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운동회, 몸동회
안아라, 여다함, 여혜진
분량35,992자 / 72분 / 도판 24장
발행일2017년 12월 18일
유형작업설명
안아라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홈그라운드’ 작업장을 운영한다. 출장요리, 메뉴 개발, 요리워크숍, 전시 참여 등 요리를 매개로 다양한 방면의 일에 관여하고 있다. homeground.kr 에서 하는 일들의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계정은 꽤 사랑받고 있다.
여다함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과 스치기 쉬운 사소한 감정들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질문들을 작업을 통해 던진다. 2013년 서울시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5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5년에는 고도하지 않는 기술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고 2016년 프랑스 메이막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여혜진 ‘바이스버사(vice versa)’의 멤버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진행하며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들토끼들’의 그래픽디자이너이다.
들어가는 글: 몸동회에 대해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안에서는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고 해와 땅과 물에 무사하길 기도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공동의 의례가 존재해왔다. 이 의례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모여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는, 함께 모여 노는 자리를 기본으로 한다. 이 일 년의 하루 혹은 며칠의 시간은 공동체에 경제적, 정치적, 미학적, 운동적, 수행적인 기능과 역할을 한다. ‘공동체 상실’, ‘각개전투’, ‘혼밥혼술’의 시 대에 어떻게 다시 원시적이고 신체적으로 ‘함께’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공통의 기억을 만들 것인가? 몸동회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는 제안이자 방법이다.
‘몸동회’는 사람들이 모여 반나절 동안 한시적인 사회를 만들어 ‘공동의 시간과 장소를 경험’하는 일이다. 또한 몸동회를 통해 신체가 사람에 따라 다양한 조건 속에 존재한다는 것(장애-비장애, 나이, 성별, 젠더 등)을 알아가고, 노동에서 분리한 신체를 놀이의 장소로 초대해 개인적 신체와 사회적 신체들이 서로 부딪히는 체험을 만들고자 한다.
몸동회는 작동원리인 ‘정신’, 신체적 만남과 놀이의 장소로서의 ‘몸’, 장치와 도구로서의 ‘미(美)’, 모이는 방식으로서의 ‘식(食)’, 개념적이며 실제적인 의미로서의 ‘의례’로 구성된다. 이중 ‘정신’은 몸동회의 기본 가치로, ‘고도한 것은 보다 고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즐거운 방향으로’, ‘세련은 적!’, ‘소외 없는 평평함으로’를 내세우고 있다. (이 중 몇 개의 문장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치료탑〉에서 빌려왔으며 소설에 나온 일부 문장은 몸동회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상의 신체는 노동을 하거나, 먹고 자거나 간혹 운동을 할 때에도 건강해지기 위해서, 살을 빼기 위해서 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몸들로 단련이 되어 있다. 노동하는 몸, 성취해내는 몸이 아닌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몸으로 ‘놀이’의 감각을 깨우고 놀이의 장소와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대신 보다 원시적인 재료와 도구로 놀아보는 것, 이것들이 어떻게 ‘함께’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리서치의 주요 내용이다. 몸동회 팀의 리서치는 ‘신체성’, ‘공간’, ‘놀이’, ‘도구’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고 있으며 리서치는 크게 세 가지, ➀ 관련 사회적 담론들을 펼쳐 놓고, ➁ 예술 프로젝트로 어떻게 확장되며, ➂몸동회를 통해 어떻게 구체화하고 구현할지 나누어 진행했다.
‘사회적 담론에 대한 리서치’는 단순히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상호의존’, ‘잠재성’에 대한 실험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최태윤 작가의 〈불확실한 학교〉에 대한 공개 강연을 가졌고, 신체성이 어떻게 젠더적 관점에서 해석되는가에 대해서는 스케이트 보더, 페미니스트 교사, 여성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했다. 강연과 토크 프로그램은 다양한 신체적 조건들이 어떻게 ‘평평하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며 몸동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물리적 제반 조건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또한 함께 하 는 놀이로서 정서적이며 사회적인 영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자리였다. ‘놀이’와 ‘도구’를 결합시킨 예술 프로젝트로는 아티스트와 안무가를 만났다. 인도, 암스테르담 등에서 특정 지역의 커뮤니티와 만나 도구와 놀이 등을 예술 프로젝트로 풀어낸 아티스트 호르헤 마이네스 루비오와의 인터뷰, 그리고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공영선의 몸동회 준비 체조가 그것이다. 공영선은 ‘준비체조 역시 개개인의 신체적 조건에 따라 비슷하지만 다른 동작으로 구현된다.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동작을 상상하며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몸동회 참고자료’ 편에서는 함께 나눠 먹는 의례이자 퍼포먼스로서 식, 의례, 미술의 영역에서 참고할 만한 리서치의 내용을 소개했다. 다음으로 ‘몸동회 상상도’는 작가 전지가 상상하는 몸동회에 대한 그림으로 ‘평평함’, ‘함께’의 방법들, ‘다양한 신체’를 작가 특유의 색으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는 ‘몸동회 클럽’을 통해 몸동회가 지향하는 ‘원시성’, ‘관계성’ 등을 고려하여 소규모의 형태로 진행한 클럽에 대한 리뷰를 통해 몸동회의 방향성 및 확산과 적용 가능한 지점을 말하고 있다.
‘신체성-공간-놀이’에 대한 사회적 담론
1. 불확실한 학교
최태윤 (2017년 8월 27일)
최태윤은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 작가이자 교육자로 퍼포먼스, 전자장치, 드로잉과 스토리텔링을 수반하는 작업을 하며, 공공 공간에 개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불확실한 학교〉는 확실한 세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잠재력을 탐구하는 학교이다. 참가자의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여 수화 통역, 문자 통역과 속기 등을 제공 하고, 지체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불확실한 학교〉는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상호 의존적인 배움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형식적인 평등을 넘어 공정성에 바탕을 둔 진실한 가치 체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몸동회는 〈불확실한 학교〉가 지향하고 시도했던 ‘형식적인 평등을 넘은 가치 체계’를 이번 렉처를 통해 배우고자 했으며 〈불확실한 학교〉의 진행 원리에 따라 문자 통역을 병행했다. ‘함께 하는 것’은 물리적 제반 조건과도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 아래는 〈불확실한 학교〉에 대한 최태윤 작가의 강연 내용이다. 본 내용은 에이유디 사회적 협동조합의 문자 통역사의 통역을 바탕으로 편집하였다. 가급적 문자 통역이 가진 현장감을 살렸음을 밝힌다.
1) 불확실한 학교 소개
최태윤 굉장히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한 10cm 씩 앞으로 와주세요. 〈불확실한 학교〉에서 했던 얘기를 해볼게요.
장애인을 중심으로 비공개 강연을 했고 컴퓨터 프로그램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12주에 가깝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토크가 있었고, 예술가들이 하는 강연이 있었고 같이 전시를 만들었어요. 저희가 처음 한 것은 가족들과 만나는 거였어요. 우리가 어떤 지점을 고려해야 되는지 어떤 지점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 배워야 했죠. 장애 유형이라는 것은 굉장히 다양해서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성향은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저희가 고려했던 것은 문자통역이었어요. 수화와 문자통역을 동시에 진행했고요. 대부분의 경우 1층이나 지하실에서 진행을 했어요.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한 〈불확실한 학교〉에서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근처 육교를 건너보며 산책을 하면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확인했어요. 어떤 경우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서 만들어 놨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왜냐하면 너무 가파르기도 하고 휠체어 2대가 마주 오면 충돌하니까요. 또 휠체어 사용자와 그냥 걷는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걸어간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잘 지냈어? 어떤 일이 있었어?’ 이러다가 이 사람을 들고 올라가야하는 지점에서 대화가 끊겨요. 대화가 끊긴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움직이거나 소통하는 방식에 변화를 줘야 된다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접근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죠.
공개 프로그램은 디자이너이자 연구자인 사라 헨드렌과 램프(ramp, 경사도)를 활용해 조형물을 만들고 퍼포먼스에 대해 얘기했어요. 예를 들어, 스케이트보더와 도시에서 춤을 춘다든지, 스케이트보더, 휠체어 사용자, 도시 디자이너들의 공통 관심은 무엇인지, 서로의 충돌 지점은 무엇인지 모색하기도 했죠.
프로젝트는 굉장히 많은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어요. 노들야학이라는 단체인데 대부분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곳이에요. 노들야학의 활동가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저희가 같이 걸을 수 있었어요. 저희가 새로운 걸 가르쳐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니고 참가자가 선생님인 거지요. 〈불확실한 학교〉에서 저는 작업자가 아니라 지지자나 통역자로 활동을 한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끝나고 맥주 마시면서 얘기하는 거. 그게 중요한 이유가 장애라는 게 한 가지 타입이 아니듯 장애를 가진분들 모두가 다른 필요와 욕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같이 대화 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저희 기획자들이 굉장히 행복했던 것은 프로그램 끝나고 같이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전문 수화 통역사와 속기사가 퇴근하고도 저희가 노트북 꺼내서 대화를 하던 거예요.
2) 장애를 정의 해보기
최태윤 종이를 하나씩 받으시고 펜도 나누어 드릴게요. 지금 드리는 이 카드에 자신의 언어로 장애를 정의해 보셨으면 해요. 장애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자신의 언어로요. (잠시 후) 혹시 자신이 쓴 것 공유하시고 싶은 분 계세요? 용감하게.
관객 A 장애란 본인의 인지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는 상황 또는 상태.
관객 B 제가 얘기 할게요. 진짜 어렵네요…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
관객C 남들과 다른 테두리를 가진 것 뿐이다, 생활하는 데 조금 불편하지만 사람이 다름이 없다? 장애란 테두리다.
관객D 아무것도 아니고, 별거 아니면서 별난 거이고, 아무것인 무언가.
최태윤 (관객 D에게) 정확한 것 같아요. 저는 장애란 불확실성과 잠재성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몸이 다 어떠한 어빌리티(능력)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말을 할 수 있고 서 있을 수 있는 어빌리티가 있죠. 예를 들어 저는 아주 무거운 것을 들을 수 있는 힘은 없어요. 물리적인 차이는 작은 부분이라 생각해요. 조금 덜 들리는 거나 덜 보인다는 거는 그냥 기능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명령에 대한 거예요. 명령은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의지로,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잠재력은 그러한 능력과 역량과 기능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조금씩 차이가 있죠. 예를들어 어빌리티 같은 경우는 내가 여기서 여기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역량인 경우에는 내 선택으로 움직이거나 말거나 하는 것이고, 잠재력은 내가 어떻게 아름답게 움직이거나 나의 움직임 자체가 아름답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3) 포괄성과 다양성
최태윤 저는 제 작업이 ‘초대’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뭘 먹거나 배우거나 하는데, 초대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초대는 잘 해야 하고 또 지속적으로도 잘 해야 하고요. 신자유주의 안에서는 다양성이 아주 이상하고 웃긴 것처럼 사용되는데 그건 너무 싫어요. 이를테면 ‘우리는 여자 개발자도 있어. 우리 CEO는 여자야’ 하는 식의. 저는 뉴욕에서 살고 있는데 피부색을 가지고 ‘넌 다르잖아, 우리랑 다르니까 멋있어’ 해요. 저는 그게 악한 급진성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하다고 해서 포괄적인 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장애가 기능적인 장애와 차이가 있어요. 문화적인 장애 혹은 정체성으로서의 장애와, 작동을 조금 덜 한다 안 된다 하는 것은 기능적 장애는 굉장히 다른 거예요. 장애는 아름다운 몸 중 다른 한 가지 종류인 거고 장애를 기쁨과 즐거움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존중해야 해요. 또 농인의 경우에는 수화를 하고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서 인정해 달라고 많이 요구를 해요. 농인의 언어인 거고 문화이기 때문에 존중 받아야 하고 자랑스럽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는 반면, ‘나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기 싫다’는 분도 있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두 가지를 다 존중해야 된다는 거예요. 정말로 급진적인 포괄성은 이 차이들을 해체하고 존중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사회에는 엄청나게 큰 벽들이 있고 불공평한 불공정한 게 많이 있어요. 저도 언제나 편견이 있고요. 그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중요하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진행하면서 실수하는 것이 많은데 그때마다 같이 하는 분들이 짚어주세요. ‘수화통역이 잘 안보였어요.’ 등등. 러닝과 언러닝(unlearning, 탈학습)은 피드백이라고 생각해요. 학습과 탈학습을 실로 직조하듯 하는 게 진정한 배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다양성과 포괄성에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는 〈불확실한 학교〉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을 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당연해졌을 때. 우리가 하는 게 너무 뻔한 게 됐을 때, 아직까지는 먼 것 같지만요.
문자통역, 수화통역을 하는 이유는 저 또는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의심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에서 초대받았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 진정하게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나 기획자들이 문자통역, 수화통역 등을 요구할 때마다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호의존은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가 공존할 수 있고 배울 수 있기 위해선 신뢰를 만드는 게 가장 핵심인 것 같아요. 신뢰를 얻어내는 거죠. 지속적으로 하는 거고 잘못했을 때 사과해야 하고 포괄성을 확장할 때 우리의 몸이 즐거움을 위해서 사용 돼요. 몸은 재미있게 쓰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언어를 초월할 때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4) 상호의존 게임
최태윤 ‘상호의존’이라는 활동을 해볼게요.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각자 손을 위아래로 맞대고, 손이 위에 있는 분이 눈을 감고, 아래 있는 분은 눈을 뜨고 길을 인도하는 거예요. 언어를 쓰지 말아야 해요. 말 없이 정말 천천히 움직여야 해요. 발을 굉장히 조심하셔야 돼요. 천천히 가까이 모여 볼게요. 이제 천천히 다시 멀어져 볼게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다시 가까워져 볼게요. 조금 더 가까이, 서로 조금 부딪쳐도 괜찮아요. 한 번 돌게요, 왼쪽 오른쪽 상관없이 돌아보고, 돌고. (잠시 후) 살짝 눈을 뜰 게요. 앞에 계신 분과 파트너가 되는 거예요. 천천히 서로 인도해 줄게요. 눈 감으시고, 눈 뜨고, 바꾸셔서. 자, 그럼 눈을 떠볼까요? 어떠셨어요?

