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계포럼 질의응답
홍세화, 조효제
분량19,211자 / 4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7년 2월 1일
유형대담
본 대담은 ‘뉴 셸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전시와 연계해 개최한 ‘난민 포럼’ 중 사회운동가 겸 언론인 홍세화의 ‘세계 난민의 현실과 한국을 찾은 난민들’과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난민, 사회적 존재, 그리고 인권’ 강연에 이은 대담 및 관객과의 대화를 녹취·정리한 것이다.
홍세화 20년 가까이 프랑스에서 정치적 난민 자격으로 체류했다. 귀국 후 난민인권센터NANCEN의 공동대표를 맡은 뒤 지금은 일반회원으로 남아 있으며,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신문을 통해 세계 난민 동향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에게 벌금을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장발장은행의 대표(은행장)를 맡고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저서로 『인권의 지평』, 『인권의 문법』,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을 찾아서』 등이 있고, 역서로 『세계인권사상사』, 『인권의 대전환』, 『머튼의 평화론』, 『거대한 역설』 등이 있다.
일시 2016년 7월 15일
장소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필룩스

Q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겪은 참혹한 피해를 잊지 못해서 이주민에 대한 배려를 더 생각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홍세화 선생님은 일본으로부터 입은 피해에 대해서 오늘 얘기를 안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홍세화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엄청난 유민이 발생했고, 또 그것이 배경이 되어 분단 상황이 되고 전장에 엮이고 이런 과정들이 있었죠. 그런데 현재, 가령 난민정책이나 이런 것들은 전부 일본을 본뜨고 있거든요. 고령화정책이니 하는 것들도 일본을 본뜨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정부 자체가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게 일본인 거예요. 현재 한국의 주류 세력은 그것이 어느 부분이든, 언론이든 대학이든 국방이든 기업이든 옛날 일본강점기 때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방식을 답습하고 있지요. 사실 그 문제는 지금 질문하신 것을 거꾸로, ‘우리가 왜 거기에 갇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교육이라든지 모든 부문에서 일본강점기 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 말할 것 없이 분단과 전쟁 때문에 우리가 일제 무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왔기 때문이죠. 이런 맥락에서 문제를 봐야 합니다. 한 가지 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질책하는 시선을 보내야 하는데 못나게도 피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당한 바를 똑같이 하는 것을 덧붙여 언급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소위 갑(甲)질은, 뭐랄까요… 연쇄라고 할까. 회사에서 높은 사람한테 당했으면 높은 사람에게 항의해야 하는데 집에 와서 아내나 자식들에게 큰소리치는 이런 것이 바로 못난 자들의 모습이잖아요. 그런 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건축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유럽국가 같은 경우 문화적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난민을 수용해도 어울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유럽 등 선진국보다는 그런 면에서 빈약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난민들을 수용하면 오히려 저희가 난민들의 문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봐 솔직히 겁이 납니다.
홍세화 유럽에서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문화적인 충돌이잖아요. 바로 어저께죠.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있지 않았습니까. 84명이 사망한 걸로 집계됐는데 범인이 누구냐 하면 프랑스 사람입니다. 부모가 튀니지 출신이지만 이 사람은 프랑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중국적자입니다. 튀니지 국적도 갖고 있고요. 프랑스는 속지주의예요. 그래서 프랑스에서 태어나면 프랑스 시민권을 받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언어는 당연히 프랑스어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랍계이고 이슬람교도이고 하다 보니 그 문화 속에 있고 크리스천이 아닌 거죠. 그리고 프랑스에서 경기가 침체하면서 이 사람들이 제대로 사회에 통합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면 그 사람들이 도대체 왜 들어왔을까를 보면 이건 난민의 문제와는 조금 다른 겁니다. 그들은 그 당시 프랑스 자본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니까 한창 좋았던 1950년대 60년대에 그들을 받아들였던 거죠. 그렇게 섞여가면서 갈등 속에서도 함께 교육받고 사회통합을 추구해왔죠.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아이가 한국에서 함께 교육 받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왜 한국사람인가요. 느닷없는 질문이지만, 우리가 왜 한국사람입니까? 한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피부 빛깔이 달라도 한국어로 소통할 때 이 정체성에서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아직 우리는 이 부분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죠. ‘앞으로는 고체사회가 아니고 액체사회다.’ 굉장히 유동적이라는 겁니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비율로 볼 때, 많이 받아봐야… 다 받아도 적어요. 많지 않다 이겁니다. 독일만 해도 2015년에 받아들인 숫자가 약 80만이에요. 독일 인구가 8,000만이거든요. 1%를 받은 거예요. 2015년 한 해에. 그런데 우리는 20여 년에 걸쳐서 신청한 사람이 1만 6,000여 명입니다. 미리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Q 동화주의와 사회통합은 각각 다른 분야에서 생긴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보충 설명 부탁드립니다.
