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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교육에 대한 진단

현창용, 신주영, 황현혜, 임윤택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한 세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이들은 실무 교육이 갖는 한계와 설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건축이 가능함을 알려줘야 한다고 진단한다. 건축가에게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에, 여러 경험과 고민을 할 수 있는 건축 교육이 되길 바라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H2L: 형식적 실무 교육

현창용 5년제 건축학인증제도는 그 자체로 종합적인 문제다. 지금으로선 해결할 방법이 없다. 캔버라 협약에 의한 과목과 커리큘럼만을 가르치고 배우는 획일화된 교육이고, 각 학교의 개성을 몰살시키는 방식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졸업한 뒤 건축사 자격증을 따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도가 건축 교육의 하향 평준화를 야기했다고 본다.

두 번째 문제는 실무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간의 괴리다. 요즘 대학 커리큘럼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보인다. 대학에서 설계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건축계획 전공의 박사학위자가 대부분이고, 이들이 실무 교육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실시설계 수업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설계 수업 마무리 단계에서 공사 현장과 설계 사무소를 잇는 매개체로서의 실시설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존 도면을 베끼는 과제만 반복한다.

실시설계 도면 그리는 것은 회사에서 배우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실무 교육은 학교에서 했던 모든 가상 프로젝트의 허상을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깨는 것이다. 실제 땅과 법규 위에 주어진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까딱 잘못하면 건축주가 몇천만 원의 손해를 보거나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다. 처음 건축주와 만나서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그의 요구사항이 계획 단계에서는 어떻게 반영되는지, 인허가는 왜 하는지, 각 업무의 프로세스와 체크리스트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실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그런 감각을 갖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도록 가르쳐야 한다.

moc: 설계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신주영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학사과정에서의 건축교육이 설계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디자인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그 외의 교과목은 소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졸업 후 진로도 설계사무소로만 귀결되는 점이 안타깝다. 건축가에게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인데, 여러 경험과 고민을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되길 바란다.

황현혜 우리 둘 다 5학년 설계 스튜디오를 맡고 있다. 학생들이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다. 학기마다 두 개 설계 과제를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에게 졸업 후 선택권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설계사무소에 취업하거나 아니면 건축 외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설계사무소 외에도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찍 알려주고, 본인의 재능을 다방면으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

신주영 첫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보면, 여러 분야의 팀이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구조였다. 기획홍보팀이 프로젝트 전반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도시계획팀이 도시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MD 담당자가 상업적 전략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의견을 달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늘 건물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됐다. 건축을 설계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방식으로 건축을 하고 있는 지인을 소개하자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건축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친구, 화장품 회사에서 건축과 브랜드 인테리어 부문 총괄 매니저로 일하면서 입지 분석부터 설계까지 넓은 업역을 커버하는 친구, 도심 속 유휴공간을 찾아내 콘텐츠와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하는 친구도 있다. 이런 분야는 설계 경험이 바탕이 되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의 기회를 주면 좋겠고, 학생들도 스스로 자신의 관심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원더 아키텍츠: 여전히 거창하기만 한

임윤택 지금의 건축교육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대단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망령이 건축교육에 떠다니는 것 같다. 설계 스튜디오 크리틱을 가보면 알 수 있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었다. 학생들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 공부했으면 좋겠다. 내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하지 못해서 사회에 나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학교 다닐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궁금증이 늘 있었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감각이 좋은 학생이 ‘좋아 보이는’ 결과물을 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업 소스가 떨어지면 설계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자꾸만 건축 외부에서 거창한 이야기를 끌어오고, 그걸로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건축 자체만으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교육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큰 사회 문제들을 다 건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졸업 설계에 여전히 보인다. 그러다가 막상 현장에 나오면 어려움을 겪는다. 배우고 생각했던 것과 맞닥뜨리는 일 사이의 괴리가 크다. 잘못 배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직능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현실이 어떤지, 그 현실 속에서 어떤 건축이 있었는지 알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건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줘야 한다.

건축 교육에 대한 진단

분량2,440자 / 5분

발행일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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