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재로서의 도시
전은호
분량9,152자 / 18분
발행일2017년 12월 19일
유형강연록
커먼즈
‘커먼즈(commons)’라는 단어가 최근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커먼즈는 공유지, 공유재, 공유 자원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는데, 데이비드 볼리어1의 『공유인으로 사고하라』를 보면, 커먼즈를 공동의 가치와 정체성을 보존하는 자원을 장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공동체가 시장이나 국가에 의존하지 않거나 최소로 의존하며 관리하는 자기 조직적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또, 우리가 물려받거나 함께 생산하여 더 발전시키거나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부, 곧 자연의 선물, 시민 인프라, 문화 작품, 전통, 지식 등으로 정의한다.
도시 자체가 커먼즈라고도 말하는데, 도시 커먼즈는 우리 의지와 상관 없이 잃어가는, 함께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다. 그 속에는 물적·유형적 커먼즈도 있지만 관계라고 하는 커먼즈도 있다. 『The City as Commons: A Policy Reader』2에서는 소유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커먼즈라고 한다.
대부분 자연 자원, 물, 공기, 숲 등을 커먼즈로 인식하지만, 커먼즈는 그렇게 보여지는 단순한 자원을 넘어서 공동체와 관리에 관한 규칙이 더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도시 커먼즈로는 공원, 도로, 기반 시설이 있는데, 우리는 이 시설들을 이용하면서도 그곳이 어떻게 관리되고 운영되는지는 잘 모른다. 공동체성을 느낄 수 있는 여지도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커먼즈의 목적을 생각해서 공평한 접근과 이용,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커먼즈는 도시에서 시민으로서의 권리, 참여를 이야기할 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상에서 커먼즈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참여의 동력이 사라지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애매해진다.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커먼즈가 무엇인지 시민이 알고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내가 인식하고 있는 커먼즈가 무엇인지 떠올려 보면 막연하다. 다행히 커먼즈의 이용을 넘어서 기획, 관리, 실행하는 기회를 시민에게 부여하는 시대로 점차 변하고 있다. 노들섬이 그 예다. 시민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해 활용 방안을 제안받고, 1등 팀에게 설계부터 운영까지 하는 기회를 줬다. 그 과정에 여전히 한계는 있었지만 긍정적인 시도였다.
시민 자산화
시민 자산화는 공유재를 함께 만들기 위한 것으로, 미래에 성공, 발전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을 시민이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공유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왜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우리가 소유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주어진 것이 많은데 왜 자산을 소유해야 할까?
우리는 시민이 주인인 도시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공공과 시장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우리 사회를 움직인다. 시민, 나 또는 지역 마을, 공동체 등 제4섹터로 불리는 영역은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하기 버겁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가진 것이 없어서다. 공공과 시장의 것, 국유화된 것과 사유화된 것은 있지만, ‘우리의 것’은 없다. 국가의 것이나 사유화된 것을 빌리거나 위탁을 하다 보니 민관이 같이 일할 때 시민은 ‘을’이 되는 구조다. 이것이 지속되면 힘이 빠진다. 시민이 진짜 주인이 되려면 구조화가 필요하고, 그래서 시민 자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민 자산화를 위해서는 시민 혹은 주민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행정학에서 주민 참여의 정점은 거수와 투표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민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은 있지만, 실제로 시민이 컨트롤하는 단계까지 가지는 못한다. 시민과 지역의 소유권(ownership)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커뮤니티에 남겨진 과제다.
