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간으로의 서점 – 1970년대 몇 가지 사례
임경용
분량4,839자 / 10분
발행일2016년 1월 26일
유형오피니언
1. 멀티플의 유통 공간 – 아트 메트로폴
AA 브론슨, 펠릭스 파츠, 호르헤 존탈이 조직한 작가 콜렉티브 제너럴 아이디어는 1974년 토론토에 ‘아트 메트로폴Art Metropole’이라는 기관을 설립한다. 그들이 밝히는 아트 메트로폴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아티스트북, 멀티플, 비디오, 오디오, DVD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를 전시, 홍보, 출판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실험적 예술에 대한 애정 이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에디션을 유통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에디션은 복사(복제) 테크놀로지 안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개념으로, 당시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플럭서스 운동과도 잘 어울렸다. 제너럴 아이디어에게 현대미술은 상품의 형식을 통해 유통될 수 있는 (개념의 확산보다는 ‘작품’ 소유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파일>(1972~1989)과 같은 잡지나 단행본 출판처럼 예술 활동을 기록, 수집, 보존, 연구, 유통하는 일도 병행했다. 지금까지도 캐나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아래 서점과 아카이브, 연구 학술 기관으로 토론토에서 운영되고 있다.
2. 아티스트북을 위한 공동체 – 프린티드 매터
1976년 칼 안드레, 솔 르윗, 루시 리파드와 같은 현대미술 작가와 이론가, 비평가 등이 모여 만든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는 아티스트북이나 인쇄물을 유통하고 연구하는 비영리 예술 기관이다. 현대미술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뉴욕의 다양성과 활력을 바탕으로 아티스트북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아직까지도 복간이나 아티스트북 출판, 1960~1970년대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과 2012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아트북페어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는데, 빠른 시간 내에 전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아트북페어로 성장 하였다.
3. 능동적 아카이브 – 아트풀
‘아트풀Artpool’은 헝가리 출신 작가 줄리아 클라니츠자Julia Klaniczay가 “능동적인 아카이브”를 모토로 1979년 부다페스트에 설립한 아카이브이다. 아카이브라고 하지만 사실 헝가리 출신의 플럭서스 작가였던 기외르기 갈란타인György Galántai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부다페스트에서 운영했던 채플 스튜디오의 활동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정된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헝가리 현대미술 연구 사업과 전세계 현대미술을 자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4. 피렌체 지역예술 아카이브 – 조나
1974년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지역의 예술 활동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든 ‘조나Zona’는 지역적 특수성 위에서 출발했다. 피렌체는 과거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1970년대에는 보수적인 문화 환경에서 새로운 변화나 실험적인 시도를 받아들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우리지오 나누치, 파올로 마시, 마리오 마리오티, 기우세페 치아리 등의 젊은 예술가들은 당시 유럽과 미국 예술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던 구체 시詩나 미디어아트, 개념 미술, 퍼포먼스와 같은 학제적 예술 실천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간을 설립하게 된다. 즉 조나는 플럭서스 운동의 바탕에서 피렌체의 사회 문화 경제적 조건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행동으로 이해된다. 아티스트북과 소규모 출판 운동 맥락 안에서 아카이브 운영과 연구, 출판 활동을 지속했다. 지금도 조나는 아카이브로서 피렌체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 해프닝으로 서점 – 에카르트
스위스 출신의 작가 존 암리더와 패트릭 루치니, 클라우드 리흐너가 1969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한 ‘그룹 에카르트Group Ecart’는 플럭서스나 개념미술, 바디아트 등을 제네바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969년 리치몬드 호텔 (존 암리더 가족이 운영하던) 지하에서 했던 <에카르트 해프닝 페스티벌>이 대표적 행사였는데 존 케이지, 알랜 캐프로우, 조지 마키우나스의 플럭서스 실천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후 1972년 에카르트는 출판사이자 서점, 갤러리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1979년까지 운영되었다. 1995년 리오렐 부비에와의 인터뷰에서 존 암리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카르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속해있는 어떤 것, 우리 사이의 협약 같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기술할 수 없는 지식의 조각으로 스스로 작동되는 ‘올바른 것’이었습니다.”6 공동체가 공유하는 어떤 태도나 가치가 특정한 조건 (이 경우에는 플럭서스 운동으로 볼 수 있겠는데) 안에서 ‘그냥’ 작동되었고 그 결과 에카르트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6. 왜 서점인가?