조효제 주류 문화가 소수 문화에 대해서 ‘우리 주류 문화에 따라와라, 완전히 우리에게 동화되고 우리 문화 속에 흡수돼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수적 정체성이나 문화적인 것을 다 버리고 문화·습속·교육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맞춰라’라고 하는 게 동화주의죠. 사실 동화주의라고 하는 것도 원래 좀 조심스럽게 볼 필요가 있어요. 모든 문제는 맥락 속에서 발견되고 맥락을 따져야 하는 것이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서 홍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동화주의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공화주의’라고 하는, 정책으로서의 자유·평등·우회, 근대의 민주적 시민성의 핵심인 이 원칙을 보편적으로 같이 따라가려고 하지요. 공화주의적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이론적으로 시민적인 성격을 형성하려고 하는 거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철학적 동화주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동화주의는 제가 볼 때는 보편적 동화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인권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가 되는 동화주의는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고 공화주의적인 원칙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편협하고 일방적인 주류 문화를 수적인 주류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따르라고 강요하지요.
그래서 나쁜 것이고 그런 태도는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정당화되기 힘들고요. 그 반대편으로 보통 동화주의의 반대가 다문화주의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다문화주의는 예를 들어서 캐나다처럼 인구 대부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주자로 형성되어 있는 국가일 경우에는 ‘멜팅 팟’(melting pot, 용광로)처럼 하나의 탕 속에 넣고 우거지탕처럼 완전히 끓이는 게 아니라 ‘샐러드 볼’(salad bowl)처럼 각각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로 모으는 식의, 말 그대로 다문화적인 상황이 형성돼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이 동화주의 한국 땅과 다문화주의의 한국 땅 사이에 중간적인 어떤 길도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5년 전에 제가 독일에 1년 있었는데 보니까 독일 사람들이 그 당시에 다문화주의를 ‘물티쿨튀르’(Multikultur)라고 하더라고요. 앙겔라 메르켈이 “다문화주의는 죽었다”라고 했던 유명한 연설이 있어요. 독일에서 다문화주의란 말만 그랬을 뿐이지 사실은 터키계 등의 이주자들을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방치해버렸다는 겁니다. 복지 등을 제공하면서도 독일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치체 속의 정당하고 동일한 시민으로서 만나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다 인정해주고 생존권 보장하고 복지 제공해주고 투표권 주고 할 테니까 그냥 알아서 살아라, 해버리니까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분리돼버렸다는 거죠. 사는 것도 다른 지역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살고, 독일이 가진 좋은 교육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도 않아서 제가 만났던 터키계 독일인은 베를린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서른 살이 됐는데도 아직 독일어를 제대로 못해요. 자기의 모국어가 터키어인 겁니다. 자기 골목에서만 살고 그곳 친구들하고만 지내니까 독일어를 못하는 거예요. 독일 당국에서 학교에 오라고 해도 안 가요. 뭐하러 독일어를 배워가면서 학교에 가야 하느냐 하는 거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사회 전체의 통합성을 부족하게 만들죠. 터키계하고 독일 사람들하고는 결혼도 안 해요.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다문화주의가 나쁜 식으로 운영되다 보니까 섞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메르켈이 다문화는 죽었다고 말한 거죠.
