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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회

조남호, 문강형준


주제설명
조남호(심사위원), 문강형준(멘토)

일시 및 장소
1차_2015년 11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 @ 정림건축 정림홀 
2차_2016년 1월 10일 일요일 오후 3시 @ 정림건축문화재단 


재난건축이란?: 심사위원 주제설명

세월호라는 글씨만 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를 텐데요. 그 동안의 많은 사회적인 물의들은 다 차치하더라도, 저는 세월호를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저도 수많은 사건들을 보고 자랐죠. 그때는 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은 제게 있어, 마치 혼자 어떤 공간에 놓여 있는데, 누군가가 ‘너는 이 상황을 지금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러한 경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겪은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난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녜요. 세계 많은 지역에서 그래왔듯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연대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동안 잊어버렸던 것을 발견하는 출발점인 거죠.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이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해석하고 치유해 나가는 지, 이 부분에 있어서 거의 실패했다고 봅니다. 즉, 우리가 원초적인 상황으로 갔을 때, 사회는 생각보다 좋은 연대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곧,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좌) 알론소 카노, <사도 요한>, 1636 (우)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파트모스 섬의 사도> 1480~85

위 사진은 요한 묵시록의 저자 요한의 그림입니다. 그는 ‘사도 요한’이라는 설이 대부분인데, 묵시록이 서기 90년 가까이 되어서 쓰인 것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합니다. 성서에 보면, 묵시록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즉, 구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매우 무거운 책이죠.

그런데 이런 부분을 성서에서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하면, 소위 사이비 종교가 나오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성서 묵시록이라는 부분은 균형의 추 같은 것으로 생각해요. 현실에서도 우리는 늘, 평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여전히 종교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죠.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늘 존재하는 일이라는 거죠. 재난이라고 하는 문제도 성서 안의 묵시록 비중처럼, 우리 몸에 비유한다면, 마치 어떤 종양의 씨를 가진 거죠. 우리가 언제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아니나, 이 종양이 자라서 우리가 죽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늘 이것을 의식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자리에서 저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내가 깃발을 들 일인가? 아니면 누가 세운 깃발에 내가 쫓아갈 일인가?’

라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즉 용기와 실행력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 누군가가 재난위원회를 만들면 어떠냐? 해서 재난과 관련된 전문적인 영역의 사람들과 분기에 한 번만이라도 모여서 교류 및 공부를 진행하고, 실제 재난이 발생했을 때 24시간 안에 10명 정도 모이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었죠. 또 그런 연대가 사회 곳곳에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들어가고 있다면, 실제 그런 재난이 생겼을 때 사회적으로 강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결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봅니다.

재난은 ‘상당한 물리적 상해나 파괴, 생명의 상실, 혹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는 자연적 혹은 인공적 위해’로 정의된다. 그것은 지진, 쓰나미, 가뭄, 홍수, 전염병 등 자연재해와 방사능 유출, 기름 유출, 전력 마비, 전쟁, 테러리즘 등 인공재해로 분류 할 수 있다. 

문강형준, 《건축신문》 vol.15호, issue

문강형준 선생님이 건축신문에 기고했던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에요.

위 내용은 문강형준 선생님이 건축신문에 기고했던 글에서 발췌한 겁니다. 재난에 대한 정의를 위와 같이 해주셨는데, 저것을 확대하면 빈부 갈등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난’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재난건축’이라는 것은 어떻게 고민을 해보면 되는가? 라는 거예요. 자칫, 우리가 인문학적인 주제를 다룰 때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뭐냐면,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다이어그램처럼 그리면, 그것이 건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래 내용은 서울대 김광현 교수의 글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건축의 의미는 역사와 사회를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바로 근원 Archi 이다. 근원에 대한 탐구와 성찰의 답을 건축적 방식으로 실행한 결과물은 어떤 형식의 구조체 Tecture다.

김광현

‘Archi’라는 말의 어원은 어떤 것의 근원, 지속해야 하는 가치, 그리고 머리에 해당하는 것, 이런 의미라고 하고요. 그리고 ‘근원에 대한 탐구와 성찰의 답을 건축적 방식으로 실행한 결과물은 어떤 형식의 구조체다.’ ‘Tecture’라는 말이죠. ‘Tecture’라는 말은 어원이 ‘Tecton’이고, 그것은 마치 목수의 작업 같은 거죠. 즉,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적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이어그램처럼 그렸다고 해서, 그것이 건축이 되진 않는다는 거죠. 결국은 재난의 근원에 대해, 우리가 성찰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건축적 방법으로 실행하는 구조체가 ‘재난건축’이라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 개인과 공동체,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삶은 무엇인가?
– 재난상황에서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 건축적 요소는 무엇인가?

이번 재난 공모전의 도시 건축적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사실은 이것이 특정한 상황이죠. 즉, 전쟁처럼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일어나기 쉽지 않은 특정한 상황인 거죠.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가장 기본적인 상황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을 때, 혹은 우리가 다 잃은 상황이고 다시 생존을 시작할 때, 가장 필요로 하고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순서로 정하는 거죠.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것을 둘로 나눠서 본다면, 하나는 개인과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이 있어, 최소한의 삶의 문제는 어떤 항목인가? 라는 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건축적인 면을 비춰봤을 때 다 파괴된 상황에서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야 할 건축적 요소-거기에는 물론 공간적인 요소도 포함되나 전기 혹은 물 이런 것도 있겠죠.- 를 묻는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저는 ‘재난건축’을 낯선 건축을 고민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 일상 안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라 설명하고 싶습니다.

“대상지는 도시 내 일반주거지역, 즉 저층 주택지가 형성된 곳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어디든 가능하다. 재난상황은 도시의 물리적 파괴뿐만 아니라, 기능도 상실해 기존 질서와 단절된 상태다. 즉, 어떤 의미에서 기존 대지의 맥락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대상지는 일단 ‘도시 안(案)’을 전제로 합니다. 서울도 될 수 있고, 해일이나 태풍 같은 문제라면 해안도시도 대상이 될 수 있죠. 우리가 항상 도시건축을 고민하면, 주변의 맥락들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 재난건축의 주제는 주변의 맥락은 덜 중요할 수 있다고 봐요. 즉, 이미 파괴된 상황 혹은 파괴되지 않더라도 어떤 기능이 상실된 상태를 나타내는 독립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건축적으로 내부에 집중하면 됩니다.

