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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불평등, 그리고 토지보유세

전강수

도시와 불평등

19세기 후반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그는 당시 고속 성장으로 세계적 대도시의 반열에 올라선 뉴욕의 한가운데서 끔찍한 가난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물질적 진보가 일어나면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마땅할 텐데, 어째서 더러운 길거리는 비루한 인생들로 가득하고 지저분한 어린아이들이 노는 소리로 시끄러운가? 19세기 후반 대도시 뉴욕에는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도회, 파티, 극장 관람, 연애질 등으로 매일 매일을 공휴일처럼 보내는 철도왕의 자식들이 무료한 나머지 마차를 끌고 나와 브루클린 거리를 질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늙은 여인이 아침부터 밤까지 우중충한 분위기의 길가에 앉아서 사과와 사탕을 팔고, 젊은 여성 노동자는 카운터 뒤나 베틀 앞에 서서 온종일 일을 하고, 소녀들은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재봉틀 앞에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1

그때로부터 약 130년이 지난 오늘날의 도시는 어떤가? 뉴욕, 시카고, 홍콩, 서울 등 세계적인 대도시들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세상은 하나로 합쳐졌는가? 도시 중심가에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고, 지하철이 사람들을 사방으로 실어나르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가득하고,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원하는 정보와 자료를 검색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19세기 후반 뉴욕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세상은 상존하고 있다. 서울만 보더라도 한쪽에서는 부잣집 자식들이 클럽과 고급 룸살롱을 전전하다 무료한 나머지 최고급 무개차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도심을 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낙심한 표정을 한 노인이 폐지 수집을 위해 수레를 끌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각종 알바로 세월을 보내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정말 죄송합니다” 하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현금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도시의 승리』를 쓴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대도시에 부와 가난이 병존하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의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도시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이 아니고, 그곳 어딘가에 가능성과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글레이저는 도시의 가난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본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경제적 성공의 기회를 포착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사례를 여럿 열거한다.2

단기간에 엄청난 규모의 이촌향도를 경험한 한국 국민은, 1960년대 이후 수많은 사람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중 일부는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중에는 글레이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사람들이 도시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 와서 경제적 성공을 이뤄 내는가? 몇 년 전부터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수저계급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헬조선’으로 전락했다. 지금은 도시에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의 공간이 되는 것은 거대한 혁신이 일어나며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초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과 자산이 소수의 사람에게 집적·집중되면, 자산이 없는 노동자나 농민이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130여 년 전에 헨리 조지가 정곡을 찌르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선생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은 항상 사업에 성공하려면 열정과 근면, 그리고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그들은 항상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예로 들며 지금도 누구나 빈손으로 시작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 부자들의 다수가 빈손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신화를 지금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성공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사회관계가 다시 조정되고 나면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 증기기관과 기계가 도입되면서 생긴 거대한 변화로 인해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기회의 문은 닫혀버렸거나 닫히고 있다. 기차가 출발해서 천천히 움직일 때는 한 발짝만 내디뎌도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면 그때 발을 내딛지 않은 사람들은 숨 가쁘게 달려도 기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기차가 출발할 때 탑승한 사람들이 쉽게 탔다고 해서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도 수월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터무니없다. 마찬가지로 증기기관과 기계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 때 주어진 기회들이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도 정말 터무니없다.3

이제 더 이상 도시의 가난은 강점이 아니다. 2014년 『21세기 자본』을 발간하여 ‘경제학계의 록스타’로 부상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기회를 얻어 경제적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시에서 불평등이 증가하는 이유

1.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

도시의 가난은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한쪽에 도시경제의 분배 메커니즘이 불평등과 가난을 증가시키는 냉엄한 현실이 존재한다. 여기서 토지제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을 활용해서 도시가 성장할 때 소득분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조지는 한 나라에서 물질적 진보가 진행되는 일반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이론을 전개했지만, 이를 도시 성장이라는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림1]은 헨리 조지의 분배이론을 잘 설명해주는 그래프다.4 각 토지 단위에 노동과 자본을 동일하게 투입한다고 가정하고 토지 단위를 우등한 것부터 시작해서 줄을 세울 때 각 토지 단위에서 나오는 생산액의 크기를 보여준다. 투입을 동일하게 하는데도 생산액이 달라지는 이유는 토지의 자연적 생산력과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프에서 한계지로 표시된 토지는 사용 토지 가운데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토지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쉽게 말해 남아도는 토지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토지를 가리킨다.

