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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유산

심미선

건축가는 건축으로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당시의 조건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건물의 계획부터 준공에 이르는 순간까지 책임진다. 여기에는 정해진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며, 그 과정은 건물 규모와 상관없이 늘 밀도가 높다. 그렇게 땅 위에 선 결과물은 관계자 모두의 한 시절을 담아낸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건축사 속 건축물처럼 자신의 작업에 불멸의 생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 우세종인 아파트만 해도 완공 후 30년이면 사망 선고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그래서인지 건물 수명에 대한 우리 인식은 30년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뒤 건축가는 무엇으로 (자신의) 건축을 말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창작 과정에서 생산된 스케치, 도면 등 건축물 생산에 직접적인 정보를 담은 1차 자료일 것이다. 여기에는 건물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정보가 담겨있기에 인쇄물 등 완결성 있는 다양한 매체 형식으로 보관하는 추세다. 자료의 범위를 넓히자면 설계 과정에서 오가는 서신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제작한 모형 등도 포괄할 수 있다. 이때 건축가는 “스스로 자신에 충실한 아키비스트가 되어”1야 한다. 어떤 자료를 남길 것인지 선별하고 어떻게 보관할지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이를 기록한 문서로 건축을 말할 수 있다. 글은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건물 하나에 국한하지 않는 더 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스케치나 도면 등 건축의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 닿기 위해서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사진, 최근에는 영상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사무소를 운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고, 직접 교육자가 되어 후학을 배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협회, 재단, 기금 등을 통해 건축계를 독려하고 더 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모두가 당연한 이야기고, 또 이 모든 것을 한다고 해서 의미가 당연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로서의 철학과 꾸준한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어떤 맥락의 건축이 남겨진다. 그래서 건축가 김종성이 수십 년간 이런 기본을 아우르며 자신의 건축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귀한 본보기가 된다.

김종성이 국내 건축계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 같다. 1950년대에 도미하여 일리노이공과대학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사사하고 그와 함께 일한 김종성에게 ‘건축’은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 ‘시대정신’, ‘테크놀로지’는 외래어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 순수한 의미에 따라 건축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다.2 그가 1970년대 후반 서울로 다시 돌아왔을 때, 개발 시대의 국내 제조업과 건설 기술 현황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미스 사무실에서 수행한 프로젝트의 98%에 준하는 완성도’3의 힐튼호텔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4 건축가로서, 교육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유·무형의 건축적 자산을 축적해온 그는 현역 은퇴 이후 지금까지도 국내 건축계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목천김정식문화재단 구술채록, 한국건축가협회 김종성건축상 등이 그 연결고리다. 이제 그의 ‘건축’은 김종성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 기록되고 연구되고 있다.

『건축신문』 27호는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17일 원오원 아키텍스에서 열린 이 포럼은 건축가 김종성의 아카이브, 구술집과 그의 이름을 딴 건축상 등을 돌아보며 한 건축가가 걸어온 길이 제도적 실천을 통해 다각도로 축적되고, 관련 연구자와 후배 건축가가 연구하여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초로 작동하는 모습을 조감하는 기회였다. 『건축신문』은 이 자리를 기록하여 건축가의 유산이 어떠한 형식으로 존재하며, 건축계에서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현영의 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김종성 컬렉션의 자료 수집 과정과 아카이브 운영 관리 활용법 등을 함께 설명한다. 목천건축아카이브의 김종성 구술채록을 담당했던 최원준은 역사학 연구 차원에서 구술채록의 의의로부터 출발해 김종성 구술채록의 경험을 공유한다. 김현섭은 김종성건축상을 비롯한 국내 주요 건축상의 계보를 살펴보며, 김종성건축상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보완점을 짚는다. 이어서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와의 대화와 수상작을 함께 보며 김종성의 건축이 추구한 목표와 가치가 후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자리에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상 역대 수상자)이 함께했으며, 임진영(건축 저널리스트)이 대화를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김종성의 대표작이자 최근 매각, 철거 이슈로 조명된 힐튼호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페이지, 『건축신문』 12호에 게재되었던 김종성과 천장환의 인터뷰 페이지를 통해 김종성의 건축을 돌아보며 마무리한다.

심미선 건축신문 편집자

건축가의 유산

분량2,419자 / 5분

발행일2022년 1월 20일

유형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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