관객 A 이상해요. 공간이 좁다고 인식했는데 생각보다 넓은 거?
관객 B 상대방이 눈을 감고 있으니까 핸디캡이 생긴 거잖아요. 그런데 과잉보호를 하려는 제 자신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그게 좀 촌스러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관객 C 저를 이끌어주시는 분이 속도감이 되게 달랐거든요. 코너링처럼 부드럽게 해줬는데 점점 빨라지면서 차이가 확연해 재미있었어요.
관객 D 방향이 굉장히 잘 느껴져 신기했어요.
관객 E (좁은 장소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대화하지 않으면서 부딪치지 않고 균등하게 움직이는 게 신기했어요.
관객 F 제 상대는 처음에 여자분이었다가 어린이 친구로 바뀌었는데 그에 맞춰서 높이를 약간 낮출까 하는데 이 친구가 손을 꼭 잡았어요. 그 손바닥을 펼치게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전달할까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관객 G 저는 눈 감고 있는 역할을 길게 했는데 그게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만약 실제라면…? 장애가 제게 생길 수도 있을 텐데 그게 매우 공포스러웠어요.
최태윤 장애체험이란 걸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 프로젝트는 언젠가 눈을 뜰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을 준비하는 거예요. 그런데 장애체험의 문제점은 그것이 끝났을 때 ‘내가 장애가 없는 게 다행이구나’ 하고 느끼는 거예요. 모두의 몸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서로 의지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하나의 코드가 생기는 거거든요.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점에 집중했어요.
우리모두수화를해요.사람이가진 능력이 굉장히 많은데 활용을 안 하고 언어와 시각에 치중해서 살고 있어요. 그런 거에 대안을 제시하는 게 작가, 디자이너,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예술이 액티비즘에 대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액티비즘으로서의 예술인 거지 예술이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통해서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활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많은 게 재미있고 편해져요.
5) 마치며
기획단 문자통역도 처음 경험하는데 보다 보면 오타도 보이면서 처음에는 신경이 곤두서더라구요. ‘이게 아닌데 완전히 다른 단어인데…’ 하면서
최태윤 그런데 보통 서로의 말에 대한 이해도가 60% 정도예요. 문자통역도 마찬가지지요. 모든 대화에는 오해와 오류가 생겨요.
기획단 비장애인뿐 아니라 다양한 어떤 조건들, 그게 신체조건일 수도 있고 문화적 조건일 수도 있고 자기가 처한 조건과 상황은 다 다르잖아요. 그 조건들이 그냥 모일 수 있어야 된다는 게 몸동회의 중요한 전제였어요.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통해서 배우고 싶었던 거고. 오늘 강연을 준비할 때도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혹시 휠체어를 타신 분이 오셨다면 그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들을 처음부터 다 알았더라면 시작을 아예 못했을 것 같기도 해요. 오늘 자리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와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2. 스케이트보더+선생님+예술가
정아람+최현희+전유진 (2017년 10월 28일)
〈스케이트보더+선생님+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토크 프로그램은 ‘젠더-공간-신체’를 키워드로 한다. 초보 스케이트보더인 정아람은 ‘퀴어, 페미니스트가 스케이트보드를 만났을 때’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스트 교사 최현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놀이하는 몸, 놀이의 공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아티스트 전유진은 테크놀로지와 예술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여러 현상 속에서 여성 예술가로서의 고민을 나눴다.
토크 1. 정아람(북매니저, 초보 스케이트보더)
스케이트보더(이하 ‘보더’)로 소개 됐는데 스케이트보드를 탄지는 8개월 밖에 안 된 초보이고 계속 연습 중이다. 이 자리에서는 몸동회라는 공간을 상상하며 이전에 〈기고자〉에서 발표했던 자료를 다시 정리해 소개한다.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주로 을지로 근처 훈련원 공원에서 타고 있다. 그곳은 90년대, 2000년대 초반부터 보더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공원이다. 최근 그곳에서 엉금엉금 타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남성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의 자세를 보며 ‘넘어져서 연골을 다칠 바에는 차라리 아이를 낳아서 길러라’는 얘기를 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고 되받아 쳤지만 대화 상대가 되는 분은 아니었다. 짧은 순간이었고 어이가 없는 극단적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패기가 사라지더라. 말도 안 되는 걸 알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듣는 게 마음을 한풀 꺾이게 하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는 걸 느끼는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무수한 연습의 과정이 없는 한 매체에서 다루는 보더들처럼 멋진 동작 혹은 기술을 성취할 수는 없다. 스케이트보드는 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왜 실패하게 됐는지, 어떤 식으로 해야 균형을 잡을수 있는지, 그럴 때 내 신체 어디에 중심축이 있는지를 터득하게 된다. 자기 훈련을 계속 강화해가며 성공적인 동작을 성취하는 것이 스케이트보드의 재미있는 점이다. 그 아저씨는 그러한 성취의 기쁨이나 재미를 모르고 스테레오타입화 된 여성의 몸으로 읽어 버렸다.
스케이트보드를 통한 관계맺기를 할 수 있는 사례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비영리단체 스케이티스탄(Skatistan,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스케이트 보더이자 연구자인 올리버가 아프간 현장을 경험하며 설립한 비영리 단체)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은 버려진 분수대에서 열리는 스케이트보드 강습에 참여한 모습이다.

