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주제) 새로운 영역
김세진, 박지현, 이주한, 전진홍, 전필준, 조성학, 최윤희
분량4,037자 / 8분
발행일2021년 10월 25일
유형인터뷰
도구의 언어로 소통하는 영역
전필준(이심전심) 앞으로의 세대에게는 ‘도구의 언어’(특히 컴퓨터의 언어)를 잘 다루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우리의 잠재적 협력자가 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고, 협업하게 될 것이다. 소수를 제외한 건축 디자인 분야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런 것에 둔감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디자인과 제작에 적용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도구의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체의 확장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공간
전진홍, 최윤희(바래) 우리는 리서치로 축적한 많은 양의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영상에 담아내고, 영상 매체를 주요한 표현 형식 중 하나로 다룬다. 그렇게 작업을 지속하면서 ‘건축가로서 영상을 다룰 때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 답을 찾다 보니, 영상을 만들고 보여주는 방식까지 하나의 작업으로 접근하고, 비물리적 속성의 영상이 물성을 지닌 구조물과 만나 입체 영상환경으로 공간화되는 방식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 이외의 분야에서 가속화되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가상의 세계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는 건축 분야에서 영상이 지닌 기록과 시뮬레이션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는 확장 가능성을 감지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공간 영역을 어떻게 탐구해야 할지 고민할 지점을 안겨준다. 동시에 기술의 발전이나 다학제적 접근방식을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시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건축가 혹은 건축을 중심에 두고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근본적인 물음을 품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
기획, 도시계획 영역으로의 확장
이주한(피그건축) 우리는 공간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 건물 설계 과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획 설계, 기본 설계, 실시 설계, 감리 등 단계가 나뉘어 있고 건축가 대부분은 이 영역 안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에는 기획이 있다. 나는 늘 기획에 관심이 있고, 재밌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건축가가 관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니 다음 단계에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을 왕왕 본다. 요즘 들어 기획 단계에서도 건축가가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생겨나고 있고,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장될 여지도 있는 것 같다.
또한, 도시재생, 도시계획 등 분야에서도 처음에는 도시계획 분야 인력이 일을 주도했지만, 그것도 최종적으로는 건조 환경을 실제로 구축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까 공간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쪽에서도 일해보려 한다. 이처럼 우리 업무 영역을 건물 설계로 국한하지 않고,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 결국 사물을 만드는 것
김세진(지요건축) 미술관의 전시 디자인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반적인 설계 업무가 아니다 보니 일의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는데, 경험하고 보니 내가 다루어야 하는 것이 돌, 나무, 금속 등 물리적 대상이고 결국 사물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은 비슷했다. 첫 번째 회의에서 개념을 얘기하고 다이어그램을 보여주었을 때, 학예연구사가 단번에 받아들였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실시설계를 마치고 설계 업무가 끝난 다음에는 도록에 싣기 위한 설계소묘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그 이후에 수장고 리뉴얼 관련 프로젝트도 하게 되었다. 다른 미술관에서도 전시 디자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이 이전 전시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막연하게도 학예연구사는 순수예술에 한정된 언어나 개념, 표현 등에만 공감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짐작했던 것이다. 내 생각은 틀렸고 평소 방식대로 개념에 관해 대화하고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설계는 진행되었다.
개념으로 시작해 사물로 향하는 것이 건축 뿐만 아니라 전시나 가구 디자인, 설치물 등 다른 영역에서도 작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축의 과정 자체가 매우 특수하고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오히려 보편적이고 확장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 건축 분야가 아닌 누군가가 나에게 협업을 제안하였을 때, 개념을 생각하고 도면을 그려 사물을 만드는 일이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건축설계가 아니더라도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어떤 장소에 놓는 것이라면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일지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얼핏 예를 들면 설치 작가의 작품을 함께 만드는 일일수도 있겠다.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으나, 그 직후 실제로 작가와 협업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의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완료했다.)
새로운 유형의 건축주
조성학(BUS) 회사 운영하면서 이것저것 관심도 가져보고 스타트업도 생각해봤었는데 우리가 재밌고 자신 있는 건 결국 건축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영역을 찾는다면, 다양한 건축주를 수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앞 세대의 경험이 없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업계 전반에서 앞세대의 건축주와 지금의 건축주가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요즘 건축주들은 라이프스타일도 각양각색이고 건축 지식을 얻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들은 이런 것을 수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건축가들을 필요로 한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건축주는 마치 협력사와 일하는 것처럼 손발이 맞고 일이 계속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다양한 요구를 포착하고 건축적으로 소화해내는 게 결국 새로운 영역이 되지 않을까.
박지현(BUS)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당장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여러 관계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건축물에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 특히 모바일 관련 기술이 늘어나고 있고, 건축주의 선택권이 넓어졌다. 요즘은 버릇처럼 “건축은 할수록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할 정도로, 건축에만 집중해도 프로젝트마다 습득해야 할 게 정말 많다. 우리 이후의 세대들은 점점 더 당연하게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변화하는 건축의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그러한 요구기술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며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도 너무 다양해 겨우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우리가 헤매고 있으면 오히려 건축주들이 본인에게 적합한 기술을 공부하여 본인 맞춤 대안을 제안할 때도 많다. 그 과정이 반복되며 새로운 것을 습득하게 된다. 물론 집에 동시대 신기술을 접목하는 게 과연 좋은가 하는 고민도 있는데, 수요는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미래 기술과 새로운 사물의 등장
전진홍, 최윤희(바래) 리서치의 일환으로 1960년대 이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모아 시대별로 살펴보니 삶의 양식에 따라 주거 공간이 변화하고, 이에 가전/가구가 밀접하게 맞물리며 변해왔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래 기술과 새로운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실내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공간의 관점이 아니라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IoT(사물 인터넷)를 통해 사물끼리 서로 소통하고 이동하는 상황에 맞춰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움직이고 소통하고 말하는 지능을 갖게 된 다양한 기계의 행동 패턴과 속성을 연구한다면 그것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공간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바퀴가 달린 로봇 청소기에게 문지방이나 다리가 달린 가구들은 로봇 움직임의 방해요소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바닥에 단차가 없게 만들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지만, 쓰임새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지능을 지니고 움직이는 사물들의 탄생이 인간의 삶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한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처럼 공간에 놓이는 똑똑해지는 가전/가구와 같은 사물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공통 주제) 새로운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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