“시나리오에서 재난 구역 부지는 외부로부터 일절 단절된 상황을 전제로 한다. 가령, 지진, 이상 기후, 전염병과 같은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가 대상지로 될 수 있고, 해일이나 원전 사고 등은 해안 도시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제가 그린 다이어그램인데요. 이 외부의 지역들은 재난으로부터 괜찮은 지역이고, 이 안의 구역들이 재난지역이라 가정한다면, 여러분이 계획하는 재난건축은 이 재난지역 안에 마치 성처럼 존재하는 것이 될 겁니다. 그런데 재난지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재난이 닥쳤을 때, 그 건축이 최소한으로 파괴가 된다는 거죠. 재난의 크기에 따라서 파괴의 양은 달라지겠죠. 그런데 재난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안(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모든 재난을 가정하지도 말고요. 예를 들면, 어떤 특정 재난을 가정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어느 정도의 강도에서 주변 지역들은 다 망가지는데 70%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강력한 재난 앞에서는 30%만 건축물이 유지가 되고 기능도 유지될 수 있는걸 가정하는 거죠. 그리고 고립된 지역 안에서 자치(自治 )가 생겨나고,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재난 외의 지역과 연대해서 재난 지역의 구호에도 나설 수 있는 하나의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상황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공모 요강에 보면, 대상지는 일반 주거지 내 블록으로 5,000m² 정도에요. 그러면 가로세로 70m 정도의 크기가 되고, 건폐율 60%에 용적률 150%, 3층 이내의 조건입니다. 제가 3층이라 생각한 것은 주거공간으로서의 적절한 감각 같은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죠. 저는 여기서 건축적 방법이 강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저층(低層 ), 고밀(高密 )의 주거공간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여러분은 아직 익숙하진 않겠지만, 가볍게 만든 목구조 혹은 철골이나 콘크리트와 하이브리드 형태를 쓰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70세대를 가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그 안에서 어떤 자치(自治 )가 이루어졌을 때, 서로 교류하면서 최소한의 경제행위 이런 것들이 생겨날 수 있는 즉 너무 작으면 서로 협력해도 거기서 추가로 생겨날 수 있는 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고립되었을 때, 서로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단위라 본거지요. 그리고 가구 당 면적은 평수로 하면 30평 내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난의 유형과 전개 양상, 그리고 재난 이후 거주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기술

재난 상황에서 기능 가능한 자족적 공동체 프로그램, 도시와 건축의 방재 프로그램, 구축 시스템 등을 가정

첫 번째 과제가 시나리오를 제출하는 겁니다. 시나리오가 중요한 건, 특별한 상황을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는 두 단계로 구성되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실제 재난이라 상정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기술하는 겁니다. 아마, 누구도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나 외국의 사례들을 참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재난 상황에서 실제 가능한 자족적 공동체가 유지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것과 도시 건축적 상황에서 방제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고 재난 상황에 대해 건물은 어떤 성능을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구조체가 유지될 수 있을지 그것을 가정하는 겁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이 두 번째 과제물로 실행할 설계 과정을 통해 사실 검증되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모순이 생길 수 있죠. 어쨌든 이 두 가지를 가정하는 내용이 시나리오에 담겨야 합니다.

“여기에서 설정한 ‘재난건축’이란 재난 피해의 최소화를 고려한 ‘재난 이전의 건축’에 더욱 비중을 둔 것으로, 재난 이후 구호의 기능보다 우선한다. 물론 이러한 ‘재난건축’은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생존자들이 구호와 자생적 자치를 도모할 수 있는 물리적 플랫폼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건축의 자료를 찾아보거나 접하는 기사들을 보면, 주로 재난 이후의 건축들이죠. 지역이 파괴되었을 때, 사람들을 위한 보호시설, 그것이 일반적으로 재난건축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데요. 저는 이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재난 이전의 건축’으로 한정 짓기로 했어요. 재난 이후의 건축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파빌리온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고 그것이 과연 건축의 본질을 고민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거죠. 많은 학생이 가벼운 파빌리온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가치가 조금 덜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재난 이전의 건축’ 그러니까 ‘일상의 건축이면서 동시에 재난이 발생 시, 대응이 가능한 건축’이 우리 공모전의 주제입니다.

참고도서 및 자료

이토 토요, 『내일의 건축』
재난 이후의 건축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재난 안에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

김성홍, 『길모퉁이 건축』, 쿠마 켄코 『약한 건축』
건축을 이해할 수 있으며 도시의 여러 가지 유형을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넥스트21 실험주택
넥스트21 실험주택은 21세기의 주택이 직면하게 될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면 생활의 다양화와 정보화 사회의 진행에 따른 거주 양식의 변화, 에너지 수요의 증대에 따른 자연과 공해 대책, 사회와 생활의 변화에 따른 주거 구조의 문제 등에 대응한 실험을 수행할 목적으로 오사카 도시가스주식회사가 주체가 되어 건설한 실험주택이다.


재난의 개념: 멘토 주제설명

이번 학생 건축상의 주제는 ‘재난’입니다. 이 단어는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본 말이죠. 우리는 재난이라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합니다. 후쿠시마에서 쓰나미가 일어나고,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하고,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하고 혹은 지진이 나서 몇백 명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거든요. 사건이라는 것은 극복될 수 있는 거잖아요. 즉, 재난은 극복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죠. 우리가 스릴러 영화를 보면 어떤 연쇄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형사가 나서서 풀어내고, 마지막에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면, 다시 일상은 평안해지는 거죠. 우리는 보통 이와 같은 사고를 하는데, 저는 그런 사고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오늘 얘기할 내용의 핵심입니다.

재난의 계열: 위험, 재난, 위기, 파국

재난을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계열 속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그 계열을 생각해보았는데, 그 계열 중 하나는 위험 그리고 재난, 위기, 파국 이런 식으로 저는 설정해보았습니다. 위험은 ‘Risk’이죠. ‘리스크’는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쓰는 위험이라기보다는 조금 사회과학적인 개념입니다. 리스트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가 『위험사회』라는 책을 쓰면서 만들어 낸 개념이죠. 울리히 벡에 따르면 ‘위험’은 근대사회, 근대문명,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문명이죠. 서구화된 근대문명은 영원히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가능성인 거죠. 알다시피, 근대문명은 이성과 합리성, 과학, 기술, 수학 이런 것으로 무언가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신념의 바탕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전의 질서가 신적인 질서, 운명에 나를 맡기고 하는 그런 질서였다면, 근대적인 질서는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것이죠. 거기의 주체가 인간이 되는 거고요. 생각하고, 사고하고, 무언가 미스터리가 있으면 파헤쳐서 반드시 해법을 찾아내는 그런 인간에 대한 믿음이 근대문명의 바탕이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편하고 첨단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바로 그런 근대문명 때문에 생겨나는 위험을 우리는 같이 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울리히 벡의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몇 년 전에 경험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들 수 있죠. 원자력은 자연이 준 에너지가 아닌, 인간이 여러 화학 물질들을 결합해서 만든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가진 힘이 너무나도 놀라워서, 거기에 한 번 쓰나미나, 지진, 테러 등이 발생했을 때, 그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지고 방사능이 유출되면,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하진 않지만, 90년대 혹은 80년대인가요? 체르노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서 아직, 사람들이 살지 못하죠. 후쿠시마도 우리가 경험했고, 방사능이 부산 앞바다로 흘려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횟집 장사도 안되었죠. 즉, 원자력 발전소가 여전히 가동되고 있고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리스크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리스크’라는 것은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특유의 요소인 것이고 그 리스크가 실제 사건으로 구체화할 때, 이것이 제안되는 거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것이 리스크라면,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지는 사건이 생기는 게 바로 재난인 거죠. 우리는 그런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재난들이 연속적이거나 하나의 재난이라는 사건이 다른 방식의 사건들과 연결될 때, 예를 들면 부산 혹은 구리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져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남한 전체가 아비규환 상태가 되었을 때, 남한의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우리는 모르는 거죠. 이처럼 뭔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나아가는 상태, 이것을 저는 ‘크라이시스(Crisis)’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 위기 속에서 다시 그 전 상태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끝내 무너지는 상태로 가버릴 때, 이것을 저는 ‘파국’이라는 개념으로 봅니다. 이런 강도에 따라 아래로 내려올수록 강해지는 형식의 계열을 상정했습니다. 즉, 재난이라는 것은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위험, 위기, 파국이라는 다른 계열들 속에 사고해야만 합니다. 이번 주제인 ‘재난건축’은 재난이라는 것이 반드시 다른 위험이나 위기, 파국과 같은 다른 방식의 비슷한 유형의 계열들 속에 있고, 그것이 언제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봅니다.

