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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

이정훈

방기된 질문

우리가 서구 문화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나라 별로 고유한 것을 완벽히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동아시아의 건축도 한 범주로 묶인다. 특히 전통 건축에서 보면 목구조 결구법이라든지 풍수지리 사상과 같은 큰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과 중국의 건축가들이 동아시아 건축의 정체성을 선점했다. 우리가 모더니즘을 해석하는 눈이 없었고,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빼앗겼다고 말할 수 있지만, 문화는 힘의 상대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주제에 대해서 수십 년을 이어가며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축적되어 있다면 우리가 힘이 생겼을 때 그걸 내세울 기반이 된다. ‘처마를 계승한다’는 식의 직접적인 이야기부터 지금의 IT 산업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한국성의 개념과 카테고리가 매우 많을 것이고, 그게 맞든 틀리든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일본 건축가들은 일본 건축의 원류로서 조몬 시대 건축을 자주 논한다. 구마 겐고 책에도 나오고, 소우 후지모토의 말에도 나온다. 역사적 맥락에 자신의 건축을 두는 것이다. 일본은 모더니즘을 거치며 일본의 계보를 만들었다. 단게 겐조, 이소자키 아라타로 이어지는 큰 흐름이 꽃을 피웠고,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들이 이런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그 근거가 충실하지 않고 빈약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훨씬 더 설득력 있고 세련되게 보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계보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너무 빈약하고, 회피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아류의 건축이 적당한 수준에서 뒤섞여서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면 당장 건축주들에게는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게 어디서 왔는지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못 할 것이다. 깊이가 얕더라도 스스로 해석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한 것으로부터

불분명한 한국성을 말하기보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 문고리 하나, 구법 하나, 붙이는 방법 하나를 충실하게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몇십 년간 디테일을 집요하게 만들었더라면 고유한 흐름이 생겼을 것이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시게루 반의 종이 튜브와 같이 다양한 소재를 실험하는 것이 일본적인 것인가? 그들이 끈질기게 하니까 일본화되는 것이다.

디테일에서 전통적인 것을 현대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다. 조호는 프로젝트를 할 때 형태, 공간, 의미론 등 다양한 부분에서 한국성이라는 주제를 항상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한국적인 해석이 들어갔는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 건축 처마 선에서 모티브를 얻어 곡선을 도입하고, 그것이 한국적인 선과 관련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건 일본적인 것도, 중국적인 것도 아닌 것 같다’거나 ‘이건 한국의 세련됨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형태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시작하면 ‘우리가 풀어낸 곡선 접합부의 디테일이 알고 보니까 창덕궁 연경당에서 처마와 만나는 지점에서 썼던 디테일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그때는 왜 그렇게 했을까’하는 질문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해보고,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오히려 더 순수하고, 거기에 역설적으로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결국은 생각하기의 힘, 토대(foundation)의 문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잘 다듬어주는 것이 비평이다. 건축가의 작은 시도에 대해 ‘하지 마라’,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독창적인 생각이지만 이것도 한 번 보라’고 발전적으로 이끌어주는 게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할지라도 보완해가면서 계속하다 보면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혼자 갈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매우 한국적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세계 보편의 것으로

나는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 맞게 해석된 한국성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보편성을 얻고 싶다. 시게루 반이 일본 지진에서 종이 건축을 만들고 그다음에 목조로 건물을 짓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은 당시 일본 상황에 맞게 만들어낸 공법이고 구축 방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난민을 위해 적용하는 방법으로 보편화되고, 스위스 출신 엔지니어가 협력하며 목구조 접합 방식이 세련되어지고,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상태가 됨으로써 보편성을 얻었다. 건축의 객관적인 속성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이다.

지난 10년은 유학하면서 공부했던 걸 한국의 여러 가지 생산 방식, 공사 현장, 산전수전 겪어가면서 소화하는 단계였다. 현시점의 우리 작업을 세계 건축 흐름에서 보면 트렌디한 건축의 한 분파 정도의 느낌은 있을 것이다. 재료를 쓰는 법, 선을 쓰는 법이 자하 하디드나 시게루 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선상에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똑같이 쓰는 게 아니라 한국 상황에 맞는 재료와 이야기로 재해석하고 현지화했다.

이제는 조금 더 보편화시키는 단계다. 국내에서 쓰는 구법 등을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고, 누군가의 영향을 넘어서는 창의성, 생산성, 산업에 대한 관점 등을 포함한 단계로 진화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나인브릿지 파고라는 600년 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인데, 그때 개발한 ‘나무와 같은 구조체’라는 아이디어가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이처럼 한국의 세련된 현대건축으로 분류되면서도,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세계 건축의 흐름에서 충분히 이야기해볼 만한 공법, 접합부 디테일, 인문학적인 스토리가 숨어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런 MEP 방식은 세계적으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 “이런 구조적인 접근법은 만만치 않아”, “캐나다에서도 큰 관심이 있을 만한 시도야” 등등. 우리가 시도하는 여러 컨셉 중에 일부분이라도 세계 보편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독특하다’, ‘희한하다’, ‘본 적 없다’는 평을 받고 싶다.

해외 프로젝트 하기

개소 10년 만에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세계인지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계약서 작성, 세금 처리, 업무 범위 정리 등 모든 것이 쉽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다. 국내 건축가들을 보면 우리처럼 해외에서 일한 사례가 드물다. 지금 같이 일하는 클라이언트도 한국 건축가와 제대로 일한 게 내가 처음이다. 그만큼 해외에는 한국 건축계에 대한 기준점과 이미지가 없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건축가로 해외에서 일하려니 힘에 부친다. 그래도 여기에 우리가 쏟아부은 절대 시간과 노력이 있고, 우리가 한국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경험이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기회라는 생각에 꿋꿋이 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서 우리의 방법이 통한다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이 이정훈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한국성

분량3,517자 / 7분

발행일2022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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