그래서 대안으로서 나온 게 ‘좋은 의미에서의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 통합주의라고 하는 것은 흡수하는 동화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터키계 따로 독일계 따로 살자 하는 다문화주의도 아닙니다. 주류 문화의 중심성과 작은 문화들의 정체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그러니까 터키계라 하더라도 그 사회의 전반적 주류 문화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언어도 익히고 학교도 보내고 민주적인 참여도 하되, 터키계의 소수자적인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방식이지요. 주류 문화의 중심성과 주도성을 인정하면서도 작은 문화의 정체성을 충분히 격려해주는 그런 식의 통합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좋은 의미에서의 동화주의 또는 통합주의적 발상 같은 것도 얼마든지 길이 있을 수 있는데 국내에서 ‘다문화’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묻혀 있고 그 표현이 다문화를 칭찬하고 있는가 하면 또 의문스럽기도 한 그런 상태이지요.
홍세화 조 선생님은 워낙 섬세하고 점잖으셔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서 점잖게 말씀 못 드리고요. 그것은 사기입니다. 사기 치는 거예요. 다문화주의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가요. 다문화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됐습니까? 한국의 농촌 남성들이 결혼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거예요.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런 걸 피해가면 안 돼요. 말은 다문화주의라고 하면서 베트남 여성,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낳은 아이들을 시민사회 차원에서 얼마나 보듬고 있습니까. 이 아이들은 정말 소통이 안 돼요.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나이 차이도 많고 거기에다 가난합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니 한국어를 배우지만 왕따를 당하고 소외되지요. 이런 문제를 마치 별것 아닌 것처럼 다문화주의라는 말로 가리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지만 나중에 청년이 되면 정말 사회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 정부도 그렇고 시민사회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어요. 조금 더 우리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올바르게 다문화를 얘기하려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일단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하죠. 엄마들, 그러니까 이주여성들을 모아서 한국어를 공부시키고 한복 입혀서 전통음식 만들고 하는 것도 좋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만큼 그들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언어도 배우게끔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같이 해나가야 되는 거죠. 말하자면 보편성 속에 특수성이 살아 있는 형태를 추구하면서요. 한국이라는 보편성을 공유하면서 그분들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은 다문화주의라고 하면서 특수성이란 그냥 주변에 밀려나 있는, ‘그냥 한국어나 공부해라’ 이런 차원에 있다고 봅니다. 커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까 제가 사회적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썼습니다마는, 정말 만만치 않은 문제예요. 거의 준비하고 있지 못합니다.
Q 홍세화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난민신청을 했을 때 한국하고 비교해서 난민인정 과정이 쉽고 용이했다고 간략하게 말씀하셨는데요. 그리고 투표권 외에 다른 권리를 똑같이 주었다고요. 그때, 선생님이 난민인정을 받았을 때 한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느낌이 어떠셨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홍세화 저는 사실 운이 좀 좋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1979년도에 3년짜리 여권을 가지고 왔어요. 그랬다가 79년도에 제가 참여했던 단체가 한국에서 적발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그 시점에는 바로 망명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권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왠지 망명 신청을 바로 하는 것이 제게 와닿지 않았어요. 한국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1980년 5월의 봄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혹시 망명하지 않고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지요. 3년짜리 여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여권 기한 마지막 날 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1981년도에, 그러니까 제가 망명을 신청하기 바로 전해에 사회당 정권이 처음 소개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사회당 정권이 그 당시만 해도 지금 하고는 흐름이 좀 달랐는데요. 국제주의, 인권, 보편주의 이런 것을 내걸었어요. 제가 망명 신청을 했을 때 굉장히 호의적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애당초 회사원으로 갔었고 3년이 지난 뒤지만 망명 신청을 하는 제가 약속을 받아서 인터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장을 하고 넥타이까지 매고 갔어요. 근데 저를 인터뷰하러 온 사람은 청바지 차림이었어요. 그 당시에 프랑스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영어로 인터뷰를 했는데 저도 그렇고 그 사람도 영어를 잘 못해서 통하게 된 것도 있었어요. 굉장히 편하게 하려고 했고 한국 상황에 대해서 일정 부분 알고 있고, 물론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이러면서 30~40분 정도 얘기를 했는데요. 그 인터뷰 한 번이 다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해 간 게 있죠. 한국의 신문. 대문짝만 하게 나왔잖아요. ‘조직원을 유럽에도 보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간단한 타이틀만 영어로 옮겨서 사본을 제출했어요. 정치적 견해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싫어도 받아주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조건이었어요. 워낙 호의적이어서 금세 연락이 왔습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바로 그해에 연락이 왔지요. 한국으로 치면 가족증명서처럼 식구가 나와 있는 걸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프랑스 외무성에서 네 사람의 난민증이 같이 나왔고, 그걸 가지고 도청에 가서 국민허가증과 체류허가증, 노동허가증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Q 만약에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한국은 난민에 대해 워낙 인색하고 해서 난민들이 좌절하고 삶에 대한 용기를 잃고 사니까요.