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앞건축
김도란, 류인근
분량6,843자 / 14분 / 도판 18장
발행일2020년 2월 29일
유형인터뷰
요앞건축은 건축의 이상과 실제 사이 접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한다. 일상에서 발견한 장면을 건축에 투영하기도 하고, 건축적 상상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기도 한다. 작업 과정에서의 자유로운 상상은 그대로 실제가 되기도 하고, 건축의 한계 덕분에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단락에 이르기도 한다. 경계에서의 실험과 새로운 시도는 통제된 결과 너머의 지점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고정되지 않은 열린 결말의 시나리오는 작업의 즐거움이다.
건축 담론에서 도시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하지 않은 건축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모든 건축 프로세스에서 대면하게 되는 관습이나 정해진 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실험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대단한 철학을 담거나 새로움을 추구하진 않는다. 습관처럼 당연시하는 흐름과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 벗어나 그것을 경계할 뿐이다. 작은 의심에서 파생된 대안은 엉뚱해 보이지만 합리적인 무엇인가를 내놓기도 한다.
건축은 하나의 완결된 오브제이기도 하지만 건축가가 의도하고 연출한 장면의 결합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 공간, 환경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을 사진에 담듯 건축으로 연출한다. 본질적으로는 좀더 친밀한 공간에서 시작된 시퀀스에 집중하려는 노력이며, 여기서 파생된 개념은 공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모방되고 전이된다. 우리가 의도한 장면의 결합은 하나의 전체를 만들고, 그렇게 완성된 오브제는 도시 안에서 나지막한 내러티브를 시작한다.
우리는 작업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결과물이 다시 작업 과정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건축적 고민과 시도를 계속해가고자 한다. 우리가 완결한 건축이라는 오브제는 어떤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스펙트럼의 비일상적 경험과 새로운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주기를 바란다.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공 프로젝트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우리 생각과 건축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 프롤로그에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작업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고, 사람들은 우리 건축물에서 즐거움을 얻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다.
요앞건축
요앞건축은 건축, 인테리어, 아이템을 기획, 설계, 판매하는 디자인 집단이다. 건축적 상상을 건물에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 분야로 이어나가 아이템으로 생산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디자인 작업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공유하기를 바라며, ‘요앞에 있는’ 건축가로서 친근하고 가까운 이미지로 주변에 다가가고자 한다. yoap.kr

앞선 실무 경험에서 얻은 것은?: 반감
정다영 이번 포럼에 초대된 건축가 중에는 이름난 건축가의 아틀리에 출신이 여럿 있었지만, 공간, 정림, 삼우 같은 대형 설계사무소 출신은 드물었다. 독립하기 전의 경험이 결국 지금 작업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앞의 건축가들은 모두 공간건축 출신인데 그 당시 경험이 어떻게 녹아 있나?
류인근 공간건축에서의 실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학생 때 외골수였다. 입사해서도 풋내기 신입 주제에 선배들이랑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싸우기도 하고, 어디서 본 이미지를 따라 디자인한 것 같으면 분노하기도 하고 그랬다. (웃음) 챙겨주는 선배도 없었고, 아웃사이더처럼 벗어나 있었다. 각종 마감만 뛰고, 1년에 20개 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설명하려면 공간건축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강요한다거나, 임산부가 있는 회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그걸 멋있다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회사에서 알게 된 기성 건축가들에 대한 반감이 모여 지금의 내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 독립해서 좋은 건축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도 외부 발표 자리에서는 건축을 가볍다고 설명해온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사무소를 연 계기는?: 퇴사
김도란 공간건축에서 퇴사하던 시점에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던 동료들과 함께 개소하게 되었다. 당시엔 반드시 건축설계를 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다른 디자인 영역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디자인 일을 하면서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시작했다.
류인근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퇴사 직전 둘이 함께한 프로젝트 『장보고 과학기지 프로젝트북』(2011)이 있었다. 공간건축에 있을 때도 우리가 하는 일을 대중에 알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장보고 남극기지를 홍보하는 책을 기획, 출간할 필요성을 느꼈고, TF팀을 결성했다. 거기서 김도란 소장과 처음 함께 일하게 되었고, 책을 만드는 3개월간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한 이후에 공교롭게 공간건축의 사정이 어려워졌고, 각자 연이어 퇴사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들이 실제로 지어지는 단계에 이르면서 사무소를 내게 되었다.
