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21-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전시 후기 –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건축적 상상력

박성태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다. 생산과 소비는 나날이 늘어 대다수 사람의 삶은 꾸준히 나아졌고, 내가 노력만 한다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신념도 견고해졌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4만 불 시대가 눈앞에 와있다. 그런데 과연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우리는 점점 더 풍요로워질까? 역사를 돌아보고, 환경문제와 사회적 제약들을 고려해보면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과 번영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에 사회체제가 유지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경제성장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모순과 문제들 속에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그것이다. 더 풍족하고 인간다운 삶이 의심받기 시작하면서, 청년들은 결혼을 꺼리고 신혼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출생한 아이의 숫자는 1971년에 비해 1/4 수준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더불어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비중도 이미 인구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40대 이하에서는 50%를 넘어섰다. 2035년에는 인구의 40%가 혼자 살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혼자 사는 빈곤 청년·노인층은 이미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경제성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성급한 예상이긴 하지만 신생아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인구 전환은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형태까지도 바꾸어 놓을 개연성이 높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출생률의 급락과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의 수보다는 질이 중요한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이끈다”고 말한다. 물론 늘 적정 인구를 원하는 국가와 자본은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덩치를 지속해서 늘려야 하는 자본에 생산가능인구와 소비시장은 절대적이고, 국가는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고령자가 느는 것이 부담이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개인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키우고 그에 따른 사회 불안을 증폭시킬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삶의 영역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비를 많이 하는 40 – 50대 인구가 줄어들면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침체된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또 다른 사회적 진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주도 난민 청와대 청원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주민에 대해 거의 묻지마식의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방 도시 가운데 몇 곳은 소멸할 수 있고, 이런 위험에 처한 도시를 살리기 위한 정책들은 국민적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 같은 정부의 출산장려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환적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삶에 생산과 소비, 그것을 통한 경제적 부는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일까? 물질적 풍요를 향한 욕망 속에 파국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된 출생률 하락의 본질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고령화는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만 줄 것인가?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다니엘 코엔은 『세계는 닫혀 있고, 욕망은 무한하다』(2015)에서 “우리는 고도성장기 사회체제에서 경제성장의 불확실성에 면역력을 갖추어야 하는 시대로 넘어서고 있다”1고 했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에 출간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기술이 진보하면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하므로 생계를 위한 필요 노동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 테고, 100년 후면 하루 3시간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예측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예술·문화·철학 등에 시간을 쓰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100년 후가 2030년이다. 실현 가능성은 아직 멀리 있지만, 곱씹어봐야 하는 점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인구와 소비의 감소를 걱정하기보다는 분배와 공유를 고민해야 하고, 지금 같은 물질적 성장의 추구보다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 갈등을 조정해 왔다. 불황이 확산되고 경제성장이 멈추면 그런 조정 능력은 힘을 잃게 된다.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만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다. 경제적인 불안정이 커질수록 장래에 대한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세먼지 같은 악몽의 도래는 정신적·환경적으로도 ‘여유 없는’ 삶을 펼쳐놓는다. 지금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소멸해가는 세계의 전조일 것이다.

우리는 시선을 경제성장과 풍요로부터 돌려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공동체 안에서 치유하고 품을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생산가능인구와 소비인구의 감소가 일으킬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기술 진보로 획득한 부를 사회구성원들과 어떻게 나누고 누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독점에서 공유로, 혼자만의 삶에서 더불어 사는 삶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답을 쉽게 찾으려 한다면 그 답은 오답일 확률이 높다.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 타자와 소통하는 방법, 이와 연관된 도시·건축의 변화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는 우리 각자에게 곧 도래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건축적 상상을 요구한다. 우리가 꿈꾸는 삶과 일을 펼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요구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공간에 대한 문제 역시 쉬운 해결책은 없다. 고민이 부족한 간편한 해법일수록 우리를 점점 더 독존의 세상으로 밀어낸다. 사회적 부를 공유하며 연대하는 살맛 나는 공동체는 어떤 순간 결정적인 힘으로 우리 삶에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꿈도 그 바탕 위에 피어날 것이다. 그래서 인구 감소, 고령화, 1인 가구 증가라는 사회 문제를 각 개인이 맞닥뜨린 공동의 문제로 환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해온 건축가들의 작업을 ‘공동의 공간’, ‘사회적 가족’ 등의 키워드로 모아 봤다.

김성우, 박창현, 이치훈, 임대병, 조병수, 조재원 여섯 명의 건축가는 각자 드로잉, 이미지, 영상, 사진, 텍스트, 모형 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김성우(N.E.E.D.건축사사무소)는 자신의 사무실 겸 주택인 일원동 주거복합 프로젝트를 통해 소필지 주거지역의 주거복합모델, 개별 건물과 지역 사이의 공동성을 고민했다. 박창현(에이라운드건축)은 ‘심리적 경계’를 주제로 전농동 공동주택의 공용공간과 사이 공간을 통한 적절한 커뮤니티 전략을 소개했다. 임태병(문도호제)은 토지 임대부 프로젝트 풍년빌라를 통해 지인 공동체의 가능성과 출구전략을 실험 중이다. 조재원(공일스튜디오)은 공공그라운드와 함께 대학로 샘터화랑을 리노베이션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통해 유연하고 유목민적인 생산(일터)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치훈(SoA)은 우포 자연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체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기획과 그 추진 과정을 보여줬다. 조병수(조병수건축연구소)는 ‘이중성의 공존, 개인주의적 열림주의’를 주제로 개인성의 보장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공간을 제안했다.

이들은 삶과 일터에 대한 건축적 상상의 파편들로 우리의 환경, 사회, 기술의 변화를 건축적 감수성으로 발견하는 작업들이었다. 어쩌면 이 전시는 우리가 지나온 길과 다가올 미래 사이의 불안, 그 불안 속에 섞인 희망과 근심, 그리고 예측되는 소멸에 대한 이야기들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 이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넥스토피아> 전시장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입구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조병수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김성우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SoA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조재원 + 공공그라운드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박창현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박창현 / 사진: 라야
<넥스토피아> 전시장 – 임태병 / 사진: 라야

박성태

〈넥스토피아〉 큐레이터,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

전시 후기 –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건축적 상상력

분량3,881자 / 8분 / 도판 9장

발행일2018년 7월 27일

유형리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