것이기에, 김찬중 선생님과 이혜선 선생님에게 이를 전적으로 위임하였다. 그리하여 멘토로서 내가 집중적으로 탐지하고자 했던 것은 소통/이해의 심층성, 상상력의 창의성, 그리고 개념화 과정의 적절성이다.
말하다 보니 분석적으로 풀어헤쳐 놓고야 말았지만, 작품과의 만남 속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사실, 위의 사항들이 함께 뒤섞여,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충격’의 형태로 평가자의 의식과 지각을 뒤흔드는 ‘진동’밖에는 없다. 공개발표에 오른 열 두 작품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의 의식과 감각을 흔들었다. 어떤 작품은 사고하게 했고, 어떤 작품은 위로했으며, 어떤 작품은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게 했고, 어떤 작품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모두 과제의 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과제가 요구하는 수준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까운 미래라는 미지의 시간성 속에서 펼쳐질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변화를 읽어가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건축주의 삶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공간을 구체화하여 특정한 삶의 디자인을 모색하는 이들 작품을 보면서, 나는 건축학적 작업이란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 자연, 기술에 대한 총체적이고 융합적인 관심과 연구를 요청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의 세 작업에 대한 감상을 진술함으로써 내가 느낀 바를 가장 집약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세종대학교의 서종현, 최은석의 “일상 – 비목적 공간의 발견”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라는 것’의 핵심에 타자성, 공공성, 사회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목적성/효율성은 언제나 비목적성/무용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적 인식의 육중함이다. 이들은 이렇게 쓴다. “어떠한 공간이든 벽의 한쪽은 ”내 것“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편까지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그 반대편은 타인의 공간이고 사회적 공간이 된다. ‘내 것’의 다른 한 면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내 것’이 된다. 모순적으로 개인의 사유물은 결코 개인의 것만은 될 수 없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서 이들은 도자기 공예가인 건축주만의 사적 공간을 설계하지 않았다. 이들은 집이나 방이나 아틀리에를 구성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도시 전체로 산포시켜 해방시키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실행한다. 사적 공간은 공적 공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비목적적 공간이 목적적 공간과 교차하면서 구성되고 해체된다. 이 작품의 충격은 이와 같이, 미래적 개인 주체가 펼쳐나갈 것이라 예상되는 삶의 허망하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로부터 온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결코 패망할 수 없는 인간적 의미의 영역, 즉 아날로그적인 것은 덧없는 견고함 속에서, 개인을 감싸고, 개인을 해체하고, 그런 개인을 다시 몽타주하는 원리가 되리라는 이들의 생각이, 건축 언어의 매력적 물질성과 결합하여 빛을 발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의 이상명과 조아란의 작품 “스스로 건축하기”는 묘한 작품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이 작품은 건축주가 스스로 생각하여, 원하는 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10 가지의 요소들의 시리즈로 구성된 매뉴얼을 제시하는데서 멈춘다. 별다른 실험이 시도된 것 같지도 않고,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저렴한 디자인과 대중성으로 유명한 ‘이케아 스타일’을 명시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외견상 지극히 단순하고 심지어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한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성찰적으로 자신들에게 부여된 주제를 고민한 결과물인 것처럼 보인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주지하듯 이번 건축상의 핵심 테마는 자기의, 자기만을 위한, 자기 자신의 우주를 갖고 있는 ‘주권적 개인sovereign individual’으로서의 후기 근대적 자아를 위한 맞춤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아의 내면과 기억과 꿈을 탐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도, 그가 가진 어떤 깊은 욕망/상처/희망의 구조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즉, 독자성singularity을 탐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제시한 작품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 독자성의 가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첫째, 이들의 작품에서 개인의 독자성은 유머러스하게 상대화되고 있다. 왜냐하면, 매뉴얼이란 개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실상의 개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테크놀로지이지며, 매뉴얼을 사용함으로써 구축되는 개인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약화된 개인성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의 작품에 구현된 개인의 독자성은 그러나 역설적인 방식으로 실현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매뉴얼은 동일성을 향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차이를 가진 무한한 조합을 향해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만든 것들은 충분히 복잡한 조합 속에서 서로 다른 자신만의 것으로 실현될 수 있다. 진정한 독자성을 허용하지 않는 동시에 모두가 독자적이기를, 개성적이기를 강요하는 시대에 매뉴얼을 통한 독자성의 실현이란 사실 기가 막힌 처방이다. 독자성의 불가능성과 불가피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섬세하고 정교한 매뉴얼인 것이다.
