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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라는 태그: 젊은 건축가, 미숙한 혹은 값싼? 아니, 차세대

전숙희

덜 익은 건축가

젊은건축가상은 독특한 상이다. 상은 업적이나 성과가 뚜렷한 사람이나 작품에 주는데, 젊은건축가상은 소위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젊은 건축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젊은건축가상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실은 2005년 신인건축상으로 시작해, 2008년 젊은건축가상으로 개편되어 2018년까지 13해가 되었다. 지난 10월 열린 10주년 전시를 통해 보인 수상자들의 이후 작업은 그들이 건축계에 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젊은건축가상의 나이 기준은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왜 만 45세일까? 생물학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모호한 이 나이는 우리나라 건축에서나 젊은 나이다. 생물학적으로 마흔다섯 살은 결코 젊지 않다. 성장이 완성되었을 뿐 아니라 노화가 막 시작되는 나이다. 그러나 젊은건축가상은 45세까지 젊다고 보자는 것이다.

왜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실무를 익히고, 건축사 자격을 갖게 된 뒤, 사무소를 개설한다고 했을 때 빠르면 30대 초반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사람은 30대 중반이 되기에 십상이다. 작은 주택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1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40대는 되어야 제법 자기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젊은건축가상 심사가 있던 자리에서 심사에 참여한 한 분은 ‘젊은 건축가는 미숙한 건축가를 뽑는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듣기에 따라 오해할 수 있는 어휘 선택이었다. 하지만 골자 그대로 덜 익은 건축가이다. 덜 익은 열매는 시간이 지나면 무르익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마도 뒤에 그런 의미가 생략되어 있었던 듯싶다.

젊으니까 싼?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니 2011년 즈음인 것 같다.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예비 건축주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치동 산다는 소개를 한 그는 은퇴했고, 두 딸을 다 키웠으니 그동안 아내와 두 딸의 반대로 미뤄 오던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60평 정도 규모의 주택을 짓고 싶다고 했다. 꽤 긴 시간 이어진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얼마나 긴 시간 이 프로젝트를 꿈꿔 왔는지가 충분히 담겨 있었다. 머릿속으로 300평 땅 위에 집을 몇 번을 짓고 부쉈는지, 그는 이미 주택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산에 대한 생각도 확고해서 불필요한 낭비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아내와 두 딸을 위해 희생한 시간을 오롯이 채워보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난 뒤, 그는 설계비를 물었다. 예산이 얼마냐고 묻자 그것과 무슨 상관인지 의아해했다. 일정과 업무 범위를 설명하고 개략 설계비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꽤 언짢아하면서 노트를 꺼내 들었다. 한 페이지 가득 그가 만난 건축가들의 이름과 메모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적은 사람까지 소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 30여 명 만났으나, 당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장차 사업에 도움이 되라며 덧붙여, 자기 생각으로 원로인 ㄷ과 중견인 ㅎ의 설계비로 유추해 볼 때 당신의 설계비는 3천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설계비는 하는 일의 성격과 양보다 건축가의 명성과 나이에 따라 책정된다고 그는 믿는 것 같았다. 그는 나와 인연이 없었지만, 그의 기준에 적합한 나이와 명성을 갖춘 건축가와 전원주택을 지었길 바란다.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는 기성 제도나 시스템에 맞춰 산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은 더욱더 그렇다. 전문인으로서 건축가의 첫 관문인 건축사 자격시험은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불합리한 시스템 중 하나다. 지난 5년간 건축사 자격시험의 합격률은 10% 남짓을 유지했다. 시험 출제 오류가 있었던 2015년 한 차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다음해 다시 평균치를 밑돌아 결국 평균 합격률을 유지하게 됐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매해 5천 명 안팎이 응시하는 이 시험이 1년에 내는 합격자 수는 겨우 5백 명 안팎인 셈이다. 이를 두고 절대 평가를 해야 하는 자격시험이 합격률을 정해놓고 수험생을 상대 평가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해를 거듭해도 놀랍도록 일정하게 유지되는 합격률이 대한민국 건축인들의 자질 문제인지, 합격률 고르기의 문제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2019년 건축사 예비시험이 폐지되면 인증제를 도입한 학교 졸업생을 제외한 다른 건축 전공자의 자격시험 통로가 막힌다. 문제가 코앞에 닥치니 해묵은 자격시험 개편의 목소리가 새삼 절실해진다.

얼마 전 건축사 시험 제도 개선과 관련된 간담회에서 시험을 관리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측 대리인을 만났다. 그는 합격률 고르기 의혹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건축사들의 프로젝트 수주가 과거 1인당 연간 65개 동에서 최근 10개 동으로 열약해졌음을 강조했다. 이미 자격을 획득한 자들의 수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격시험에 정원 제한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기존 건축 시장에 있는 건축사들의 수주 환경을 위해 젊은 건축인들의 수를 통제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시험 관리를 위임받은 자들의 가치 기준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시장 보호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기성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방어 행위, 즉 젊은 건축인들의 진입을 막기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제도로 방해하지 않아도 건축사 자격을 갓 획득한 젊은 건축가들 앞에는 시장이라는 큰 문턱이 있다. 시장의 엄혹한 검증을 받으며 뿌리를 내려야 하기에 그 첫 관문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기만 해도 될 것이다.