그러나 재난을 반드시 우울한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은 아닌 것이, 재난이 깊어지면 발생하는 위기나 파국이라는 개념은 사실, 전복의 계기들을 품고 있습니다. 위기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그리스 사람들은 길이 갈라지는 형태를 ‘위기’라 불렀어요. 우리는 길이 갈라진 부분에 있는 거고요. 목적지가 여기인데, 선택을 잘하면 이쪽으로 가지만, 잘못하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위기의 상태인 거죠. 이런 상태를 ‘크리티컬(Critical)하다’라는 형용사로 쓰죠. 크리티컬하다는 말은 위험하다, 위급한 상황을 뜻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판단을 내렸을 때,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거죠. 그 판단을 가리키는 말이 ‘크리티시즘(Criticism)’이라는 말입니다. 크리티시즘은 언제나 위기 상황 속에서 가능한 것이고 위기 상황일 때, 반드시 판단을 내리는 비평적인 사고, 실천, 이런 것들이 필요한 거죠. 그러면 위기는 대게 위급하고 위험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면, 목적지로 갈 어떤 기회가 되기도 하는 거죠. 우리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하는 게 이런 맥락에 있는 거고요.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라는 말도 원래 한자어로는 모든 게 다 끝나버리는, 최종적으로 무너져 버리는 완전히 끝난 상태를 이야기하는데, 영어의 카타스트로피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Cata’라는 말하고, ‘Strophe’라는 말이 결합한 것인데, 이것은 ‘아래로 뒤집어진다’는 말이에요. 전복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현존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질서가 갑자기 뒤바뀌는 거죠. 전복되는 거죠. 그 전복이 어떤 사람에게는 완전한 파국과 몰락인 상태가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겐 그런 파국 상태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낼 기회가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 16세기에는 이 카타스트로피라는 말이 연극에서 갑자기 플롯이 반전되는 그런 반전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 카타스트로피라는 말이었어요. 바로 이 재난도 재난의 위기나 파국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항상 다른 기회, 다른 판단을 할 기회가 숨어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이 속에서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지, 그리고 이 재난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혹은 역사적으로 있었던 재난의 사건을 우리가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도대체 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지, 그다음에 한국이 닥쳐있는 어떤 상황은 무엇인지, 한국은 위기 상황은 아닌지, 재난 상황은 아닌지, 이런 질문들을 여러분이 던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주로 이공계 계열에서 공부하시지만, 아까 소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반드시 ‘Archi’에 대한 문제들을 고민을 해야만 제대로 된 건축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 재난의 두 형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서 재난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생태적인 재난(자연적인, Natural)’과 하나는 ‘사회적인 재난(인공적인, Artificial)’ 이렇게 두 재난으로 따질 수 있습니다. 생태적인 재난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 쓰나미, 화산, 지진 등 이런 것들이 포함될 수 있고 사회적인 것은 훨씬 범위가 넓죠. 아까 말한 원자력 유출의 문제부터 폭력, 테러, 전쟁 이런 것들이 다 사회적인 재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외파(Explosion)’라고 쓸 수 있다면, 사회적인 것은 인간들이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공동체를 폭파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내파(Implosion)’라는 말로 쓸 수 있겠죠. 우리는 흔히, 자연적인 재난과 사회적인 재난을 나눠서 보고, 이런 재난들을 극복할 수 있다 생각하는데, 저는 이 두 가지가 사실, 이어져 있다 봅니다.

자본주의: 자연 재난와 인공 재난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

생태적인 재난과 사회적인 재난들이 서로 연결되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문제의식인데요. 저는 자본주의를 볼 때, 하나의 독립된 경제 체제라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재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문명 속에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문화, 정치, 다른 모든 영역을 관통하면서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이슨 무어(Jason Moore)라는 학자는 자본주의 문명을 ‘자본주의 생태계’라 부릅니다. 즉, 생태계라는 말은 자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죠. 인터넷 생태계, 학문 생태계, 이렇게 이야기하듯, 지금 우리가 사는 있는 환경. 군축도 포함된 환경들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데, 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라는 겁니다. 그 속에 건축과 문화, 정치도 들어가는 거죠.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문명이 바로 자본주의 문명인 거죠. 한 예로, 한국 금융의 허브라고 하는 여의도 지역의 건축과 인사동의 건축이 다른 이유, 이런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거죠. 단순히 거기 사는 사람들이 그런 건축물을 좋아하고, 인사동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을 좋아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본이 집중된 곳에는 반드시 그 자본의 집중을 가장 효율적,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의 문화가 필요합니다. 즉, 그게 건축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고층빌딩들인 거잖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살 때 그런 고층 빌딩은 필요가 없죠. 그런 것처럼 사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우리의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그 생태계가 사실은 자연과 인간 모두를 500년 동안 계속 바꿔온 겁니다. 그래서 자연을 ‘Nature’이라 하면, 인간의 본성은 ‘Human Nature’라고 하는데, 이것마저도 다 바꾸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거죠.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자연을 바꾼다는 것은 경제가 굴러가기 위해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하죠. 자연에서 나무를 베어다 쓰거나 석탄을 추출하거나 석유를 끌어다 쓰거나,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거나 하는 식의 에너지가 필요한 거죠. 이 자본주의 체제가 사실은 엄청난 방식의 ‘Natural Resource’를 계속 요구하는 거죠. 여러분은 그게 감이 잘 안 잡힐지 몰라도, 16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요. 16세기의 동유럽 어떤 곳에서는 사막화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아마존의 밀림이 잘려나가고 오존층이 파괴된 것이 최근이 아닌, 16세기 이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그 상태가 심각해진 거고요.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이 지구 안에 속해 있잖아요. 예전에는 자본주의가 유럽에만 존재했을 땐 상관없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자본주의는 문명화라는 명명 아래, 뻗어나가게 되었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원들이 한계가 다가온 거죠. 혹은 한계가 이미 지나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즉, 자본주의가 자연을 계속 끌어다 쓰는 체제이고 그 자연에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유명한 ‘가이아(Gaia) 이론’을 예를 들면, 지구를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볼 대, 인간은 그 위에 살고 있고, 인간들의 문명 때문에 지구라는 생명체가 몸살을 앓게 되었을 때, 지진이나 쓰나미 등, 대기의 격변 같은 것이 발생하는 거죠. 지진이나 쓰나미는 지구 전체의 항상성(Homeostasis)이 파괴된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방식의 재난으로 이어지게 되죠. 요즘 들어 우리는 이런 재난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고요. 그런 맥락 속에서 자본주의를 이해한다면, 자연적으로 방생하는 재난과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재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지금도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계속해서 돌아가고,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지식, 정서, 이런 것들까지 뽑아가면서 상품화하는 단계로 가고 있어요. 즉,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그런 방식의 소셜 네트워크 형태로 되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뽑아낼 한계(Frontier)들이 이미 사라져버린 상태라고 우리는 인식을 하는 거죠. 여전히 석유와 석탄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이제는 그 외의 다른 어떤 대체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은 단계라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미국 국방부마저도 그런 식으로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한국은 워낙 역동적인 문제가 많다 보니, 이런 거대한 문제들에 별로 관심이 없죠.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는 이런 찬원의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건축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에서도 재난이나 파국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요.