1960, 70년대에 예술가가 개입해서 만든 공간은 지역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분화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플럭서스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처럼 정보와 물류가 자유롭게 국경 너머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거의 동시에’ 유사한 성격의 공간들이 유럽 각지에서 생겨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플럭서스 뉴스레터의 배포처 역할을 하면서 지역예술계 안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정보 지식 센터의 역할도 함께 수행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공간들이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는 꽤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술가의 공간 상당수가 파리, 런던, 베를린과 같은 예술 중심지가 아니라, 스위스, 헝가리, 캐나다, 피렌체와 같이 현대미술의 변방에서 만들어진 것도 그러한 상황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이러한 공간이 예술가에게 익숙한 갤러리가 아니라, 서점이나 아카이브 같이 인쇄물을 다루는 방식으로 형성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서점에 대한 가능성의 영역과도 연결될 것 같은데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서점이 가지고 있는 범용성이다. 성적인 정체성, 인종,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서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동시에 내부와 외부가 연결될 가능성이 일반적인 예술 공간보다 크다. 갤러리의 경우 관람자와 기획자, 운영자가 만날 가능성은 비교적 제한적이지만,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독자와 운영자, 독자들 사이에서 항상 어떤 식의 교류가 일어난다. 그리고 여력만 된다면 서점은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토크나 프레젠테이션은 물론 다양한 형식의 해프닝도 가능하다. 영화 상영회나 소규모 공연도 할 수 있다. 대규모 전시는 아니더라도 작은 쇼케이스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두 번째는 유사 아카이브로서 서점의 교육적 성격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동시에 책이 축적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책이 잘 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새로 입고되는 책이 과거에 있던 것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책장에 쌓인 책은 그 공간이 가진 성격이나 태도,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형성한다. 물론 공공도서관도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대 공공 도서관이 플럭서스와 같은 예술 양식에 호의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도서관과 다르게 특정한 취향과 미감을 가진 운영자의 공간인 서점(혹은 아카이브)은 자신의 태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서점은 특정한 영역의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교육적 역할도 병행하게 된다. 세 번째는 무언가를 판매할 수 있는 서점의 상업적 가능성이다. 서점은 책을 비롯해 음반이나 티셔츠, 천가방, 수첩 등 공간만 허락한다면 모든 형식의 상품을 취급할 수 있다. 한정적으로 만들어진 멀티플이 유통되는 공간으로 서점은 꽤 그럴듯한데 특정 작가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자들은 물건이나 책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수익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2010년 이후 한국(최소한 서울)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작은 서점의 사정은 어떤가? 2015년 지금 서울에서 예술가나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등이 (전통적인 출판 시장 바깥에서) 서점을 만들고 출판을 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은 위에서 살펴본 1960, 70년대 상황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다른 시공간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될 수는 없다. 1960, 70년대에 정보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과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다. 인터넷만 연결될 수 있다면 지금 사회에서 정보의 사각지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종이 매체를 중심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던 그때와 지금 인쇄물이 가지는 위상 역시 같을 수 없다. (그 당시에도 급진적인 작가들 가운데 일부는 전보나 팩스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정보를 교환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한 과거의 플럭서스처럼 강력하고 전방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쳤던 흐름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보다 지금 작은 서점은 좀 더 개별적이고 사적인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서점이 서로의 거울 역할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서점을 만드는 꼴이다. 5~6년 정도 지속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이러한 작은 서점이 어떤 문화를 만들고, 거점을 형성한다면 (그래서 더 많은 서점이 생겨난다면) 그것을 활용하면 된다. 인쇄물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우리에게 플럭서스와 같은 운동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서점이 시시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고, 그것이 지금은 서점이라고. 몇 년 지나면 지금 서점은 또 다른 공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정리는 또 다른 사람의 몫이고 지금 우리는 역사적으로 희귀한 현장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임경용
미디어버스와 더북소사이어티를 운영하며, 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출판물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예술 공간으로의 서점 – 1970년대 몇 가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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