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감각, 주거의 가벼움에 대하여 – 풍년빌라
임태병
분량2,715자 / 5분 / 도판 9장
발행일2018년 7월 27일
유형작업설명
예측은 늘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대비한 해결책 제시는 어쩌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 제안은 특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나 건축적 성과 혹은 해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단지 그간의 작업을 통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도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실험의 일부다. 아직은 과정도 탄탄하지 못하고 결과가 보장된 실험도 아닐지 모를, 문제 제기 정도의 단계로 보는 편이 적당하다. 하지만 문제 제기를 통한 사고의 공유가 모든 프로젝트의 출발점임을 상기하면, 그것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풍년빌라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 제기와 함께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지인 공동체
그동안 주거 공동체에 관한 시도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한계는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다세대 혹은 다가구가, 또는 원룸 등이 그래 왔듯이. 이 한계는 건축가가 설계한 근사한 건축물일지라도 별로 다르지 않다. 주거의 규모나 법적 분류와는 무관하게 한 건물에 함께 사는 일은 결국 이웃이 되는 일이다. 일면식도 없던 생면부지의 남이 (집이 완공된 후) 같은 건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이웃이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풍년빌라는 비슷한 취향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일상을 함께하며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사회적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공급자가 만든 물리적인 집이 아닌 함께할 집이 필요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진행 방식을 전환한다.
장기 점유권
한국 사회에서 임대업이란 ‘대지+건물’의 조합을 기반으로 물리적 공간을 빌려주는 일이다. 임대 조건에서는 누가 그 건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건물의 경우에는 감가상각으로 인한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대지+건물’의 조합을 기본으로 하는 임대 조건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다. 상승하는 지가에 상충하는 건물의 감가상각은 임대업의 가장 큰 딜레마인 것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임대 조건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 임대인은 대지만 빌려주고 건물은 실제로 사용할 임차인이 사용 방향을 결정한다.
- 임차인은 건물의 사용(신축 혹은 리뉴얼) 비용을 투입하는 대신 장기 점유권을 갖는다.
- 임대인은 건물에 투입할 추가 비용을 줄이는 대신 임차인의 장기 점유권을 보장한다.
- 장기 점유 계약 완료 후, 지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은 임대인의 수익으로 전환한다.
이런 임대와 관련된 몇 가지 새로운 방법과 조건을 찾는 과정에서 풍년빌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출구 전략
장기 점유권에도 불구하고 계약 완료 후 임차인에게 다음 단계는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위 ‘출구 전략’은 이 제안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전략의 핵심은 임차인(지인 공동체) 스스로 운영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일정한 자본을 확보하는 행위는 계약 완료 이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풍년빌라의 경우 건물 1층에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풍년빌라 지인 공동체의 근간이 카페 비하인드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라는 점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건물의 적절한 규모 산정과 공간의 효율적 분배를 통한 잉여 부분의 임대 사업도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인 공동체가 함께 사는 집에 자리한 근린생활시설은 입주민은 물론 동네 커뮤니티 시설로서 일정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상업시설 이상의 가능성을 지닌다.
세 가지 키워드는 결국 ‘주거의 가벼움에 대한’ 질문과 고민으로 귀결된다.
- 지인 공동체 :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닌 사회적 식구는 가능한가?
- 장기 점유권 : 집은 반드시 소유해야만 하는가?
- 출구 전략 :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정주하는 삶이 여전히 유효한가?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집을 가족 이데올로기 중심의 고정불변하는,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여기는 기존 사고를 바꾸는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실험의 결과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할 뿐이다.

중간 주거
풍년빌라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이러한 문제 제기는 다음 단계에서 제안 가능한 ‘중간 주거’라는 개념까지 확장될 수 있다. 중간 주거는 주거가 가벼워지는 흐름과 출구 전략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유효하다고 판단되며, 건축의 새로운 유형적 접근이기보다는 집의 사용법에 대한 다른 해석과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집과 호텔의 경계에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한 중간 주거는 운영과 조합 방식에 따라 단순한 집의 일부에서 동네의 커뮤니티 플랫폼으로까지 확장될 여지를 함께 지닌다.






임태병
문도호제(文圖戶製) 대표로 졸업 후 A.I.건축사사무소, 옴니디자인, 미노루야마사키아키텍츠코리아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건축사사무소SAAI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홍대 앞 카페 문화를 선도한 건축가로 알려졌다. 건국대학교 디자인예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2009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과 월드아키텍처 커뮤니티 어워드를 수상했다. 주요 작업으로 DOES 인터랙티브빌딩(2017), 북바이북 판교(2017), 코워킹스페이스 SEAM 오피스(2016), 공주 어머니의집(2015), 어쩌다가게 동교(2014), 이천 SKMS연구소(2009) 등이 있다.
점유감각, 주거의 가벼움에 대하여 – 풍년빌라
분량2,715자 / 5분 / 도판 9장
발행일2018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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