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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셸터링

김찬중, 김경옥, 박진숙 × 오재우

모바일 시대를 사는 우리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실시간 배출한다. 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소비 성향’, ‘즐겨 찾는 곳’ 등 재가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외부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정보가 다시 내 일상에 깊이 개입해 나와 교류하기도 한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데이터흘림’(data shadow) 현상을 이용하여 우리 사회의 새로운 조직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맞이할 방법을 고민했다.

지금도 많은 난민이 전쟁·재해·박해·기근 등의 이유로 고국에서 탈출해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 난민 수용의 보편적 시나리오인 난민촌과 같은 일시적 격리 시스템은 현지 정착지 사회와 난민의 융화 가능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포괄적 매뉴얼에 따라 만들어지기에 난민 개개인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정보화되듯이 난민 개개인의 성향이 반영된 데이터흘림을 받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존 사회의 맥락 안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빅데이터 셸터링’은 모바일 기기의 위치 기반 서비스를 중심으로 1차 도시 정착지 내 난민의 일상 데이터를 일정 기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난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고 다른 난민과 만날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돕는다. 남녀 간의 데이팅 사이트와 유사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을 통해 난민 개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지역 사회를 매칭하여 그들이 우리 사회에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한다.

‘빅데이터 셸터링’(Big Data Sheltering) 전시 정경 / 사진: 김용관

인터뷰

오재우 ‘난민’이라는 이번 작업 주제가 가볍지 않다. 어떻게 접근했나.

김찬중 전시의 주제인 ‘뉴 셸터’에 대해 건축가가 중심이 되어 다른 분야 사람들과 콜라보로 작업을 풀어내야 했다. 나는 건축가이니 공간이나 물리적 환경을 이야기하는 게 내 역할일 것인데, 여기에 다른 분야의 협업자들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우리 팀은 난민정책에 관심이 많다. 난민이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고 이후 사회의 한 부분이 되는 과정을 전체 시나리오라고 볼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난민도 한 인간이고 개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개인이 이전과 전혀 다른 사회에 던져졌을 때 그곳에 어떻게 통합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물리적 환경 이전에 난민에 대한 인식 체계나 접근이 바뀌지 않으면 개선이 어렵겠다고 보았다.

이번 작업이 특히 좋았던 점은,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함에도 이번에는 그것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본 주제가 던지는 화두의 중요성과 현실에서의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다. 우리가 난민에 대한 인식과 체계를 바꾸고, 그들이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를 거대하고 막연한 담론이 아니라 아주 소소하고 생활과 밀착한 지점에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도 의의가 있었다.

오재우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물리적인 셸터는 안 만드나.

김찬중 우리의 작업 제목이 지금은 바뀌었지만 처음에는 ‘뉴 셸터(New Shelter)=노 셸터(No Shelter)’였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타지 사람이 들어와 살 공간적 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기존 인프라를 잘 연구하고 활용하는 것, 셸터와 개인을 어떻게 매칭해 최적의 장소에서 머물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뉴 셸터’라는 것은 우리의 기본 인프라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재우 기존 인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정착민들의 커뮤니티를 의미하는가.

김찬중 안산·시흥·이태원에서는 외국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커뮤니티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그런 것이 될 수도 있고, 사당동 고시원에 남아 있는 빈 방이 될 수도 있겠다. 사람에 따라 커뮤니티가 필요한 사람은 그쪽에 들어갈 수 있게 유도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사당동 고시원 등 빈 공간 가운데서 적절한 장소를 물색할 수도 있다. ‘기존의 인프라’라고 얘기한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진 물적 토대를 네트워크 또는 어떤 관계(relationship) 속에 위치시키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였고, 이것이 곧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재우 안산·시흥 등의 지역에 모여 사는 외국인은 기존 시스템이 정착에 불리하게 작용해서라기보다, 그들이 원해서 모여 있다고 보는 입장인가.

김찬중 전혀 다른 사회에 들어왔을 때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밖에 없다. 일단은 원해서 들어갔으리라고 보는 편이다. 문제는 다른 옵션이나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 커뮤니티가 울타리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착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무언가를 더 찾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라는 게 좋을 때는 좋지만 한 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정말 힘들지 않나. ‘빅데이터 셸터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생활 패턴과 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또 다른 공간을 탐색하고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닫힌 커뮤니티 외에 다른 기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면 새로운 사회로의 연착륙이 좀 더 쉽지 않을까 했다.

오재우 기존의 난민들이 가지고 있는, 혹은 보여주는 데이터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기존 커뮤니티의 다른 곳에 적용하거나 그들이 이주할 수 있는 지역과 매칭해주는 작업을 하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런 빅데이터가 생산되는지 궁금하다. 자료가 모아지고 있나?

김찬중 ‘난민을 프로파일링 한다’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 지역 사회의 특징이라는 게 있는데 구성원은 자신만의 데이터를 흘린다. 어떤 동네, 어떤 지역에서 데이터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직 분류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오재우 빅데이터를 분석해 지역성을 드러내려는 것 같은데, 빅데이터를 추출하거나 수집하여 지역 특성을 규정할 때 정한 기준 등이 있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축적 제안은 어떻게 하는가.

김찬중 우리가 하려는 작업은 물리적 기반이 이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커뮤니티 성격은 공간의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데, 가령 한옥 커뮤니티는 아파트 커뮤니티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구성 인자들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물리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데이터를 단순 비교하면 위험할 수 있지만, 수많은 데이터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한 지향점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도와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어찌 보면 프로세스상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은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어디엔가 잘 맞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개개인이 알게 되면 좋겠다.

오재우 전시를 준비하면서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는가.

김찬중 난민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고, 신문에서 보듯 보트피플처럼 극단적 상황에서 오게 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는 난민의 개념은 굉장히 포괄적이고, 정치나 종교적 이유로 망명한 사람들에 대한 부분도 있더라. 단순히 ‘난민은 극단적으로 궁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어찌 보면 내가 유학생활을 할 때 느꼈던 부분, 그 사회에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고자 애쓰면서 했던 고민이나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아 결국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난민이 된다면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만일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물리적 환경에 관한 것에 앞서서 내가 어떤 프로세스로 그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우리 사회로 들어온 사람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잘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지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재우 끝으로, 옆집에 난민이 이사 왔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김찬중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이 커뮤니티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들어온 것일 텐데, 뭔가를 더 하거나 바꾼다면 서로 더 불편해질 것이다. 


김찬중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의 한울건축과 케임브리지의 Chan Krieger Associates, 보스턴의 KSWA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귀국 후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의 설계 전공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더시스템랩(THE_SYSTEMLAB)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06년 제10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되었으며, 같은 해 베이징국제건축비엔날레에서 ‘주목받는 아시아 젊은 건축가 6인’에 선정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연희동 갤러리’, ‘래미안 갤러리’, ‘KHVatec 사옥’, 국립현대미술관 ‘큐브릭’ 등이 있다.

김경옥

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서 금속·세라믹·반도체 등의 재료를 공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자연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이 크지 않다는 걸 깨닫고, 사람과 연결된 과학을 하고 싶어 전공을 산업공학으로 바꿨다. 산업공학 가운데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해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글로벌융합산업공학과에 재직 중이다.

박진숙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주여성을 위한 문화 · 경제 공동체 ‘에코팜므’의 대표로 있으면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 여성의 자립을 고민하고 있다. 『이기적인 돼지 라브리에 가다』, 『여자의 성』을 번역했고, 논문으로 「난민 가정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문화 기술지적 사례 연구」(연세대학교, 2008)를 썼다.

빅데이터 셸터링

분량4,872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7년 2월 1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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