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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 완충지대

황두진, 양욱 × 박성태, 오우재

‘잠정적 완충지대’ 전시 정경 / 사진: 오재우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 변화로 대규모 탈북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정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다수의 탈북민을 한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현재 운용되고 있는 전국 250여 개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찾고자 한다.

‘잠정적 완충지대’는 이 예비군 훈련장 가운데 하나를 임의로 선정하여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조성한 예비군 훈련장의 공간 구조와 내부 시설들이 어떻게 탈북민의 임시 거처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안한다. 작게는 탈북민이 생활하는 단위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크게는 제한된 시설 안에서 공동체 생활이 원활히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제도와 프로그램을 구성하려 한다. 더 나아가 예비군 훈련장이 탈북민의 임시 거처로 이용되는 기간과 그 이후의 주변 지역사회와의 다양한 상호 영향 문제를 고민한다. 이를 통해 군사시설인 예비군 훈련장이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해주는 공간이자, 탈북민과 기존 거주자의 안전한 공존을 꾀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국 250개의 예비군 훈련장

인터뷰

인터뷰어 이번에 참여하는 작업 설명을 부탁한다.

황두진 우리 작업의 제목은 ‘완충지대’(Buffer Zone)에 ‘잠정적’(Interim)을 더한 ‘잠정적 완충지대’(The Interim Buffer Zone)이다. 우리가 가정한 것은 한반도에 유동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탈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매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난민과 관련해서는 인권 이슈도 있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고 수행할 수 있는 사회의 능력에 관한 두 가지 문제 속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보고, 양욱 선생과 협업하기로 했다. 우선 전국에 있는 약 250여 개의 예비군훈련장이 이 가정 상황의 용도에 적합하지 않을까 했다. 그 과정에서 UN이나 전 세계 군사 기관들이 재정의해놓은 난민 시설의 기준을 참고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근거로 하되, 한국의 특수성도 감안해 전·후 한국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대량 탈북자에게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연착륙 할 수 있게 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본래 군사시설이던 것을 평화를 위해 사용한다는 역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주된 내용이다.

양욱 북한과 관련된 사태에 대해서는 많은 걱정들이 있다. 대한민국 군에서도 2013~14년에 김정은 정권이 불안해지자, 소위 말하는 ‘급변 사태’가 생길까봐 고민이 많았다. 군이 가지는 고민의 상당 부분은, 북한지역 안에서 어떻게 작전을 할 것인가, 어떻게 접경지역을 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량 난민이 발생하면 우리가 수용해야 하고 정부도 몇 가지 안이 마련되어 있다. 밝힐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시설들로 어떻게 분산하겠다는 계획이 있는데 역시 탈북민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관문은 군이다. 군 내부에서도 구체적 계획이 있으나, 군 밖에서의 세심한 접근도 필요하지 않겠나. 사회의 관심을 모아서 실제 군이 수행할 수 있는, 또 난민들이 소외되지 않고 같은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사회 일원으로서 잠깐 거쳐갈 수 있는 장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이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것들과, 그것의 공간적인 요소에 대한 고민들은 이미 선진국에서 냉전 이후 많이 진척되었다. 아시다시피 냉전체제 이후 국제적으로 민족주의가 부흥하면서 많은 분쟁들이 생겼고, 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 난민이 많이 발생했다. 이 난민문제를 현장에서 많이 다룬 UN이나 미군, NATO 등이 지닌 노하우는 상당하다. 이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점에서 황두진 선생이 큰 도움이 되었고 나도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황두진 전 세계적으로 건축가들이 곤경에 처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전문적 직능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특수한 시설이나 특수한 디자인이 특정 상황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몇 가지 대 원칙을 세웠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기발한 시스템이나 물건을 만들려 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보유하는 상당한 자원을 어떻게 소싱(sourcing) 하느냐의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새롭고 신기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이번 작업의 방향이 아니다. 작업하는 우리에게는 상당한 리얼리티를 주는 요소이기도 하고, 만약 이런 일이 현실화된다고 하면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장점이 있는 접근방식이 아닌가 한다.

양욱 걱정이 되는 부분은, 우리가 준비 없이 탈북민을 급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군이 생각하는 대량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포로수용소 개념인데, 만약 이런 개념을 가지고 탈북민 지원이 이루어지면 사회통합은커녕 도리어 소외를 가져오고 예상치 못한 소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사전적 방법은 무엇일까. 기존 인프라를 잘 활용하고 캠프 내에서 일어날 행위들에 대해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 안에서도 충분히 행정 활동이 일어날 수 있게끔 동선·시설 등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황두진 어디까지가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건축이 선의에도 불구하고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인지 우리도 지금은 모르겠다. 하지만 건축가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런 문제를 자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 있고, 아까 말한 것처럼 계획하고 조직하는 것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도 있다. 대한민국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제도나 조직, 사회적 자원의 집합체는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가 군, 두 번째가 건설 산업, 세 번째가 (최근 고도로 발달하는) 렌탈 산업, 네 번째가 캠핑 산업이다. 이 네 가지 산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 이러한 급변 상황에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우리 나름의 해법을 찾는 중이다. 이때 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기준들이어야 한다.

