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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룡
분량4,741자 / 10분
발행일2015년 7월 2일
유형칼럼
한국의 근대는 기회주의 그 자체였고, 한국의 건축도 자립적인 근현대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 오늘날 건축계에서 한국적 가치를 만드는 것은 아직 힘에 부쳐 보인다. 오히려 우리 건축은 문화적 이종교배를 통해 잡종강세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소질과 문화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그리고 우리에게 모던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 박길룡 선생은 건축에서도 한국적 가치 발굴에 비평의 역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21세기 안에 백인종이 될 것이다. 여자 아시안컵 대 호주 축구경기, 공중 볼을 두고 선수들의 머리가 공중으로 떠오르는데, 한국 처녀와 호주 걸 모두 머리가 노랗다. 1대 2라는 패배보다도 처녀군들의 흰 욕망이 민망한 장면이다.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 될지 모른다. 표백제로 누런색을 깎아내고, 햇빛이 싫은 음지성이 되며, 백분白粉을 바르다 보면 인종이 개조된다. 머리염색약이나 미용크림만이 아니라 더 강력한 변인은 백인종으로의 욕망이다. 피부만이 아니라, 언어, 사고 체계, 그리고 라틴의 지식이 우리의 사실이다. 진화 공학이 유전자 개조를 수단으로 한다니, 이제 잡종강세를 믿을 수밖에 없다. 과연, 문화도 고이면 썩고 근친 관계는 종국에 멸종되고 만다. 지조와 순수의 괴멸을 염려하면서도, 이웃 종과 교합으로 우성하는 종의 원리이다. 그러니까 섞을 수밖에 없는데, 믿을 것은 피의 이기적인 수작이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란 믿을만한 법칙인가.
두물, 세물, 여러물머리 문화
근대 동안 한국의 건축문화는 수많은 외래 문물을 겹겹이 덧칠해 왔다. 한국의 초기 기독교 시절에 한옥들은 바실리카로 쓰일 줄도 알았고, 교회는 조선 친화를 한옥식 교회당을 지어 표현할 줄도 알았다. 꺼삐딴 리(전광용, 1962) 속 주인공 리인국은 끊임없이 출세와 부를 좇는 속물적 의사이다. 도쿄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평양에 병원을 차리면서 친일을 하다가, 해방군 소련군이 진주進駐할 땐 소련 측에 붙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에 의지한다. 그의 딸은 흰둥이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리 박사의 의지를 거스르고 서양인 동양학 박사와 결혼한다. 아들은 소련군 대위 덕으로 소련 유학을 갔는데 생사를 알 수 없다. 이는 지난 100년 사이 한국의 겹물 문화이며, 그 사이에 모더니즘은 배태胚胎되었다. 한국 모던 건축의 질량은 식민지 문화와 일본 제국주의, 미 군정의 FM과 합리주의 그리고 조선성이 덧칠해지면서 만들어졌다. 한국만큼 종교적 관용이 너른 나라는 없을 것 같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유교, 성공회, 정교회, 이슬람, 그리고 수많은 토속신앙 등 한국에는 온갖 종파가 다 교합하여 사회문화를 칠보七寶처럼 만든다.
오스만투르크의 국민건축가 코카 시난(1489~1588)은 점령지 동로마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겹치기 하여 제국의 양식으로 승화시켰다. 대항해 시대 이후 식민지 문화가 세계지리를 뒤바꾸어 놓았다. 인류학적으로 삼가야 할 단어가 ‘아메리카’나 ‘신세계’라는 이름이다. 중남미에는 ‘콜로니아’의 수식이 붙은 도시가 많다. 우루과이에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Colonia del Sacramento라는 역사 마을은 전형적인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진 작은 도시이다. ‘식민지의 사크라멘토’라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식민지 근성의 작태이다. 그들 역시 애국과 국가적 자존심은 어느 나라 뒤지지 않지만, 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고마운 관광산업의 자산임을 안다. 오스카 니마이어(1907~2012)의 현란한 조형 능력은 가족력에서 찾아진다. 그의 본명은 ‘Oscar Ribeiro de Almeida Niemeyer Soares Filho’로 독일, 포르투갈, 브라질, 기타 등등의 피가 섞인 사람이다. 말레이시아 도시건축에는 바바뇨니아Baba Nyonya라는 양식이 전하는데, 중국의 상관商館에 주거가 더해진 빌딩 타입이다. ‘바바’는 아버지, ‘뇨니아’는 양식으로의 아버지 나라 중국 스타일이 동남아로 이주해 온 것이다. 말레이시아 역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와 수탈을 혹독하게 겪어 왔지만, 중국식 유산들은 지역의 이슬람 문화와 대척의 가치로 관광자원이 된다.
한국 근대의 DNA 소질
한국의 근대 건축은 자의적이든 강제적이든 식민지 양식에 걸려 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1905, 사적 제254호)은 참으로 꺼삐딴 리 같은 운명의 건물이다. 원래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건너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이었는데, 1903년 착공하고 1905년에 준공되었다. 설계자는 고다마小玉, 시공자는 호쿠리쿠北陸토목공사, 공사 감독관은 니시지마西島였다. 합병 후 1919년 요코하마橫濱생명보험회사가 되고,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쓰이다가, 1970년 상업은행, 1980년 우리은행이 되며 원래의 대지를 도시개발로 양보하고, 지금의 관악구 자리로 이축되어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한국 ‘근대건축’의 통단면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전형적인 식민지 양식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식민지성에 대한 태도는 강경하지만, 일관성이 없고 다분히 감정적이다.