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홍세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프랑스의 경우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워낙 프랑스 안의 이른바 ‘종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우선 프랑스에서는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불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불법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아요. 뭐라고 표현하느냐면 그게 ‘Paper’(증, 종이)니까 ‘종이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써요. 한국으로 치면 ‘미등록’이라고 해야겠죠. 그 나라에는 워낙 ‘미등록’인 분들이 많아서 설령 제가 신청을 했다가 못 받았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거예요. 한국의 경우와는 또 다르죠. 그렇다고 저를 추방할 것이냐, 어디로 추방할 것이냐. 별거 없는 거죠. 저로서는 그걸 받는 게 아이들 교육문제에서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 압박받고 있었던 것은 경제문제였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가 없는데. 비빌 데가 없는데. 저의 경우는 프랑스에 간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프랑스 사회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에서는 내가 빨갱이고 그러니까 당연히 제가 처음에는 안기부에서 주 보고자였어요. 주당 한 번씩 저의 동향에 대해 보고해야 해요. 안기부에서. 그러다 나중에는 월 단위로 느슨해졌지요. 그런 상황이니까… 1980년대 엄중한 상황에 그런 것이 외국이라고 그렇게 느슨하진 않았습니다. 아무하고나 접촉하기 어렵고 아이들을 파리의 한국인학교에 보냈는데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하는 이런 걱정이 컸죠.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어떻게 지냈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Q 홍세화 선생님께서는 프랑스를 망명지로 택하셨을 때 가장 압박을 느꼈던 게 경제적인 부분이라고 하셨잖습니까. 난민인 동시에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했던 입장에서 난민에 대해 경제적인 이유로만 왔다며 비판하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혹시 있으신지요? 조효제 교수님께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강의 끝 부분에 ‘한국 사람이 조금 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요?
홍세화 사실 지금 ‘경제 난민’이라는 것이 유럽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국제법상으로는 앞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가운데 정체성 문제와 정치적인 견해 때문이지 경제 난민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걸 되도록 안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는 거죠. 그 나라의 집권세력이 어떠한가? 국민들의 난민에 대한 의식이 어떠한가? 이런 것에 좌우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제가 알기로 난민인정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캐나다로, 약 40%대이고요. 그다음 유럽이 약 20%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낮은, 그리고 계속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저한테는 사실 ‘당신은 돈 벌려고 오려고 하는 게 아니냐’라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애당초 프랑스에 간 것도 회사의 직원으로 갔던 거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라든지 전쟁 상황에서 온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인 난민이 아니냐를 간단하게 얘기할 수 없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철학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순전히 경제논리로만 보는 것이 아닌, 그래서 앞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 세계를 어떤 세계로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이런 전망 속에서 사유세계나 철학이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순전히 경제 논리로만 부딪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상황을 보면, 파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파업을 해야만 하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강제된, 강제당한 사람들에게 경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효제 그 질문을 통해서 저도 용기라고 하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사실 저는 학교에서 작은 보직을 맡고 있습니다. 보직을 안 하고 행정직 안 하고 막 피해다니다가 정말 할 선생님이 안 계신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맡게 됐어요. 행정을 맡으면서 많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학생들 면담입니다. 휴학계 내러 온다, 자퇴하려고 한다, 이런… 학생들은 ‘이제 군대를 가야 한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또는 ‘내가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데 1년 정도 휴학을 하면서 음악적인 소양을 쌓고 싶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휴학계를 내는데,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듣고 굉장히 놀랐지요. 보통 대학생으로서 휴학계를 낸다고 하면 20대 초니까… ‘내가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자의로 쉬어본 적이 없다. 내가 판단해서 의사결정을 하거나 내 마음대로 시간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졸업하기 전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한 학기든 두 학기든, 내가 어디서 자든 어디서 일을 하든 여행을 하든 뭘 하든, 부모님, 선생님, 주변으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는 시간. 이 길로 해서 쭉 점수를 잘 받아서 학년 올라가고 학년 마치고 나면 그다음 학기 올라가고 하는 식의 좁게 짜인 틀에서 벗어나서 평생 처음으로 진짜 자유를 가지고 싶다’ 이런 이유로 휴학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겁니다. 아, 이 친구들은 대여섯 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 마음대로 쉬어본 적이 없구나.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제가 두 말하지 않고 사인을 해줍니다.