‘하이퍼오브젝트(초과물, Hyperobject)’

재난이 어떻게 구조화 되어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적인 재난, 현대적 위기 상황이라고 볼 만한 개념이 하나 있어, 소개해드릴게요.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라는 개념인데 티모티 모튼(Timothy Morton)이라는 생태학자가 쓴 책인데, 아까 말한 내용과 조금 연관되는 부분이 있어요. ‘Hyper’는 뭔가를 초과하고 과잉된다는 뜻이잖아요. ‘Super’보다 더 큰 개념이죠. ‘Object’는 사물이라는 개념이고요. 그래서 전, ‘하이퍼오브젝트’를 ‘초과물’이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현대적인 재난은 바로 이런 초과물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초과물’이라는 것은 티모티 모튼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느낄 수도 때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오브젝트 그게 하이퍼오브젝트입니다. 그것의 예로 많은 것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본주의 시스템과 태양계라든가 우주, 그리고 아까 전형적인 예로 들었던 원자력 같은 거죠. 이 지구상에 플루토늄이 어느 정도로 얼마만한 양이 퍼져 있느지 사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예요. 그리고 그 속에 퍼져 있는 범위도 그렇고요. 플루토늄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지구상에 남아 있는가 하는 것도 짐작만 할뿐이죠. 대충 400년, 1000년 이렇게 잡는데 그 말은 곧 우리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인류가 다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플루토늄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플라스틱백, 스티로폼 컵 등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하이퍼오브젝트들이 바로 울리히 벡이 말한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것들이고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는 거죠. 인터넷도 하이퍼오브젝트의 일종이라고 볼 수있는데, 우리가 날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메일도 확인하지만 내가 접속한 인터넷에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고 어떤 식으로 정보가 처리되고 하는지 우리는 몰라요. 그런 하이퍼오브젝틑 속에 우리는 살고 있으므로 이런 문명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재난은 하이퍼오브젝트적인 재난이 되는 겁니다. 기존의 고대나 중세나 이럴 때 발생했던 자연의 재해들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방식의 재난이 가동되는 거죠. 원자력이 붕괴해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인터넷, 전기 등이 나 끊어지겠죠.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하이퍼오브젝트적인 시스템들이 다 다운될 때, 인간은 다시 완전한 원시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왜냐하면 지금 같은 첨단의 문명이 아니었으니, 옛날 사람들한테 그게 별 문제가 안되죠. 현재 우리 인간은 생긴 것은 비슷하나, 옛날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 우리는 그런 문명 속에서 생산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갑자기 사라지는 재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죠.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게 요즘 유행하는 좀비 영화예요. 갑자기 이 지구상의 기존의 질서가 다 무너졌을 때, 인간이 과연 지금처럼 서로 도와가고 공동체를 만들면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기는 거죠. ‘하이퍼오브젝트’로 이루어진 문명과 하이퍼오브젝트적인 재난이라는 위험 가능성 속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이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는 속에서만 사유가 시작될 수 있고, 과연 내가 사는 사회, 이 시대 속에서 더 크게 말하면, 전 지구적인 환경 속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집, 내가 설계하는 건축이 어떤 이념을 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재난이라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적절한 주제일 것 같고 실질적인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소장님께서 해주셨지만, 저는 이 재난을 우리가 왜 생각해야 하고 어떤 심각한 가능성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몇 가지 개념 설명을 하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재난 포럼을 통해서 나누거나, 아니면 제가 건축신문이나 다른 곳에 쓴 글을 참고해주세요.


질의 및 응답

[1차 주제설명회]

Q 공동체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A (멘토) 방금 제가 현대 재난은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임을 말했어요. 티모티 모튼(Timothy Morton)이라는 사람이 하이퍼오브젝트라는 개념을 통해서 현대 문명을 비판한 이유는 인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환경, 그리고 우리가 소속된 커뮤니티, 이웃, 다른 나라, 대기, 태양계 이렇게 어떤 거대한 차원 속에서만 인간이 존재한다고 보죠. 우리가 역사를 볼 때, 항상 인간의 역사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일들은 인간만이 만들어낸 역사가 아니라는 게 생태학자들의 중요한 아이디어거든요. 인간 외에 다른 존재들, ‘엑스트라 휴먼(Extra Human)’이라고 하는데, 그런 엑스트라 휴먼을 같이 사유할 수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비인간적인 것들,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지구 전체, 이런 것 속에서 항상 인간은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인간은 항상 관계 속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공동체라고 이야기했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이웃, 우리 동네 이런 차원을 넘어서는 개념이라 보고 있어요.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항상 관계 속에서 생각하고 그렇게 공동체의 개념을 확장시키면, 공동체는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이나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을 넘어서서, 우리가 딛고 있는 땅과 대기, 자연 환경 혹은 그 속에서 우리가 행했던 여러 가지 어떤 일들, 그 모든 것들의 관계 속에서 지금 우리를 생각하는 게 공동체적인 사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쓴 『소유냐, 삶이냐』 라는 책의 일부에서 건축이든 우리의 삶이든 존재의 방식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많은 가치가 달라진다 생각해요. 우리가 막연하게 공동체 이야기 할 때, 고립된 혼자의 삶보다는 서로 교류하며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과연 과거에도 씨족 공동체 등 그런 것을 이루고 살 때, 과연 사람들이 그렇게 같이 뭉쳐있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씨족끼리 뭉치는 이유가 자신들의 대외적인 경쟁력과 좀 더 큰 부족, 이런 것들이 다른 외부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거죠.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막연히 좋은 공동체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나, 사실 저는 개인적인 독립성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나? 라는 의문이 들어요. 즉, 경제적인 성장도 그렇고 민주화 등 이런 것들이 결국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데 왜 공동체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막연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동체’라는 의미를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건축 안으로 끌어 와보죠. 어떤 하나의 집을 지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껏 짓죠. 그런데 그 집을 지으면서 마을 풍경과 집과의 관계, 집 앞의 정원은 어떤 방식으로 혹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최적의 공간이 될 지, 또는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배려가 되는 공간을 만들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을 전체가 다른 풍경이 되죠. 저는 그게 어떤 소유의 방식, 어떤 존재의 방식 그리고 나아가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공유의 가치를 드러냄으로 인해, 별로 좋지 않은 동네에 나 혼자 좋은 집을 지었다고 해서 그 집이 특별히 가치 있어지진 않잖아요. 공동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때, 우리 삶이 옆 사람하고 어떻게 교류하면서 살지, 이런 문제를 넘어서 재난의 상황에서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고, 평상시에는 우리 삶의 질을 전체적으로 같이 높이는 일이 될 것이라 봅니다. 개인과 집단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 무조건 공동의 가치만 생각하는 것은 공산주의거나 혹은 일종의 전제주의 같은 것과 비슷하다 봐요. 즉, 개별 것들을 존중하되, 그게 어떻게 공동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함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아야겠죠.

Q 인문학도 많은 종류가 있는데, 멘토께서는 왜 재난으로 계속 연구를 하시나요?

