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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0년

김상호

건축가라는 직업 앞에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젊은건축가상의 시작이 10년 전, 『공간』의 젊은 건축가 연재가 8년 전,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의 첫 파티가 7년 전이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건축가를 만나는 것은 뉴페이스를 찾는 일이 중요 임무인 건축잡지조차도 1년에 한두 명을 만나면 다행일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시 『공간』이 이듬해 연재를 이어가지 못한 이유도 취재 대상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였다.) 개인 건축가로 독립하는 시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보다 긴 실무 경험을 쌓고 나서야 독립을 생각할 수 있었고, 독립 후에도 5년 정도가 흘러서야 매체의 레이더망에 잡혔고, 매체가 기사화하기까지는 몇 개의 관문을 더 거쳐야 했다. 저마다 신중을 기하다 보니 수도 적고 시기도 더뎠다. 신인 건축가의 수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때는 대형 설계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건축가 엑소더스가 일어났던 5–6년 전부터였다. (해외에서도 1년 정도 앞서 대형 설계회사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대형 회사의 경영난이 촉매 작용을 했지만, 전조와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충분한 조건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젊은 건축가’가 우리 건축계에 처음 출현했던 때를 돌아보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과 면모가 있었다. 당시 업계는 대형 회사와 소형 아틀리에의 대결 구도가 지금보다 뚜렷했고, 아틀리에 진영은 중소규모 시장 확대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해외 유학과 실무 후에 귀국을 생각하는 건축가들에게 서울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그래서 비록 수는 적었지만 독립한 건축가들에게서는 뭐든 다 한다는 긍정적인 낙관과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자신만의 색깔이나 지향성이 뚜렷했고 저마다 특화된 무기가 하나씩 있었다. 미술전시 참여, 공공예술 작업, 파라메트릭 디자인, 작은 것에 대한 관심, 동네 건축, 일상의 가치, 도면의 디테일, 철저한 서비스 정신 등이 그들이 추구하고 내세웠던 특기와 지향점들이었다. 지금은 모두 건축계 보편의 영역이 되었다. 누구나 일상의 작은 가치와 섬세한 도면과 재료를 이야기하고, 전시나 공공예술 영역에서 건축가를 부르는 일이 어느새 당연해졌다. 2011년 12월 『공간』이 젊은 건축가 특집 연재를 마무리하며 실은 건축가 김찬중의 글 ‘전장에 선 젊은 건축가들’에는 당시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때 취재 대상이 고기웅사무소, 와이즈건축, 사이건축, 조호건축, 사무소효자동, 스튜디오위브, 디아건축, 삶것, 공일스튜디오, 이재하건축사사무소였고, 대부분 독립 5년차 안팎이었다.)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의 행보가 체제 순응적이지 않고(그렇다고 반체제적이지도 않은) ‘체제 관찰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실에 밀착한 이슈들을 건축 안에서 혹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 속에서 논리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파악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건축이라는 행위를 주도하는 체제를 면밀히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중략) 기술적(디자인) 특화는 어쩌면 우리의 존재 이유다. (…) 그것이 형태든, 재료든, 디테일이든,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따라하기 쉽지 않은 그 무엇이 필요하다. (…) 대형 사무소는 태생적으로 캐시플로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실험으로 누적되는 위험을 감수하려면 상당한 희생과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형 사무소는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김찬중, ‘전장에 선 젊은 건축가들’, 『공간』, 2011년 12월호

지난 10년 동안 젊은 건축계에는 얼핏 상향 평준화가 일어난 느낌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예전에는 특별했던 것들이 보편화되면서 이젠 자신만의 특별함은 웬만해서는 강조되기 어렵다. 신인 건축가의 수는 급증했지만 건축 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예전에는 수주와 설계비의 경쟁 상대가 허가방이나 집장사 같은 외부 집단이었지만 지금은 내부의 소리 없는 경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과거의 낙관적 전망과 도전적인 자신감은 다소 위축되고, 조심스럽고 신중해진 분위기다. 차순위였던 손익 계산과 조직 경영이 점점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듯 보인다. 젊은 건축가를 지원하려는 제도는 각종 수상 제도, 지자체의 공공건축가 제도, 현상설계 참가 영역 구분 등 다양해졌지만, 그것들이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렵고, 반면 ‘젊음’, ‘공공’, ‘공정’을 내건 다른 종류의 차별을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린다.

