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건축상 수상자와의 대화
김종성,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 × 임진영
분량9,792자 / 21분 / 도판 1장
발행일2022년 1월 20일
유형좌담
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여 이 상의 의의에 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종성건축상을 매개로 모인 이들은 ‘건축을 언어로 수사(修辭)하지 않는 건축가’이며, 건축을 유려하게 풀어내기 위한 어휘로서 테크놀로지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대화 속에서 건축가에게 테크놀로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김종성(서울건축 명예대표)
이성관(한울건축 대표)
이정훈(조호건축 대표)
최욱(원오원아키텍스 대표)
황두진(황두진건축 대표)
토론 진행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대표)
토론 날짜 2021년 11월 17일 (장소: 원오원아키텍스)
디자인과 테크놀로지
임진영 김종성 선생님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를 모시고 대화를 시작하며, 먼저 김종성 선생님께 이 상이 디자인과 테크놀로지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정체성을 삼은 이유를 여쭤보고 싶다.
김종성 서울건축에서 동고동락한 동문들이 김종성건축상 제정을 제안했고, 상의 취지를 어떻게 설정할지 논의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내가 학생 시절에 경험한 국내 건축계는 전통을 어떻게 수용하고 표현하는지에 너무 오래 묻혀있었다. 그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건축의 세 가지 본질, 피르미타스(firmitas, 견고함), 우틸리타스(utilitas, 실용성), 베누스타스(venustas, 아름다움)를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피르미타스로부터 생각을 발전시킨다면, 지금 건축을 만들어내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 테크놀로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용을 정리해 한국건축가협회에서 김종성건축상 제정을 공표했다.
사실, 시행 첫해만 해도 상의 취지로 내세운 ‘테크놀로지’를 자칫하면 ‘노출 철골’ 정도로 간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었다. 만약 내가 걱정했던 대로 구조적인 표현에 집중한 작업이 첫 수상을 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래서 이성관 건축가가 탄허대종사 기념박물관을 출품하고, 수상한 것은 내게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탄허대종사 기념박물관에는 테크놀로지가 구조, 특수 가공해서 만든 유리 외벽, 그 면면에 스며들어있다. 그리고 그 이후 수상자인 최욱 선생, 황두진 선생, 이정훈 선생 모두 내가 원했던, 테크놀로지와 건축의 연관을 명쾌하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실제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이정훈 선생의 나인브릿지 파고라를 만난 것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작업이 수상함으로써 ‘김종성건축상은 데카르트 좌표계(Cartesian grid)의 건축만을 후보로 삼는다’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시상을 통해서 이 상의 취지인 ‘테크놀로지’가 말하는 것이 ‘노출 철골’도 아니고, 직교 좌표체계도 아니라는, 그 두 가지를 명료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형태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써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하이테크 아키텍트들이 있고, 지금도 영국에서 유별나게 그런 건축물이 많이 설계, 시공되고 있는데, 그런 접근법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다. 나는 주어진 디자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체로써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를 원하며, 앞으로 그러한 작품이 김종성건축상을 수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성관 김종성 선생님 말씀처럼, 일반적으로 ‘테크놀로지’라 하면 그것의 첨단에 있는 하이테크만을 의미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테크놀로지는 하이테크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조선 시대 초가지붕에도 거기에 적용되는 기술이 있다. 이 말에 혹자는 ‘그렇다면 모든 건물에 기술이 쓰이지 않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는 건축가가 무언가를 구현하고자 했을 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궁리한 과정이 적용된 결과가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테크놀로지이다.
또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데카르트 직교체계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이 잘 보여주듯 합리적인 체계이고 넓은 평지에서는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며 미학적으로도 좋다. 하지만 나인브릿지 파고라의 대지처럼 큰 나무를 피하면서 그사이에 건물을 편입시키려면 각진 평면을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메바처럼 자신의 몸을 구겨서 넣으면서 같은 면적을 갖는 건물을 구상했을 것이다. 이처럼 디자이너는 합리성, 경제성과 같은 덕목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발상을 구현하는 방법으로써 적합한 테크놀로지를 떠올려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성건축상이 지평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종성건축상 수상의 의미
임진영 사석에서 수상자분들을 뵈었을 때, 다른 어떠한 상보다 김종성건축상의 수상을 특별히 자랑스러워 하신다. 네 수상자에게 수상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이정훈 가장 간절히 받고 싶었던 상이다. 유학 시절, 기술과 건축이라는 화두에 필연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다. 유럽에서 다시 배운 서양 건축사는 기술의 역사 자체였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태만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건축 재료와 구조를 중점적으로 보고 연구하게 되었다.