A (멘토) 재난이나 지구 멸망,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저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석사까지만 해도 19세기 영문학으로 논문을 썼었죠. 박사 과정 때 유학을 갔는데, 지도 교수님의 관심사가 디스토피아나 픽션 이런 것이었죠. 제가 그 연장 선상에서 관련된 공부를 하다가, 자연스레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매력적이라는 것은 그냥 간단히 읽어보니 재미있다 등의 1차원적인 것도 있어요. 예전에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지구 멸망, 좀비 등 그로테스크와 기괴한 이야기는 너무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바꾸고 관심을 가져보니, 일단 재미가 있었죠. 두 번째는 기존의 문학과 완전히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기존의 문학은 인류가 항상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 문제, 나는 누구냐라는 존재에 대한 문제, 타인의 문제, 이런 주제들을 계속 변주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면, 포스트-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소설이나 멸망을 다루는 이야기 속에 본질적인 주제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훨씬 급진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어요. 예를 들면,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도 너희들이 과연 지금의 자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탄탄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서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러니까 현대 사회에서 잘 제기되지 않는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일종의 사고(思考 ) 실험을 계속해서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고전 문학도 좋지만, 우리가 우리 시대를 재난이나 위기가 상존하는 그런 시대라고 본다면, 이 시대에 맞는 가장 관련 있는 문학은 그런 장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문학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부정성(否定 性)’이라는 것인데, 멸망을 이야기하고 끝을 상상하는 거잖아요. 그 부정성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결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나 긍정을 강조하고, 희망을 강조하고, 꿈을 꾸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사실 청년들은 그게 아니라는 것도 동시에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 같이 우울해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긍정성으로만 과잉된 가치들 속에서 부정적인 서사나 이야기들 혹은 그런 상상을 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혹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나, 사유를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Q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위험성에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위험성을 다루는 것은 어떤가요?

A (심사위원) 사회적인 이유로 생겨난 재난이라면, 건축에 위해는 없는 거잖아요. 만약에 건축에 위해가 없는 재난일 경우, 프로그램이라는 문제에 좀 더 집중된 작업이 되었을 때, 그만큼 어떤 상황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질병일 수도 있고, 질병이라면 건물에는 위해가 없는 재난이잖아요. 그럴 때, 특정한 질병에 대해 건축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혹은 위험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전 재난 이전의 건축이기 때문에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거죠. 다만, 그럴 땐 프로그램에 집중된 작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Q 공학과 인문학을 곁들여 시나리오를 쓰자니, 사실 막연합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A (심사위원) 저는 공학, 건축학 이렇게 나뉘어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학생 같은 경우엔 처음 생각한 것처럼 공법에 집중해서 단서를 찾아 나가기를 바라고요. 오늘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되, 자신이 가진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 있는 기술인지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즉, 어느 정도에서 나의 기술이 멈춰야 하는가? 라는 부분이 인문학적 관점에서 통제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공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되, 인문학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Q 시나리오는 건축물에 대한 -집주인, 사무소, 정치인이나 관공서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공모전에서 원하는 시선은 어떤 것일까요?

A (심사위원) 좋은 질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도 저는 좋은 방법이라 봐요. 또는 마치 전지전능한 사람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생각해 보는 방식도 가능하다 봅니다. 다만 개인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현실감을 느끼게 하잖아요. 그런데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보면, 추상화가 될 가능성이 크죠.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도 미시사도 있고, 개인의 시선으로 보지만, 그 시선 속에 묻어나는 것은 전체적인 걸 담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행정가의 입장에서 방제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좀 더 집중할 수도 있고, 그런데 개인이라면 전체적인 문제에 따라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해서 해나가되, 개인의 움직임 속에는 전체적인 것과 어떻게 연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단서를 담는 것이죠. 좋은 질문이고 어떤 것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관점이 결국 이 작업을 끌고 가는 관점이 될 것이니까요.

(멘토) 제가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방금 질문은 주인의 시선, 건축가의 시선, 행정 관료의 시선 등 마치 그 시선들이 따로 독립된 것처럼 이야기 하셨어요. 소장님께서 답변하셨지만, 건물을 가진 사람, 그곳에 사는 사람의 시선이 그밖에 있는 사람의 시선, 그다음에 커뮤니티 전체를 보는 혹은 더 크게 이야기하면 사회라든가 지구 전체의 관점 속에서 건물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그 관계가 저는 중요하다 봅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쓸 때, 자신이 그 시선을 선택한다면, 그 시선이 어떤 관계 속에서 형성이 되는 건지, 다른 시선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선에 어떤 것으로 결정되든지 간에, 그것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생길 겁니다. 그게 건물이나 세상을 보는 입장이 될 것이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라 봐요.

Q 대상지 조건이 외부로부터 일절 단절된 상황의 부지라 설명하셨으나 시나리오를 쓸 때는 거주지에서 일어난 현상과 주변 지역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기술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이는 건축물이 가지는 특징이 드러나도록 대비해서 보여주라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 지역 주민들이 와서 살 수 있게 하는 캠프의 기능을 설명하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심사위원) 여러 단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재난이 일어날 땐, 혼란의 시기도 있겠고요. 그래서 바로 그 주변과 연계를 하기보다는 자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그 안에서 작은 연대들과 자치들이 생겨나겠죠. 재난이 벌어진 후, 조금씩 해결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그다음에 부분적으로 재난 외의 지역, 물론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연결고리가 생기기도 하겠죠. 재난 이외의 지역, 그러니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파괴된 지역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여기가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가정해 인접 지역과 연계라고 하는 것의 맥락을 보면 사실관계가 적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파괴된 상태이고 실제 그 맥락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거의 없거든요. 그러나 연계를 갖는다고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재난 상황이 되었을 때, 그곳이 베이스캠프가 되어 외부 인접 지역과 연계해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거죠.

Q 재난 이후의 건축이 재난이 발생하고 난 이후의 피해에 대해 다시 재생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조치라고 한다면, 그런 조치나 구축적 방법들이 재난 이전에는 조금 비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재난 이전의 건축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시게루 반(Shigeru Ban)의 ‘Shelter’ 같은 가벼운 건축이 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말씀하신 건지요?

A (심사위원)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떤 건축이 훨씬 잘 견딜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강한 철판이 아닌, 스펀지와 같은 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형적일 정도로 콘크리트 문화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세계 다른 도시는 좀 더 유연한 재료를 많이 쓰죠. 실제 일본에서는 지진이 났을 때, 콘크리트 집은 오래 잘 버티지만 무너지면, 거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죽죠. 반면, 목구조는 쉽게 잘 무너지지도 않을뿐더러, 무너져도 아주 서서히 진행되거나, 무너진 틈 사이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가구식 구조라는 것이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그 사이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존할 가능성이 훨씬 높죠. 예를 들면, 목조로 다층을 세울 수도 있고 아니면, 큰 구조물은 콘크리트나 철골로 만들고 그 사이를 자족적인 방식으로 만들 수 있죠. 우리의 전제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구조물을 구상하는 일이고, 부분적으로 파괴가 되었을 때, 파괴된 것을 복구하는 일이 결국, 사람들이 모여 쉽게 작업할 수 있는 거죠. 하나의 큰 구조물이라면, 그 안에 무언가 좀 더 섬세한 방식으로 채워져 있을 수 있고,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칸막이를 만들 수도 있죠. 하이테크(High-tech)한 기술은 제한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지만, 로우테크(Low-tech)는 사람들이 쉽게, 있는 구조물만 가지고도 만들 수 있죠. 재난 이전의 건축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파괴가 덜 되는 구조물이기도 하고 그다음 재난이 벌어졌을 때, 파괴된 부분들이 주민들의 자치 때문에 재생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 쉽게 말해 있는 구조물만 가지고도 내가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들도 몇 가지 좁은 관점 중 하나일 수 있어요. 아니면, 이런 부분에 좀 더 치중해서 고민하거나, 공동체 혹은 방제 시스템 위주로 고민한다면, 구조적인 문제는 최소한의 방법만을 갖고도 설득력이 생깁니다.