시민이 소유권을 갖는 자산화에서 소유자는 우리가 경험했던 나쁜 소유자가 아닌 청지기3적 소유자로, ‘만들어 내는’ 소유자를 말한다. 이는 마조리 켈리4가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주창한 기조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회사는 사원의 회사가 아닌 사장의 회사다. 이 책에서는 사원의 회사, 종업원이 지주인 사례를 소개한다. 실제로 종업원이 주인이 되니 조직에 더 헌신하게 되었다. 오토 샤머5의 『본질에서 답을 찾아라』에서도 4.0의 시대를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국가, 시장, 사회적 영역의 공동 창조 시대로 본다. 4.0 체제로 가고 있는 것을 가로 막고 있는 8개의 버블 중 소유권 버블이 있는데, 사유화가 극대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4.0의 시대로 넘어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4.0의 시대로 가려면 공동 소유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피터 반스6의 『Capitalism 3.0』(2006)을 인용해 공유에 기초한 재산권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소유 구조를 국가와 시장 중심으로 사고했다면, 이들 책에서는 국가와 시장을 뛰어넘는 공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가 소유할 때는 혜택이 정부로 가고, 개인이 소유할 때는 혜택이 개인한테 돌아가지만, 공유의 경우는 시민 배당금이 지불된다. 그래서 공유에 기초한 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유 방식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그리7와 하트8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양자 택일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결국 둘 다 공동의 것을 배제하고 파괴하는 소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와 시장,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공동의 소유 구조를 만들어 내고, 시민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공유재 관리에 적합한 집단 자치 형식을 발명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커뮤니티 오롯이 지역 소유권에 기반한 경제 파급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또한 지역 발전을 위한 재생이나 개발 사업을 할 때 커뮤니티에서 소유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는 주체가 지역 공동체여야 하고, 지역 공동체는 바통을 이어 받아 계속 경주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최근 포드(Ford)나 나이츠(Knight)를 비롯한 미국의 큰 다섯 개 문화 재단이 모여 도시 공유재를 재구성해 보자는 ‘Reimagining the Civic Common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원, 도로, 보행로 등은 행정 차원에서 관리가 버거운데다 사람들이 함부로 사용하거나 관심 자체가 없다. 이 프로젝트는 다섯 개 도시에 150–200억 원을 지원해서 기획자나 플래너들에게 공유재를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첫 번째는 시민 참여다. 사람들이 공유된 공간 속에서 평등함을 느낄 때 공동체성이 형성되고 진정성 있는 참여가 가능해지며 타인에 대한 이해심도 커진다. 두 번째는 경제적 통합이다. 시민 자산을 공유하면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경제적 기회를 향상시킬 수 있다. 세 번째는 환경적 지속성으로, 도시에서 환경적,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가치 창조로, 커먼즈가 구현한 가치를 도시에서 다시 느끼는 것이다.
공유재의 사례들
우리는 그동안 공유라는 것을 일상에서 많이 경험해 보지 못했고, 공유재를 만든다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함께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유재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공유에는 민과 관이 협력하는 형태, 지역 공동체나 시민이 주도하는 형태, 시민과 민간 영역이 협력하는 형태 등 여러 유형이 있다. 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민관이 협력한 예로는 프랑스 파리의 세마에스트(SEMAEST, 거리활성화정비국)를 들 수 있다. 세마에스트는 파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민관이 같이 출자해서 만든 준공공회사다. 보호 조처가 필요한 건물 1층 상점과 토지를 매입해 영세 자영업자에게 적정 가격으로 임대해 주는 등 사라져 가는 동네 상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 시내에 8천 개 정도의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미 코티즈9의 『로커베스팅(Locavesting)』에는 없어지면 안 되는 자산과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투자해 자산화한 사례들이 나온다. 그중 하나는 서점을 살린 사례로, 동네 아주머니와 아이들의 추억이 쌓인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서점을 인수하고 마을 서점으로 만들었다. 빵집을 살린 사례도 있다. 경찰관들이 아침마다 커피와 빵을 사서 출근하던 빵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관 아홉 명이 돈을 모아 경찰관이 운영하는 카페로 만들었다. 100년 이상 자리를 지키던 빵집이라 지켜야 할 명분이 더 분명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은 지역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다. 지역 재료를 사용해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냈다. 실제로 6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 빵집은 이제 매년 5만 명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공통의 필요로 등장한 커먼즈들이다.