당시는 내전 후 10년이 지난 혼란의 시기였고 무엇보다 25세 이하의 청소년, 청년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올리버는 스케이트보드 3개를 가지고 카불로 가서 황폐화된 도시 청년들에게 어떻게 생명력을 줄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프간 10대들에게 자신의 스케이트보드를 빌려주었는데 그들은 스케이트보드가 주는 자유로움에 홀딱 반해 아프간의 첫 번째 보더가 됐다고 한다. 2009년부터는 스케이티스탄에 소녀들이 처음 찾아왔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아들이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는 스포츠라기 보다는 하나의 장난감처럼 여겨졌고 그것을 통해 재미있는 세계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한 소녀는 ‘소녀들이 스케이트보드 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는 것이 ‘권리’라는 말을 붙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당연하게 탈 수 있는 것을 위협받거나 빼앗길 때 권리라는 용어를 떠올리는데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케이트 키친(the skate kitchen)의 언니들을 보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유색인종과 퀴어 등 다양한 정체성의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 보더들의 유튜브 영상의 댓글 중 ‘샌드위치나 만들지 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가?’라는 것에 착안하여 ‘우리 여자들은 주방에 있다. 어떤 주방이냐 하면 스케이트보드 주방’ 이라는 재치 있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키친’이라는 말을 재전유 했다. 왜 여성의 공간은 주체인 여성, 당사자가 아닌 외부로부터 할당 받는 것처럼 되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멤버 중 한 명인 미셸에 의하면 어린 소녀가 스케이트보드 광고를 본다면 이건 ‘남자아이들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것이라고 했다. 여성 보더들을 보여주는 것은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특히 소녀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인종과 젠더 이슈를 다루는 브루자스(Bruzas)라는 팀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은 소수자들이 처한 환경을 이야기하고 위기 상황을 같이 나누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중 아리아나는 인근 스케이트보드 파크에서 새롭게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는 여성들을 만나면 존경스럽다고 한다. 그 지역의 스케이트보드 파크는 (문화, 정치적으로) 초 남성적 환경이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 타는 것인데 여기 모인 남성들은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보더가 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타기 때문이다. 경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은 스케이트보드를 이제 막 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학습의 단계를 존중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한다. 왜 ‘용기’가 필요한가?
아리아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굉장히 심한 뉴욕에서 유색인종이자 젊은 여성으로 살면서 서로의 안전을 돌보는 연대 활동에서 ‘용기’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최근에 한 유색인종 여성들이 길에서 사라지고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주류 매체에서는 그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았고 결국엔 아리아나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사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자는 글을 게시하니 그제서야 메인 매체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를 했다고 한다.
스케이트보드의 이미지는 백인 남성의 우월한 신체로, 월등한 실력으로만 보여지지만 현실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자꾸 바라보고 드러냈을 때 단일화된 남성적 문화를 해체할 수 있다. 그 해체의 과정에서 여성 혹은 퀴어는 그들에게 강제된 공간에만 갇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서 다른 사회,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케냐 세서(Kanya Sesser)라는 하반신이 없는 스케이트보더는 9살 때부터 보드를 탔다고 한다. 만약에 그녀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을 신체 장애가 있는 분들이 본다면 자신의 신체가 가진 가능성을 확장해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역시 남성적인 신체의 단일화된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해체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제프리 청이라는 아시안계 미국인은 2017년 2월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유니티마트(Unity Mart)’라는 공간을 열었다. 리소프린터가 있고 옷이나 음반, 진(zine)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유니티마트엔 제프리 청이 그린 다양한 몸이 새겨진 보드들이 있다. 현재는 게이 남성 위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점점 더 다양한 성정체성, 다양한 피부톤의 그림을 그려서 기존의 보더 이미지를 깨고 싶다고 한다. 제프리 청은 게이 남성인데 보드 판매 수익금으로 퀴어 보더를 지원하기도 한다. 유색인종, 퀴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 공간을 만드는 일은 서로에게 굉장한 용기를 준다고 한다. 퀴어 보더들이 모이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고 함께 스케이트보드와 관련한 진을 만들고 나누기도 한다. 미래 세대들이 이런 공간에 와서 어울리고 교류하는 문화를 지속해서 만드는 것이 유니티마트의 목표다.
지금까지 스케이트보드의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집약적으로 말씀드렸다. 이들을 통해서 스케이트보드를 인종, 성 등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과 관련하여 의미 있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 한다.
토크 2. 최현희(페미니스트 교사)
최근 닷페이스와 3분이 채 안되는 영상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걸로 세 달째 공격을 받고 있다. 어느 정도는 백러쉬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나뿐 아니라 학교도 굉장히 힘들어 했다. 그래도 한 단계 나아가려면 겪어야 할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 영상 이후 ‘일베’나 ‘오유사이트’에서는 나를 ‘운동장 여교사’라고 부른다. 그 영상에서 (그들의) 기분을 가장 상하게 했던 점은 운동장의 남학생 전유를 지적한 부분이다. 학교가 젠더화 된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무식한 말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여학생이 운동하기 싫어서, 살 탈까봐, 땀 나니까, 라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의 이유로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 것을 교사가 문제 삼은 것이 오히려 ‘남혐’이라는 논리다. 운동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남학생들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정된 답안지 안에서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이런 논리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어른이니까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초기 경험이다.
여학생에게는 롤모델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미디어 환경이나 사회적인 경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아 애니메이션, 액션 히어로물, 문학작품에서도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은 우당탕탕 모험을 하기 보다는 모험으로 성장해나가는 남성의 조력자이거나 부차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다. 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는데 5세부터 7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여자 사진 2장, 남자 사진 2장을 보여주며, 이 중에서 일도 잘하고 똑똑하고 멋진 사람은 누구일까 물어봤다. 5세 아동들은 자신과 같은 성별의 사진을 고른다고 한다. 그러나 6~7세만 돼도 남아는 남자의 사진, 여아도 남자의 사진을 고른다. 이는 6세만 되어도 자신의 경험 안에서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이런 롤모델 부족은 위계적 성별 이분법에 갇히게 만든다. 단순한 성편견이 아니라 남녀가 위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익히고 있다.
나는 5살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때마다 참 난감하다. 〈폴리〉를 보면 대부분이 남자 캐릭터 들이다. 대부분 3:1의 비율로 남녀가 구성되어있다. 〈뽀로로〉, 〈코코몽〉도 마찬가지다. 그마저도 청순가련형이거나 팜므파탈형의 캐릭터들이다. 남자 캐릭터는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도전을 하는데 끝에는 좋게 정리가 된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는 남자아이들은 ‘뭔가 도전해도 정리가 되는구나, 실패해도 괜찮구나’ 하고 인지한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그런 소동이나 모험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않는다. 모험하는 남자 캐릭터 주변에서 ‘으이그, 쯔쯔쯧’ 하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도와준다.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엄청난 차이로 경험한다. 같은 컨텐츠라도 남아와 여아가 구축하는 세계는 달라진다. 이런 내용들을 3학년 담임일 때 아이들과 공유를 한 적이 있다. 얘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특히 여학생들이 많이 각성을 한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얌전해야 한다고 믿은 것 같다’고 말한다. 남학생들도 충격을 받는데 자기의 성격이 천부적인 끼와 모험심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가 사실은 저런 캐릭터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구나 인지한다.
닷페이스와의 인터뷰는 이런 ‘고정관념 위협’이 교육자로서 교육의 공간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식해보자는 얘기였다. 그 중의 한 예가 운동장이었다. 운동장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까불고 맥락에 안 맞는 말을 하는 것은 대부분 남자아이들이다. 3학년 넘어가면서 굉장히 심해진다. 1학년 때만 해도 비슷하게 까불고 역동적이다가 2-3학년 되면서 여학생들은 점점 착하고 얌전하게 바뀌어가고 남자아이들은 계속 실패할 기회를 보장받는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이중적인 허용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에게 더 좁은 허용치를 갖고 있다. 그런 제약이 쌓여 6학년 교실에서 큰 몸짓과 큰 목소리는 남학생들의 것이 된다. 그것을 교사가 인지하게 되면 교실 안의 세세한 상호작용을 바꿔 나갈 거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학교는 성별 이분법을 공고히 시키는 공간이다. 고정갑희 선생님은 “학교는 거대한 성 장치로 기능한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복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분시키고, 출석부를 나누고, 신발장, 사물함도 나눈다. 줄을 설 때도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 서게 한다. 남자이거나 여자이어야 존재가 가능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성소수자 혐오가 당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성별 이분법을 깨야 한다. 불필요한 구분을 계속해서 만드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 흑인과 백인을 나눠서 줄 서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 구분을 깨고 경계를 흐뜨려 놓으면 차별하기 어려워진다. 대상화 하고 스테레오타입화 하기 어려워진다. 행정적인 절차가 남녀를 구분하게 되어 있다. 행정 업무 조금 번거로워지는게 뭐가 어떤가? 그 성가심이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보다 중요한가? 그 우선순위를 따지지 못하는 것이다. 관성에 젖어 있어 중요한 것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세 번째로 학교는 굉장히 규범적인 공간이다. 예를 들면, 복도에서는 뛰지 말아야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조용하게 말해야 한다. 그것은 규범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 공간은 그러한 규범을 익히기에 적당한 공간인가? 누가 그 복도를 안 달리고 싶어할까? 너무 잔인한 어른들이다.(웃음) 도심의 학교는 굉장히 크다. 그렇게 학교가 커버리면 군대화 된다. 학교는 굉장히 일괄적인 공간이다. 교실 공간이 대부분 같은 사이즈다. 효율성을 최고의 원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 공간 안에서 어떠한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기 어렵다. 또 커다란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떠든다기 보다 그 공간에서는 어떤 작은 소리도 크게 날 수밖에 없다. 어떤 학교는 데시벨 측정기를 가져와서 공공질서를 가르친다. 도덕성을 강조하고 민주시민으로 커 나가길 바란다면 민주시민으로서의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규범과 상식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며 가르쳐서 교육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조용히 말하고 싶고 걸어가고 싶은 공간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험하니까 뛰지 말아야한다 게 보통의 논리인데 위험한 것도 건축학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없는가? 너무나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공간 안에서 어떻게 민주 시민성과 도덕성을 기를 수 있는가? 어른의 책임을 아이들 개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한다. 학교는 이렇게 쓸데없이 혼나게 되는 공간이다.
교사-학교-제도-학생 등 다층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학교라는 곳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게 굉장히 문제적인 공간이다. 젠더화 된 공간, 성별 이분법을 고착화시키는 성 장치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시민의 능력을 길러내기에 부족한 획일화된 공간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웃음)
토크 3. 전유진(아티스트)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영화음악을 했으며 30대부터는 미디어아트를 시작했다. 이 세 가지의 백그라운드 모두 굉장히 남성적인 공간이다. 컴퓨터공학과의 학생도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한국의 영화음악 씬도 열 명 정도의 영화음악감독으로 돌아가고 있고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다. 미디어아트 역시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이고 요즘은 점점 더 첨단기술을 이용한다. 미디어아트 안에서 여성은 굉장히 소수이다. 어릴 때부터 페미니즘적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런 장르 안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페미니즘적 의식을 만날 수밖에 없게 됐다. 한편으로는 평생을 남성과 경쟁을 해야만 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고 남성들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내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성들이 흥미롭게 실험하고 시도하는 시간을 나는 그 갈등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적으로 쓰곤 했다. 미디어아트에서 기술은 굉장히 중요하며 기술이 작가의 의도나 미적인 가치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곤 한다. 기술이 도구 이상이다. 처음 시작할 때 센서나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는 것에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여자인데 코딩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납땜도 해’ 하면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웃음) 처음에 미디어아트를 시작하면서는 그 ‘기술’이라는 게 나에게 그 분야에 진입하는 입장권처럼 작용했다. 내 작업이 좋아서라기 보다 그 자리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불려지기도 했다. 작년에 외국에 전시하러 갔을 때 그쪽의 큐레이터나 작가들이 깜짝 놀라면서 전혀 여자일지 몰랐다는 얘기를 했다. 미디어아티스트라는 얘기를 듣고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몇 년을 했는데도 이 소리를 듣는구나 느꼈다. 여전히 난 이 공간에서 ’이방인(stranger)’이고 신기한 존재이구나 하는,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으며 활동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드물다는 이유만으로 환대를 받는다.(웃음)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대학에서 강연을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남학생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내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오픈소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처음 센서를 공부할 때는 100만 원 훌쩍 넘는 센서들이 있어야 했고 다 무선이었다. 아두이노라는 툴을 만나는 시기와 맞물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술의 도움과 공유문화와 적절한 디바이스의 배포 등을 통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이 자체가 남성들의 문화이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때 ‘여자’와 ‘기술’이 만났다는 온갖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어딜 가나 내 작업을 보기 보다는 ‘이 여자는 코딩도 할 줄 알고 납땜도 한다’ 했다. 공대를 다닐 때도 주목은 받았는데 제대로 된 인정은 아니었다. 일반 남성의 수준과 비교를 하고 그 수준 보다 잘하면 칭찬을 받는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술적으로 떨어질 거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동기부여나 보상이 없는 상황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형편 없는 기대감이나 순간적인 주목이 있을 뿐 나의 작업을, 작업의 특이성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성별에만 주목하고 그렇게 소비하고 끝내버리는 일이 반복적이었다. 나중에는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결국에는 이 ‘여성’이라는 티켓이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여자인데 잘 할 수 있겠어?’ 혹은 ‘여자인데도 잘하는구나’라는 것이 전혀 동기가 되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다. 어떤 동기는 될 수 있으나 ‘좋은 동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경쟁심리를 불태우며 도전의식을 발휘해서 더 남자처럼 굴고 기술로 극복하려 들게 된다. 결국엔 내가 내 작업을 즐기지 못하고 경쟁만 하려 했다. 계속 남성과 비교해서 나의 할 일을 찾고 나의 다음 목표도 지지 않겠다며 그렇게 설정됐다. 여자로서 뭔가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놀래켜야 하니까 계속 기술에 집착하고 의존하게 됐다. 작업을 설명하는데 어느 순간 계속 센서 얘기만 하고 있다든가 말이다. 내가 그 승부의 세계에서 잘 해내도 보상이 없다. 돌아오는 것은 ‘독한년’ 혹은 ‘여자가 아니다’라는 소리다. 결국 보상은 여성성을 부정 당하거나 혹은 ‘미친년/독한년’ 같은 완전히 초월적인 존재로 다뤄지는 것이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나니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여성 작가들의 작업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해달라는 요청도 여럿 받았다. 여자들은 기술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작업에서 기술을 쓰고 싶을 때 남성 테크니션이랑 일하면 너무 힘드니까 나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점점 나의 아이덴티티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기보다 기술을 다루는 것에 지나친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향이 생겼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는 여성으로서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 본능적으로 여성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초에는 여러 국가를 다니며 다양한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게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일본, 유럽 등지에서 완전히 불특정 다수의 인터뷰이들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다른 배경과 문화에서 자랐음에도 각 삶이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에 놀랐다. 물어본 질문은 별 게 없었다. 살아왔던 얘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어릴 때 떠났다거나 강간 당하고…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의 상황과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여성들이 비슷한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자기만의 철학을 만들어간다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삶이 다 똑같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위안을 얻었다.
올해 만든 것 중 하나는 〈여성기술 LAB〉이다. 기술이라는 것은 공유하는 것이고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해져서 시작하게 되었다. 근데 여성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공유할까? 남성과는 다른 어떤 방식이 있을까 하는 고민. 내가 경험 했던, 나를 가르쳐줬던 남성들은 굉장히 그것을 과시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떠올렸던 것은 뜨개방이었다. 뜨개질도 기술이지만 거기 계신 분들은 그걸 과시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 옆에 앉으면 ‘너도 배워봐’ 하며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배우게 된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나의 여러 가지 활동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강연, 대담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만나서 툴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다뤄지는 기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기술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에서 이 기술이 어떻게 읽히고 소비되고 있는지 알아야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답습했던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최근에는 〈여성기술 LAB〉에서 ‘위기 앞에서 30초를 버티는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주짓수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주짓수를 알려준 강사님은 왜 여성인 자신이 주짓수를 배웠는지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 다큐에서는 처음에 주짓수를 배울 때 남성들과 훈련을 하면서 그들과의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느꼈고 아픔을 견디면서 블랙벨트(주짓수 할 때 착장하는 벨트)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테크닉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 난 내 것을 버리고 도망치는 게 탈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자신을 회피하면 싸움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주짓수 선수의 말 중)
남성과 여성을 똑같이 맞춰서 대하는 게 아니라 여성성, 남성성, 그 밖의 각자의 특이성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평등함이라고 생각한다.
‘놀이’와 ‘도구’를 결합시킨 예술 프로젝트
1. 호르헤 마이네스 루비오 인터뷰
호르헤 마이네스 루비오(Jorge Mañes Rubio)는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제품디자인을 전공하고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 현지 장인이나 제작자 들과 협업을 하거나, 디자인과 놀이로 소규모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고, 개인적인 공간을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몸동회의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 그를 인터뷰하였다. (http://seethisway.com)
그는 몸동회 팀에게 자신의 프로젝트 중 세 가지를 소개해주었는데, 그가 학생 때 진행한 〈Park, Set & Match〉는 24시간 운영하는 마트의 주차장을 테니스코트로 탈바꿈시키고 그곳에서 테니스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스포츠가 모두를 위한 것이 될지, 또 어떻게 하면 사적인 공간이 이벤트를 하는 공공의 공간으로 바뀔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암스테르담의 빈곤층 거주지인 콜룸버스플레인(Columbusplein)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그들이 가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
다는 접근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놀기 위해 장소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하기 위해 소스 만들기 시합, 어린이 올림픽, 연 만들기 등 다양한 놀이와 경기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인도 뭄바이의 제작자 커뮤니티와 함께 만든 〈Design Museum Dharavi〉에서는 하루에 같은 물건을 수백, 수천 개씩 만드는 제작자들에게 모두 다른 디자인의 물건 만들기를 요청한 뒤 독창적인 디자인의 물건을 한 곳에 진열하였는데, 박물관이 가진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이미지를 부수고 다채로운 색상의 이동형 박물관을 만들어 다양한 계층의 제작자들이 함께 모여 노는 행사를 가졌다. 그가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흡수되는 방식과 태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는 어려움 등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제작한 매뉴얼북은 몸동회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하 J: 호르헤 마이네스 루비오, A: 안아라)
〈파크, 셋 앤 매치 Park, Set & Match〉에 대하여
J 이 작업은 2009년 런던 중심부에 있는 테스코 슈퍼마켓에서 했던 프로젝트다. 24시간 열려있고, 매일 밤 주로 비어있는 공간인 주차장이 있다. 여기 보면 어떤 물건이든 하나만 사면 3시간 무료주차가 가능하고, 곧 그 공간이 합법적으로 당신의 공간이 된다. 그래서 몇 가지 작은 물건들을 사서 그 공간을 점유했고 거기서 친구들과 테니스를 쳤다. 낮에는 주차된 경우가 많아 밤 9시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테니스 트로피도 먹을 수 있는 과일로 만들었다. 보안카메라를 이용해 경기도 녹화할 수 있었다.