[그림 1] 지대의 결정원리

이제 각 토지 단위에서 생산액이 임금, 이자, 지대 등의 소득으로 어떻게 분배되는지 살펴보자. 임금은 노동 사용의 대가, 이자는 자본 사용의 대가, 지대는 토지 사용의 대가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선, 한계지의 생산액은 이자와 임금으로만 분배된다. 거기서 지대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그 정도 수준의 토지가 남아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계지 이상의 토지에서는 어떻게 될까? 그런 토지에서는 생산액 가운데 한계지 생산액을 초과하는 부분은 지대로 분배되고, 나머지(한계지 생산액과 같다)는 이자와 임금으로 분배된다. 한계지 생산액을 초과하는 부분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지주에게 지대로 분배되는 이유는, 더 좋은 토지를 두고 생산자들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다른 토지보다 질이 좋은 토지에서는 투입이 동일하더라도 생산액이 많다. 생산자에게 초과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여러 경쟁자 중에서 한 사람이 초과 수익을 노리고 좋은 토지를 차지하려면 토지 주인에게 대가, 즉 지대를 지불해야 한다. 토지 취득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가장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다.

처음에 토지 사용에 대한 대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생산자들 간의 경쟁 때문에 점점 그 값은 올라간다. 어디까지 올라갈까? ‘그 토지의 생산액 – 한계지 생산액’까지다. 지대가 이 수준에 도달하면 초과 수익은 사라진다. 만일 지대가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 생산자는 다른 토지에서 생산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서 더 이상 그 토지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지대는 그 토지의 생산액과 한계지 생산액의 차이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토지 n에서는 생산액이 nf인데 그것은 지대 ef와 ‘임금+이자’ ne로 분배된다. 각 토지 단위에서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한 후에, 지대는 지대끼리 합하고 ‘임금+이자’는 ‘임금+이자’끼리 합하면 경제 전체의 총생산액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도 알 수 있다. 즉, 경제 전체의 총생산액 oabc는 총지대 bcd와 ‘임금+이자’의 총액 oabd로 분배된다.5

2. 도시 성장이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이유

이상에서 설명한 분석틀로 도시경제의 분배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도시가 성장할 때에는 세 가지 현상이 수반된다. 인구 증가, 기술 혁신,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기대 등이다.6

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가 예상되는데, 하나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도시 경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성장 과정에서 경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해서, 서울의 경계가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상당 부분이 서울 권역으로 편입되었다. 이처럼 도시 경계가 확장되는 것은 [그림1]에서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표시할 수 있다.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나면 모든 토지에서 지대는 증가하고 ‘임금+이자’는 감소한다.

인구가 증가할 때 일어나는 또 하나의 현상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기존 개발 지역에서 ‘집적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고 경제 활동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우, 분업이 용이해지고 한 분야의 기술 개선이 다른 분야로 쉽게 이전되며 각종 거래 행위에 수반되는 비용이 감소한다. 인구가 도시에 모이면 아이디어와 지식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쉽게 흐르고 지식의 공동생산이 활성화된다. 그 경우 특정 토지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집적의 이익’이라 부른다. 집적의 이익은 생산액 선이 위로 이동하는 것으로 표시할 수 있다. 단, 모든 토지에서 동일한 정도로 상방 이동(평행 이동)하는 것은 아니며, 원점에 가까울수록 많이 이동하고 원점에서 멀수록 적게 이동한다. 그것은 원점에 가까운 토지, 즉 위치와 생산성이 높은 우등 토지에서는 집적의 이익이 크게 나타나고, 원점에서 먼 토지, 즉 한계지에 가까운 열등 토지에서는 집적의 이익이 작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 2] 인구증가가 분배에 미치는 영향