지역개발신탁(Development Trust) 역시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는 사례다. 영국 내 750개 정도의 조직이 커뮤니티 단계에서 커먼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들을 통칭해 지역개발신탁이라고 한다. 이들은 커뮤니티 소유에 기반해 지역 재생을 하는데, 지역 자산을 공동체적으로 소유하고, 공유에 기반해서 사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커먼즈는 단순한 공동 소유가 아니라 관리와 관계성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시민이 주도한 예로는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LT)이 있다. 공동체토지신탁은 비영리성이 강한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가 신탁10 방식으로 땅을 묶어서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자신이 소유한 땅 위에 집, 상점, 커뮤니티 시설 등 원하는 건물을 올리고, 가격, 임대료, 용도를 결정한다. 운영 원리는 민간 영역에 집을 공급하는 방식에 있어서 땅의 개발 이익을 최소화하면서 생기는 여유분을 커뮤니티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미국에 260여 개, 영국에 100여 개의 CLT가 있는데, 버몬트 벌링턴에 있는 미국 최대의 CLT 챔플레인하우징트러스트(Champlain Housing Trust, CHT)는 2천 개 정도의 집과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주로 아래층은 상가, 위층은 주택으로 임대해 주는데, 여기서 생기는 임대료를 지역을 위한 부동산을 확보하는 데 사용한다. 이때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공동체에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염려가 있다. 그 점을 걱정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주민과 전문가를 포함한 이사회를 구성했고, CLT의 이익이 지역 거주자만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CLT의 효과와 긍정적인 부분이 입증되다 보니 캐나다 벤쿠버에서도 공동체 시스템을 이용해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조직의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 조직은 자산을 기반으로 수익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 이익에 기여하는 활동을 한다. 지역 기반의 개발 조직을 CDC(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재생 사업을 하면서 CDC나 CIC(Community Interest Company)를 이야기한다. CDC와 CIC는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공동체의 역량이 매우 강화되어 있는 케이스다. 지역 주민이 의사 결정 주체로서 재생 사업을 하거나, 지역 청년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 사업을 한다. 이들이 성장해서 3–5천 개 정도의 조직이 지역 단위로 퍼져 있다. 집을 짓고, 상가를 임대하고, 투자도 하는데, 이런 비영리 조직은 자산을 기반으로 지역을 활성화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도 막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장한다.
시민과 민간 영역이 협력한 사례로는 마켓크릭플라자 (Market Creek Plaza)를 들 수 있다. 이 사업을 추진했던 제이콥스 재단(Jacobs Family Foundation)의 제이콥스(Joe Jacobs)는 샌디에이고 다이아몬드 지역에 버려져 있던 2만 평 규모의 비행기 부품 공장을 쇼핑몰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지역 주민이 원하는 여러 가지를 담기 위해서였다. 쇼핑몰을 만들기 위해 마켓크릭파트너스 재단을 만들어 60%의 지분을 넣고, 네이버후드유니티 재단을 설득해 20%의 지분을 넣도록 했다. 나머지 20%는 지역개발주식공모를 통해 지역 주민 투자자를 모아 마련했다. 이는 나중에 쇼핑몰 소유권을 지역 주민에게 완전히 이전해 지역 자산화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 지역은 이민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주식 투자를 이해하는 주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재단은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열어 세 달 동안 교육을 해가며 주민 투자자를 모았다. 2006년 7월부터 10월까지 415명의 투자자를 모집했고, 이들이 최소 200달러에서 최대 1,000달러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마켓크릭파트너스 재단과 몰의 시설을 관리하기 위한 다이아몬드 매니지먼트를 만들어 사회적 기업화하고 50% 이상을 지역 주민으로 우선 고용했다. 이 기업의 역할은 공사가 완료된 2008년부터 10년 동안 주민을 대신해 몰을 직접 운영하면서 나중에 주민들이 몰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리더십과 오너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주민을 단순 주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주인이 되는 준비를 도와주었다.
마켓크릭플라자를 8년 동안 운영하고 주민 투자자들에게 배당이 시작됐다. 주민 입장에서는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받은 배당은 모두 일자리 훈련과 주민 고용 등 지역 사회를 위해서 쓰였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2018년부터는 개발 회사에 있었던 지분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의 투자가 가능해진다. 최종 목표는 모든 회사의 주식을 지역 주민이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례를 담은 연간 리포트를 통해 시민 자산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사업에서 프로젝트와 지역 구성원을 연결해 주는 핵심 고리가 바로 시민 자산이다. 시민과 주민의 권리를 생각해서 커먼즈를 만들면 진짜 권리가 발생된다. 지역 자산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공동체와 개발이 연결된다. 지금 수많은 재생 사업이 이루어지는데, 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면 주민이 쫓겨난다. 쫓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들여다 보면 사업 따로, 주민 따로다. 다이아몬드 지역의 주민은 주주로 들어와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계획, 실행, 소유의 권리를 가졌다. 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했다. 간단한 부동산 개발 사업의 구조 속에 주민이 들어감으로써 의미 있는 재생을 이뤄냈다.