저는 용기라고 하는 게 정형화되고 남들 하는 식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그 틀에 맞추어서 사고하는 꽉 짜인 획일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서 다른 문화, 다른 세계관, 다른 피부색, 다른 머리카락 색깔, 다른 눈빛,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려 살 줄 아는 일종의 문화 수용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봐요. 미지의 것에 대한 관심과 모험적인 태도를 가질수록 자기 스스로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머릿속엔 공부밖에 없어요. 학점에 대한 걱정밖에 없고…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틀에 박히고 답답한 상황에서 탈피해서 ‘삶은 길고 네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다’ 하는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다른 문화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분들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통해서 우리 스스로 바뀔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예를 들어 난민의 경우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와 있는 분들에게 우리가 안식처를 제공해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그분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더 크다고 봐요. 다양성이 확보되고 우리가 배울 수 있고 스스로 풍요로워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하는. 이분들이 우리 사회에 엄청나게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생각을 받아들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롭고 거대한 틀을 깰 수 있는 그것이 우리가 바뀌면서 더 클 수 있다는 것과 문화 수용성 이 두 가지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저는 그래서 단계로 본다면 예를 들어 두려움의 단계가 있으면 호기심의 단계로 용기를 내서 넘어가야 할 것이고, 호기심의 단계를 넘어서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배우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는 거고요. 한번은 제가 학회 때문에 네덜란드에 갔는데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두려움을 넘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배우겠다고 하는 태도 중간에 또 다른 태도가 있을 수 있다고요. 그게 무언가 하면 그분이 ‘호의적인 무관심’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난민, 다문화, 이주자, 외국인이라고 하면서 못해주고 차별하고 박해하거나, 아니면 잘해줘야 하겠다 하고 호의적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잘해주려고 노력하거나 하는 것 둘 다 조금은 인위적일 수가 있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 당신도 사람인데 알아서 살아라. 나는 당신의 헤어스타일, 당신의 문화, 당신의 피부 색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관여 안 할 테니 서로 존중하면서 그냥 살자.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거나 적극적으로 차별하지 말고 그냥 호의적인 무관심을 갖고 소가 닭 보듯이 살자. 그것만으로도 사실 굉장히 문명화되고 개방된 사회가 아니겠느냐’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 이야기에 100% 동의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관점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고 있어요. 호의적인 무관심이라는 상태도 개명된 맥락에서 표현되면 재미있을 수 있겠다… 제가 동의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생각거리를 던져드린 겁니다.
Q 저는 이주자 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교 학생들 몇 명과 같이 블로그에 이주민 관련 뉴스를 브리핑하거나 미디어비평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과잉동일시’라는 주제로 글을 쓰셨어요. 상대를 대상화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이주자들을 범죄자처럼 여기는 등의 비동일시가 있는가 하면, 이분들을 우리가 생각하는 특정한 틀에 가두어놓고 ‘이래야만 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과잉동일시도 있지요. 가령 뉴스에서 어떤 이주여성의 착한 행실을 보여주고 특정한 덕목을 갖춰야만 한국의 정당한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도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한편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과연 그럼 이분들은 어떻게 재현해야 하나. 그러니까 재현의 적절성이랄까, 어떤 식으로 재현을 해야 윤리적 타당성을 갖출 수 있을까요?