동아대학교의 장한권, 김민정, 오찬미의 작품 “안토니오, 죽기로 결심하다”는 독특하고, 어둡고, 기발한 동시에 절망적인 작품이다. 이들은 ‘자살을 결심한 자’에게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다행인 것은, 이것이 가상적 설정이라는 것. 설정 속에 얼굴이 뿌옇게 처리된 한 남자가 건축주로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가족을 상실한 그는 죄책감과 무기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이들은 안토니오를 위한 집,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끊고, 스스로 거기에 무덤으로 갇혀 매장될 관(棺)-공간을 설계한다. 건축물은 집이었다가 스스로 닫혀, 땅 속으로 묻혀 들어가 2차원의 평면으로 소멸한다. 집 안에는 마지막을 함께 할 몇 개의 물건들이 있다. 아이의 첫 장난감인 곰인형(테디 베어),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품고 있는 테이블, 책 세 권, 성서, 그리고 가족사진. 그리고 목을 맬 장치와 욕조. 자기교수형의 공간이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징벌하는 것이며, 가족의 사라짐으로 자신 삶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거두어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전율을 준다. 그것은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의, 인간 삶의 가장 아픈 리얼리티를 찔러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죽음과의 이 섬뜩하지만 단호한 관계를, 우리 삶의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의 이성과 용기로,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건축은 삶의 건축인 동시에, 삶의 심장에서 어둡게 뛰는 죽음의 건축이기도 하다. 망각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의 실재(實在)를 이 작품은 하나의 총성처럼 혹은 비명처럼, 내 앞에 던져 놓았다. 나는 잠시 평가자의 임무를 잊고, 그 참혹한 빛에 눈이 멀었다.
김찬중
THE_ SYSTEM LAB 대표,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의 한울 건축과 캠브리지의 Chan Krieger Associates, 그리고 보스톤의 KSWA에서 수석 건축가로서 실무를 쌓았으며 귀국 후 현재까지 경희대 건축대학원의 설계전공 초빙 교수로 재직하면서 THE_SYSTEM LAB 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제10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으며, 같은 해 중국 베이징 국제 건축 비엔날레에서는 주목받는 아시아 젋은 건축가 6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들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저널에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연희동 갤러리>, <래미안 갤러리>, <한강 보행자터널 프로젝트>, , 등이 있다.
이혜선
이화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전공 교수.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근무하다가 도미하여 Purdue University에서 산업디자인 석사와 소비자행동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Motorola Korea에서 전략적 디자인 기획업무를 했다. 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 전공에 부임 후 KT, GM Korea, LG Telecom, 웅진코웨이, Renault-Samsung Korea, 농심, 삼성전자 등을 비롯하여 과학창의재단, 한국디자인진흥원, 대구경북디자인센터 등의 공기업과 신상품 개발, 디자인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한, 전통 소재를 응용한 제품 개발에 관심을 갖고 옻칠 슈케어 제품 개발 및 유기 커트러리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김홍중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을 전공했다. 사회학 중에서 가장 인문학과 예술 쪽에 가까운 분야를 탐구해왔다. 석사논문에서는 추리소설을 연구했고, 파리에서는 미적/문화적 모더니티에 대한 탐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 이론과 사회 사상에도 관심이 많으며, 최근에는 한국사회의 청년 문화 중에서 집합적 심리구조(마음의 레짐)를 탐색해 왔다. 오랫동안 발터 벤야민을 사숙했다. 향후, 한국사회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사회들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비교연구를 수행할 꿈을 갖고 있다.
심사평
분량9,228자 / 18분
발행일2014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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