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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건축 교육에 대한 진단은?

김효영, 김세진, 이도은, 임현진, 최재필, 김샛별, 윤성영, 홍영애, 정영섭, 황은, 홍지학, 조윤희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현재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준 여덟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마주한 건축학과 학생들을 통해 한국 건축 교육을 진단한다. 건축학과의 5년제 커리큘럼이 보편화되면서 교육 환경은 나아졌지만 자율성은 떨어졌다. 실무자의 시각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축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효영(김효영건축) 사실 지금 학생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옛날보다 지금은 좋은 선생님도 많고, 다들 열정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매우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에게 본인 작업에 감정이입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건물을 단지 작업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사람처럼 바라보라고, 멀리 떨어져서 보지 말고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우리가 건축을 너무 물리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건축에서 무언가를 느끼기 어렵다. 사는 집에 대해서도 평수니 집값이니 그런 이야기만 하는데, 너무 메말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건축을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르쳐주고 싶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아무래도 건축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지 않을까. 

김세진(스키마) 영국 교육 시스템은 1% 천재들을 위한 교육이고, 미국 교육은 전체 수준을 1% 향상하기 위한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건축 교육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건축계에 필요한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배출하기에 지금의 건축 교육 커리큘럼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분야 사람(예를 들면 헤더윅, JOH 같은)이 건축 작업을 했을 때 더 빛나는 것 같다. 그들이 건축을 더 잘한다기보다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점이 건축계에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은 공통의 관심사나 이슈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만의 방법론을 어떻게 결과물로 드러내느냐의 싸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이도은(이와임) 내 대학 시절과 비교해 보면 요즘은 학교에서 실무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우고 나오는 것 같다. 우리 때는 실무보다는 건축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태도 같은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고, 건축가가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자질에 대해 더 고민했던 것 같다. 건축 행위의 과정에 대해 더 실질적인 고민,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5년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나, 너무 시스템에 얽매이는 듯한 커리큘럼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임현진(이와임) KAAB든 RIBA든 취지 자체는 건축가의 기본 자질을 갖추는 데 있다. 다만 그것은 최소한의 기준이다. 학생 때는 그 이상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인증받기 위한 기준을 채우는 것에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 아쉽다. 학생 때 엉뚱한 시도도 해보고, 맘껏 꿈꾸고, 좀 헤매도 되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들어야 하는 내용만 해도 이미 빡빡하다. 본인만의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재필(오헤제) 요즘은 학교 졸업 후 건축가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건축가가 되려는 친구는 절반 정도다. 건축가 양성이 건축 교육의 목표라고 보면 절반은 성공이고 절반은 실패인 셈이다. 그건 학생들이 건축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건축학과에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건물은 많이 봤지만, 건축가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려면 입학설명회 같은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오픈스튜디오도 해야 한다. 자기가 지원하는 이 학과에 오면 무얼 공부하고, 어떤 교수한테 배우게 되고, 또 그 교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짜 건축을 하고 싶은 학생이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동경예대는 일 년에 하루 입학설명회가 있다. 대학 스튜디오를 다 오픈하고, 교수들 작업도 프레젠테이션한다. 연구실 학생들도 고등학생들이 오면 안내해주고, 강의에서 어떤 것을 배우는지 간단한 발표도 한다.

김샛별, 윤성영(아에아) 우리 경험으로 볼 때 한국 건축교육 커리큘럼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좁다. 우리나라 체계로는 건축 분야가 계속 협소해질 수밖에 없고, 건축 서비스의 질도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3+2의 학·석사로 단계를 밟고 올라갈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개개의 스튜디오 별로 도시, 철학, 사회, 주거, 공공건축, 예술, 문화유산, 구조, 기술, 에너지 등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 또 세분화된 스튜디오가 형성된다. 학생들은 자기 적성에 맞게 심화 단계를 밟아나간다. 

졸업 후에는 설계사무소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개성 있는 건축가 또는 전문가로 활동한다. 문화유산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가 되기도 하고, 음악당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가 되기도 하고, 도시건축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기도 한다. 또 건축 역사와 비평을 다루는 작가나 평론가가 되기도 하고, 미술과 건축이 접목된 전시디자인이나 무대디자인으로 일을 하기도 하며, 선박 설계, 영화 제작, 도시설계 기획, 건축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심화 스튜디오 중에 몇 가지 예를 들면, 공공건축 스튜디오는 공공공간과 도시, 자연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학생들은 주어진 대지에 공공건축물이 어떻게 도시 내에서 상징적이고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프로젝트 하나를 설계한다.문화유산 스튜디오는 보존과 리스크 예방 같은 건축문화유산의 가치를 이어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주어진 사이트의 조사를 통해 장기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분석하는 과제를 진행한다. 도시환경 쪽 스튜디오는 실제 한 도시 구역을 정해 분석하고 환경 변화를 꾀하는 보도 넓이나 화단 길이, 벤치, 지하철역 조명 등을 다시 검토해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예술 스튜디오는 예술과 건축 공간의 관계가 시대마다 어떻게 변화가 있었는지, 장소의 의미와 재현에 대한 의미 등을 다루고, 주변에 있는 갤러리들을 둘러 보면서 공간과 작품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연구한다.

