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호텔, 아직 현재진행형
김종성, 황두진, 이정훈 × 임진영
분량4,895자 / 10분 / 도판 7장
발행일2021년 12월 16일
유형좌담
지난 11월 17일 비공개 포럼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적 유산>에서 김종성과 김종성건축상 수상자인 이성관, 최욱, 황두진, 이정훈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론 말미에 최근 건축계 이슈가 되고 있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호텔) 매각과 철거에 대해 설계자의 입장을 직접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앞서 공간사옥의 매각(2013)이나 삼일빌딩의 리모델링(2020) 등을 통해 한국 건축사의 중요한 건축물이 생을 이어가는 양상을 지켜봤다. 힐튼호텔 철거는 예견된 미래일지라도 아직은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그래서 최근 이어지는 논의들이 힐튼호텔을 비롯해 곧 매각과 철거를 맞닥뜨릴 다른 건축물들을 사회에 알리고,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중물이 될지 모른다.
김종성(서울건축 명예대표)
이성관(한울건축 대표)
이정훈(조호건축 대표)
최욱(원오원아키텍스 대표)
황두진(황두진건축 대표)
토론 진행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대표)
토론 날짜 2021년 11월 17일 (장소: 원오원아키텍스)

임진영 지난 5월, 힐튼호텔의 매각 관련 뉴스가 퍼지며 국내 건축계에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호텔 측이 매각 계획을 한차례 철회했다가 10월부터 다시 매각, 개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기사: 이지스 자산운용, 밀레니엄힐튼 매매계약 체결) 김종성 선생님께서 이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말씀을 청해 듣고 싶고, 비슷한 사례나 경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김종성 이번 서울 방문 전에 매각 절차가 재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이지스 자산운용 측이 부지를 호텔, 고급주거, 오피스 등 복합 시설로 개발하겠다고 언론에 홍보한 것이었다.
처음에 힐튼호텔을 설계할 때에는 그 부지가 경사지고 험한 땅이었고, 용적률이 400%가 안되게 설계했다. 그런데 현재는 용적률이 600%까지 허용이 되고, 주거 프로그램이 들어가면 용적률 인센티브가 적용되어 용적률 700~800%의 시설을 지을 수 있는 부지니까 자산운용하는 입장, 냉철한 시장경제의 논리로 본다면 힐튼호텔은 틀림없이 철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는, 20~30년된 동시대 건물을 선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시그램 빌딩을 예로 들면 좋겠다. 미국에는 문화재라는 단어도 없고, 그 개념이 없다. 그런데 뉴욕시에서 시그램 빌딩을 1989년에 랜드마크로 등록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물론 랜드마크 지정은 양날의 검이다. 소유주로서는 매각이 힘들고 변형을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현대건축사의 한손에 꼽을 수 있는 걸작이 철거되지 않고 있다.
반면, 파크 애비뉴를 마주보고 있던, SOM의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가 설계한 유니언 카바이드 빌딩(Union Carbide Corporation Headquarters)도 내 눈에는 걸작이었는데, 랜드마크로 등록되진 않았다. 그리고 그 건물을 산 체이스 맨하탄 뱅크(Chase Manhattan Bank)가 이 50층 규모의 건물을 자진 철거하기로 결정했고, 노만 포스터를 불러들여서 70층짜리 건물을 짓고 있다. 결국 그 건물이 랜드마크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주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시장경제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20~30년된 동시대 건물 중에, 건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물을 선별적으로 등록해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진영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국내 건축문화재의 지정기준은 조선시대 이전에 머물러 있다. 근대건축물은 등록문화재로 보호되지만 강제성이 약하다. 그러다보니 100년이 지난 이후에 우리 시대를 기록할 현대건축물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우려가 된다. 관련해서 다른 의견이 있는 분에게 말씀을 부탁드린다.
