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ex-ns-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이주자에게 ‘집’은 있는가?

김현미

떠난 집과 머무는 집

사람들은 인생에 한 번, 혹은 수십 번 사는 곳을 옮긴다. 이사하는 곳은 옆동네일 수도 있고, 농촌에서 도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자연환경이나 먹고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른 장소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언어나 의식주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자’다. 우리는 떠난 집을 고향 또는 정든 곳, 또는 모국이라 부른다. 인생, 가족, 살림살이, 감정, 스토리 등이 담긴 어떤 장소를 떠나면 우리는 그곳을 그리워하거나 돌아갈 안식처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러나 떠나온 곳만큼 새롭게 정주하는 곳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기에 사람들은 집을 떠난다. 삶을 안착시키고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제1의 공간은 물리적 형태의 ‘집’이다. 어떤 집에 살 수 있고, 살 만한가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고 그들의 인간적 권리와 향유할 수 있는 혜택이 구체화된다. 당연히 부와 계급은 집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격이 있기에 모든 사회는 주거와 거주의 안정성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 그만큼 집은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인권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이주자가 한국에 머무는 집은 어떠한가? 이들은 자신들이 떠나온 집과 한국에서 머무는 집 사이에서 어떤 장소성을 경험하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외국인 이주자라는 법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을 집으로 제공하고 있을까?

난민이 머무는 곳

2016년 현재, 한국으로 입국한 한 난민신청자가 머무는 곳을 추적해보자. 인종, 종교, 국적, 신분, 젠더,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비호’를 받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2014년 난민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난민신청자는 항공기나 선박으로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난민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해상을 통해 들어오는 대량 난민은 없다. 이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난민인정신청서를 제출하고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 받는 기간 동안 공항 내 ‘송환대기실’ 에 머무른다. 송환대기실은 3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 ‘머무는 곳’은 150명의 난민신청자로 북적인다. 누워 자지도 못해 쭈그려 앉아야 할 뿐 아니라,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 어떤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는 이슬람교도로서 한 공간에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이 강한 사람도 있고, 돼지고기나 육류 등의 음식을 ‘금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송환대기실은 난민자격을 심사하는 법무부가 아닌 이들을 ‘실어 나른’ 민간 항공사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여분의 항공기 기내식이나 햄버거다. 박해의 공포를 피해 간신히 고국을 빠져나와 보호와 안전을 요청한 그는 한국에서의 첫 번째 일주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불인정을 견뎌내야 한다. 신분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가능한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고 그런 식으로 대우받는다. 난민신청 자격이 주어지면 이들은 영종도의 난민지원센터로 ‘머무는 곳’을 옮긴다. 이들은 이곳에서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6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다. 여전히 입·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지만 희망에 의지하여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심사를 받는다고 해도 100명 중 5명의 비율로만 난민인정을 받는 상황이다. 난민인정 신청이 불허된 사람은 장기 소송으로 들어간다.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이나 안 된 사람이나 이후 안전하게 머물 집이 없다는 점은 똑같다. 각자 알아서 한국에서 살아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언어나 식습관이 다른 곳에서 일자리도 얻어야 하고, 살 집도 마련해야 하며, 사회적 관계도 맺어야 한다. 정치적 견해든 문화적 차이든 ‘차이’를 차별의 무기로 들이대며 폭력과 추방의 공포를 행사했던 모국을 등지고 힘겹게 떠나온 그들이지만, 새로 이주해온 한국에서조차 살 만한 ‘집’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집은 안전과 정서적 치유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하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돌보거나 치유할 시간이 없다. 한국의 수많은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의 삶은 ‘유보된 상태’이다. 과거·현재·미래가 어떤 연결성과 연속성을 갖지 못한 채 정지된 상태인 것이다. 이들은 막연한 기다림 또는 어떤 시간성에서 멈춘 상태로, 이동·변화·탐험 등이 불가능한 결박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의 삶은 불안하고 미확정적인 상태에 고착되었고, 경제적 상황 때문에 제대로 된 집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없다. 필자가 방문해본 난민의 집은 추운 겨울에도 기름 값 때문에 보일러를 가동하지 못하고, 곰팡이로 가득한 음습한 장소가 많았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도, 신분을 보장받는 사회적 장소도 갖지 못한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체류하는 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 왔으나 비호를 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고국으로 갈 수도, 돈이 없으니 제3국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땅에 발 딛지 못하고,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는 난민들이 쉴 수 있는 집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농촌 이주여성의 집

“화장실도, 욕실도 없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임시주거지지만 사장은 숙소비로 20만 원을 걷어갔다.”