Q 1단계 시나리오 후, 총평을 거쳐 2단계 과제는 이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럼, 총평을 통해 내용을 다시 바꿔도 되나요?

A (심사위원) 일단 골격은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번 제출한 내용을 완전히 바꿀 순 없어요. 재난에 관해 기술한 내용은 비교적 바뀌진 않아야 하고요. 실제 건축을 하다 보면, 시나리오를 써놓은 대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기에, 2차 과제물인 상세 계획안은 어느 정도 수정 반영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처음에 제출한 시나리오와 2차 과제물 간에는 분명히 연관이 있어야 하겠죠.

Q 재난 건축에 대해 생각을 해볼 때, 복합적인 재난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하나의 재난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A (멘토) 제가 재난을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 그런 식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의 재난이라는 사건도 그 이면에는 총체적인 다른 사건 혹은 다른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하나의 재난보다는 다른 재난을 복합적으로 해야 하나?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시각을 넓히라는 의미고, 하나의 재난을 다루어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접근 방법의 문제예요.

(심사위원) 작업이 선명해지려면, 재난의 성격을 좀 더 단순화하고 어떤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다 해결해주는 것은 세상에 없어요. 그리고 굉장히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죠.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지, 실제 짓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부각하고, 재난의 종류 역시, 명확하게 선정하고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 봅니다.

[2차 주제설명회] 

Q 지난 1차 주제설명회 녹취록을 보니, 재난 발생 시 주변 지역 맥락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크게 필요 없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대지는 지도상에 표기된 특정 지역이어야 하나요? 예를 들어, 울산, 창원이나 국가로 한다면, 한국, 일본 정도의 큰 범위를 설정하면 되나요?

A (심사위원) 재난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도시가 파괴되고 그 주변 지역은 훨씬 더 많은 파괴가 있다고 하면, 사실 기존에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부지 주변의 맥락이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거죠. 맥락이라고 하면, 주변에 시설과 상황이 있을 텐데,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획하는 일반적인 건축으로서의 맥락이 당연히 반영되겠죠. 우리가 설정하는 부지에 따라 어떤 시설이 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이런 문제는 당연히 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난 이후 맥락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한테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맥락’은 주변과의 연계이나, 고립된 상태잖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맥락이 덜 중요하다는 거죠. 재난 건축의 주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라고 하는 것은 원초적인 상태라는 겁니다. 어떤 공동체의 문제, 건축에 있어서 구축에 대한 문제,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맥락, 혹은 선례에 기대서 만드는 것이잖아요. 파괴되거나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할 때, 도대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출발을 주변에서 찾는 것이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묻고, 우리의 공동체로부터 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그런 의미에서 맥락이 덜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거죠. 어떤 사회적인 시스템 혹은 국가나 작은 지역이 어떤 시스템으로 연결되는지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건축적인 해결 방식에 집중한 대안이 사실,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적합하지만, 다양한 분야로부터 열려 있는 공모전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열어둔다는 겁니다. 일단, 구체적인 대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만약 국가, 장소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구체적으로 정해서 건축을 만들었으면 해요. 뒷부분 질문인 빈번히 발생하는 재난을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실 미래에 발생할 더 큰 재난에 대해 상상해주세요.

(멘토) 제가 몇 가지 책을 가지고 왔어요. 『장소의 재발견』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을 하나의 예로 들게요. ‘호비오’라는 도시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있는 곳으로 유서 깊은 술탄 군주국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해적들 소위 말해, 소말리아 해적의 본거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적들의 본거지라서 도시를 작동시키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가 없어요. 즉, ‘전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시급한 문제는 ‘모래’라는 겁니다. 모래가 점점 도시 쪽으로 밀려오고 있어서, 언제 도시를 덮어버릴지 아무도 모르죠. 지금은 해적의 도시지만, 재난이 곧 도래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구체적인 도시적 상상력이 있고 구체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하면, 여러분의 생각이 좀 더 나갈 수 있진 않을까? 합니다. 국내 상황으로 예를 들면, 『섬과 섬을 잇다』라는 책은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등 사회적 재난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미 전 지구적으로 재난이 도래하는 곳이 많아요.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건 좋으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나 구체적인 사례 안에 갇히진 않았으면 해요.

Q 구역 내 모든 블록, 개별 건물이 구체적인 건물로 형상화된 설계 및 시공이 완료된 프로젝트가 목표인지, 블록 구획, 마스터 플랜을 목표를 하는 건지요?

A (심사위원) 설계 조건에 제시한 5천 평방미터라는 범위를 가지고 하면 되는데, 아까 질문의 답에서 주변의 맥락은 덜 중요하다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재난 지역이고, 재난 밖의 구역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사이트의 영역, 관계 이런 것을 보다 광역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건축적인 접근 방식은 구체적으로. 도시적인 접근 방법은 광역적인 관계에서의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로 접근하려면, 도시과 학생이 함께 작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Q 재난의 경우, 자연재해, 공업재해 등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년실업과 같은 소위 사회적 재난을 고민해도 되나요?