A CCTV 자료를 어떻게 받았나?
J 경찰에게 요청했다. 영국에는 곳곳에 카메라가 많은데, 공공 장소의 정보공유를 요청할 자유가 있어 카메라에 무엇이 기록되었는지 궁금하면 요청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테니스를 치는 것이 바보같은 생각일지 몰라도, 영국에서 테니스는 백인상류층을 위한 스포츠인데 아이든 어른이든 부자든 거지든 근방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생수 한 개라도 사면 무료로 테니스를 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아이디어의 근간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스포츠가 모두를 위한 것이 될지, 또 어떻게 하면 사적인 공간을 공공의 공간으로 바꿀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은 도시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다르게 보는 방법 중의 하나인데, 어쩌면 콘크리트와 벤치 몇 개밖에 없는 지루한 공간이 스케이트보더에게는 완전히 매력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계단도 있고 경사도 있으니까.
〈콜룸버스플레인 Columbusplein〉에 대하여
취약점을 위한 소셜디자인(SOCIAL DESIGN FOR WICKED PROBLEMS)의 의뢰로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NEW INSTITUTE에서 나온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다. 이곳은 로테르담에 있는 건축회사이기도 하다. 이 중 ‘THE ART OF IMPACT’란 프로젝트는 디자인 뮤지엄 다라비(DESIGN MUSEUM DHRAVI)의 재단이기도 하다. 이곳은 디자인이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취약점을 위한 소셜디자인’에 결부되어 있다. 이 행사의 중요 화제는 아이들끼리 서로의 피부색이나 운동화 같은 것을 놀리는 데에서 시작한 지점이다. 콜룸버스플레인 안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은 결핍을 다뤘다고 할 수 있다.