양욱 사실 군은 안에서 자급자족하고 밖으로 손을 뻗지 않으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군이 폐쇄적인 탓이라기보다 임무가 주어지면 자신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적 습성 때문에 협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번 전시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군과 민간이 협업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한 것 같다. 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한다. 

인터뷰어 이번 프로젝트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매뉴얼을 만든 것인가.

황두진 유동적 상황이 해소되고 나면 동원되었던 자원들은 다시 대한민국 사회로 재흡수된다.

양욱 보통 예비군 훈련장 위치가 도심과 많이 떨어져 있다. 도심 외곽이나 시골에서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등 한계점이 있다. 우리는 비교적 물자보급이나 출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역을 선정하려고 노력했고, 나중에 이런 인원들이 해당 지역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게 지역적 요소도 최대한 고려했다. 군부대는 폐쇄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아직 대한민국에 적응되지 않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흡수되기 전 문화도 익히고 상황도 파악할 수 있는 교육 현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황두진 그러면서 상당수는 군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우리가 전시를 통해 보여드리는 것은 일정 부분은 디자인적인 것, 시각적인 것이겠지만, 매뉴얼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나름대로 재해석해낸 일련의 시나리오 역시 중요한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인터뷰어 예비군 훈련장이라는 공간은 집단 수용 시설이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건축적 시도는 어떤 방향인가?

황두진 훈련장 전체를 대규모 공사로 탈바꿈한다는 방식은 아니고 설치를 하는 것이다. 동원되는 자재나 컬러 등으로 해볼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마을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각 집이 있고 집이 모인 클러스터와 더 큰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여기에 분명 적용되어야 한다. 임시의 잠정적 시설이긴 하지만 일상생활, 북한 커뮤니티의 삶이나 방식도 존중되어야 한다. 오랜 기간 인류가 함께 고민해서 만들어온 국제적 기준이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된다.

양욱 보통 난민캠프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사막 한가운데 넓게 펼쳐진 텐트촌을 떠올린다. 텐트촌 내부 상황은 상당히 열악하고, 임시 주거이다. 군부대처럼 기존 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길가의 텐트보다 더 안정감 있는 것은 당연하고,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해주고 경계를 지어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군부대 안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있기도 하다. 공간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황 소장님 같은 분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극복해나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식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느냐다. 패밀리, 빌리지, 퍼블리티, 블록까지 가는, 단지 의식주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짧은 순간이라도 즐길 수 있도록 해보자 생각했다. 즐기는 것이 결국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어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는가?

황두진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국제법상 탈북민들이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전시의 기획의도에 어긋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난민은 일상적 층위에서 사용되는 어휘이기도 하니까. 또 느낀 것은 이것이 상당히 다양한 국면을 지닌 현상이라는 것이다. 난민 하면 사막의 텐트, 뗏목, 언론에서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만 떠올렸는데, 상당히 많은 난민이 말쑥한 차림새로 입국장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내겐 그 지점이 중요했다. 직접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뭉뚱그려진 아이디어만 갖고 있었지만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고 일반적 상식으로 작동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는 것, 건축가로서 나에게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양욱 난민이라고 하면 사실 잘 와닿지 않는다. 난민을 도와달라는 광고에서도 무기력한 어른들과 배를 곯는 아이들이 나오는 모습만 보이니 불쌍한 존재로만 여기게 되는데, 그들도 사실 그 사회에선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커뮤니티에서 존중 받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그 안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펼쳐나갈 수 있게 공간적 요소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탈북민들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지 않나. 같은 땅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음에도 많은 문화적 차이가 있다. 대량 탈북이라는 상황을 가정해서 그렇지, 평상시에도 북한 이주민은 많이 있고, 하나원과 같은 시설을 통해 한국 정착에 도움을 받는다. 그것이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일방적으로 수혜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그들이 이 안에서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어 박성태, 오재우


황두진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으며 현대와 전통 모두를 다루는 건축가 중 하나다. 공간과 구조, 형태에서 기하학을 조작하고 중첩하는 데 관심이 있는 그는 역사적 관점, 특히 아시아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생활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며, 단순한 형태주의 그 이상을 추구한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 대한민국건축대전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고, 유럽 4개 도시를 순회하는 한국현대건축전 ‘메가시티 네트워크’에 건축가 및 전시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2009년과 2014년에는 하버드대학교와 스미소니언 등을 포함한 다수의 대학 및 문화기관의 초청으로 두 차례의 미국 순회강연을 했다.

양욱

군사안보전문가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 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 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이자 국방부, 방위사업청, 합참과 육·해·공군의 정책자문위원으로 대한민국 국방에 대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군사의 문화적 전용에도 관심이 많아 영화 <쉬리>의 군사 자문을 맡았으며, 해외 군 관련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번역하기도 했다. 또한 밀리터리 칼럼니스트로서 『위대한 전쟁, 위대한 전술』, 『Point of No Return: 세계의 특수작전』(1, 2권)을 비롯한 다수의 군사 전문 서적을 출간했으며, KBS 등 지상파, 보도채널, 종편의 뉴스 프로그램에 군사 및 안보해설가로 출연하고 있다.

잠정적 완충지대

분량6,177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7년 2월 1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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