[그림2]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보여주는 그래프다.7 두 그래프의 차이는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계지가 조금 밀려나건 많이 밀려나건, 인구 증가가 초래하는 분배의 변화는 지대의 비중이 올라가는 반면 ‘임금+이자’의 비중은 하락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땅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에 불평등이 심해지고 그 와중에 빈곤이 심화되는 것이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기술 개선을 비롯해서 문화와 교육 등의 분야에서 각종 사회적 개선이 일어나고 지식의 공동생산이 활성화되어 다방면에서 혁신이 가속화되면 도시경제의 소득분배는 어떻게 변화할까? 생산액 선은 인구가 증가할 경우와 비슷하게 이동한다. 기술 개선과 혁신은 도시 중심부에서 주로 일어나고 따라서 우등 토지일수록 생산 증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계지가 어떻게 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기술 개선이 일어날 경우 한계지가 어떻게 변경될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 – 1823)는 단기적으로 한계지가 안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측한 반면, 헨리 조지는 밖으로 나갈 것이라 주장했다. 나는 한계지 위치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계지 변경이 없다고 가정하면 도시경제의 소득분배는 개선될 수도 악화될 수도 있다. 기술 개선이 우등 토지는 물론이고 한계지 부근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그런 토지에서의 생산액 증가가 현저할 경우 분배는 개선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지대의 비중이 커지고 ‘임금+이자’의 비중이 감소하여 분배는 악화된다. 

도시가 성장할 때 지대와 지가는 상승하기 마련인데, 이는 사람들 사이에 미래 토지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를 형성한다. 미래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면 가치 상승분을 노리는 사람들이 토지를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토지 이용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연히 도심 여러 곳에서 토지 이용의 유휴화가 일어나고 좋은 토지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토지를 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난다. 이 경우 기성 지역의 토지 생산성에는 변화가 없지만, 한계지의 질이 하락하기 때문에 지대는 증가하고 ‘임금+이자’는 감소한다.

인구 증가, 기술 개선과 각종 혁신, 미래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 등 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 어떻게 될까? 생산액 선은 [그림2]에서 표시한 것보다 훨씬 많이 위로 이동할 것이고, 한계지가 바깥으로 밀려나는 정도도 커질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토지 이용 규제까지 더해져서 도심의 개발이 억제되면 한계지는 더 많이 바깥으로 이동할 것이다. 세 요인이 결합하여 작용할 경우, 지대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반면 ‘임금+이자’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도시에서 식당, 빵집, 치킨집, PC방, 노래방 등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조기 퇴직의 증가로 자영업자 수가 늘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높은 임대료 부담으로 경영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서울의 여러 동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도 가게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 때문에 일어난다.

이상에서 헨리 조지의 분배 이론을 활용하여 도시경제의 분배 메커니즘을 분석한 결과, 도시의 성장은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도시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그곳의 가능성과 기회를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에서 기회를 잡아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이루므로 도시의 가난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한 글레이저의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궤변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치유책으로서의 토지보유세

도시의 성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레이저는 가난한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 서비스 개선은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부유하게 살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시경제 안에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키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판국에 교육 서비스 개선 정도로 빈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지고 없는데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잘 교육하면 그들이 힘을 내서 위쪽으로 날아오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도심에 대한 고도 제한을 풀어서 초고층 빌딩 건축을 활성화하고, 그런 건축 행위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서 세금으로 징수하여 일조권 침해 등 피해를 보는 주민들에게 나눠주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참신한 제안이기는 하지만, 건축 규제에 대한 대안일 뿐 불평등 대책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도시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해소될 리도 없다.