J 콜룸버스플레인 프로그램의 시작점은 콜롬버스플레인 광장에 그려진 라인들이었다. ‘취약점을 위한 소셜디자인’이 이 광장에서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하고 이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콜룸버스플레인’을 검색하면 온갖 방화, 강도, 살인 같은 나쁜 뉴스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직접 콜룸버스플레인에 갔는데, 여러 라인이 그려진 굉장히 좋은 광장이 보였다. 처음엔 너무 여러 선들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어, 어떻게 여기서 운동을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 어떤 색이 어떤 게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A 시가 이렇게 만든 건가?
J 그렇다. 그리고 여기 이 시설물은 가로등 같은 것인데, 우리는 이걸 모기 퇴치기로 부른다. 실제로 모기 퇴치를 위한 것은 아니고, 저녁에 청소년들이 여기에 와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스쿠터를 타고 와서 소음을 많이 내는데 사람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암스테르담 시청이 그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해보거나 다른 놀 곳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니면 그들이 왜 그 시간에 집에 안 있고 광장을 찾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 문제가 있다든지), 이 시설물을 광장에 설치하고 25세 이하의 청년들만 여기 올 수 있게 했다. 밤에 이 장치물에서 어떤 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30대 이상의 어른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젊은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음을 내는 기계였다. 그렇게 해서 청소년들을 내쫓았다. 마치 그들이 모기나 되는 것처럼. (역주: 성인 연령에 따라 고주파를 듣는 청력이 다른 점을 이용한 기계장치-이그노벨상 수장작 중에 10대 퇴치기 모스키토라는 기기가 있다. 소란을 피우는 불량 청소년을 쫓아내기 위해서 십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만 흘리는 것.)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광장은 아름다운 곳이고 사람들이 안 모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색과 라인을 곰곰이 보았는데 라인의 색과 형태가 달라 어쩌면 이것이 콜룸버스플레인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어떤 것을 표상하기 어렵지만 같이 보았을 때 다양성이 보이고 특별해지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것을 콜룸버스플레인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콜롬버스플레인은 여러 배경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여러 자원이 있다. 암스테르담은 바쁘고 복잡한 큰 도시이고 큰 공원과 같은 공공 공간도 있지만 아이들이 놀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 암스테르담의 이웃에게 광장은 사치스럽고 가치 없는 무언가인데, 그런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착수하기로 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진행하진 않았지만, 이 16살 정도 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프로젝트를 좀 더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과 어울려보면 알겠지만 거친 아이들인데, 누구도 이 친구들과 어울릴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모로코와 터키에서 온 사람이기에 모두가 무서워하고 범죄자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소외되었고,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애들은 킥복싱 같은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저녁에 킥복싱 클래스 같은 것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거기까지 프로젝트를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어린이들을 위해서만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올림픽을 개최한 것이기도 하고, 노인들, 아이들과 쿠킹 클래스를 만들기도 했다.