소규모 건축물 시장 규모는 한 해 70조 원이 넘는다. 건축사사무소는 5인 미만의 소규모 사무실이 전체의 75%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동네에서 양질의 소규모 건축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동네 풍경은 70–80년대 집장사들이 장악한 뒤, 90년대 이후 건설사들의 브랜드 아파트에 의해 포위되었다. 아파트 개발 동력이 수그러들고 도시 재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더욱 양질의 젊은 건축가들의 시장 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거리가 적다고 기득권을 지키려 사다리 걷어차기보다는 양질의 젊은 건축가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시장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공생의 길이자 공공에 기여하는 길이다.

젊은 건축가 다이하드

45살. 젊은건축가상의 나이 기준에 관한 논쟁은 대한민국 건축 시스템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른 분야에선 은퇴를 꿈꿀 나이인데 건축 분야에서는 젊다고 한다. 사실 한 번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고 나면 은퇴 연령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선 젊다고 할 수 있겠다.

38살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모전에 당선된 요른 웃존은 우리 기준에 따르면 젊은 건축가였다. 우리나라 건축 토양에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지어질 수 있었을까? (국제 공모전에 제출한 그의 안은 심사 기준에 미달한 것이었지만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에로 사리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미학적으로 훌륭했던 웃존의 안은 구조적으로 구현이 매우 어려웠다. 오브 아럽이 참여한 모크업의 실패, 공사 지연과 설계 변경에 따른 예산 초과, 정권 교체에 따른 사퇴 압박으로 결국 웃존은 수석 건축가를 사퇴하고 호주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14년의 공사 끝에 1973년 완공된 건물은 젊은 건축가의 비전대로 완공되었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버리지 않고 완공할 수 있을까?

우리 공공건축은 건축물을 물건처럼 구매하는 조달청 방식을 따른다. 그러다 보니 계약 기준이 까다로워 제도권에 들어가기 위한 장벽이 높다. 제출 기준도 까다로워 결과물이 경직되기 일쑤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 공모에서 젊은 건축가였던 민현준의 안이 당선되었다. 당시 나는 공모 지침을 만드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공모 과정을 지켜보았다. 2단계로 이어진 공모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회가 함께 만든 지침을 준수해 투명한 공모 운영을 통해 당선작을 냈다. 당선 이후 젊은 건축가는 대형 설계사무소와 컨소시엄으로 설계를 수행했지만, 끝까지 순탄치는 않았다.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된 공사는 여러 건설사의 컨소시엄으로 이뤄졌고, 시공 단계에 들어서자 설계자는 시공 현장에 진입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어려움을 SNS를 통해 토로했다. 젊은 건축가의 공공 프로젝트 진입은 가시밭길이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 신청사 국제 공모에서 젊은 건축가 이원석의 출품작이 당선되었다. 사업비 1천억 원 규모의 대형 공공 프로젝트의 당선작이 발표된 후, 젊은 건축가의 사무소 규모에 대한 우려의 말이 나온다.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사실 당선자의 사무실 규모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공공 발주 시스템이다. 좋은 설계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부재가 더 큰 문제다. 설계사무소의 규모와 관계없이 프로젝트 진행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젊든, 작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

좋은 건축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건축이 중요한 이유다. 90년대 중반 건축이 수험생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학생들의 유입은 대학 내 건축학과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1998년 IMF로 인한 경제 한파와 함께 건축 시장이 경직되면서 당시에 개소한 젊은 건축가들은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사무실을 접어야 했다. 이들이 남아있었더라면 지금 중견 건축가 층은 훨씬 견고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영향이었을까? 건축학과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건축학과의 꽃이라 여겨졌던 건축설계를 전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좋은 학생의 유입은 고사하고 존폐의 위기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는 그들의 선택을 더 망설이게 한다. 그래서 더 절박한 마음으로 젊은 건축가들이 잘 자리 잡기를 바란다.

가톨릭교회는 최근 교회 노령화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젊은 사제나 수녀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랜 시간 이어온 가톨릭교회 공동체의 삶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세대 간 돌봄을 통한 공동체 삶을 누린다. 이 공동체의 삶은 자급자족적 노동을 토대로 지탱되는데, 돌봄을 이어줄 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개체수 감소는 큰 위기다. 사회의 생산을 책임질 젊은 세대의 감소는 모두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구학자 조영태는 2030년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난 2015년 일본의 미래보다 어둡다고 말한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건축계는 여기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까? 답은 젊은 건축가에게 있다.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전문인이 되고,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건축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집에 산다. 주거 환경이 좋아지면 삶은 좋아진다. 그렇게 건축은 사람들의 삶과 가까이 있다. 우리 땅에 사람들이 사는 한 우리는 계속 집을 짓고 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건축가가 계속, 더 많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에 좋은 삶과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좋은, 젊은 건축가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전숙희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와이즈건축은 2008년에 사무소를 개소하여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공공예술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여러 집단과 연계해 건축 놀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11년에 대한민국 젊은건축가상을, 2012년과 2015년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어둠속의대화로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15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공간대상을 수상했다.

‘젊은’이라는 태그: 젊은 건축가, 미숙한 혹은 값싼? 아니, 차세대

분량5,656자 / 11분

발행일2019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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