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트라인에 서서
정현아
분량2,517자 / 5분
발행일2022년 5월 19일
유형인터뷰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할 때 아직 기성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젊다고 하기엔 미안한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젊은 건축가’이고 싶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어설프지만 신선하고, 새롭고, 기성 세대가 생각하지 못하는 뭔가를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이 단어에 기대고 싶고, 건축가로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나는 혼자 하는 사무실을 꿈꿨고, 그래서 일찌감치 독립했다. 사무소를 소규모로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서고 싶다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우연히 김주하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가 기자 출신 언론인으로서 기자 경험의 장점을 이야기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기자는 사건의 프론트라인에서 모든 것을 취재하기 때문에 현장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때 내 생각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분야와 협업하고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서 하나를 이루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를 직접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그래서 여러 명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기보다는 나와 팀원 한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일들을 대책 없이 벌이고 현장에서 구현되지 못할 것 같은 걱정 때문에 매일 밤 악몽을 꾸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연 지금의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감리를 자주 하는 편인 것 같다. 직접 갈 때도 있고, 직원이 가기도 하고, 전화나 사진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매일 달려가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고, 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 같다. 대신 눈으로 보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이 생긴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안정되면서도 깊이 있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계보를 넘어
나는 어떤 건축가 밑에서 사사했다거나, 어느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서 독립했다는 족보가 없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무작정 독립한 경우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웠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계보나 영향을 받은 건축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건축보다는 문화와 예술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20세기 초반 새로운 미술 디자인 운동, 기계시대(Machine Age)의 파도, 아방가르드 정신과 같은 그 ‘시대 정신’을 바이블 삼아 공부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내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불성설인 것 같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건축적 사고 방식 같은 것은 분명히 영향을 받았겠지만, 귀국 후 내 작업을 할 때는 형태적 결과로 드러나는 색깔을 일부러 지우려고 애썼다. 그것을 답습하는 순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작업에서 어느 계열(출신) 작업인지가 곧바로 드러나는 것은 창작자로서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창작자는 모든 상황에 열려 있어야 주어진 조건에 대해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향점이나 정체성을 한 번 규정하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두렵다. 포지셔닝이 갖는 위험함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국에 살면서 동시대 건축이나 다른 건축가의 작업을 보고 있기 때문에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유행도 탈 것이다.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을 경계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회를 이루는 여러 요소의 역학관계 속에서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가 분열하는
어쩌다 보니 사무소 인원을 3~4인 규모로 꽤 오래 유지했고, 현재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함께하고 있다. 이보다 더 늘어나면 내가 소장으로서 챙겨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면 편할 것 같고, 그렇게 관리만 하고 싶다가도 프론트라인이 주는 힘듦, 고달픔, 즐거움, 긴장감이 좋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사무실 인원이 두 자릿수 이상이 되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디아의 지속이나 확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내가 예전만큼 한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에게 일을 나누고 있다. 그렇게 하니 직원도 자신이 담당한 프로젝트의 A부터 Z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디아가 크지 않은 사무실인데도 건축사를 네 명 배출했고, 독립해서 사무소를 차린 친구도 세 명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디아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함께 했던 이가 독립해서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디아의 역할은 충분히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아는 앞으로도 지금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거나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 정현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프론트라인에 서서
분량2,517자 / 5분
발행일2022년 5월 19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