“수치심과 추위를 무릅쓴 채 주변 수풀이나 밭둑 도랑에서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 여성인 딴 소푼 씨는 2012년 6월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1년간 전남 담양의 한 딸기 농장에서 일했다. 입국 전 체결한 표준계약서에는 월 226시간 근무에, 시간당 4,580원의 최저임금을 적용해 월 103만 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돼 있었다. 실제로 그는 한 달 평균 330시간 넘게 일했지만 추가 노동에 대한 임금은 받지 못했다. 그는 1년간 작성한 근로일지와 일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고용노동청에 제출했지만 공무원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고용주가 이에 앙심을 품고 딴 소푼 씨를 ‘이탈’ 노동자로 신고해 그는 취업 자격마저 잃었다. 현재 한국에는 딴 소푼 씨처럼 농촌의 시설재배농가에서 일하는 이주여성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깻잎을 따고, 수박 순을 자르며, 방울토마토를 따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떤 장소성을 경험하고 있을까? 이들의 일터는 논 가운데의 비닐하우스 재배 시설인 경우가 많다. 한두 시간만 일해도 땀이 뻘뻘 나는 곳에서 이주여성들은 보통 10~12시간을 일한다. 하루 12시간 일이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머무는 집은 보통 자신의 일터인 재배 시설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박스 등의 가건물, 혹은 고용주 집 내의 남는 방이다. 고용주나 농장주는 아무 때나 집을 들락거리고, 동네사람들은 화장실을 쓴다며 들어오기도 한다. 안전이란 개념은 없고, 휴식을 취할 수조차 없는 ‘거리와 집의 경계지’가 이주여성의 ‘집’이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그런 가난한 ‘과거’가 있었고, 경제 빈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거나 감수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해본 이주자 본국의 집은 비록 현금이 부족하여 시설은 열악하지만 주거 환경은 매우 풍요로운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떠나온 캄보디아나 베트남의 집은 넓은 공간에 자는 곳과 요리하는 곳이 잘 분리돼 있고, 망고 등의 과일나무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며, 각종 채소가 자라고 닭과 개들이 뛰어노는 곳이다. 또한 동네 사람들과의 친밀감과 오랜 신뢰로 지역사회로부터 안전과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들이 머무는 집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과 보호의 기능조차 갖추지 못한 공간이다. 농업노동자에 대한 한 연구는 “거주지의 44.7%는 욕실과 침실에 안전한 잠금장치가 없고, 52.8%는 숙소에 고용주나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이 큰 것”을 지적했다. 또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30.8%의 여성노동자는 직접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50.8%는 같은 농장 내에서 또는 지인의 성폭력 피해를 목격했거나 들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농업노동자의 취약한 주거 조건은 여성이주자의 경우 심각한 성폭력 위협으로 이어진다. 농업이나 가사노동 분야처럼 여성들이 집중된 분야는 4인 이하의 사업장이 많다. 하지만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주자들의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열악한 환경은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고용주는 이런 열악한 거주 환경을 제공하면서 이들로부터 매월 30~40만 원 이상의 임대료를 받아낸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들은 일터와 집 모두에서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빠른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사용될 노동력으로, 높은 임대료를 덮어씌울 쉬운 먹잇감으로 취급된다. 이주여성이 머무는 집은 성폭력·탈법·착취의 공간이 되고 있다.

모든 거주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

한국에서 신분과 자격이 유예된 난민들, 불법성과 성적 침해가 횡행하는 장소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은 집을 떠나왔음에도 안전한 집에 머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거주 난민’ 같은 정서를 느끼는 사람들은 우리 내부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고시촌이라는 이름의 거주지에서 집은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일정 시간 몸만 누이는 공간이다. 인간이 욕망하는 라이프스타일·취향·안전·건강은 모두 유예된다. 창문도, 삶도 없다. 자본가와 정치인, 임대업자들은 감옥, 거리, 수용소와 같은 공간을 ‘집’으로 포장하여 초과 이윤을 낸다. 난민·이주자·청년·도시빈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재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갖추지 못한 공간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공간을 큰돈을 지불하며 사용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어디서나 언제나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거주는 인권의 내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어젠다이다.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거주 난민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서로의 삶에 감정이입하며 동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 전시는 ‘뉴 셸터’(New Shelters)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누구의 관점으로 집을 집답게 만들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물리적 환경으로서의 집뿐만 아니라 감정·정서·돌봄이 교환되는 연대와 호혜의 공간으로서의 집을 짓는다. 난민을 위한 정보 네트워크 또한 이들이 제때에 제대로 좋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삶의 능력을 확장하게 하는 디지털 집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SoA가 제안한 농촌 표준 주택 또한 바람직한 건축적 제안이다. 이들은 농촌의 이주자들을 위해 농촌에서 방치되고 있는 농산물 간이집하장이나 창고 등을 개조하여 일종의 표준 주택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곳은 일터에서 분리되어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있고, 성폭력의 공포로부터도 안전한 ‘진짜 집’이다. 이런 집은 농촌이라는 공간에 함께 머무는 사업주·공무원·이주자·주민들의 합의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한국 농촌의 재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며 기여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인식한다. 난민과 이주자에게 안전한 집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들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존재가 아니며 떠난다 하더라도 우리와 공존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동시대적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들의 안전한 삶에 대한 우리의 책무는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에서 환기된다.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사회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친밀한 적: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공존을 위한 다문화』(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여성들』(공역), 『여성·문화·사회』(공역)가 있다.

이주자에게 ‘집’은 있는가?

분량5,868자 / 12분

발행일2017년 2월 1일

유형비평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