도시경제에서 불평등과 빈곤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은 잘못된 토지제도에 있다. 일단 토지를 소유하기만 하면, 급속하게 증가하는 지대를 전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문제다. 헨리 조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대의 대부분을 조세로 징수하는 토지가치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안했다. 지금 당장 지대의 대부분을 조세로 징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동산값 폭락과 금융위기 발발 등 심각한 경제적 부작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조지의 토지가치세제는 토지제도 개선의 이념형으로 위치 지우고, 그것을 향하는 도정에서 지금 도입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토지가치세가 도시경제의 분배 메커니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자. 지대의 대부분을 조세로 징수할 경우 토지 투기가 근절된다. 토지를 소유한다고 해서 지대를 얻을 수 없으니 지가가 올라갈 리도 없고(이론적으로는 지가가 0에 수렴한다), 지가 차액을 노리는 토지 투기가 일어날 리도 없다. 따라서 토지가치세를 부과할 경우, 토지의 투기적 보유로 인해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사라지고 그것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도 해소된다.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나면 분배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다.) 한계지가 밖으로 밀려난다고 표현했지만, 이 현상은 현실적으로는 스프롤 현상8으로 진행된다. 

토지가치세는 기성 지역에서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 세금이 부과되기 전에는 유휴화되거나 저밀도로 이용되던 토지에서 토지 이용의 집약도를 높이는 등 최선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정부가 토지의 고밀도 이용을 제한하는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토지가치세를 부과한 후 시간이 지나면 우등 토지에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외곽으로 나갈수록 고도가 낮은 건물이 질서 있게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도시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도시 경계를 밖으로 확장시키는 압력은 크게 완화된다. 도시 내 토지 이용의 효율성 증가와 토지 투기 해소의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면 한계지는 밖으로 밀려나기는커녕 안쪽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분배를 개선하는 작용을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론해 볼 수 있다.

토지가치세 부과로 생기는 세수를 시민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 제도를 함께 실시하면, 도시 성장으로 지대가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토지 소유자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골고루 나눠 갖게 된다. 이것이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토지가치세 세수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특별히 토지배당이라 불린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들에게 보유 주식 수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듯이, 국토의 주인인 시민들은 전체 토지에 대해 1/n 씩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고 똑같은 금액을 토지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러한 토지가치세제는 당장 도입하기에는 현실성이 낮은, 하나의 이념형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당장 도입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면, 토지가치세처럼 지대의 대부분을 환수하기는 어렵지만, 지대의 공적 환수 정도를 높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지방세인 재산세와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로 구성되어 있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이 틀을 유지한 채로 추진할 수도 있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시행할 수도 있다.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한 채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과 관련하여, 최근 나는 20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그 세수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9 보유세 세수는 지금보다 최소 5000억 원(시나리오 1), 최대 14조 3000억 원(시나리오 2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5000억 원을 더 걷는 방안으로는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대 세수 증가를 가져올 시나리오 20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세 보유세를 도입할 수도 있다. 사실 종합부동산세는 토지와 건물을 구별하지 않고 과세하며, 주택 따로, 나대지 따로, 상가·빌딩 부속 토지 따로 합산 과세하는 용도별 차등과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소수의 과다 보유자에게만 과세한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는 세금이다. 내가 ‘국토보유세’라고 부르는 새로운 국세 보유세는 토지에만 부과하며, 용도별 차등과세를 폐지하고, 모든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전국에 있는 토지를 인별 합산하여 과세한다는 점에서 종합부동산세보다 훨씬 우수한 세금이다. 더욱이 국토보유세 도입에 따르는 세수 순증분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토지배당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조세 저항을 방지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 최근 한신대학교 강남훈 교수와 공동 저술한 논문에서 국토보유세를 설계하고 그 세수와 재분배 효과를 추계한 바 있다.10 그 방안에 따르면 국토보유세 도입으로 세수는 15조 5000억 원 증가하는데, 그것을 전액 토지배당으로 지급하면 전체 가구의 95%가 순수혜 가구가 된다.

증가하는 보유세 세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도시경제의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보유세 강화 정책이 그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전강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헨리조지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토지의 경제학』, 『부동산 투기의 종말』,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공저), 『부동산 신화는 없다』(공저), 『위기의 부동산』(공저),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희년의 경제학』, 『부동산 권력』(공역), 『현대 경제학과 청지기윤리』(공역) 등이 있다.

도시와 불평등, 그리고 토지보유세

분량10,380자 / 2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8년 7월 27일

유형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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