영화와 공간을 배우는 스튜디오도 있다. 건축과 영화를 접목해 영화의 기술적인 것들을 배우는 동시에 빛, 움직임, 등장인물을 이용한 미장센을 통해 공간을 재조명하는 수업이다. 소리, 하늘, 안과 밖, 시선, 움직임, 스케일 등의 요소들로 이미지들을 구상하고 최종적으로는 영화 한 편을 제작한다.

홍영애(몰드프로젝트) 건축가라는 직업은 창의적인 일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상대적으로 그런 방향의 교육과 실무를 경험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건축가라면 기능만 충족한 설계를 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요즘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잘은 모른다. 창의적이고 미적인 감각을 키우고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실무에서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누적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무직 직원처럼 된다.

정영섭(몰드프로젝트) 한국 건축의 역사를 잘 모르는 것도 문제다. 건축 행위를 하기 이전에 그것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건축 공부를 했고 실무도 하고 있다. 학교에서 그런 부분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나이가 좀 들고 나니 우리 건축이 먼저 체득된 상태에서 다른 것을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 건축교육은 공간과 재료와 미학적인 면을 다룬다. 당연히 다뤄야 하는 부분이고, 그런 측면에 맞는 교수나 강사들이 학교에 많다. 그런데 문화 측면에서 보면, 건축이 다른 분야와 계속 얽혀있지 않으면 고립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될 것이다. 지금 교육은 그런 면에서 너무 갇혀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가 관심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여지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단편적인 예로,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으면 설계를 잘할 수 없다. 무슨 그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가구를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문화를 안다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고, 그 소통의 소양을 길러야 한다. 건축을 건축의 시각으로만 보지 않고 인문적, 예술적 통로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함으로써 얻는 여러 가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다시 건축으로 들여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럴 때 건축이 더 풍성해질 것 같다.

황은(보.건.소.) 나는 주로 5학년을 가르치는데, 결과물이 다 비슷하게 나온다. 완성도는 있는데 제출해야 하는 결과물에만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정작 설계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다.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그걸 못 견뎌서 중간에 전과하거나, 힘들게 졸업하고도 설계 일을 안 하는 친구들도 많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설계를 배우는 데 써놓고도, 반 이상의 학생이 설계를 직업으로 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5년이나 시간을 쓰게 한다면 정말 설계를 할 때 필요한 능력을 내실 있게 키워주거나, 아니면 설계를 하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를 줘야 한다.

건축 교육의 목표가 꼭 건축가를 양성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공이나 재료 같은 분야도 충분히 접할 기회를 줘야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설계에는 어느 정도 재능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재능도 무시할 수 없다. 꼭 설계가 아니더라도 각자가 가진 다양한 재능을 살릴 방법이 분명히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 (내가 말한 재능은 공간지각력이다. 선천적으로 약한 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도면을 그리게 하면 무척 힘들어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설계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홍지학(구보건축) 5년제가 되면서 확실히 좋아지긴 했다. 문제는 학생들의 전공교과목 부담이 너무 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습득할 기회가 적어졌다.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좋은 프로젝트를 하려면 인풋이 많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인증 프로그램이 너무 표준화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창의성을 키워갈 수 있는 여지가 적다. 

기술교육 같은 느낌의 실무 중심의 교과목이 많은데, 학부에서부터 그렇게 전문 직업인으로 교육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는 데에도 그 밑바탕에는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기술만 알면, 주어진 숙제만 풀 줄 아는 단순 기술자가 되는 거다. 건축가는 주어진 숙제만 푸는 게 아니라 숙제 자체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탕에 교양 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커리큘럼 안에 교양을 포괄할 여지가 없을 만큼 너무 빡빡하다.

조윤희(구보건축) 결국은 교육제도도 건축계 전체와 같은 문제다. 5년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스스로 규제를 해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기존 교수진들이 거기에 찬성하면서 건축학과 커리큘럼을 짜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자율성이 사라져버린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건축가들이 실무를 할 때 자유가 사라진 것과 학교에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것은 똑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현재 건축 교육에 대한 진단은?

분량5,266자 / 10분

발행일2019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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