황두진 작은 매병 하나가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백 년 넘게 살아남을 확률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 20~30년 유지될 확률 중에서 무엇이 더 가능성이 높을까를 생각해보면 건물 쪽이 훨씬 취약하다. 많은 건물들이 시장 논리에 의해서 지어졌다가 그에 의해 없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그러한 법률적 보호장치를 만든 계기는 펜 스테이션(Penn Station, 1910-1963)의 철거였다. 그 일이 뉴욕시민에게 상당한 상실감을 주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자 뉴욕시에서 랜드마크 보호법(Landmarks Preservation Law)을 만들었고, 덕분에 몇몇 빌딩이 혜택을 보았다. (관련 기사: 랜드마크 보호법 50주년) 거시적으로 보면, 김종성 교수님 말씀처럼 법제적인 보호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뜻에 너무나 동감한다.
동시에 개별 건축가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일차적으로는 건축가 스스로 자신에 충실한 아키비스트가 되어서 1차 사료를 잘 보관하는 것이다. 건축의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정신과 영혼을 남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건축가 자신이 소장한 1차 사료다. 그것을 가공하는 일은 다른 이들의 몫일지 모르겠다.


이정훈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 지금까지 남아있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는 해체 후 철거될 계획이었고, 프랑스 정부에서도 없애려고 수십번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거기에는 건축가 에펠의 노력도 있었지만,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 프랑스 국민 자체가 굉장히 논쟁을 즐기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논쟁을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퐁피두 센터를 지을 때도 그랬다.
만약 프랑스에서 힐튼호텔과 같은, 건축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가의 작업이고, 그 건축가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담긴 주요 건축물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면, 아마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확률이 높다. 구체적인 논리에 의해서 오랜 논쟁을 거쳐 종국에 철거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거침없이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에서 아무런 논쟁도 없이 힐튼호텔의 매각과 철거, 개발 논의가 쉽게 이뤄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 일에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결국 국내 건축 분야의 문화적 토양이 성숙되지 않은 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축의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더 만들고 논쟁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건축가의 아카이브가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논쟁의 시발점이자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카이브가 있어야 기록으로 존재하고, 거기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그럼으로써 도시가 풍부해진다. 만약 이 건물을 다시 리뉴얼하는 등 건축가가 뭔가를 해야 한다면 거기에 새로운 건축을 덧씌우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 입장에서는 건물의 생명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0년, 200년 더 이어지면서 스토리가 풍요로워질 수 있는데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건축 문화의) 저변에 대한 논의는 항상 해왔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더 강력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황두진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면, 힐튼호텔 매각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실제로 몇몇 건축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고, 공청회를 한 번 열어서 이지스 자산운용 측을 초대하고, 공개적으로 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볼 필요는 있지 않나 이야기했다.
힐튼호텔 부지의 용적률이 상당히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알고 있는데, 기존 건물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잘 유지하면서 용적률도 맞출 수 있는 지혜를 모아볼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서 이지스 자산운용 측이 참석을 하면 건강한 토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매각설이 들어가면서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의 운명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모멘텀을 건축계가 만들어내야 한다.
임진영 2021년 오픈하우스서울에서 서울특별시 집수리지원센터와 함께 <빈집의 재발견 – 건축가 김중업의 사직동 주택>이라는 협업 프로젝트를 했었다. 이 주택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이 주택이 빈집으로 매물로 나왔을 때, SH에서 철거 후 사회주택 건립을 하기 위해서 매입했다. 그 당시에는 김중업이 설계한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집수리지원센터의 담당자가 매입 주택 리스트를 보고 그 집을 방문했는데, 자신이 아는 김중업 건축의 모든 요소를 그 주택에서 발견했다. 좀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건축물대장을 떼어보니 건축가 김중업의 이름이 있었다. 마침 집수리센터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직동 주택을 활용하기로 하고, 오픈하우스서울과 협업해서 전시 기간 동안 오픈하우스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놀라운 것은, 이 주택이 김중업 선생님의 대표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1,800여 명이 다녀갔다. 다녀간 분들은 그 집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반향이 너무나 커서 SH와 서울시가 그 집의 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관 소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희망적인 소식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힐튼호텔을 바라볼 때도 이런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설령 마지막에 떠나보내게 되더라도 이 건물의 건축적 가치를 돌아보고, 제대로 알리고, 미래를 논해보고 나야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힐튼호텔, 아직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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