작년에는 사무소를 리뉴얼했다. 디자인 전반을 폭넓게 다루던 방향에서 돌아서서 다시 건축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했고, 함께 일하던 신현보 소장이 따로 독립했다. 사무소 규모도 직원 셋에서 한 명으로 축소했다.
김도란 이때 디자인밴드요앞에서 요앞건축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그러면서 정상경 소장이 합류했다. 대학 졸업 동기이자 공간건축 입사 동기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해 영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최근 귀국했다.
현재 관심사는?: 사무소 브랜딩
류인근 우리가 처음 독립해서 인터뷰할 땐 철학이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방향이 없다’, ‘잘 모르겠다’, ‘우린 주어진 일을 그때그때 열심히 한다’고 답했다. 만약 공간건축에서 퇴사하기 전에 임금을 제대로 받고,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계획을 세워 어떤 방향을 정해서 독립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당장 이번 달에 돈 버는 일을 해야 했다. 현실적인 입장이었다. 집장사가 동네 빌라 짓는 견적 내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조금씩 확립하고 의미를 부여해갔다.
그렇게 6년쯤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고통스럽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지금은 뭔가를 말해볼 수 있는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현상설계나 건축상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또 작품집이든 단행본이든 우리만의 출판물을 기획해서 만들 것이다. 특히 우리는 우리 관점으로 직접 찍은 건축 사진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축적된 자료도 많다. 회사 몸집을 줄인 만큼 일에서 조금 자유로워졌고, 아직은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서 다행이다. 당분간 회사 브랜드를 만드는 데 좀더 집중할 계획이다.


류인근의 작업방식: 그림 그리듯, 영화 찍듯
류인근 나는 설계를 할 때마다 영화나 시각 자료를 참고해서 어떤 장면을 먼저 그린다. 3D 툴을 활용하는 것보다 2D로 몇 장면을 그려보고 그걸 도면으로 옮기는 식이다. 그래서 작업 초반에 디자인 대부분이 결정된다. 설계안을 발전시키면서 수정은 하지만 처음 그린 장면은 그대로다. 그림도 하나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화가는 마치 프린팅하듯이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를 단번에 그려낸다. 이미 완성된 언어로 그 자리에서 톡 하고 찍어내듯 한다. 그래서 과정이랄 게 없다. 내가 설계할 때 그런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팀 작업이 어렵다는 점이다. (웃음) 그래서 나는 그려놓은 그림을 동료들 앞에 내놓지 않는다. 이런 작업 방식은 일반적인 설계 방식이 못 되고, 현상설계의 프로세스에도 맞지 않는다. 내가 가진 딜레마다.
박정현 건축 사진을 직접 찍는다니, 흔치 않은 일이다. 사진 촬영과 건축설계에 상호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설계 과정에서 사진을 고려하나?
류인근 설계 과정에 사진은 매우 중요하게 개입한다. 하지만 설명을 잘 못 하겠다. 내가 처음 건축을 배울 때만 해도 건축 정보가 귀한 시절이었다. (한국에 네이버라는 것이 막 생겼을 때였으니.) 다들 OMA의 『S,M,L,XL』 이나 『The Visual Dictionary of Architecture』를 들춰가면서 작업 소스를 찾곤 했다. 요즘 학생들은 핀터레스트 이미지로 그런 정보를 접한다. 건축주도 우리한테 JPG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이런 공간’, ‘이런 재료’를 주문한다. 길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는 모든 정보를 사진을 통해 얻는 시대에 설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시달려서 그런지, 어떤 규칙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는 나조차도 규칙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는데, 최근에 와서야 나름의 규칙을 정해보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건축이 더 가벼워지고 대중에게 소비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이템화’라고 할까? 주변 동료 건축가들이 요즘 아치를 많이 쓰는 것도 비슷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건축가는 연출가에 가깝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어떤 장면을 연출하느냐의 문제이고, 나는 어떤 이미지 작업에서든 연출에 훨씬 많은 시간을 쏟는다. 언젠가 우리 건물로 영화가 나오는 상상도 한다. 나는 건축이 콘텐츠화되기를 원한다.
청중A 앞서 발표했던 다이아거날 써츠와 작업의 기록에 힘을 쏟는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 팀은 사진작가에 의해 설계 의도와는 다르게 우연히 얻어지는 결과물을 즐긴다. 이에 반해 요앞은 직접 사진을 촬영한다. 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을 해본 경험도 있나?
