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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을 공유하는 건축과 재난

이종건

건축과 재난은 불가분의 관계다. 재난이 건축을 부르고, 건축이 재난을 부른다. 건축과 재난은 출발점을 공유한다. 둘 다 폭력(적)이다. 건축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력이며, 재난은 건축(과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또한 재난은, 건축도 다르지 않은데, 근본적으로 인간의 한계 지점에서 출현한다. 그리고 한계의 출처는 예측과 대비와 ‘인간적인 것’이다. 예측과 대비는 이미 발생해왔던 것에 기반을 두면서, 안전과 경제성 간의 타협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구조물도 경제적 이유로 최악을 상정하지 않는다). 건축과 재난은 또한 윤리의 한계와 맞물린다. 한국의 재난은 모조리 사리사욕과 부정부패가 씨앗이다. 그래서 재난은 윤리를 추궁한다. 게다가 일상을, 지금여기를 단절시켜 삶을 전면적으로 문제화한다. 크로노스가 중단되고 아이온이 열린다. 아이온은 삶 바깥에서 도래하는 시간, 곧 하늘의 시간이다. 삶의 기분을 전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옮긴다.

인간이 만든 것이 인간을 해치는 사고는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건축과 재난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손꼽히는 몇몇 재앙들을 열거하면 이러하다. 1845년 5월 수백 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무게에 못 이겨 영국의 야마우스 다리가 무너졌다. 4백여 명이 강에 빠져 79명이 죽었는데 59명은 아이였다. 1860년 1월 미국 메사추세츠의 5층 건물 펨버톤 제분소가 붕괴했다. 인부 145명이 죽었고 166명이 다쳤다. 1889년 5월 미국 펜실베니아의 사우스포크 댐이 무너져 2,209명이 죽었다. 1907년 9월 세계에서 가장 긴 켄틸레버 다리였던 캐나다의 퀘벡 다리가 1907년, 1916년 두 번에 걸쳐 붕괴했다. 첫 번째 붕괴 후 4년에 걸쳐 다시 세웠지만 단 15초만에 또 무너져, 인부 75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9년 후 또 다시 가운데 스팬을 들어올리다가 강에 빠뜨려 13명이 죽었다. 1922년 1월, 코메디 영화를 상영하던 워싱턴DC의 니커보커 영화관이 이틀간 지속한 눈보라의 눈 무게를 못 이겨 붕괴했다. 영화를 보던 사람들 98명이 죽고 133명이 다쳤다. 1968년 5월 영국 동 런던의 22층 신축 건물 로난 포인트 타워가 일부 붕괴해서 4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미국 보스톤 소재 존 핸콕 타워가 시속 72킬로 속도 바람에 모든 창문이 가로에 떨어져 교통마비를 초래했다. 시공 중 창 구멍들을 합판으로 막아둔 바람에, 사람들이 존 핸콕 타워를 ‘합판 궁전’이라 불렀다. 1976년 6월 미국 아이다호의 테톤 댐이 무너져 11명과 소 1만 3천 마리가 죽었다. 1999년 11월 이탈리아의 6층 아파트 콤플렉스가 무너져 거주자 71명 가운데 4명만 생존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상징인 110층 쌍둥이 건물 WTC가 테러로 파괴되어 2,97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9년 중국 상하이 소재 13층 건물 로터스 리버사이드 콤플렉스가 무너졌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덮쳐 원전 사고가 났다. 사고 수습과 방사능 피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의 사바 빌딩이 무너졌다. 은행과 가게들과 아파트로 이루어진 8층 상업건물로서 벽에 금들이 발견되어 폐쇄되어 퇴거조치 받았지만 상층부의 옷 공장들이 잔존해 있었다. 2,500명이 구출되었고 적어도 1,127명이 죽었다. 올해 4월 네팔 대지진으로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8,400명 이상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카트만두 계곡의 더르바르 광장의 건축물 등 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파괴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몇 개의 큰 재난은 이러하다. 1970년 4월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5층 와우아파트 한 동이 준공 3개월 후 무너져 주민 33명이 죽고 38명이 다쳤다. 1971년 크리스마스 날 부산 서면 번화가에 위치한 대연각 호텔에 불이나 163명이 죽고, 7명이 실종하고, 63명이 다쳤다. 1994년 10월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져 버스를 포함한 출근길 차량 6대가 추락해서 32명이 죽었다. 이듬해 6월 서울 강남구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502명이 죽고 6명이 실종했으며 937명이 다쳤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죽고 21명이 실종했으며 63명이 다쳤다. 작년 2월 17일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이 눈 무게를 못 이겨 천정이 내려앉아 10명이 죽고 103명이 다쳤다 (같은 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승객 476명 중 259명이 죽고 9명이 실종한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1월 경기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에 불이 나 1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인간에게는 재난과 맞물려, 재난 대비와 재난 수습이라는 두 가지 시점의 행동이 열려있다. 재난 대비의 막중한 중요성은 언급이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건축가)이 재난 대비를 좀처럼 철저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예사문제가 아니다. 돈과 좁은 안목이 일차적 이유다. 지진, 바람, 적재 (눈, 사물, 사람) 하중 등에 따라 구조물의 강도를 결정하는데, 최악을 상정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에 기초한 설계 기준을 구조적으로 안전하다 여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내진설계 대상 공동주택들 중 서울은 9만 5,866동 중 3만 5,520동만 내진 기능을 갖췄다. 기존 고속철도와 공공 건축물, 학교시설 등의 내진성능 확보 비율은 최대 22%에 불과하다). 재난은 근본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까닭에 재난상황 그 자체를 고려해야 마땅한데, 불(난)연재, 특별 피난계단, 피난동선 정도의 일차원적 규제 이외에 그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건축가들은 뉴욕 9·11 테러로 쌍둥이 고층빌딩이 무너지고 나서야, 고층건물이 재난을 당했을 때의 상황을 고려한 아이디어들을 고작 몇 개 내어놓았을 따름이다. 재난이 덮쳤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단일 초고층 거대건물을 적은 볼륨의 고층 건물 여러 개로 나눠 세운다거나, (위급할 때 옆 건물로 신속히 이동하도록) 초고층 건물을 가까운 초고층 건물(들)과 마치 팔을 낀 것처럼 수평볼륨으로 연결시켜, 피해를 줄이려는 의도다. 우리나라, 특히 부산에는, 제2롯데월드 월드센터(555m, 123층)와 같은 초대형超大型 구조물이 즐비한데, 거주공간을 그것도 중국자본의 힘을 빌려 세웠고, 세우고 있고, 세우려고 앞을 다툰다. 높고 큰 건물로써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개발업자의 이익이고, 가장 크게 잃을 수 있는 것은 주민의 생명이니, 땅과 풍경과 삶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본의 막대하고 거센 흐름을 제어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무지와 무기력이 안타깝다.