조효제 솔직한 얘기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동정은 우리가 호의를 갖는 데 일차적으로 심리적인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런데 크고 성숙한 인간으로서 난민과 이주민을 바라보는 데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저 사람이 지금 어려우니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같이 어울려서 살자’ 하되, 특별한 의미부여는 안 하는 정도의 어떤 무덤덤한 호의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별하지 말고 그 사람들도 모든 희로애락, 욕구, 잘잘못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난민들 개개인으로 따져보면 우리가 아무리 잘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돼요. 지금 상태에서는 난민 또는 이주에 대한 특수한 니즈(needs)를 가진 집단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등의 접근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덤덤한 인간적 보편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봅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저 사람들이 참 어려워져서 와 있으니 같이 어울려서 살고,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러한 문제를 양산하는 근본 원인, 즉 질서라든지 식민지의 유산이라든지 강대국의 횡포라든지 전쟁을 만드는 자본주의의 문제 등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민으로서 이바지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면 세계 시민으로서의 시각과 일상생활 속에서의 무덤덤한 보편적인 실천 모두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아까 좋은 말씀을 하신 게 소위 다문화 가족들을 보여주면서 ‘그 며느리가 참 잘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20년째 보살피고 있다 하고… 물론 한 인간으로서 그런 선행은 우리가 참 대단하다 하며 공감할 수 있는 거지만, 그러면 아픈 시어머니를 보살핀 필리핀 며느리는 착한 다문화 며느리고 중간에 남편과 싸워서 이혼 소송장 내는 베트남 며느리는 못된 며느리입니까? 저는 웃기는 논리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복 입히고 김치 만들고 하는 게 물론 나쁠 건 없지만 그것만을 강조하고 중풍 걸린 시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을 갸륵하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띄우는 수준은 넘어야 하는 시기가 이제 됐지 않나 싶어요. 2016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열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아직도 이런 수준의 담론이 받아들여지고 설파되고 확산되는 것인지… 저는 안타깝습니다.
Q (바로 전 질문자가 이어서) 사실 한국인 대부분은 난민이라고 하면 단지 유럽의 일로만 치부하고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주민에 대한 이슈화가 필요하지요. 그러니까 언론이든 정치권이든, 시민사회에서든 이주민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일정 정도로 재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재현을 할 때, 재현을 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는 게 가장 적절하고 적합한 윤리일까. 그러니까 이분들도 저희와 다를 게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시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을 말하기가 굉장히 힘든 거잖아요.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그분들이 직접 나서서 발화하고 퀴어 축제 등을 통해 시각화됐을 때 사회 이슈가 되었지요. 그게 공감이 되고 체감이 되면서 사람들이 성소수자의 인권과 고통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고요. 궁극적으로는 아까 말씀해주신 인간적인 보편성으로,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중간 단계에서는 이것을 이슈화하고 재현을 해야 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그게 고민입니다.
홍세화 그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한데, 예를 들면 이주민 방송도 있습니다. 거기에 귀 기울이고 많은 분들이 같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길들이지 특별히 뭐가 있겠어요.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이주노동자, 난민에 대한 인식이나 화두가 중심이 되기 어려우니 관심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적극성을 띠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게 적절한 표현은 아니고, 옛날 교본에서 나온 말인데요.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다.” 잡초가 나쁜 의미일 때 사람들은 잡초를 없앨 궁리를 많이 합니다. 잡초가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도 잡초를 없애지 않았지요. 세상이 잡초같이 되니까 사람들이 그제야 ‘아 세상이 다 잡초밭이네!’라고 개탄하며 자신의 윤리적 우월성을 다독거리면서 살아오고 있는 거죠. 이게 우리의 이른바 세상 문제에 관심 있다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런 점에서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잡초를 뽑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격언이 얘기하듯이 잡초를 없앨 수는 없지만 뽑을 수는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잡초를 없앨 궁리만 할 뿐 아무도 잡초를 뽑지 않아요. 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지금 말씀하신 것과 맥락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웃음)