국내에 사무소를 연 뒤로 언젠가는 나의 아이디어를 기술로써 구현해내는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운 좋게 나인브릿지 파고라 프로젝트가 찾아왔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클라이언트를 설득한 뒤, 결과물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거듭해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개소 10년 만에 이 상을 받았다. 나에게는 10년간의 모든 노력이 김종성건축상 수상으로 결실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두진 건축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어떤 경우든지 기술적인 성취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상이 제정됐을 때 당연히 관심이 갔는데, 김종성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출품하는 것이 옳은가를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를 출품할 수 있는 마지막 해가 되었다. 이 상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제출을 결심했고,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상에는 지금까지의 노력을 인정한다는 측면이 있는데, 그 이면에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도 있다. 내게는 후자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20년 차에 이 상을 받았고, 미드 커리어에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다.
최욱 이 상은 워낙 귀한 상이라 감사히 받는 한편, 스스로 받을 자격이 되는지 생각했었다. 수상 당시를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오면서, 그리고 유학하면서 겪은 서양 문화는 알파벳 문자권이므로 논리를 구축하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었고, 나 자신은 한국인, 동양인으로서 상형문자 체계의 이미지 구축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두 세계 사이에서 번민했다. 이제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내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내고 싶었던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작업으로 김종성건축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고, 스스로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관 건축을 막 시작했던 젊은 시절, 김종성 선생님은 어마어마한 아우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과 서울건축은 갈림길에 설 때마다 최선을 택했고, 국내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으며 여전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 상을 받게 되면 그런 분에게 좋은 기운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탄허대종사 기념박물관 프로젝트는 준공 이후 여러 상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김종성건축상은 취지가 제일 명료하고 좋았다. 시상 첫해에 상을 받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고, 과분했다. 부담도 물론 느꼈지만, 이후 수상자를 보면 나 또한 체면이 산다.
심사 기준과 지향점
임진영 수상자 네 분의 건축은 매우 다르다. 그런데도 이분들이 수상하게 된 배경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지 생각해보니, ‘건축을 언어로 수사(修辭)하지 않는 건축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도 그 점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디자인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부분일 것이라 짐작된다.
또 김종성건축상의 가장 큰 매력은 ‘수상작 없음’이라고 느낀다. 그만큼 심사 기준이 엄격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상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황두진 소장님은 제5회 수상자이면서 다음 회차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다. 실제 심사를 할 때 어땠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황두진 심사 초기부터 ‘누가 수상할 것인가’ 이전에 ‘올해 수상자가 나올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알다시피 이 상이 한 회 걸러서 한 번씩 수상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으로서 그런 맥락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회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제6회 심사위원단 또한 ‘올해는 꼭 수상자를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개별적인 작업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심사 과정은 모든 출품작을 답사하며 치열하게 분석하고 토의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개별 작품의 수상작으로서의 적합성 여부는 물론이고, “이 상의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 상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무엇일까”에 관해 매우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점이 세 개 찍힌 상황에서, 네 번째 점이 어떤 작업에 찍히냐에 따라 이 상의 미래 가치에 상당한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김종성 선생님의 입장에 빙의하면서 판단했다.
다만, 나는 테크놀로지 자체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가 시간에 따라 계속 달라져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대의 방향을 중요한 변수로 두었다. 나인브릿지 파고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미 접했었지만, 이 상의 후보로서 다시 살펴보며 테크놀로지의 견고함이나 실용성 같은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유혹이 되는 시대라는 지점을 잘 포착해낸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저 또한 이정훈 소장님의 수상에 만족했고 기쁨을 누렸다.