전쟁 후 한국은 한동안 원조문화 또는 미군문화의 지원으로 합리주의를 보습하였다. 철판을 두들겨서라도 커튼월을 만들며, 표현이 재료와 구법 기술의 문제인 것을 알았다. 곧 국가주의와 이데올로기가 덧칠해지며 유전자 정신의 색조가 굳어졌다. 전통은 프로파간다에 아주 유용하기에 그 DNA에서 추출되어 줄기세포에 더하여졌다.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서양의 피를 섞지만, 박정희 전권의 유신은 국풍國風을 불렀다.
문화 교차가 만드는 수많은 변인에서 선택이 성질을 만드는데, 잡종강세의 구동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설계경기에서 구미歐美 디자인의 수월성은 자주 한국의 유전자를 자극하지만, 거기에는 백색의 욕망이 내재한다. 그 와중에서 4.3그룹의 가치는 한국적 존재감을 스스로 찾는 노력에 있다. 이들은 세계를 함께 다니고 비평을 교차하면서 내공을 만들었다. 아마 이러한 집단적 문화교차의 일은 다시없을 것 같다. 이제 거대담론은 어려워지고, 개인기와 개별적 가치는 분화를 거듭한다. 구미 언어철학의 파도가 탈구조라는 사구沙丘를 이루고, 그 덕택에 한국 현대건축의 지형도 다채로워졌다. 수평적 주체에서 자율적 주체로의 전이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소녀들은 신데렐라를 껴안고 성장하며, 백조의 성城같은 예식장에서 백설공주가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제화global-ization가 숙명처럼 국민의식을 덮쳤는데, 그 사이에 한류의 노랑머리 가수가 돈을 벌어 온다. 어떤 민족적 콤플렉스가 이런 유전적 변이를 욕구하는가. 미백美白 문화는 대학건축에서도 확실했었다. 연희전문 박동진은 (이화여전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고려대학 도서관과 본관을 기어이 고딕으로 짓는다. 미백의 대학건축은 한양대, 동국대, 경희대, 전주대 등의 아이콘이 되었고, 최근 지방대학도 본관은 그렇게 짓는 것으로 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건축가 귀거래는 잡종강세의 뜻에서 반갑다. 그들이 건네는 악수에서 큰 기운이 전해온다. 대학의 교수사회도 귀거래는 새로운 문화 패턴을 그리는데, 문제는 지독한 미국 문화의 편재이다. 필자가 재직하던 건축대학에서도 이제 한국건축을 강의할 교수가 없다. 소위 ‘트랜스내셔널 미들맨transnational middleman’이 한국 지식사회의 중간층을 만들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염려인데, 서구 종속성과 자기 불임성不姙性이다. 만약 창의는 쇠락하고, 그나마 염기가 혼돈된 모태가 불임에 든다면, 종의 종국이다.
미백 주사로 온몸의 색소를 털어내고, 미백 지식이 창의로 소질素質되지 않는다면 백인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것이 ‘표현형phenotype 또는 발현형질發現形質의 효과’인데 유전적 성질을 넘어 전달되는 성질이다. 더군다나 이는 어떤 유기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유기체들을 포섭하며 더 넓은 환경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희석稀釋으로 이룬 (비록 종의 강세라 하더라도) 이즈음의 문화 양태가 또 다른 우리 스스로 그리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같아 두렵다.
문화의 이기적 유전
‘격물格物’이란, 현대에 와서도 정신과 물상, 색과 공, 감성과 이치를 올바로 놓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사실인데, 생각하는 것처럼 몸이 만들어지고 몸처럼 생각하니 서로 바르게 경영하여야 한다. 문화도 유전자가 결정하며 선택의 누적된 경험으로 교묘히 진화한다.
실증되지 않는 허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이라는 문화 전달 또는 모방의 단위가 자기 생존의 의지를 갖는 능동적 존재로 있다고 한다. 유전자는 독재적이면서도 스스로의 가치 조정을 통해 불안정을 안정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화와 교섭할 것인가는 우연이나 막연한 게 아니라, 잘 따져 보고 인연할 일이다. 미백과 성형이 가짜의 가치인 것을 잊어가며 문화 유전자가 염기서열에 혼란을 겪는다.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밈의 생태대로라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일이다.
문화에서 유전자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거나, 유성생식이라는 유전자를 섞는 방법을 통해 진화를 모색한다. 한국은 그 엄청난 겹의 문화 교배 끝에 과연 잡종강세를 이루었는가. 여전히 모태母胎의 건강이 문제이다. 그래서 개체를 생산하는 일과 이를 돌보는 일이 함께 중요하다. 이제 나설 일은 백색 변이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지적 세계에 한국적 가치로 자리를 같이 만드는 것이다. 비평이 든든하여야 할 이유이다.
박길룡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명예교수로 한국건축의 이론가이자 비평가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 현대건축 평전』(공간사, 2015), 『제주체』(디 출판, 2014), 『남회귀선』(한길사, 2010), 『건축이라는 우리들의 사실』(발언, 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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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15년 7월 2일
유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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