류인근 막상 사진을 찍을 때는 머릿속을 백지화시키려고 애를 쓴다. 프로 사진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도 매번 초기화된다. (웃음) 그래서 촬영 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 유튜브로 다시 공부하고, 도면을 펼쳐놓고 어디를 찍을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현장에 가서는 완전히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감성을 배제하고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장면을 기록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촬영에 임한다. 한 번에 2,000장 정도 찍는다. 연결하면 동영상이 될 수도 있다. (웃음) 자신도 없고 소심해서 그렇다. 사진을 찍으면서는 스스로 최종 피드백을 받는 기분이다. 설계했던 동선도 체크해보고, 문도 열어보고, 최대한 많이 그 공간을 경험해보려고 한다.
‘건축은 상품이다’: 딜레마 혹은 자기방어
정다영 건축의 상품성, 콘텐츠화를 강조하는데, 역설적으로 작업 과정은 매우 아티스트 같다. 상품을 만들려면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접근하거나 복제 가능성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현재 작업 방식은 자신의 감각, 자신의 기억 속 장면을 소스로 삼는다. ‘내 작업 방식을 팀 동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상품화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다. 추구하는 바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과정과 결과가 다른 길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대해 생각을 더 듣고 싶다.
류인근 핵심을 찔러준 것 같다. 제주 선흘아이 작업은 어쩌면 그 고민의 결과인 것 같다. ‘내 자아가 건축으로 형상화된다면 이 모습일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비슷한 또래의 건축주와 여러 말을 토해내며 많은 의견을 나눴다. 그는 내게 엄청나게 많은 작업량을 요구했다. 나는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테니 디자인은 전적으로 맡겨달라’는 조건을 걸고 서로 합의했다. (웃음) 처음으로 단 한 번의 브레이크도 없이 내 디자인으로만 밀어붙인 작업이다. 이 건물을 놓고 다시 판단해볼 시간인 것 같다. 나는 아티스트인가, 건축가인가, 팝아티스트 같은 상업 작가인가? 아직도 모르겠다.
6년 전 미쉐린 매장 디자인 작업 때 내 태도는, ‘건축, 상품이지 뭐.’ 공간건축 시절에 생긴 반감, 대립, 혹은 투정 같은 것이다. (웃음) 미쉐린 프로젝트는 돈도 제대로 다 못받았고, 심의 과정도 정말 지난했고, 건축 업계가 짜증 났다. 그리고 건물을 어떻게 쓸지는 나와 별개의 문제였다. 그들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나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간판을 아무 곳에나 달고, 색깔을 제멋대로 정한다 한들 그들 상품이니 내버려 둬야 했다. 그럼에도 솟아오르는 그 불편한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몰랐고 혼자 삼켜야 했다. 내가 ‘건축은 상품이다’라고 되뇌는 것은 어쩌면 자기방어 기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구상하고 있는 조직의 모습은?: 리뉴얼 중
김도란 지난해까지는 소장 한 명이 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전담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중요한 디자인에 대해서만 다같이 논의하는 방식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서로의 일을 신경 쓰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러면 이게 한 회사라고 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너무 벌어지기도 했다.
류인근 소장 한 명과 직원 한 명이 팀을 이뤄 일하는 방식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소장들 사이에는 의견이 공유되지만, 직원들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 각자 맡은 일에 불균형이 생겼고, 다른 팀의 일이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것에 불만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경영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사무소 운영 방식을 전반적으로 리뉴얼하고, 프로젝트 수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조절할 계획이다.
인터뷰어 & 패널
-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박정현(건축비평가 /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 심미선(건축전문기자)
선흘아이









건축 개요
- 위치: 제주시 조천읍 선흘남4길 37-2
- 주용도: 단독주택(다가구주택, 민박)
- 대지면적: 1,575㎡
- 건축면적: 316.85㎡
- 연면적: 296.19㎡
- 건폐율: 20.12%
- 용적률: 18.81%
- 규모: 주동 – 지상 1층, 민박동 – 지상 1층
- 높이: 주동 – 7.6m, 민박동 – 8.1m
- 주차: 4대
- 외부마감: 골패턴 콘크리트
-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마모륨
- 공사비: 6억 7,700만 원
- 설계기간: 2017.11–2018.5
- 공사기간: 2018.6–2019.2
- 설계: 류인근, 김도란, 정상경, 김은아
- 구조설계: 한길구조엔지니어링
- 시공: G.A.U 아키팩토리
- 조경설계·시공: 듀송 플레이스
- 기계·전기설계: 정연엔지니어링
- 건축주: 개인
- 사진: 류인근
요앞건축
분량6,843자 / 14분 / 도판 18장
발행일2020년 2월 29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