한국 건축에서의 테크놀로지, 그 한계와 가능성
임진영 김종성 선생님께서 상의 취지를 설명하며 말씀해주셨지만, 한국 건축에서의 테크놀로지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소외된 영역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축의 정직함을 드러내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일면이라면, 그것은 곧 시대적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할 것 같다. 김종성 선생님 시대에는 알루미늄 샤시 하나도 제작하기 힘든 상황에서 고군분투했다면, 패널분들이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테크놀로지의 시대적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속한 세대가 어떤 현실에 놓였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듣고 싶다.
이성관 1960년대 후반, 70년대 초를 돌아보면, 스카이라이트, 아트리움 등을 미국의 건축 잡지에서 예사로 볼 수 있었고, 우리도 국내에 그런 디자인을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제조 산업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썼다가는 결로 문제, 코킹 문제, 유리 단열 성능 문제 등 하자나 책임 문제가 발생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내가 몸담았던 정림건축의 경우에는 전문가로서 윤리를 지키는 것을 더욱 중시했고, 결과적으로 작품을 위한 실험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때 공간건축은 매우 과감한 전략을 펼쳤는데, 해외개발공사 위에 탑라이트 같은 부분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고, 실제로 하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건축주에게 욕을 먹더라도, ‘그까짓 거 한 번 해봐!’ 하는 식으로 밀어붙였고, 잡지에 기록을 남겼다.
이제는 돈과 시간만 있다면, 건축가가 컨설턴트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탄허대종사 기념박물관을 설계할 때, 폭이 7.5m에 높이가 2.6m인 개구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렸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규모의 공사에서는 그것을 시간 내에 구현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중간에 2.5m마다 기둥을 세워서 소형 문을 세 개 만드는 식으로 타협하려다가, 아이디어를 살리고 싶어서 해결 방법을 강구했다. 최종적으로 공항 격납고 문을 제작하는 업체를 찾아 연락하니까, “그 정도 크기의 문을 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곧바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런데 그 업체가 당장 제작할 수 있는 문은 바람을 막는 수준의 디테일이라 건물에 즉시 적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와 상의해서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했고, 몇 차례 실험 끝에 건축적 레벨의 디테일로 끌어올려 구현해냈다. 그 업체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봤지만, 다음에 다른 건축가가 그런 대형 문을 쓸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바로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림은 쉽게 그릴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도의 기술자가 아닌 일반적인 수준의 현장 노동력으로, 저예산으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황두진 건축에서 테크놀로지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보통, 건축과 테크놀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구조다. 하지만 재료, 디테일, 외피, 기계 설비, 전기 설비와 같은 모든 것에 다양한 종류의 테크놀로지가 들어간다. 이런 관점에서 거칠게 건축의 역사를 둘로 나누자면, 구조, 공간, 외피 정도가 건축에서 다루는 기술 대부분이었던 시대의 건축이 있고, 기계, 설비, 기타 여러 부수적인 테크놀로지들이 건축과 결합한 시대의 건축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건축가들이 그 이전 시대의 건축가와 가장 구별되는 지점은 이처럼 편재(遍在)하는 테크놀로지와 건축의 기본 틀의 조화를 찾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생각도 한다.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를 작업할 때 황경주라는 뛰어난 구조 엔지니어가 있었다. 그리고 설비의 측면이나 유지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도 건물 구석구석에 표현하려고 했었다. 이 프로젝트에도 탄허대종사 기념박물관처럼 우연히 격납고 기술을 빌려다가 처리한 벽면이 있었다. 이처럼 이제는 우리 같은 소규모 설계 조직이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는 범위 내에 그런 엔지니어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협력하여 꽤 밀도 있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모든 범주의 일을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옛날에 김종성 선생님께서 처음 귀국하셨던 시절에 알루미늄 프로파일 하나도 제대로 뽑아낼 수가 없어서 잡철로 제작한 커튼월을 만들던 시절에 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이 상은 다양한 테크놀로지들이 건축에 접목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미학이나 가능성을 포용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이정훈 나인브릿지 파고라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산업 시스템을 공부할 기회였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린 비정형 유리를 실제로 쓰기 위해서는 단열률, 열관류율을 맞춰야 했고, 우박이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반강화 접합유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비정형, 더블 밴딩된 형태의 유리를 국내에서 제작하기 위해 모든 업체를 찾아 연락을 취해보고 설득해봤는데, 결국은 안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차적으로 국내 시장이 작기 때문에 특수 유리를 제작하는 업체가 많지 않고, 클라이언트 입장을 고려하면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일을 맡기자니 위험 부담이 컸다.
