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전필준
분량6,434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21년 8월 23일
유형인터뷰
팀 결성
전필준 이윤정 소장과 나는 영국 유학 중에 만났다. 내가 바틀렛 건축대학에서 유학하던 시기에 이윤정 소장도 RCA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소장이 초기에 도시 풍경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공업 생산품을 이루는 내부 형태로부터 도시 속의 건축을 떠올리거나, 진열대 위에 상품이 가지런히 배열된 모습이 하나의 시티스케이프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주제로 삼아 작업하고 있었고, 서로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다.
각자 학교를 졸업한 뒤 이 소장은 런던에서 작업을 이어가다가 먼저 귀국했고, 나는 르웰린 데이비스 양(Llewelyn Davies Yeang)과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에서 실무를 하다가 귀국했다. 이 소장의 경우 처음에는 프린팅, 회화, 드로잉, 설치 작업을 하다가 제품 디자인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혔다. 그 시기에 건축, 도시, 디자인 이슈에 관해 본격적으로 생각을 주고받다 보니 내가 독립하게 된다면 이 소장과 함께 운영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스튜디오 이심전심이 되었다.
국내 현황 파악, 다양한 설계 조건 경험
전필준 귀국 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에서 사업 본부 디자인 디렉터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의 디자인 작업을 수행했다. 영국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실무 환경이나 현황을 잘 몰랐는데, 2년 반 정도 국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운 게 많았다. 만약 귀국하자마자 개소했다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앞서 영국에서 경험한 실무는 국내 상황과는 아주 달랐다. 첫 회사였던 르웰린 데이비스 양은 영국 내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 사무소였다. 그곳에서 참여했던 첫 프로젝트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중증 어린이 전문 병원 리노베이션이었는데, 그 프로젝트 덕분에 영국에서의 건축 실무를 많이 알 수 있었다. 특히 시 차원에서 건물 주변의 도시건축적 맥락을 존중하고, 그것을 디자인에 직접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병원이 위치한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Great Ormond Street)에는 지어진 지 백 년이 넘은,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다. 그래서 병원 파사드 디자인에 인접 건물 입면의 주요 높이와 모듈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반영해야 디자인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포스터 앤 파트너스에서는 아시아와 중동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백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대 규모의 프로젝트들이었다. 영국에서 겪은 두 회사에서의 경험이 극과 극에 있다 보니 중간에서의 균형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작업방식
아이디어는 함께, 프로덕션 단계부터는 한사람이 주도
전필준 디자인 초기에 아이디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함께 스터디 모델을 만들거나, 디자인을 조금씩 진전시키며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안을 결정한다. 프로덕션 단계로 넘어가면 두 소장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건축 작업을 할 때는 도면 정보로 전환하는 단계부터 내가 담당한다. 법규 검토나 도면화 등 전문적인 작업은 이 소장이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품 프로젝트는 이 소장 주도로 진행한다. 5년 전부터는 실제 생산단계에서도 본인이 제작하기 위해 공예를 직접 배워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품 제작의 경우 예를 들면 지난해에 공예 디자인 상품 개발 지원을 받아 목재 소품을 만들었는데, 초기에 형태를 고민하는 단계에서는 작업을 같이 논의하고 공유했다. 목업을 만드는 단계부터는 이 소장이 진행했고, 과정을 함께 리뷰하며 여러 대안 중에서 최종안을 결정했다. 또 간단한 3D 모델링은 같이 작업해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다.
논쟁과 타협으로 찾아가는 공통분모
전필준 이런 프로세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심미적 취향이 맞아야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미술, 디자인, 건축 전반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편이다. 그래서 건축물을 설계할 때에도 순수하게 건축적인 주제나 개념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가 프로젝트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건물, 가구, 소품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업이 이런 측면에서 영감을 준다”, 아니면 “이런 공간에서 보이는 특정한 모습이 우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컨셉과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고받다가 어떠한 감각적 이미지로 의견이 수렴되면 이것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건 매우 이상적인 경우다. 현실은 논쟁과 싸움의 연속이다. 독립하고 나서 첫 프로젝트를 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2~3분 만에 서로 “아! 안 되겠어, 못하겠어!”를 외치고는 회의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타협하며 일하다 보니까 이제는 공통분모를 많이 찾았다.
심미적 대상을 만드는 것을 지향
전필준 우리는 여느 건축사사무소와는 다르게 건물을 완성하는 것에 지향점이 있기보다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는 객체, 디자인된 사물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 최소화된 형태에서 시작해 단순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복합성을 띄는 사물들을 제작하는 시도를 지속하려 한다.
건축가의 일은 대부분 현실적인 조건 안에서 답을 찾아내는 지난한 과정이 맞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매몰된 채로 누구의 것도 아닌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많은 작업을 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믿고, 가능하면 우리가 가진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려고 한다. 그래서 억지로 일을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 좋은 관계를 통해서 들어오는 프로젝트들을 주로 하려고 한다.