서구는 21세기 이후 상황이 좀 다르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 시점에 터진 9·11 테러가 중대국면의 계기이긴 하지만, 영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들은 수십 년 전부터 건물설계에 테러와 같은 재난를 고려했다. 건물의 무성격화에서 접근 동선에 이르기까지 재난에 대비하는 여러 디자인 지침들을 마련했다. 캘리포니아의 ‘메마른 미래들Dry Futures’과 같은 가뭄 대비 설계안 공모처럼, 항차 도래할 재난에 대한 디자인 측면에서의 선제적 대응도 중요하다. 현재 LA 소재 <A+D 미술관>에서, «쉘터: 엘에이에서 사는 법 재고하기Shelter: Rethinking How We Live in Los Angeles»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는데, 전시작품들은 밀도, 건설가용 부지, 교통망, 다양성, 경제상황, 환경 등 도시상황의 (부정적)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주거유형을 다룬다. 그리고 LA 시는 항차 도래할 가뭄위기 대책을 세우기 위해, LA 강 마스터플랜 총괄건축가로 우스꽝스럽게도 프랭크 게리를 임명했는데,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그는 강물이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운명을 저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복구나 재생 기술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자신의 모델링 소프트웨어 사용을 고집한다.

외국은, 개인, 단체, 심지어 이케아와 같은 사기업마저 재난 수습에 체계적이고 적극적이다. 건축가로는, 작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건축가 시게루 반이 특히 유명하다. 그는 뉴질랜드, 스리랑카, 일본, 네팔 등의 재난 수습에 몸소 뛰어들었는데, 올해 두 번의 지진으로 막중한 사상자를 낸 네팔의 ‘집 잃은 자’들을 위해 ‘네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그의 디자인은 자신이 오래 전부터 발전시켜온 마분지 튜브 트러스와 지진 잔해들로 구성되었다. 홍콩의 찰스 라이와 동경의 타케히코 스즈키는, 네팔의 수천 명의 ‘집 잃은 자’들을 위해, 피해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재료(대나무와 주변 가용 자재들)로 누구든 사흘 안에 지을 수 있는 임시 쉘터를 디자인했다. 1972년 본격적으로 ‘재난 돕기 프로그램National Disaster Assistance Program’을 체계화시켜 현재 600명 이상의 회원이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있는 미국 건축가협회(AIA)는, 네팔 재난 수습을 위해 ‘Clinton Global Initiative (CGI) Commitment to Action’을 발족시켜 삼십 억 이상의 예산을 들여 지역 단체들과 함께 재건에 나섰다. 터키의 ‘디자인노비스 스튜디오Designnobis Studio’는 2013년 자국의 지진 피해자들(2천 2백만 명으로, 전쟁 피해보다 세 배 이상)을 위해 임시 쉘터를 디자인했는데, 지붕과 바닥이 30센티 두께로 납작하게 되어 트럭 한 대에 24 유닛을 적재할 수 있다. 이케아는 최근 이라크와 에티오피아의 ‘집 잃은 자’들을 위해 임시 쉘터를 디자인했다. 작년 스웨덴 ‘디자인 어워드’에서 명예상을 수상한 이케아 디자인은, 심사를 맡은 디자인 비평가 앨리스 로스손이 “이례적으로 섬세하고 지적인 대응”이라 평했다. 이케아 재단은 임시 쉘터를 유엔 난민기구에 공급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매일매일 잊어가고, 해결하겠노라 말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다 밑에 잠겨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건축가 조성룡은 자신의 제자들과 세월호 모형을 밤새 만들어 진도 현장 구조본부에 전달했다. 국내든 국외든 크고 작은 재난 시, 우리 건축가나 건축사회가 지금까지 한 일은 거의 없다. 재난 (예방은 고사하고) 수습을 위해 가동할 수 있는 조직 또한, 우리의 어떤 건축단체에도 없다. 삶의 공간을 짓는다는 건축가가 왜 이렇게 재난에 무감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것은 매일매일 죽음의 힘(충동)과 싸워 쟁취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종건

경기대학교 교수. 「건축평단」 편집인 겸 주간. 작년에 건축 개인전 《Outcast/ed》을 열었고 『건축 없는 국가』, 『문제들』 등 여러 권의 비평집을 냈으며, 『건축과 철학: 바바』, 『차이들』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출발점을 공유하는 건축과 재난

분량5,278자 / 10분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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