이 주방은 공공 공간의 주방인데, 작은 주방과 거실이 있고, 대부분은 요일 별로 작은 커뮤니티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월요일은 모로코 엄마들의 모임, 화요일은 터키인들의 모임 같이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각각 날짜를 정해놓고 모임을 갖는 공간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스케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모인 적은 없다. 이들끼리 어떤 건전한 경쟁이 있는 시합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감자튀김을 찍어먹는 소스 만들기 시합을 했다.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모로코 어머니가 자기가 아주 매운 하리사를 만들 수 있다 하자 수리남 어머니가 하리사는 별로 맵지 않고 수리남 고추를 한번 써보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는데, 그들이 자신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를 알고 배우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사진 속 여자분은 온몸에 문신이 있는데 여기 와서 같이 요리도 하고, 애들도 와서 참여하고 30가지가 넘는 재료를 넣어 엄청나게 맛없는 소스도 만들었다. 감자튀김이 몸에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자체로 축하하기 위한 큰 잔치인 것이다.
A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모았나? 게시판 같은 곳에 공지를 했나?
J 이 프로젝트는 이 지역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일했는데, 이분들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알고 지역 사람들도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 지역 사람들이 신뢰하는 지역민 누군가를 아는 것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다. 디자인 뮤지엄 다라비의 매뉴얼에서 “지역의 중개인을 찾아라”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근방 다른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에서 대장인 누군가나 사람들이 존경하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좋은 방법이고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행사는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진행된다. 1. 장소를 인식하고 2.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3. 무엇을 할지 정하고, 4. 그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각 요소들을 제작한다. 우표, 운동화, 통화 등 말이다. 여기 보이는 통화는 행사 후에 디자인한 것이라 쓰이지는 않았지만 통화 디자인에 위인이나 왕의 모습이 들어가는 대신에 지역의 사회복지사를 넣었다. 그는 지역 정치인이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일종의 왕과 같은 인물이었는데, 그가 모두를 알고 모두의 사연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뮤지엄 다라비 (Design Museum Dharavi)
A 콜룸버스플레인은 그래도 당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이고, 뭄바이보다는 친숙하고 편한 장소일 것이다. 그런데, 뭄바이는 완전한 타지이고 분명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J 확실히 달랐다. 한 달의 시간이 주어져 아주 빨리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는데, 도착했을 때 우리가 미리 준비한 것이 별로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면 큰 카라반 차량에 박물관을 만드는 것을 상상했는데, 거리를 보니 너무 좁아서 큰 카라반이 절대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역 제작자들과 어떻게 연결될지가 문제였다.
A 팀 사람들이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제작자들을 찾는데 많이 서둘렀을 것 같은데.
J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알고 있던 도자기 제작 지역의 도공을 만났다. 첫 전시로 도자 제품을 전시하려 했다. 물론 우리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제작자를 찾아야만 했다. 다라비의 지역민들은 백인이나 서양 사람들과 일하는 데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라, 우리가 제작자를 찾는 유일한 서양 사람은 아니었다. 뭔가를 싸게, 빨리, 많이 만들려고 사람들이 다라비로 오기 때문에 다라비에는 그런 공장들이 정말 많다. 재미있는 점은 자신의 기술 능력치를 시간당 같은 물건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로 설명한 점인데, “이 도공은 정말 잘하는 사람인데, 1시간에 200개를 만들 수 있어!” 이런 식이었다. 이런 점을 완전히 잊고 다른 것을 만들기를 원했는데, 이번주부터 “시간이 있다면, 비용을 부담할 테니 우리에게 당신의 하루 일당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면 지불하도록 할게요. 대신에 수백 개의 똑같은 물건을 만들지 말고, 모두 다른 100개의 물건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다라비는 거대한 장소이고, 언어, 문화, 종교 모든 게 다르다. 이 점이 다라비에서 프로젝트를 착수한 이유였고 또한 우리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A 제작자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나?
J 몇몇은 영어를 썼는데, 거의가 다 영어를 하진 않았다.
A 그러면 어떻게 제작자들과 소통했나?
J 거의 언제나 샴(중개인)과 함께 했고, 샴이 크루티를 데려와 통역을 해주었다. 크루티가 우리 멤버 중의 핵심이었는데 고향이 뭄바이였고, 그래픽디자인 공부를 런던에서 했다. 크루티는 우리 말을 단지 통역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작자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라훌과 마티아스는 성공한 인도의 건축가로 다라비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다. 모마(MoMA)에 작업을 전시하는 등 슬럼가에서 도시 계획과 건축적 시도 등으로 자리를 잘 잡은 스튜디오이고, 샴 칸레는 그들과 함께 연구자이자 현장 실행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다라비에서 나고 자라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고, 지역 정치와 결부되어 있고 다라비에서 빗자루를 만드는 여성을 돕는 재단도 운영하고 있었다. 빗자루를 만드는 여성이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계층으로 그의 누이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푸니트는 크루티의 친구로 우리가 뭄바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을 도왔고, 크루티는 우리가 떠난 뒤로 스스로 전시를 기획해 〈디자인 뮤지엄 다라비〉를 지속했다.
A 박물관의 전시에서 빗자루와 도자 제품 등의 물건을 같은 선상에 놓았는데, 카스트 제도상, 빗자루를 만드는 사람이 도자 제품을 만드는 사람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음에도 물건을 보여줄 때는 서열없이 평등하게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갈등 상황 같은 것은 없었나?
J 인도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에 속하게 된다. 빗자루를 만드는 사람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보다 낮은 계급이기는 하지만, 두 영역에서 만든 물건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첫 번째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통했다. 모든 물건을 같은 수준으로 전시한다는 것 말이다. 도공은 전시에 참여해서 행복해 했다. 빗자루 제작자는 왜 다른 종류의 빗자루를 만들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같이 보여준다는 점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아마도 지역민들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단지 그것을 물건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박물관을 만드는 일도 가능했던 것 같다. 왜냐면 이방인이 자신들의 카스트 제도와 문화적인 문제들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의 물건이 어느 계층에서 왔는지, 이를 어떻게 보여주었는지에 대해 알고 좋아했다. 또한 박물관이고, 지역 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외지인들이 이렇게 만들기를 원했으며 그리고는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확하게는 그렇기때문에 이 박물관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A 이 박물관이 마을을 위한 잔치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오래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잔치라는 것을 했는데, 이런 행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박물관이 어쩌면 사람들에게 그런 잔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J 맞다. 박물관이 설치된 장소가 잔치 같은 역할을 했는데, 오프닝 때 음악가들이 와서 잔치를 열었다. 아만다와 나는 그런 행사를 사실 원치 않아서 웹사이트에는 넣지 않았다.(웃음) 지역민들은 박물관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샴은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 근방에서 누군가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켰다.
A 컴포트존이라는 것에 대해 매뉴얼에서 언급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J 예를 들면, 도자 공방의 공방장을 찾아가 이런 것들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공방장은 우리가 어떤 걸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만들고 싶은 것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것이든 빨리 그려냈다. 이건 단지 쉬운 시작일 뿐이다. 실은 어떤 그림도 그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려달라 그러면 첫 시작으로 얼른 그려준다. 그러면 그가 바로 내가 그려낸 것과 같은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그러면 “안돼, 안돼, 멈춰요”하며, “우리가 그린 그림처럼 당신이 다 다르게 그려서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길 바래요”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다른 지점인 것 같다. 그들이 자신들이 디자이너라는 태도도 있고 의뢰도 있는데, 보통 축제에 쓸 4만개의 촛대를 만드는 의뢰같은 것들이라서 늘 같은 것을 빨리 만드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이전에 한번도 하지 않았던 그런 것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작은 공장에 이런 요청들은 대게 너무 과한 것이었다. 만약 처음에 당신이 “이전에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예쁘고 유용하고 모두 다른 디자인의 물건들을 만들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면 나도 가능하지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차근 차근 컴포트존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너무 많이 나갔다면 다시 이만큼 돌아갈 수도 있다. 전부가 다른 것을 만들기를 원했고, 이전에는 다라비에서 그런 작업을 원하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이 수백, 수천 개의 같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주문들이 쌓여있는데, 그게 우리가 깨려고 했던 지점이다. 뭔가 다르게 만드는 것은 처음에는 다소 불편한 것일 테지만 이 물건은 다 그들의 공방에서 나온 물건이고 공간이 별로 없는 작업장에 물건을 쌓으면서 나온 모양새이기도 했다.
A 잘 모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어떤 노하우가 있나?
J 내 생각에는 기획자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가진 취약점을 상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고 나랑 일하면 너한테 이득이 될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매우 공손하고 겸손하게 행동하고 다른 문화에 무지한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굉장한 흥미가 있고 당신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협업하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솔직해져야 한다.
A 그러니까 당신이 상대에게 그들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말이군. 그들이 더 잘 알기도 하지만, 빈 구석을 내어주기 때문에 협업이 가능한 것이겠다.
J 맞다. 만약에 당신이 아이디어가 있고, 그들과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에 솔직해야 한다. 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고 이 문화에 무지한데, 내가 서방 국가에서 왔고 모든 것을 알고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솔직한 접근법은 무지를 드러내고 아무것도 먼저 정해놓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A 작은 커뮤니티들 안에서 이뤄지는 시도가 계속될 수록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뮤지엄 다라비〉 프로젝트의 매뉴얼이 몸동회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J 나도 뿌듯하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논제라고 생각한다.
2. ◯◯◯체
공영선 준비운동 무보
몸동회는 기존의 ‘준비운동’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체조를 고안하여, 모두가 즐겁게 따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신체 기능을 높이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적인 운동을 겸하면서 그 자체로 다양한 율동을 보여주는 참여형 퍼포먼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무용가 공영선과 의논하는 자리를 가졌다.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인 공영선은 현대무용가, 안무가로서 누구나 자신만의 체조를 만들고, 자신의 움직임에 생기를 더해줄 수 있는 트레이닝을 제안하였다. 무용가로서 오랜 시간 단련된 신체, 단련된 기술을 답습하는 것에서 나아가,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인지, 움직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오던 그는 현재 우리의 신체활동에서 잃어버린 것이 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쓸모 없는 움직임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회화 되었다. 효율적이지 못한 움직임을 규범에서 벗어난 활동으로 여기는 시대에서 신체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고, 쓸모 없다고 여기는 동작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무용가로서 자신에게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체’의 견본으로 제작한 ‘공영선체’는 하나의 안무를 모두가 따라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이를 수행하는 놀이의 형태를 띈다. 이는 신체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만들고, 온 몸의 기능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몸동회 참고자료
1. 미(美)
몸동회의 미적 요소는 도구, 체조, 게임, 음식, 장소 등 크고 작은 모든 환경에서 드러나지만 이 파트에서는 특히 시각적 요소, 장치적 요소에 집중하여 리서치를 하였다. 크게는 응원도구, 깃발, 콘페티, 가렌다 등 풍경을 만드는 요소와 머리띠, 손목 밴드, 손수건, 옷 등 의복과 관련한 요소로 나뉜다.
ㄱ. 자연의 요소를 빌려온 색
스포츠 게임에선 국가별, 지역별, 팀 별로 서로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 주로 색을 사용한다. 그 색들은 쉽게 팀의 구분이 가능하게 배치하며 주로는 청색, 적색, 백색을 쓰곤 한다. 몸동회의 키컬러는 팀을 구분하여 경쟁심을 상승시키는 방식이 아닌, 자연에서 빌려온 ‘자연스러운 색’을 사용함으로써 느슨한 경계, 평평함 등을 시각적 정서로 만들고자 한다.