제주 삼정방 주택
전필준 제주 삼정방 주택은 여러 측면에서 자유로웠다. 여러 변수, 법규 등에 구속된 채 진행하는 도심 프로젝트와는 달리, 우리의 개념으로 대지를 채워 나갈 수 있었다. 건축주가 첫 미팅에서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는 그곳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공간에서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게 바로 프로젝트의 지침이었다. 건물을 두 동으로 나누는 것 이외에는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온전히 맡겼다. 그런 신뢰가 바탕이 되어 벽, 천장, 지붕을 입체적으로 결합해 제주도 자연환경이 전달하는 감각을 표현하는 주택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기획되어 완성되기까지 여러 형태의 건축가가 필요하다.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를 하는 사람도 건축가이고, 공사 과정을 통해 물리적 실체로 만드는 사람도 건축가다. 그리고 자본을 마련해서 일을 일으키는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데, 주택에서는 건축주가 그 역할을 한다. 이렇게 여러 행위자들이 힘을 합해 건물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그 가운데 건축주는 그들의 요구와 취향이 직접적으로 결과물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그들과의 소통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하는데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향성을 찾고 함께 완성해 간다는 생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면, 건축가가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릴 때 오히려 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건축주가 지지하여 프로젝트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삼정방 주택의 건축주가 그러했다.

프로젝트 단위로 다른 사무소와 협업
전필준 그동안 전시나 제품 제작 등 여러 활동을 하다가 기회가 생기거나 추천을 통해 건축 프로젝트가 연결되면 일을 맡아 왔다. 첫 번째, 두 번째 주택도 그랬고, 지금 진행중인 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디자인 초기 단계라서 나와 이윤정 소장이 진행하고 있는데, 추후 디자인 안이 확정되면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건축사사무소와 협업을 통해 완성할 예정이다.
주택 프로젝트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직원 한 명과 함께 완성했고, 공모전의 경우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 다른 사무실과 공동으로 참여했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2019년 학교에 부임한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이어가고 있다. 직원을 많이 뽑아서 사무소의 규모를 키우거나, 사무소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식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그룹과 같이 프로젝트 단위로 작업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우리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생각한 방향성과도 맞는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느슨한 작업 공동체를 만들어서 협업 체계를 발전시키면서, 원하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상품을 출시해서 판매하진 않았는데, 앞으로는 염두에 두고 작업할 것 같다. 건축 작업의 경우에는 갤러리 프로젝트를 통해서 연결된 복합문화공간을 기획 중이다. 스튜디오 이심전심의 포트폴리오는 건축사사무소, 건축가처럼 고정된 틀이나 역할을 통한 결과물보다, 주변 환경들을 이루는 여러 가지 사물로 채워질 것 같다. 그것이 이심전심이 생각하는 방향이고 미래다.
우리 세대,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전필준 이전 세대는 건축과 도시의 문제를 관념적 개념과 이상주의적 태도로 이해하고, 의제화 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발 담근 행위의 주체라기 보다 관조적 태도로 비평하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켰다. 일종의 엘리티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 따른 현실적 감각 부재랄까? 건축가가 현실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가 모호하다 보니 때로 주어지지도 않은 임무, 너무 많은 역할에서 오는 부담감을 떠안기도 했다.
사실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단계는 도시 환경에 대한 유의미한 결정이 이미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건축 계획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미학적 방향과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되풀이하기 보다 실제 일이 기획되고 추진되는 과정에 집단의 힘과 노력을 결집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세대에게는 지금 여기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개적인 입장의 소셜 코디네이터 역할이 우리 직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구성단위들, 행위자들 사이에서 건설된 환경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다. 그게 우리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정체성이라고 여겨진다.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가 된 것이다.
도구의 언어로 소통하는 영역
전필준 앞으로의 세대에게는 ‘도구의 언어’(특히 컴퓨터의 언어)를 잘 다루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우리의 잠재적 협력자가 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고, 협업하게 될 것이다. 소수를 제외한 건축 디자인 분야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런 것에 둔감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디자인과 제작에 적용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도구의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비스 제공 이상의 사회적 역할
전필준 건축가가 건축 안에서 담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영역을 설계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반드시 공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조율하고 배분하는 역할 등을 섬세하게 파고 들어가서 건축가의 업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정자의 역할은 어디에서나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누구의 영역도 아닌 채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영역을 우리의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건축 교육: 시스템의 한계
전필준 주변의 상황, 조건,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자질 등은 계속 변화하는데 과연 현재 건축학 5년제 교육 시스템이 변화를 수용해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적합한 체계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필수 교과 수업이 많다 보니까 새로운 과목을 만들어서 실험해보는 것이 녹록치 않기도 하고, 건축학인증으로 인해 충족시켜야 하는 요건들이 주요 과목 운영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문제들도 있다. 유연성을 보완해야 하는데 방법이 고민이다. 평소에 교육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 교수님들과 이런 생각을 많이 나누고 있다.
이심전심
이윤정 홍익대학교와 런던에 있는 Royal College of Art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John Purcell Purchase Prize, Print Belt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 판화 공모전 우수상를 수상했다. 2016년 Studio 李心田心을 공동 설립하고 도시 공간이 필요로 하는 사물들을 제작하고 있다.
전필준 홍익대학교와 University College London을 졸업하고 Llewelyn Davies Yeang, Foster and Partners 런던과 북경에서 다년간 실무하였다. 귀국 후 나우건축사 사무소에서 디자인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16년 이윤정과 Studio 李心田心을 시작하였다. 건축사이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에 재직 중이다.
- 개소 연도: 2016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대구
- 현재 인원: 2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신축 60%, 공공신축 10%, 제품 20%, 건축기획(공모) 10%
(희망) 민간신축 50%, 공공신축 20%, 제품 20%, 건축기획(공모) 10% - http://studiolxjx.com

이심전심
분량6,434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21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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