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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주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강현석, 고영성, 김건호, 김경도, 김세진, 김지훈, 맹필수, 문동환, 박지현, 이주환, 전필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설계!

이주한(피그건축) 결국 건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 건물을 잘 만든다는 의미는 건물 내부 공간 조직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태도 물론 중요하고 경관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내부 공간의 구성, 배치, 프로그램은 결국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방식, 사회적인 여건을 반영한다. 밝은 다세대주택도 요즘 1~2인 가구의 임대 세대, 청년 주거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건축이 하는 일이다. 그걸 잘하면 그게 민간이든 공공이든 상관없이 가장 큰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건물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법적 용도가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용도와 맞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어내 건물을 잘 만드는 것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김세진(지요건축) 건축가의 역할 중에서 가장 기본은 설계라고 생각한다. 당연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고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건축’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2013~1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를 주제로 하는 전시가 열렸다. 처음이 정기용, 두 번째가 이타미 준이었고, 두 전시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감히 말하기도 조심스럽지만, 정기용 선생님은 사회에 대한 선명한 입장과 실천이, 이타미 준 선생님은 내향적인 관심과 감정의 섬세함이 기억에 남았다. 건축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조건과 다수의 합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기본기인 설계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나에게 설계는 최소한 또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방법이다. 이는 공공건축이건 민간건축이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대상이 달라질 뿐 사회적인 필요와 요구는 쓰임이라는 행위로 구체화된다. 이를 만족시켰다면 설계자는 중요한 소임 하나를 이미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가끔 오늘 지나쳐온 수많은 건축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몇이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모든 건축은 각각의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최적화되어 존재한다. 그렇지만 강렬하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축을 쉽게 만날 수는 없다.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건축에서 공통점이나 유형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잘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특정한 건축 안에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그런 건축을 하고 싶지만, 무척 어려울 것이고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정답이 없기에 나에게도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쉽게 정의하기 힘들고 그 범위도 넓다. 내가 지금 노력해야 할 일은 설계를 통해 사회적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량을 늘리고 기본기를 쌓는 것이다. 어느 정도 건축가로서 준비가 되면 설계 이외의 영역에서도 기여와 책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리라 생각한다.

김지훈(mmk+) 건축가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건축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건축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다수가 건축을 부동산 가치로 보고, 만드는 사람도 거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건축 마저도 경제 논리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가 공공성을 갖는 건축에 관심이 많으니 그런 성격의 작업을 지속하고 잘 만듦으로써 건축이 부동산 가치를 넘어서는, 문화적으로 도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노력을 지속해 사회에서 건축의 문화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건축계 내부의 시스템적인 문제점들, 예를 들어 건축사 시험, 건축 설계 대가의 문제 등이나 공공건축의 문제점 등이 그런 바탕 안에서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제안 

김건호(설계회사) 건축가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제시하는 해법은 사회학자나 운동가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들이 오랜 시간 다양한 사회의 층위를 고려하여 연구한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라면, 건축가는 ‘이런 것은 어떨까?’ 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건축가가 다양한 층위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가 내는 목소리는 건축적이고 거기에는 분명한 다름이 있다. 건축가가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제안하는 것이 결과로서 건축물이든 다른 미디엄을 통한 지적 생산물이든, 이를 통해 사회의 특정 문제나 상황을 환기하거나 그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제안이 완성된 디자인으로서 그 만의 내적 논리를 가질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다.

강현석(설계회사) 클라이언트는 건축가가 제시한 도면을 통해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이렇듯 건축가의 드로잉과 그에 결합된 텍스트는 다가올 시간의 이슈에 대한 논의와 제안을 촉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매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60, 70년대의 아키줌(Archizoom), 아키그램(Archigram) 혹은 슈퍼스튜디오(Superstudio) 등을 포함한 실험적 건축 그룹의 작업들을 통해서 이러한 건축 작업의 고유하고 독특한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축가가 과거의 레퍼런스와 담론에 기대어 현재를 그려내듯이 현재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통한 근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건축가의 사회적, 시대적 역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문제와 해결’보다는 ‘드러냄과 질문’이 화두가 될 때 더욱 가벼운 태도로 풍성한 가능성들이 모일 수 있을 것이다.