A (심사위원) 그 고민은 우리가 재난 이후의 건축에 주목했다면 명확하겠죠. 어떤 재난이 발생했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재난 이전의 건축이 되다 보니, 평상시에는 일상적인 삶을 살고, 어떤 재난이 다가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데, 포괄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굉장히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겠죠. 그래서 실제 프로젝트는 어떤 지역에 세 개 정도의 복합적인 재난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만들겠죠. 여러분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재난에 대해 좀 더 비중을 두었으면 해요. 그리고 재난 이전의 건축이므로 지진이나 해일 등 여러분이 설정했을 때, 프로젝트에서 철근의 양을 더 많이, 골조도 과감하게 써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면 안전하겠죠. 그런데 미래의 재난은 어떤 우려를 하고 있냐면, 우리가 강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반대로 우리한테 공격을 시작한다는 거죠. 현실적으로도 그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메커니즘을 가진 성격에 대해서만 강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강함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에겐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죠. 목구조가 약한 재료이긴 하지만, 그게 무너졌을 때, 우리한테 큰 위해를 직접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죠. 또한, 얼기설기 되어 있어서 무너져도 무게가 무겁지 않으니, 공간을 쉽게 형성할 수 있고요. 그러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죠. 부분적으로 부서졌을 때, 특별한 장비 없이 재구축할 수도 있고요. 재난의 성격은 여러분이 재료와 구축, 또 그런 것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 힘을 파생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산업재해 그리고 청년실업이나 사회, 경제적 재난도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제가 답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것을 건축적인 주제로 끌어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즉, 사회적인 문제인데, 사실은 그게 어떤 사람 간의 작은 영역 안에서 관계의 문제라고 하면, 건축적 주제로 될 수 있지만, 사회 전반적인 문제는 한정된 지역 안에서 어떻게 그것을 건축적 주제로 끌어오고, 실제 건축물을 지어나갈지는 모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연관된 어떤 재난, 바이러스나 이런 것들일 때, 그것은 건물을 파괴하진 않죠. 그런데, 이런 주제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파괴 이후가 아닌, 파괴 이전을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난 상태에 작동하는 공동체의 움직임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평상시에 다뤄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제 설명회 때, 어떤 학생은 컴퓨터와 관련한 재난인데 사람들이 다른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사람의 체력만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고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었죠. 그런 상태라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당연히 있어야겠죠. 저는 당연히 주제가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멘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주제 설명회에도 다룬 것 같으니, 녹취록을 다시 읽어보시고요. 저는 인문적인 상상력으로 보자면, 바이러스, 전염병, 메르스 등의 재난은 단순히 건축을 설계하고 공사를 하고 그런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죠. 건축물이 들어서는 사회, 건축물이 있는 공간, 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위해, 사건(재난)을 극복하면 또다시 정상 상태로 되는 과정을 여러분이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이 있기 전에, 항상 그 재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 것을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언어로는 ‘리스크’라 하는데, 그런 리스크 상태가 있기도 하고 그 위험이 가시화되어 실제 사건으로 일어나는 재난들이 있죠. 그런데 재난들은 여기서 그치고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재난들이 해결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전 세계 곳곳에서 똑같은 재난이 한번 해결되면, 다시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듯,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재난들이 해결되지 않은 경우에 위기 상태로 가고, 그 위기 상태 속에서 완전히 기존 질서가 붕괴하는 그런 파국적 상황, 그 파국적 상황 속에서 완전히 새로 다른 질서가 출현할 수 있죠. 재난은 그렇게 하나의 작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항상 그 전에 위기, 파국 이런 것과 항상 연관을 지으며, 도대체 이런 식의 재난을 만들어 낸 사회 구조가 무엇인지, 어떤 시스템 속에 구성되는 사람들의 휴먼 네이처가 어떤 식으로 이런 재난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거죠. 그래서 재난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책을 여러분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연구한 학자들의 경우, 사회적 재난뿐만 아니라, 자연 재난이라고 불리는 것까지도 우리가 현재 겪는 지배시스템, 경제체제인 자본주위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주장하거든요. 심사위원도 말씀하셨듯이, 건축을 둘러싼 공동체, 사회적 관계, 저는 더 나아가 현재 세계화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자연, 사회적 재해 그런 것을 유발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들이 문제의식과 이에 따른,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사회학자 울리히 벡, 티모티 모튼(Timothy Morton),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s)』, 제이슨W. 무어(Jason W. Moore)의 글을 추천합니다. 이런 종류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책을 읽으면 여러분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재난을 다루는 SF소설, 재난 이후라든가 재난이 발생해서 위기 상황이나 파국상황으로 가는 ‘아포칼립틱 내러티브(Apocalyptic Narrative)’의 TV드라마도 있고, ‘워킹데드(Walking Dead)’등의 영화도 많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현실 속에서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생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현실과 접목시켜보는 접근 방식을 여러분이 택했으면 합니다.

Q 건물의 층수를 낮게 제한하고 재난에 대비한 기초 등을 강조한 것으로 봤을 때, 본 프로젝트는 구조적이고 기술적인 보완점을 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건축의 개념 및 디자인을 요구하는 것인지요?

A (심사위원) 구조적이고 기술적인 것도 저는 굉장히 개념적이라 봅니다. 나무집이라 해서 어떤 특성을 반영한 기술이라는 문제보다는 이것을 누가 다루느냐 즉,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비중을 둘 것인가 하는 부분은 직접 판단하는 거지만, 저는 이것이 건축적으로 잘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어떤 공동체의 단위를 규합하고 공간을 배열하는 방식은 여러분이 어떤 쪽으로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여러분이 자신들이 잘하는 특성을 바탕으로 협력해서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건축적인 것으로 끌고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이에 따른 불이익은 없으니 걱정 말아요.

Q 재난 이전의 건축이라면, 건축적인 해결뿐 아니라, 재난 이전의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사회 교육적인 측면에서 해결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A (심사위원) 시나리오를 쓰는 이유는 실제 상황을 가정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통해 경험한 것처럼, 재난을 겪고 나서 우리 사회가 성숙하게 그것을 잘 다루지 못한 것을 깨달았죠.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재난 이후에는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이 발휘되고,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될 것이라는 가정은 상당히 위험한 거죠. 교육이라는 내용을 어떻게 건축적인 주제로 끌고 올 것인가는 고민이 필요한데, 그 안에 담길 내용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지금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이주하면서 온갖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일들이 있었죠. 만약 우리가 그 경우라 생각했을 때,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죠. 즉, 공간과 상황을 변형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건축적 대안을 제시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Q 사이트를 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혔던 부분이 싱크홀이나 원자력이 터지는 것처럼, 이미 그 지역은 쓸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고 가정을 한 후, 사이트를 그곳이 아닌, 거기서 파생된 근처 혹은 사람들이 피난을 갈 경우, 아예 다른 곳으로 사이트를 설정해도 되나요?

A (심사위원) 부분 파괴가 아닌, 완벽하게 소멸하는 상황일 때 그 인근 지역을 설정할 수 있는가? 가 요점이죠. 그런데 사실 그 상황은 우리가 재난 이전의 건축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라서 내 사이트가 아닌, 다른 인근 사이트에서 소멸하는 재난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하는 건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학생) 저희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전과 이후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피난민들이 몰려오고 그들을 수용하면서 변화가 생길 거라 봅니다. 사실, 그럴 경우 사이트가 어디든 상관없지만, 구체적으로 완전히 파괴된 지역에서 피난 오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이트라 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잠실 같은 경우, 싱크홀 때문에 그 지역이 완전히 파괴가 되면 사실 건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좀 더 구조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피난민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심사위원) 저는 광역적 재난이라고 해도, 굉장히 한정된 영역에서 다뤄야 생생할 것 같습니다. 광역적 재난이라도 어느 한 지역으로 수렴했을 때, 생생하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그 지점을 건드려야겠지요. 사이트의 범위, 층수라든지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그런 것들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가정해야겠지요. 질문처럼 싱크홀이 생긴 부분만 깨끗이 없어졌어요. 근처는 완벽하게 괜찮고요. 이런 재난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원자력은 파괴 범위가 넓고 어느 정도 피해가 있죠. 그러니까 재난의 중심지역으로부터 떨어졌던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데, 싱크홀 같은 경우, 여기는 완벽하게 괜찮은데, 피난민을 받아들이는 수준이라는 고민할 문제가 적어지는 거죠. 즉, 고민의 지점을 잘 설정해야 합니다. 비교적 선명하게 재난의 성격을 가정하고 일상적인 것과 특정 재난에 대응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국지적 재난과 광역적 재난 사이의 문제도 고민할 수 있는데, 광역적 재난이라 해도 국지적으로 그게 어떤 식으로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끌고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높이 제한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3층이라 하셨는데, 지하 층수, 높이 제한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생활하면 건물을 다 고친다거나,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용적률과 건폐율의 변화가 높이 제한을 넘어가는데, 재난 이후에 크게 관여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재난 이후에 용적률과 건폐율을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심사위원) 법규적인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규정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공모전에서는 엄밀하게 법규를 따지진 않습니다. 대게, 대략의 범위를 상정한 거고요. 자신의 논리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 뭔가 용적이 더 늘어나야 하는 상황인데, 그게 혹시 인구 유입에 관한 건가요?

(학생) 어떤 것을 지정했다기보다는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는데, 줄어들기보다는 커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심사위원) 그러니까 애초에 작게 만들 수도 있고, 또 그 정도로 만들었는데, 만든 걸로 충분히 우리가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건축 환경도 잘 만들 것 아녜요. 그렇죠? 재난의 상황이니까 허용하는 걸로 해요. 어쨌든 그 이전 상황에서는 범위 안에서 하는 걸로요.

