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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Library – 우포 자연도서관

이치훈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1의 용어처럼 공동체는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이다. 전통적인 관계를 빠르게 해체해 온 수많은 현대적 삶의 조건 속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만 얻어지는 삶의 목표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살펴야 마음이 놓이는 SNS 공간처럼 공동체는 때로 가상의 세계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불안한 연결고리 혹은 사회적 흔적 기관처럼 느껴진다.

공동체의 기본 단위였던 가족 관계의 해체는 대도시의 성장, 농촌의 후퇴와 함께 진행되었다. 국가가 산업사회를 향해 달리는 동안 농촌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질주했고, 이는 곧 농촌 사회가 간직해온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해체를 불러왔다. 인구 절벽을 내다보는 한국에서 농촌의 사회·경제적 관계망의 해체는 이미 오랜 걱정거리다.

창고, 좀 더 정확하게는 ‘농산물 간이 유통창고’는 어쩌면 도시의 성장을 지탱하면서 스스로는 해체의 과정을 밟아온 농촌 현실의 상징적 경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창고들은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로 대표되는 농업의 세계화 과정에서 농촌을 지원하는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농산물이 세계 시장에 개방되면서 가격 경쟁에서 취약한 국내 농업의 유통구조를 농가 별로 개선하라는 취지였다. 임기응변식 국가정책으로 생겨난 창고들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응책이기는커녕 불과 20–30년 만에 관리할 주체도 없이 방치되었고, 이미 해체가 깊숙이 진행된 농촌의 실태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경관이 되어버렸다.

우포 자연도서관은 버려진 창고를 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는 프로젝트다. 전직 교사이자 환경운동가인 건축주와 시민사회, 범도서관계의 뜻이 모여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핵심 동력은 대지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환경운동, 그리고 이와 결합된 도서관을 통해서 우포의 생태적 가치를 증폭시키고자 하는 한 실천적 활동가의 믿음일 것이다.

누가 우포자연도서관을 함께 만드는가?

도서관이 들어서고 있는 우포는 1998년 람사르 등록 습지2로 국내 최대의 내륙 자연 늪지이자 국립습지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장소다. 건축주는 퇴직 후 삶을 던져 우포가 람사르 협약에 등재되는 데에 헌신적으로 기여했고, 이후 생태교육을 포함하는 도서관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삶에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 두는 지식의 저장고라기보다 생태교육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이고, 우포의 생태 자원을 기록, 보존하여 연구자들이 모이게 하는 거점이다. ‘포스트 람사르’를 위한 생태적 삶의 실천적 공간이랄까, 이 개조된 창고를 통해 해체된 농촌의 공동체를 대안적 형태로 다시 소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곳이다.

자연과 도서관, 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

우포 자연도서관은 밤의 도서관이다. 우포 습지에서 살아있는 현장을 체험학습하고, 이를 도서관에서 다시 확인해본다. 2층은 책을 들고 올라가 누워서 독서하거나, 책을 읽다 잠들 수도 있는 공간이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도서관에서 숙식하면서 연구활동을 했던 것처럼 습지와 철새를 공부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국의 도서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생태교육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이 공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우포 자연도서관의 가장 큰 가능성으로 예상했던 지점이다. 최근 공교육 분야에서 지역 도서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예컨대 우포 습지는 매우 탁월한 현장학습의 장이다. 이 때문에 전국 단위의 도서관 시민단체인 ‘도서관친구들’3의 우포 지부가 설립되어 있기도 하다. ‘거주할 수 있는 도서관’의 유형은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방문자를 불러들이며, 생태적 삶을 매개로 한 임시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된다. 아직 완성되기 전이지만 우포 자연도서관의 다양한 가능성을 꿈꾸며 실험하고 있다.

집 속의 집, 디자인의 과정: 초기 창고를 도서관으로 전용하는 아이디어는 ‘집 속의 집’ 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적정 규모(70여 평)를 산정하고 이를 넓은 창고 내부에 나누어 배치하여 비워진 공간과 채워진 공간으로 창고 전체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이 갖추어야할 단열 및 소방 법규와 용도를 도서관으로 변경하는 면적에 대한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여 점차 창고의 기존 골조 모듈의 일부를 도서관으로 전용하는 유형으로 계획안은 변화하게 된다.
업사이클링 – 농촌지역 경관의 재구축: 농가 유통창고는 대개 6–9미터의 골조모듈과 20여미터의 스팬으로 철골조나 경량철골, 조립식 패널 마감으로 이루어져있다. 대개 농가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면서 농촌지역의 경관을 지배한다. 이에 골조의 모듈을 일부 덜어내고 다시 채워넣으면서 창고 원래의 크기를 분절하고 앞뒤로 열어주면서 시각적으로 개방적이도록 하였다. 본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태도는 창고의 구조 모듈을 경관을 다루는 기본 단위로 전용하면서 농촌 지역의 천편일률적인 경관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며 개입하는 것이다.

1층 도서관의 내부, 계단을 통해 2층 게스트하우스로 연결되고, 서가는 슬라이딩으로 처리해 공간의 확장을 고려하였다.
2층 게스트하우스의 내부, 1층의 도서관과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우포를 방문하는 아이들이 최대 20여 명 단체로 숙박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치훈

SoA의 설립자이자 파트너이다. SoA는 2010년 서울에서 설립되어 다양한 스케일의 구축 환경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는 젊은 건축가 그룹이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새건축사협의회가 주최하는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주관하는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선정되었으며, 당선작 지붕감각을 통해 2016년 『아키텍처럴 리뷰』가 주관하는 Emerging Architecture Award 파이널 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에 제주도의 생각이섬 프로젝트로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했다.

Living in Library – 우포 자연도서관

분량2,894자 / 6분 / 도판 13장

발행일2018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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