조효제 중간 단계의 재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계신다면 저는 그런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긴 한데, 굳이 중간 단계로서의 잠정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좀 창의성을 발휘해서 상징적인 어떤 이벤트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기독교 목사님들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난민 출신이었다는 것을 21세기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성명서를 낸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사실 난민 출신인 예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잖아요. 사실 기독교는 난민교라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난민문제는 특정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NGO나 특별한 인도주의적 활동가들이나 특별한 인권단체, 인권단체 내에서도 난민만 전문으로 하는 단체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슈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슈를 가로질러 모든 집단에서 자기와 연관 지어서 난민을 상상해볼 상상력을 복돋아줄 수 있도록 해보자는 거죠. 여기서 멀지 않은 성균관대 입구에 들어가면 성균관이 있는데, 사실 유교도 난민교 거든요. 성균관 유생들이, 그러니까 공자님의 21세기 버전으로서 난민을 상상해보자고 말씀해주신다든지… 건축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게 한국사회의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감사한 일인데요, 마찬가지로 한국의 의사, 그중에서도 정신과 의사들, 정신분석학자들이 정신분석학계의 태두이자 난민이었던 프로이트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사실은 난민 때문에 이 직업을 갖고 있는 거다, 난민이 없었다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도 없다, 우리는 난민들을 지지한다’라고 얘기를 해주신다든지. 또는 한국의 물리학자들 얼마나 많아요. 물리학자들 다 모여서 ‘아인슈타인이 없으면 21세기에 물리학은 없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은 난민 물리학이다’ 하고… 이슈를 가로질러서 전공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난민문제와 자기 관심사를 연결해보면 좋겠어요. 화가·음악가·작가 누구라도 난민 이야기를 상상력을 극대화해 풀어갈 수 있겠지요. 그런 식의 상상력의 확장을 중간 단계로 시도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Q 저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다가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고 살다보니까 난민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난민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면 드는 생각이 일단은 ‘너무 안됐다, 저 아이들이 엄마랑 저렇게 떨어져서 밖에 나와야 하는 게 안타깝다’ 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막상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듭니다. 이런 불안감은 우리가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기는 것일까요?
홍세화 일단은 막연한 불안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도 접촉하셔야 해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라는 책이 있죠.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보면 그런 부분이 나와요. ‘교역하는 사람들은 성품이 온순해진다. 서로 윈윈 하는 관계를 위해, 교역을 위해 상대방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나를 알려고 하고 서로 알게 됨으로써 온순해진다.’ 성품이 굉장히 거친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는 거죠. 이건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했잖습니까. 그곳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는데요. 정부가 워낙 포악스럽고 70년이라는 시간이 각각 흘러갔으니까 남북이 서로 만나고 교역을 통해서 좀 더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그 길을 막아버린 경우지요. 지금 이주민이나 난민에 대해서 막연하게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는 그분들을 만나십시오. 저처럼 난센 회원이 되세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난민 출신인데요. 제가 불안감을 주고 있나요? 오히려 프랑스 대사관에서 저한테 ‘프랑스의 아주 중요한 가치인 톨레랑스를 당신 덕에 한국에 전파할 수 있었다, 당신이 원하면 프랑스에서 주는 상이 있다’라고 했어요.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어서 거절했지만 그런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에 와 있는 이주민과 난민은 문화적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그분들도 다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점을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정말 같이 난센 회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효제 막연한 불안감 사실 있습니다.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나고 접촉하고 알아가면 불안감은 얼마든지 없앨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의도적 교역을 통해서, 어린 나이의 형성기에서부터 개입하면 불안감의 정도가 훨씬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은 교육학자들이 다 동의하는 바 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민교육’이라고 하는 것에 특별하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유네스코의 국제이해교육원이라는 기관이 서울에 있습니다. 신도림역 2번 출구에서 길 건너가면 있는데, 그곳에서 3시간짜리 세계시민교육을 해줍니다. 약속만 하시면 누구나 어린이부터 시작해서 어른까지 직접 교육도 받고 설명도 듣고 자료도 받아오고 너무 잘돼 있어요. 그런 세계시민교육을 몇 시간이라도 받아본 어린이·청소년들은 문화적 수용성이나 이해력이 넓어지고 높아지고 차별하는 태도가 굉장히 완화된다고 하는 게 실질적으로 나와 있어요. 또 하나가 있는데, 이 점은 사실 7시에 시작하기 전에 먼저 홍 선생님 뵙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홍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제가 기억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게 막연한 불안함이라든지 혐오 같은 것들이 막연한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도 있고 또는 경기가 나빠진다거나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더 세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한 막연한 불안감이 실제적인 불안감과 혐오와 증오로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정치적·경제적 상황과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정부를 뽑으십시오. 더 구체적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대통령한테 표를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이 사회를 1%라도 덜 제노포빅 하고 1%라도 더 톨레랑스를 가진 사회를 만드는 것이, 막연한 불안감이 컨트롤 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법입니다.
