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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의 글: 길 위에서 나눈 대화

심미선

여느 때보다 유난히 관찰자 입장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인터뷰 자리가 끝나갈 때쯤 인터뷰이로부터 역질문을 하나 받았다. “어떻게 하다 기자가 됐어요?” 간혹 듣는 질문이었지만, 진지하게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순간은 처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손에 꼽는 것이 젊은 건축가를 만나는 일이었다. 신인 발굴이야말로 매체와 기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때마침 『공간』의 젊은 건축가 연재를 비롯해 이들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사회에 첫발을 딛는 내 입장에서 앞으로 함께 걸어갈 동료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건축계의 젊음이란 당시 졸업반이던 나와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의 시차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막상 일을 시작하자 주로 담당하게 된 건축가 그룹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선생님 그룹이었다. 한 번 뵐 일이 생기면 검토해야 하는 내부 자료만 해도 엄청났다. 앞서 게재됐던 작업뿐만 아니라 선배 기자들이 해둔 인터뷰도 수십 페이지에, 본인들이 직접 남긴 말과 글, 외부 자료까지 더하면 하룻밤 벼락치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속에서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다. 그 건축가들 또한 많은 기자를 만나왔고, 매체를 대하는 방법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는 사전 조사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졌는지 모른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기회가 닿은 젊은 건축가와의 대화는 지난날의 경험과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를 묻는 임무를 맡고 보니 주어진 정보라고는 학력, 경력, 몇 건의 준공작(그것도 대부분 사진)이 전부였다. 불안했다.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인터뷰가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마저도 충실히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초조해졌다. 그나마 인터뷰가 포럼 후속으로 진행되어 몇 가지 단서는 더 얻을 수 있었다. 한편, 구체적인 질문을 만드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모여 지금의 그들을 만든 것은 분명하나, 아직은 건축가라는 자의식보다는 그 과정에서 개입될 여러 변수를 고려해 선택해온 결과에 가까울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해 『등장하는 건축가들』에 수록된 개별 질문과 공통 질문을 바탕으로 학창 시절 새 학기에 100문 100답을 적어 내려가듯이 매우 개인적인 질문부터 건축계 전반을 돌아보는 폭넓은 질문을 준비해 갔다.

걱정과는 달리 만남 자체는 편안했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거나 일을 했기에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문화적·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비슷한 질문을 던졌고, 모두가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 위에 즉흥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쌓았고, 점점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경험 부족으로 인한 섣불렀던 판단 덕에 인터뷰이의 말에 더 집중했고, 예측 불가능한 대화의 향방 덕에 인터뷰 시간 내내 흥미진진했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할 때도 가능한 한 각 팀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고심했고, 건축가로서의 가치관, 사고, 관심사, 꿈이 그 속에 은근히 배어나길 바랐다.

아직은 자신을 규정하고 싶지 않은 젊은 건축가들이기에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을 더 나누기도 했다. 신입 사원을 뽑는 기준부터 조직 운영 방식, 정체성에 대한 고민, 건축적 사유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불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젊기 때문에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거나,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계속 파고드는 고독한 투쟁이기도 하며, 전례 없는 사회현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군분투하는 현실이다. 그것은 작업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연대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이 프로젝트 기획자의 말처럼 “긴 시간 이어지는 탐색과 끈질긴 추적”이 발동해야 한다. 현장의 힘으로 달려 나갈 이들을 응원하며, 언젠가 다시 각자의 길 위에서 못다 한 대화를 이어갈 날을 기다린다.

인터뷰어의 글: 길 위에서 나눈 대화

분량1,989자 / 4분

발행일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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