ㄴ. 개인이 드러나는 의복 / 패션
반 소비주의, 반 자본주의적 가치 아래 버려진 자전거를 재조립하여 함께 타는 일종의 저항적 모임인 ‘Rat Patrol’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을 한껏 드러내는 방식으로 각자 만든 ‘Rat Patrol’ 패치를 새긴 옷을 입고 나온다. 정해진 유니폼이 아닌 조끼, 점프수트, 코트, 바지, 티셔츠 할 것 없이 구성원 각자가 선택한 옷에 꿰매 넣은 패치면 된다. 이러한 문화는 스포츠를 통해 단일화되고 집단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이 함께 하는 ‘모임’의 성격을 드러내는 재미있는 사례이다.

‘컴버랜드와 웨스트모어렌드 레슬링’은 잉글랜드에 바이킹들이 침입했던 시절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지역의 행사이다. 이 레슬링 시합의 경기복은 딱 붙는 타이즈와 자수를 놓은 팬티로 어떤 사람은 1년 동안 이 의상을 준비하는 데 공을 들인다고 한다. 이 역시 단순히 기능성을 위한 경기복이 아닌 개개인들의 솜씨가 전시되는 문화로 자리한다.

ㄷ. 대량생산이 아닌 소량으로 생산하며 소비를 지양하는 방식
대량생산은 기본적으로 최소 제작 단위가 높아 필요한 만큼만 만들기가 어렵고 제작 과정에서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몸동회는 수공업 방식과 가급적 쓰레기를 적게 만들고 필요한 만큼만 만들며, 주변에 버려진 재료들을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즉흥적이고 우연적이며 구성원들과 함께 제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실크스크린, 도장 등 판화적 기법과 드로잉, 시티코밍 등의 방식이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그룹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화로〉가 만든 크래프트 맥주의 라벨을 실크 스크린으로 찍어 필요한 수량 만큼 제작했고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실수, 오류를 통해 모두 다른 라벨이 만들어졌다.

2. 음식(食)
— 몸동회의 음식은 에너지원이자 활력제이다.
— 섭식은 간소하게 하되, 음식의 준비는 한 쪽의 노력이 아닌 십시일반의 힘으로 서로를 먹이고 보살핀다.
— 음식은 놀이의 한 방편이다.
음식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희 요소이자, 필수 항목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의례, 잔치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형태는 남녀와 계급 차에 따른 임무로 갈리고, 같은 계급 내에서도 먹는 사람이 있다면 먹이기 위해 참여하지 못하고 희생하는 편도 발생하였다.
조선시대의 민화를 토대로 양반 행사와 서민들의 풍속 행사도를 살펴보면, 양반과 종의 관계로 음식을 받는 상대가 정해지고, 밭 일을 나눠 협동하는 두레에서도 여성은 밥을 지어와 남성과 아이를 먹이는 역할로 구분 지어져 있다. 오랜 전부터 사회적 행사와 잔치에서 여성의 존재는 늘 누군가를 먹이는 존재로 각인되어 왔다. 이는 지금까지도 내려와 명절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명절 음식 논쟁의 한복판에 놓인다. 지자체와종교 단체에서 시행하는 대형 비빔밥 행사 역시 많은 이들의 희생과 수고로 이루어지고, 음식을 누리는 쪽과 준비하는 쪽이 갈린다.
운동회와 소풍 음식으로 기억되는 김밥과 도시락은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일으키는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지만, 먹기에는 간단하지만 만들기에는 몹시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의 하나이며, 김밥이나 도시락을 쌀 수 없는 형편의 부모와 아이, 노인들에게 김밥과 도시락은 즐거운 날을 위한 음식 이전에 고민 거리가 되기도 한다. 몸동회는 모두가 모여 부담없이 즐겁게 놀고자 하는 자리이기에 섭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거리를 내려놓고, 구시대적인 잔치와 의례 음식에 대한 발상을 전환하여야 한다. 몸동회를 진행하는 시간만큼은 음식이 주인공인 자리에서 내려와 참여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온 먹거리를 한 데 모아 놀이를 통해 음식물의 소유 관계를 흐트러뜨리는 시간을 제안한다.

