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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속 균형을 찾아서

정현아

모든 것의 균형

“건축 철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사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을 규정하는 순간 건축물의 결과를 예단하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고 건축가 스스로는 더더욱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건물을 지향하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걸 스스로 담론화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찾아가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결과를 먼저 내밀기보다 태도를 계속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형용사, ‘how’로 대답하고 싶다. 즉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어떤 성격의 것을 하고 싶은가요?”로 질문을 바꾸어 건축 설계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싶다.

나는 작업을 할 때 내 내면에서 비롯되는 건축가의 내적 논리보다는 외부 조건에서 설계할 무언가를 찾고 맥락 속에서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맥락이 없다면 내가 정의한 건축의 속성, 즉 건축이 복잡한 조건 속에서 생성되는 복합체라는 특성에서 팔다리가 없는 상태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는 매우 여러 가지다. 도시, 역사, 건축 형태, 재료, 구조, 에너지, 내부 공간의 성격이나 느낌, 공간 짜임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건축의 여러 가지 것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두 균형을 이루고 하나로 합쳐져서 한 번에 관통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나는 대안을 만들지 않고, 하나의 안을 디벨롭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고민하며 상판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면 뭔가 하나 만들어진다. 오래 뜸 들여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트레싱지를 여러 장 겹쳐놓고 한참 기다렸다가 단 하나의 선을 긋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인위적이지 않고, 스스로 우러나온 상황에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담백하면서 깊이 있는 건축을 하고 싶다. 내용적으로 본다면, 고유한 색깔이 있는 건물을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색깔이 무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도가 일관되면 (개별 건물이) 지향하는 것이 달라도 하나의 색을 보여줄 수 있다.

연결되는 모순

내가 했던 작업을 놓고 어떤 방향성과 색깔을 가졌는지 보는 것은 의미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단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점 하나하나를 연결해 전체가 어떤 모습인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고 싶다. 예전에 “건물에 이야기가 많은데, 뭐 하나를 콕 집긴 굉장히 어렵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어떤 분은 내가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축가 같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분은 포석을 시원시원하게 둔다고 한다. 또 어떤 분은 구조에 관심이 있냐고 묻기도 한다. 다 맞는 얘기다.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포석과 디테일이 동시에 있는 게 모순적이지만 내게 그 모든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타일의 단점은 건물에서 주제 하나를 뽑아내기가 어려워서 정치적인 메시지로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일반 대중, 매체 등에서 이슈화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말하기가 쉽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지향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질문, 다른 답

“현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절하게 개입하여 도시 성장을 건축하고 연속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작업의 시작은 주어진 현실의 조건에서 잠재된 가능성을 찾는 것에서 출발하였고, 그 속에서 작업의 주제가 잡히면 그것을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새로운 재료, 구조, 구법, 디테일을 고민하게 되었다.”

정현아, ‘구축으로서의 건축’, 「SPACE」 561호, 2014.8.

나는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제안하고 싶다. 여기서 프로토타입은 여러 설계안에 거듭 사용할 목적으로 고안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트 상황이 다를 때, 더 나아가 사회가 바뀌고, 요구 조건이 다양해지고 차별화될 때, 그런 상황을 반영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간다. 그게 바로 ‘단순하고 명료하게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일 수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늘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동안 설계할 기회가 없었던 용도, 새로 생겨난 용도, 혹은 낯선 대지 조건을 갖춘 프로젝트라면 내가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지 도전 의식이 생기고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이런 프로젝트는 반드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설계비를 낮게 책정한다. 그러나 이미 경험해본 듯한 대지 조건이나 건축주 요구 조건이 거의 비슷한 일은 내게 떠오르는 질문이 같으므로 똑같은, 지루한 답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요청이 들어오면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설계비를 높게 부른다. 물론 프로젝트가 처한 조건이나 시대 상황이 다르고, 각자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매번 같은 답을 내진 않는다. 그럼에도 건축가 스스로 첨예한 자세로 임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이미 모범 답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번 익숙한 프로젝트를 할 것이 아니라 색다른 조건에 새로운 원형을 제시함으로써 건축가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제안이 잘 작동하는가는 늘 궁금하고, 제대로 된 프로토타입인지 검증하고 싶다.

“ ‘어떤 재료와 방식으로 어떻게 세울 것인가’가 모두 끝났는데도, 건축물에 사회적 기능을 담아 도시로 내보내지 못하고, 건축가 자아와 분리가 안된 채 계속 뜸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의식 속에는 전작들이 모두 현재 진행형의 구축물로서 새로운 시간을 자신과 함께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준공이 곧 시작으로, 본격적인 탐색물로 대상화된다.”

이민아, ‘특출한 업자, 순수한 선수’, 「SPACE」 561호, 2014.8.

인터뷰이 정현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모순 속 균형을 찾아서

분량2,943자 / 6분 / 도판 4장

발행일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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