한편,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새로 독립하는 건축가들에게 변함없는 것이 있다. 독립은 건축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부터 늘 생각해온 꿈이자 운명이라는 것, 독립의 계기는 특별히 따로 존재하지 않고 경력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 독립의 이유는 언제나 나의 일을 쌓아가고 싶은 욕구라는 것, 사무소 규모는 10년 전이 아니라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웬만해서는 키울 일도 이유도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설계라는 일은 새 프로젝트를 만날 때마다 늘 처음 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모든 것이 낯설고 기댈 곳 없는 빈 땅에 금을 긋는 일이라는 것. 

새 건축가를 찾아나선 우리 관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 건축가들과 뭔가 다른, 어딘가 새로운, 지금 시대와 닮은 건축가들을 만나고 싶은 희망이다. 그러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독립의 조건과 개인 사무소의 여건, 누적되지 않는 공동의 경험과 지식을 생각하면 우리 관찰자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건축가의 등장은 시스템적 발전보다 생물학적 진화, 그것도 돌연변이 출현에 기댄 확률게임일지 모른다. 진화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변화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표본을 찾아야하고, 진화의 다음 단계를 공언하려면 설득력 있는 연결고리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단번에 눈에 띄는 건축가를 찾아나서기 보다 시간을 갖고 여러 건축가의 행보를 성실히 추적해야 한다. (처음 내세운 지향점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이가 있고, 생각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을 개의치 않고 변화하는 이가 있고,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 이가 있고, 환경 변화에 예민하여 사라지는 이가 있고, 환경 자체를 바꿔버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찰과 취재, 나아가 비평이 서야 할 자리가 바로 거기가 아닐까. 긴 시간 이어지는 탐색과 끈질긴 추적이야말로 우리의 미덕이 되어야 한다. 건축이 한순간에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듯 건축가의 작업 세계도 어느 한 시점에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2018년 8월부터 11월 사이 10회에 걸쳐 진행된 시리즈 포럼 <두 번째 탐색>을 기초로 하고 있다. <두 번째 탐색>과 관련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건축가의 선정 기준이다.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었다. 이 포럼은 공모나 수상을 심사하는 자리도 아니고 올해의 인물 같은 특별 이벤트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아직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건축가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작업을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 ‘당신은 누구인가’다. 물론 이 질문에는 추구하는 바나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표작이 무엇인지, 어떤 이력을 쌓아왔는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지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잘 몰랐던 건축가를 알아가고, 그 행보를 계속 지켜보고 싶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선정 기준이 없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매우 느슨한 ‘초대’의 기준은 있었지만, 우열을 가르거나 가치를판단할 정도의 ‘선정’ 기준은 없었다. 이름만 들어봤을 뿐 어떤생각을 하는지, 무슨 작업을 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던 건축가를 무작정 모았다. 받아둔 명함에서, 남겨진 메모에서, 주변 소개를 통해서 40여 팀의 명단이 나왔고, 그중 웹사이트가 있어서 최소한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30여 팀이었다. 그 시기에 때마침 기사화됐거나 상을 받거나 다른 자리에 초대된 팀은 후순위로 뒀다. 그렇게 이름과 웹사이트 주소만 추린 목록을 패널들에게 보내서 만나보고 싶은 명단을 자유롭게 받았고, 그중 10팀을 연락이 닿는 대로 섭외했다. 이것이 전부다.

<두 번째 탐색>이 취한 태도는 보통의 출판이나 잡지의 태도와 다르고, 비슷해 보이는 다른 포럼이나 강연 프로그램과도 다르다. 그들은 확실한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생산, 유통하기 위한 목표에 최대한 부합하는 인물을 엄선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두 번째 탐색>은 확실함과 유명함에 기대지 않고 선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가능한 한 넓은 대역폭의 채널을 개설하고자 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미지의 건축가들을 찾아 나섰고, 그 기록을 여기에 남긴다. 다소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이 일은 건축의 공익재단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은 “한국 건축계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일하고, “한국 건축문화의 균형 잡힌 매개자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이 열 팀의 건축가를 알게 되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각 팀에게 한 시간 정도의 발표를 듣고 한 시간 정도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두어 개의 작업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몇 장으로 봤고, 처음 만난 당일 예닐곱 개 정도의 즉석 질문을 우물쭈물 건넸을 뿐이다. 초대받은 건축가들 대부분은 사무소를 시작한 지 만 5년이 채 안 된 사람이 많고, 지은 건물도 아직 두세 개밖에 안 된다. 그들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을 아직 충분히 실현해내지 못했다. 우리는 그 시작의 단편들을 겨우 보고 들었을 뿐이다. <두 번째 탐색>은 당분간 성급한 판단과 평가를 경계하며 정보의 탐색망과 네트워크를 조금씩 더 넓혀가려 한다.

김상호 건축신문 편집장

그 후 10년

분량4,792자 / 9분

발행일2019년 3월 25일

유형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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