놀이로서의 음식 사례
1) 람베스 컨츄리 쇼의 베지터블 애니멀 컨테스트
람베스 컨츄리 쇼에서 진행한 베지터블 애니멀 컨테스트는 먹을 수 있는 야채로 만드는 기괴한 동물들이 지닌 유머로 어른과 아이, 노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역사 깊은 대회 중의 하나이다.
아이들은 야채를 만들고 조각하며 채소의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친근해지는 기회가 되고, 어른들은 동심으로 돌아가며, 상품이 되지 못한 못난 모양의 야채에 쓰임새를 줄 수 있는 계기 역시 되고 있다.
- 제안: 각 집의 냉장고에 꼭 하나씩 있는 오래 되어 못 먹거나, 너무 많아 남아있는 야채들을 가지고 나와 모으고, 조각, 가공하는 등의 놀이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상태가 좋은 것은 즉석에서 생으로도, 함께 익혀 먹을 수도 있다.

2) 음식 풍경 만들기
간편한 간식으로 준비한 여러 사람의 스낵을 한데 모아 준비한 판 위에 주어진 주제에 따라 풍경을 완성한다.
- 참여인의 준비물: 따뜻하거나 시원한 물, 음료, 간단한 요기거리-과일, 과자, 빵, 김밥 등
- 기획단의 준비물: 위생 장갑과 식탁으로 쓸 크고 깨끗한 판, 부엌 가위와 과도, 도마

3. 의례
몸동회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한시적으로 사회를 만들고 동시대를 반영하게 되는 일이다. 이러한 모임은 자연스럽게 축제나 의례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과거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농제나 두레, 남미의 카니발과 같이 집단적으로 의식을 행하는 전통은 문명을 통틀어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의례가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작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반추해보고자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사회 전반에 걸쳐 공동체의 건강함을 진단해 보고자 리서치가 진행되었다. 개인의 생존이 우선시 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경쟁으로 인해 공동체성이 훼손된 사례를 쉽게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범죄와 불평등, 계층 간의 갈등으로 인해 노인의 고독사, 청소년의 자살, 저출산, 성범죄 등의 병리적인 사회문제 앞에 노출되어 있다. 몸동회가 목적하는 바는 무리한 가속 개발과 경제 발전에 대한 맹신에 앞서 전인격적인 기쁨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현대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 경제적인 빈곤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 없는 삶이라고 여기고 있다.
“숲이 타고 있었습니다. 숲속의 동물들은 앞을 다투며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크리킨디(벌새)란 이름의 새는 왔다갔다 하며 작은 주둥이로 물고 온 단 한 방울의 물로 불을 끄느라 분주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저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라며 비웃었습니다. 크리킨디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위의 이야기는 페루 케츄아 부족의 우화에 등장하는 벌새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공동체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각 지역마다 존재해 온 과거 의례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민족적 지역적 특색이 담겨있어 그 의례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사회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거울이 된다. 의례는 선대에서 후대로 지혜를 전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페루 케츄아 부족이 보존하고 싶어했던 것은 불에 탄 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일깨우고자 작은 벌새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몸동회 상상도
작가 전지가 상상하는 몸동회에 대한 그림으로 ‘평평함’, ‘함께’의 방법들, ‘다양한 신체’를 표현하고 있다. 몸동회는 영상 및 사진 기록 뿐 아니라 드로잉으로 현장을 기록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몸동회 상상도’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몸동회를 상상하며 기록한 그림이다.

몸동회 클럽과 가이드라인
1. 평평한 놀이를 위한 도구와 게임발명 워크숍
진행 김종범(2017년 11월 4일)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에서 활동하는 김종범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나 공간에 대해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려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작가이다. 김종범 작가 외 참가자 12인과 함께 이촌동 한강공원에서 진행한 ‘몸동회 클럽’에서는 다양한 소품과 재료들을 앞에 놓고, 이 도구들을 활용한 놀이 방법을 탐구하고 실험해보았다.
각 사물이 띄고 있는 숨겨진 운동성에 대해서 파악하고 이를 놀이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 내는 토론, 그리고 운동 종목으로 발전시키는 실험을 거듭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규칙과 형태가 다듬어지는 경험을 했다.

‘놀이’의 사전적 뜻을 더듬어 보면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놀이의 본성이 하나의 제도를 만들고 그 규율을 따르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면 몸동회 클럽은 사회의 작동 원리를 축소하고 경험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지식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에, 자연에 대한 지식은 결국 물질과 힘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다고 간주된다.” (『인간·사물·동맹』), 부르노 라투르 외) 놀이는 사회와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험이다. 또한 일상의 신체는 노동을 하거나, 먹고
자거나 간혹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할 때에도 건강해지기 위해서, 살을 빼기 위해서 한다.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몸과 주어진 기능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 이 두 가지의 순기능으로부터 대립되는 활동을 유도하여 일종의 해방감을 가질 수 있길 희망했다.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고 규정한 문화학자 한병철은 성과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은 낙오자와 자기착취라고 비판한다.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을 낭비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재의 사회제도가 지나치게 가학적이라는 해석에 의해 몸동회 클럽이 만들어졌다.

2. 몸동회를 위한 가이드라인
- — ‘고도한 것은 보다 고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 즐거운 방향으로’
— ‘세련은 적!’
— ‘소외 없는 평평함으로’
이 네 가지 정신을 바탕으로 개인의 신체를 노동으로부터 분리시켜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둔다.
- 장소: 경사나 오르막이 많은 곳은 피하고 경우에 따라 휠체어 진입이 수월한 곳을 택해야 한다.
- 언어: 한국어 중심의 소통 방식을 (가급적) 벗어나 바디랭귀지를 적극 활용한다.
- 준비운동: 준비체조 〈체〉는 동작의 완결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신체적 조건 안에서 해당하는 동작까지 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몸에 개그를 허락하라.
- 게임: 재미, 성취감, 승부의 체험 등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갖는 경험을 애써 피하지 않는다. 다만 청백전식으로 경쟁의 구도를 갖는 대신 계속해서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방식을 찾는다.
- 도구: 모든 사물은 놀이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 집중해본다.
- 의상: 개인의 ‘특이성’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다양한 형태의 의상을 입어본다.
- 풍경: 풍경을 만든 깃발, 응원도구, 의상 등의 요소는 팀을 구분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고 ‘평평함’을 보여주는 많은 색들을 선택한다. 또 대량 생산 방식이 아닌 필요한 만큼 만들고 버려진 재료를 활용한다.
- 갈등: 갈등이 발생하면 피하지 않고 해결한다. 당면한 갈등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사람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 음식: 각자의 집에 있는 냉장고에 오래되어 못 먹거나 많이 남아 있는 음식, 야채들을 가지고 나와 서로의 재료를 조합하고 가공하여 함께 나눠 먹는다. 단, 맛이 없을 수도 있다.
나가는 글
이 리서치는 구체적으로 설정한 대상과 지역에 일시적으로 진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여타의 방식과는 전제와 출발 자체가 다르다. 몸동회는 작은 사회가 세 명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하고, 세 명, 삼십 명, 삼백 명의 사회 안에서 소비적이지 않고, 개개인의 (문화적, 물리적) 신체의 다름과 다양함을 존중하면서 ‘함께’ 노는 경험을 갖는 것을 전제로 그 방법을 탐구하고 실험하고자 했다.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이나 지역을 정한 것이 아니라, 이 리서치의 결과로서 몸동회가 다양한 커뮤니티에 확산과 적용이 가능한 ‘공공적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가 목표점이다. 특정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양성이 교차하는 하나의 모델로서 몸동회가 작동할 수 있길 바란다.
평평한 운동회, 몸동회
분량35,992자 / 72분 / 도판 24장
발행일2017년 12월 18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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