Q 사실 저의 나쁜 습관 중 하나가 기사의 댓글을 읽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점심시간에 어제 발생한 니스 테러사건 관련한 기사를 읽었는데 제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지금 여기 지금 오신 분들은 난민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알고 싶어서 오신 분들인데 바깥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과 싸워야 하나요? 그냥 혼자 삭이면서 이렇게 관심 있는 분들과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요.
홍세화 오래전 얘깁니다마는 제가 신문사에 있었을 때, 여러 가지 신문을 읽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고종석 씨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는 건강을 위해서 『조선일보』를 읽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그것도 말이 된다 그랬거든요. 건강을 위해서 댓글을 읽지 마십시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댓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이유가 한국에는 더 있어요. 한국은 설득을 포기한 사회입니다.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사회예요. 『르몽드』 신문의 댓글을 보면 거기에는 나하고 견해가 다르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나하고 견해가 같으면 아무 말이 없고, 견해가 다르면 욕합니다. 이게 설득을 포기한 사회의 모습이에요. 어느 정도 설득을 포기했느냐.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서도 설득을 안 합니다. 이 자리에 결혼한 분들이 계실 텐데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하시나요. 부부 사이라고 해서 생각이 다 같지 않잖아요. 그러면 생각이 같아지도록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데 해봤지만 된 적이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이 다른 것이 드러나면 ‘덮고 가는 것이 편하다’ 이런 마음으로 설득하지 않습니다. 왜?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 왜? 각자가 다 의식에서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좀 다르겠습니다마는 워낙 회의할 줄 모르고,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설득하는 문화가 없어요. 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댓글에 없습니다. 댓글은 거의 다 배설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효제 저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런 것 같아요. 고민은 있지만 이야기해보면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일차적으로 대화 자체가 안 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지내보니까 10년 뒤의 상식을 위해서 오늘 싸우는 게 인권운동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건데 오늘 그렇게 싸우게 되더라고요.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지금은 호주제가 없어졌고 옛날 이야기가 되어 다 웃습니다. 그런데 호주제 폐지하자고 했을 때 유림 같은 데서 ‘’호주제 폐지하면 우리나라가 개돼지 나라가 된다, 짐승 같은 나라가 된다’라고 그랬습니다. 찾아보십시오. 유림이 호주제 폐지하면 대한민국 망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대한민국 망하지 않았잖아요. 저는 요즘 가끔가다 옛날에 호주제 폐지에 그렇게 반대했던 분들을 만나서 이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인터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정말 지금도 그때 생각 그대로 가지고 계신가. 그러니까 인권은요, 많이 싸운 것 같아도 사회의 발전이나 진보는 10년 뒤에 상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조금 논쟁을 한다는 생각으로, 낙관적으로 길게 생각하면 큰 문제없으실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주로 난민을 어떻게 수용하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그분들을 대하고 우리의 감수성을 넓힐까 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왜 난민이 발생하느냐에 대한 근본 원인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반기문 총장이 한국에 왔다갔는데, 한국 국민 대다수가 반기문 총장 하면 ‘2017년 12월 대선에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이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잖아요. 그런데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인이란 것에 그렇게 자부심이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으면, 유엔이 하는 일에 대해, 유엔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글로벌한 해결 방식을 통해서 난민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줄이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 없이 계속해서 모든 나라가 국경을 닫고 보호무역으로 돌아가고 모든 나라가 웅크리려고 들면 난민이 오히려 더 발생하는 세계가 된다, 전 세계는 지금 다 연결됐기 때문에 글로벌한 해결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 난민문제는 개방적인 태도와 용기와 상상력을 가지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 문을 닫는다고 해서 안 오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문을 닫으면요, 인천공항 대기장에서 몇 달째 지내고 있는 그 수십 명의 사람들 같은 이들이 수백 명 더 생기는 겁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난민이 발생하게 되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쓰셨으면 좋겠다, 그런 식의 상상력을 우리 국민들이 좀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계포럼 질의응답
분량19,211자 / 4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7년 2월 1일
유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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