2011년도에 시작한 노스이스트 투자협동조합(NEIC, North East Investment Cooperative)은 지역 주민이 주도해 만들었다. 메인스트리트에 빈 점포가 늘어나는데 활용되지 못해 거리가 낙후되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자 지역 주민 스스로 뭔가를 해보자고 39명의 설립자가 모였다. 스스로 건물 주인이자 투자자가 되기 위해 출자하여 부동산을 소유하고 재생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건물주가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인 것이다. 운영 구조는 이렇다. 출자금 100만 원씩을 낸 조합원들은 1인 1표의 의사 결정권을 부여 받는다. 협동조합은 함께 소유할 부동산을 찾아 리모델링하고, 지역 기업에 적절한 임대료를 받고 공간을 빌려준다. 여기서 받은 임대료는 그대로 지역 협동조합의 수입이 되어 다시 지역에 재투자되고 조합원들에게 배당된다. 매입한 건물을 리모델링 해 펍(pub), 자전거 수리점, 빵집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상점을 입점시켰다. 현재는 조합원 수가 240명이 되었고, 2015년에는 처음으로 순수익이 발생했다.
한국의 현주소
최근 재생이 뜨거운 이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자 신탁 방식을 통해서 연간 10조 원씩 재임 기간 5년 동안 50조 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 부동산 투자 신탁은 리츠11를 말하는 것으로, 리츠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리츠의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성 사업은 단기간에 개발해서 팔고, 그 수익을 나누고 해산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업에 다시 리츠를 만들고 개발하고 해산하는 구조다. 도시 재생에 이런 구조의 리츠가 들어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만약 공공이 재생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한다면 마켓크릭플라자와 같은 사례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앞선 사례들은 오랜 일상의 훈련과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 등장한 것이다. 우리의 커먼즈에 대한 준비나 이해는 성숙한 단계가 아니다. 주거환경관리사업으로 서대문에 커뮤니티센터를 지었는데, 성급하게 시민 자산화를 했다가 관리와 운영을 못해서 건물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보았다.
우선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부터 더 잘할 필요가 있다. 공유 오피스, 유휴공간, 또는 위탁받거나 임대받은 지역의 자산을 제대로 운영, 관리해서 지속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조금 더 적극적인 자산화를 시도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로부터 민간 거버넌스를 도출해 내야 한다.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결과물을 만들고,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이미 땅값이 오를 대로 올라서 공간을 확보해 자산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산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있다면 공공과 시민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투자와 기금 활용 방안을 다양하게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대상지가 생기고 참여할 주체가 정해지면 추진 방식이 조금씩 구체화될 것이다. 구조가 명확해지면 주민이 투자자나 기부자가 되고, 공공과 사회의 기금이 들어올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앞선 사례들처럼 다양한 모델이 구축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논의해 볼 수 있다.
커먼즈는 그 자체가 공동체(commune)로, ‘commune’의 어원은 라틴어 ‘cum’과 ‘munus’이다. cum은 함께 혹은 서로 간에, munus는 ‘선물’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community)는 ‘서로 간에 주는 것’이다. 선물을 받으면 그에 응당한 책임도 져야 한다. 커먼즈는 우리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 만들어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물려줘야 할 자원이다. 공동의 자원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의 사고와 태도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기 바란다. 기존에 짜여 있는 구조 속에서 끌려다니지 말고, 때로는 협력할 사람을 찾아서 함께 도전하며 작은 꿈이라도 꾸었으면 한다.
전은호
대학에서 도시를 공부하고 국토연구원,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뒤, 사회주택협회 사무국장, 서울협치지원관을 거쳐, 지금은 토지+자유연구소 산하 시민자산화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공유지로서의 도시, 시민이 주인이 되는 도시를 꿈꾼다.
공유재로서의 도시
분량9,152자 / 18분
발행일2017년 12월 19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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