구축적인 측면에서는 좁은 폭의 진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다가구 주택을 설계 중인데 공용 부분을 늘리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세대별 전용 면적이 임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축주를 설득하기가 어려웠는데 선배 건축가들이 최근 구축한 선례들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은 이렇게 한 걸음씩 이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김경도(RoA) 말과 행동이 앞서기 전에 건축가 개인의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건축가가 실력을 키워 점차 더 나은, 더 좋은 건물을 짓게 된다면, 건물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건축은 당연히 공공재고, 그로 인한 사회적 역할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회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축가가 사회적 발언이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건축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행동한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는 단순히 건축법을 개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건축의 질, 문화, 어쩌면 사회 전반적인 틀까지도 바꿀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편 사회에서 건축가에게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묻는다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반영한 최선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건축가에게 포스트 코로나 대비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여기에 발코니나 중정 공간을 해법으로 제시한 답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법은 결국 거리 두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기 때문에 아쉽다. 우리가 공간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건축이 이런 사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른 접근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예를 들면 전염병이 확산되면 학교가 문을 닫고, 공공시설도 일부 기간 문을 닫는다. 그런데 그럴 것이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 공공건축물을 치료시설, 요양시설 등 긴급 시설로 전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간단한 장치를 제안해야 한다. 특히 학교는 병원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다. 그러므로 건축가들이 설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새로운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금처럼 이렇게 거리 두기만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거리 두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맹필수(mmk+) ‘건축이 사회를 바꾼다’는 식의 사회적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긴 조심스럽다. 하지만 건축이 사회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서 더 좋은 사회가 되거나 그런 기반이 만들어진다. 건축가는 그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되 그중에서도 건축적 접근을 통해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선별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않아서 뒤처져 있는 공간, 사람이 살고 있는 정주 환경 등에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개입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가가 사회를 바꾸겠다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지 않아도 할 일은 많다.

서비스 제공 이상의 사회적 역할

전필준(이심전심) 건축가가 건축 안에서 담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영역을 설계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반드시 공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조율하고 배분하는 역할 등을 섬세하게 파고 들어가서 건축가의 업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정자의 역할은 어디에서나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누구의 영역도 아닌 채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영역을 우리의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문동환(mmk+) ‘건축가가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수동적으로 일을 받고 일하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아가서 먼저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건축가가 사회에서 리더가 되어 외치고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많진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환경과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노들꿈섬 프로젝트만 봐도 작은 그룹이긴 하지만 건축가가 다른 전문가들을 이끌어가며 일한다. 그런 것처럼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사회 안에서 건축가들이 역할할 수 있지 않을까.

박지현(BUS) 지금까지 우리 사무소에서 해온 일 대부분은 개인 건축주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개인의 요구사항을 중점적으로 반영한 건물을 설계하다 보면 마치 맞춤 제작 전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서비스만 제공해왔는가 돌이켜보니까, 그건 아니다. 우리는 건물의 벽을 세움으로써 도시와 개인이 충돌하는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를 조율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에는 집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보가 너무 넘쳐나다 보니까 건축주들이 다들 원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온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패치워크처럼 짜깁기해 놓으면 동네의 도시적인 분위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감성 같은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나 홀로 튀는 집 혹은 요즘 유행하는 느낌의 집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재료 선택부터 시작해서 그 재료가 내외부에서 보이는 모습, 재료의 접합 방식 등을 검토하고 결정함으로써 그런 부분을 조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역할은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라고 느낀다.

여력의 문제

고영성(포머티브) 건축가의 사회적인 역할은 중요하고 그에 대해 논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건축가들이 많진 않다. 우리만 해도 어느 정도 사무실이 돌아가니까 공공의 가치에 주목하는 프로젝트나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력이 되지 않는 건축가들이 더 많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역으로 건축가들에게 공공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무적인 짐을 지워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느 시나 지자체에서 도시재생을 계획한다면, 건축가 풀을 활용하되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괜찮을 것 같다.

우리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재생하는 것은 결국 삶의 재생, 사람이 사는 장소의 재생이다. 그러니까 그런 내용을 기획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건축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MBC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는 기간이 아주 짧아서 많은 건축가가 거절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했었지만, 마음을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이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업적 성격의 재생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게 될 공간을 재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통해서 건축가의 참여를 통한 삶의 재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공통 주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분량6,110자 / 12분

발행일2021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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