Q 재난을 바라보는 게 조금 더 영구적으로 재난 이후에도 사용될 수 있는 건축을 보는 건지, 아니면 반영구적인 건축이라고 생각을 해서 재난이 났을 때 빨리 대피하고 도망을 가야 하는 반영구적인 건축인지 궁금합니다.

A (유엔난민기구) 저는 유엔난민기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재난 지역에서 실제 건축이 어떻게 지어지는가? 이런 것을 다양하게 경험해본 사람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예시를 드리도록 할게요. 일단은 세가지 정도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2011년에 아이티에 큰 지진이 일어났죠. 그때 거의 20만 명이 죽고, 그런 도시 수도를 강타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난건축이 어떻게 이뤄지냐면 거의 천막 상태죠. 천막인데 여기에는 지진도 문제지만, 모든 재난에 있어 사이트나 그 나라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는 캐리비안 주변의 나라죠. 홍수가 빈번한 나라예요. 그래서 비가 오면, 바로 지진 뒤에 비가 와서 2차 지진이 문제가 되는 거였죠. 그런데 이 재난은 쉽게 복구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한 나라일수록, 그래서 2-3년 정도는 살 수 있다는 것이 생각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집을 지으려면,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여섯 시간 안에 지어져야 되는 텐트라든지, 임시 거주지역이 되어야 하는 그런 것에 대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것은 사이트에 가면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 재난건축에서 굉장히 중요한 건 2-3년 안에, 혹은 한 달 내지는 1년 안에 인간은 먹고 살아야 돼요. 겨우 텐트에서 살 수 있는 정도의 무언가는 있겠지만, 비를 피하는 정도는 있겠지만 그게 어떤 커뮤니티 센터가 중심이 되어서 물도 공급해야 되고, 식량도 공급해야 되고, 2-3년이 되면 아이들을 위한 교육도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단순히 뭘 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 센터를 중심으로 생존을 강구할 수 있어야 되는 거고, 재난에 있어서 많은 경우에 안전 문제가 중요합니다. 아이티 같은 경우는 지진이고, 두 번째로는 전쟁으로 인한 재난으로, 전쟁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콩고 같은 경우인데, 내전이 굉장히 오래 됐었거든요. 내전 때문에 많은 난민캠프가 있습니다. 난민캠프가 예를 들면 전쟁 지역에 30개가 있는데, 큰 곳은 조그마한 땅이긴 하지만, 5만 명 정도가 살아가는 난민캠프도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 캠프의 경우는 화산지역입니다. 그래서 기반이 울퉁불퉁해요. 그런 곳에서 10-20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화산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이 살수 있는 곳, 물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화산지형 위에 짚을 깔고 거기서 자요. 사람들이 제일 고통스러워해요. 그렇게 5-10년 정도 되면 방들이 구분되어야 해요. 왜냐면 좁은 공간에서 모든 가족이 같이 살 경우에 수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런 바의 구분 이런 것을 생각해보거나, 커뮤니티 센터라든가 생존을 보장하는 중심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져요. 세 번째는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시리아도 그렇겠지만 돌아가면 집들이 다 파괴되어있어요. 새로운 집을 건축해야 되거든요. 그런 경우엔 기존에 살던 우리 집은 부서졌지만, 난민이 되지 않고 원래 살았던 사람들과 어떻게 융화될 것인가, 집에 있어서의 보수라든지, 원래 내가 살던 가장 편안한 상태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것에 대한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Q 재난 이전에 재난 후를 생각해서 셸터의 개념으로 빠르게 지어질 수 있는 건축도 포함되나요?

A (심사위원) 아까 커뮤니티 센터를 말씀하셨잖아요. 일본 건축가가 쓴 책에도 보면, 교회일 수도 있고 모두의 방 혹은 개인의 영역들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항상 만들어지는데, 그게 최우선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뜻이죠. 결국 이것은 최소의 건축이 뭐냐? 풍요로운 삶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것이 뭔가라는 것에 대한 질문인 겁니다. 그것은 구축에 대한 질문일수도 혹은 공간에 대한 질문일 수 있어요. 처음에는 비를 가리고,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겠죠. 그런데 좀 더 기간이 길어진다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럴 때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게 어떤 구획인지, 이런 것을 질문하는 거잖아요. 저희가 가정하는 것도 결국, 우리가 만드는 재난 이전의 건축이 재난에 대비해서 만들기는 하지만, 그 파괴나 나쁜 현상들에 대해서 안전하게 대응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즉, 최소한의 대응을 하는 겁니다.

Q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재난이라면, 대안이 조금 이상적으로 갈 수 있고, 이미 일어났거나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재난일수록 현실적인 대안이 나올 것 같은데 추구하시는 지향점이 있나요?

A (멘토) 상상적인 것을 허용해도 되냐는 거죠? 제가 정하면 되는 건가요? (웃음) 저는 허용을 했으면 좋겠는데, 좀비 이야기나 외계인의 침략 이런 것은 아닌 거죠. 완전히 허구적인 그런 것은 말고, 우리가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이것을 문학에서는 공상과학소설(Science-Fiction)과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 구분하는데, ‘Science-Fiction’같은 경우는 현실적으로 상상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외계인이 침입을 한다든가, 그런 거죠. ‘Speculative Fiction’ 은 ‘Speculative’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을 눈으로 보듯이, 앞으로 그려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투자하는 것, 투기하는 것도 ‘Speculative’라고 하는데, 추론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이 추론은 항상 현실에 기반을 두는 거죠. 아직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렇게 구분을 한다면, ‘Science-Fiction’보다는 ‘Speculative Fiction’쪽으로 이 정도는 포함되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그런 식으로 한국이나 글로벌 질서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이런 식의 재난이 가령, 한국에 대거 난민이 유입된다든가 이런 상황은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Speculative’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안을 마련하고, 건축적인 대한, 혹은 건축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가를 보는 것은 신선한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그런 새로운 재난을 만들어내고, 물론 그 재난은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저는 높이 평가할 것 같아요.

(심사위원) 저도 동감인데요. 결국 미래 재난이 복합적인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원자력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대개 컴퓨터의 오류가 전제, 사람이 육안으로 판단하는 것을 고도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안전도을 높여간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런 것이 복합화되잖아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 같기도 합니다. 요즘 의사들이 굉장히 정확한 진단을 해내죠. 그런데 상당 부분을 기계에 의존하잖아요. 옛날의 의사들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은 대신에, 자신이 통합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더 정확한 진단을 하지만 의사의 통합적인 판단능력은 훨씬 떨어지는 상황이잖아요. 그럴 때 생기는 오류처럼, 미래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을 복합적으로 만들다 보면, 그게 미래 재난의 성격하고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일어나지 않은, 도래할 것 같은 재난에 대해 가정하는 게 훨씬 더 미래적인 재난의 성격일 것 같습니다. 대안 역시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사이에 있을 것 같은데, 현실적인 대안과 이상적인 대안을 허용합니다.

(사회자) 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어디서 출처를 가져온다면, 반드시 그 출처를 명기해주셔야 합니다. 소스가 어디라고 해서 그것에 따른 불이익은 없고요. 또 하나는 어디서 본 것을 제출했을 때, 저희는 그것을 배제시킬 수밖에 없어요. 즉, 여러분의 개별성을 가지고 있는 작업을 우리가 받아보는 건데, 어디선가 본 듯한 것을 제출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주제설명회

분량34,173자 / 60분 / 도판 7장

발행일2016년 6월 30일

유형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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