그래서 결국 중국으로 가게 됐다. 중국 심천의 공장에서는 MVRDV나 렘 쿨하스의 프로젝트, 프랭크 게리의 루이비통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험이 있었고, 당연히 더블 밴딩 유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주문 제작과 수입에 드는 비용 전반을 따져봤는데, 생각보다 비싸지가 않았다. 이것은 마치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의 특허 기술을 빌려오는 것이 직접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비해 너무 저렴하기 때문에 국내 기술이 발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을 배웠던 시게루 반 사무소나 자하 하디드 사무소의 경험을 비춰보면, A 엔지니어가 못하면 더 좋은 B, C 엔지니어를 찾아서 그가 새로운 솔루션을 제안하도록 만드는 프로세스가 건축 설계의 과정이었다. 국내에서 이런 식의 건축 설계가 어려운 주요 이유는 엔지니어 풀이 적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는 적은 설계비나 의사소통 문제 등 시장을 확대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지점이다. 그런 한편, 한국이기 때문에 극한의 아이디어를 시도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그러므로 건축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클라이언트를 자극해서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산업 구조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제조 기술을 수출상품으로 만드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욱 수학적인 의미의 원과 둥근 것은 다르다. 나는 원보다는 둥근 것을 만들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건축하는 과정이 유치할 수도 있다. 한편,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대청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한 건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늘 고민한다.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을 설계할 때에는, 본질만을 남기기 위해 무엇을 제거해야 할 것인지를 주안점으로 두었다. 그래서 굉장히 정교한 기술을 동원해서 버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 생각이 구조, 멀리언 디테일에 반영된 것 같다. 궁극적으로 (건축적인 표현이나 기술적인 성취를 드러내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구축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테크놀로지’에서 상당히 벗어난 사람인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테크놀로지’를 많이 이용한다.
배형민 김종성건축상의 취지를 이야기할 때 ‘테크놀로지’가 문제의 용어라고 생각한다. 여기처럼 건축계 자리에서는 이 상이 “디자인과 테크놀로지”에 관한 것이라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또는 서구권에서 테크놀로지는 최첨단 기술을 뜻한다. 김종성 건축상의 수상작들에서 드러나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로 김종성건축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 현대 건축은 서구 중심의 기술혁신론과는 다른 기여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김종성건축상의 취지를 말할 때 테크놀로지 대신 ‘테크닉’, ‘텍토닉’, 또는 ‘생산기술’, 어떤 말을 어떤 뜻에서 써야 할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 숙고 과정이 한국 건축을 이해하는 한 가지 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1
오늘의 건축과 테크놀로지
임진영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테크놀로지의 정의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결국 오늘의 기술을 어떻게 건축에 담아내야 하는가의 논의인데, 오늘의 건축에서 테크놀로지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듣고 싶다. 특히 김종성 선생님께서는 그간 구조, 공간, 비례, 제도를 건축의 원칙으로 배워서 몸으로 익히셨고, 절대적인 비례감과 스케일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해오셨는데, 오늘날의 건축도 동일한 기준으로 보시는지 혹은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하다.
최욱 평상시에 심장이 뛰는 것을 의식하지 않듯이, 건축에서 테크놀로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디자인을 할 때 테크놀로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테크놀로지는 합목적적으로 쓰여야 한다. 또한 테크놀로지는 건물 곳곳에 숨어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고 근원적인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원하는 바가 될 수는 없다. 도리어 그것이 느껴지지 않도록 수용하는 게 내 건축 작업에서 추구하는 방향이다.
김종성 최근 30년 사이에 구조를 해석하는 프로그래밍 능력은 엄청나게 발전했어도, 테크놀로지 자체가 많이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구조재는 지난 100년 동안 존재해온 철골, 철근콘크리트,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서 6m 스팬을 만드는데 제일 합리적인 구조재는 여전히 철근콘크리트다. 그러니까 테크놀로지라는 키워드는 어려운, 혹은 첨단 기술을 발굴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기술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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