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
김세진
분량8,719자 / 17분 / 도판 3장
발행일2021년 8월 20일
유형인터뷰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김세진 처음 취업해 일을 시작할 때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던 것 같다. 일을 통해 회사에 기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깨닫거나 배우는 것도 많았다. 설계라는 직능에 있어 기여와 배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생산과 소비가 순환되는 기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비중이 높아지고 배움보다는 기여가, 소비보다는 생산이 주를 이루었다.
무영건축, 공간건축 등 대형설계사무소에서 3년 반 있었고, 아틀리에인 오우재에서 8년간 실무를 경험하고 나서 설계업무를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소하였다. 업무 처리에 있어서는 예상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설계사무소의 최종 결정권자에게는 다른 차원의 책임과 가치판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개소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
독립, 천천히 조금씩
김세진 처음에는 혼자 사무소를 열 생각이 없었다. 좋아하는 선배들과 함께 오우재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내가 그리는 도면으로 실제 건물이 지어진다는 경험 자체가 기쁘고 신기했기에 독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실무경험이 쌓이고 업무를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개인적인 성향 탓인지 업무적인 판단에는 스스로의 생각과 취향을 굳이 담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처음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개소에 대한 마음이 쌓였던 것 같다.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하거나 마음이 급했던 것은 아니어서 시험을 통과하고도 1년 반 정도 더 실무생활을 했다.
담담함 너머의 것
김세진 나에게 ‘우리나라에 지어진 건축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고심 끝에 종묘라고 답할 것이다. 종묘는 여러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나에게 종묘는 ‘대면’이라는 단어로 인식된다. 그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나 건축사적 의미, 축조 방식보다는 나로 하여금 다시 마주 서도록 만드는 힘 자체가 중요한 듯하다. 대면 자체를 말하는 이유는 종묘에 가면 나는 매번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종묘는 무엇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명확한 해석과 한정된 감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임의성이 나에게는 있다. 하지만 임의성의 진폭은 거칠지 않고 ‘담담함’ 안에 있는 듯하다. 나는 종묘가 지어진 시대의 사람이 아니므로 그 시대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 체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내게도 매번 미묘하게 다른 감동을 준다.
현대건축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지금은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로 바뀐 어린이회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 내부 벽과 경사로, 작고 아기자기한 축척, 자유로운 듯 정연한 체계 등이 좋다. 사실 요즘의 건축에 비하면 담담하고 별스럽지 않음에도 갈 때마다 찬찬히 생각해 볼 것들이 새롭게 발견되어 놀랍다.
누군가에게 “일평생 당신이 경험한 건축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면?”하고 물었을 때, 그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설계한 건축이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개념에 충실하게, 하나의 아이디어로 끝까지
김세진 나는 개념으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 어렴풋이 드는 느낌이지만 나의 작업 전반에는 ‘시간’이라는 주제가 담겨 있다. 어쩌면 건축 자체가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날을 세워 물어본다. 설계 기간 동안 스스로 택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진행하였나? 설계 중에 혹은 설계가 마무리되면서 개념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설계하는 동안 그와 관련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가? 단지 작업을 잘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개념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일을 마칠 때마다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대부분은 스스로 정한 개념에 맞게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때로는 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개념어에 닿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자면 개념어는 탓할 이유가 없다. 부족한 것은 늘 설계와 시공이다. 설계가 좀 더 좋았다면, 시공이 좀 더 정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언제나 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무엇을 그리거나 만들기 전에 일정 기간 상상만 한다. 개념을 정하기 위해 컨텍스트, 프로그램 등 계획의 조건을 파악하고 계획의 틀을 만드는 단계이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직원들에게 대안을 만들도록 한 적이 없다. 계획의 틀이 어느 정도 나오고 기본도면이 그려지고 난 후 직원들과 공유한다.
요즘 들어서 건축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분위기와 감각은 설계의 특정 시점이 아니라 전체 과정에서 서서히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건축은 개념에서 실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며, 그것이 단절되지 않도록 지속해서 애쓰기 때문에 가치판단과 결정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판단과 결정을 내가 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을 혼자 할 수는 없다. 개념의 설정과 기본설계는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그 이외의 과정에서 직원들은 나와 같이 협업한다.


유연한 조직
김세진 앞으로 회사 인원이 몇 명 더 늘어나야 할지를 구상할 필요도 있지만, 나는 지금 함께하는 직원이 성장한 뒤 독립해 소장이 되는 순간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내 입장만 보자면 직원들이 내 곁에서 계속 일해주면 좋다. 하지만 자신의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다들 힘들다고 말하는 설계를 직업으로 고른 사람이라면 훗날 건축가가 되는 것을 상상했을 것이고, 게다가 아틀리에를 선택했다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너는 건축가가 되어 스스로의 건축을 하게 될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독립을 지지한다.
직원이 독립하고 나면 그와 나 사이에 소장과 직원의 관계는 완전히 사라진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독립한 사람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각자에게 스스로의 설계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지요의 직원이었다가 독립한 사람에게 “(우리 사무소에서) 설계하는 방식에 대해 배운 게 있어요?” 물었을 때 그가 “아니요”라고 답해도 상관이 없다.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의 방식을 따라주어야 하지만, 독립 이후까지 그것을 지속할 이유는 없다. 내가 이러한 입장을 가지는 것은 직원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갖는 건축가가 되어가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스스로 성장하고 독립해서 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는 순환을 상상해보면 즐겁다.
아직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 실천은 장기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당장은 야근에 대한 고민이 있다. 우리 회사는 다른 아틀리에와 비슷하게 야근을 하는 편인 것 같다. 업무시간 이후에는 사무실을 나서야 개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저녁 시간에 누군가는 휴식을, 누군가는 모임을, 누군가는 독립된 건축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장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설계사무소의 결과물은 결국 시간과 땀을 통해서 좋아진다는 생각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적정함을 찾으려 노력하는 데 고민도 많다.
세대론
과연 세대를 나눌 수 있을까?
김세진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은 흐르고, 세대의 변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을 넘어서서 나에게 경이로움과 영향을 주는 건축물 자체가 곧 ‘나의 앞세대’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기간은 의미가 없다. 판테온에서도, 경복궁에서도, 베를린 현대미술관 신관에서도 나는 놀라움을 느낀다.
존 서머슨의 『건축의 고전적 언어』를 읽다가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1장에서 ‘건축의 다섯 오더’를 가지고 고전 건축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그것[오더]은 분위기를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쓴 문장이었다. 양식마다 기본적으로 부여된 성격이 있고, 이론가나 건축가 또는 건축주에 따라 의미가 비틀리고 바뀌기도 하지만 결국 특정한 분위기가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건축은 순수 예술 장르는 아니어도 미적 경험을 하게 한다. 나는 고전이라 불리는 건축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이전의 건축에 영향을 받고, 일정 부분을 기대고 있다. 건축은 독창적인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지속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덧대어 나 스스로 원하는 감각이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좋을 것 같다.
다양성
김세진 <등장하는 건축가들 3>에 함께 소개되는 팀을 보면 나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분명 있다. 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해 자극받으며, 그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들과 비교해보거나 의식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마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각양각색이 주된 흐름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젊은 건축가들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좋고, 작업의 수준이 높으며, 결과물의 양도 많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원하는 나의 건축을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주변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무덤덤함으로 작업한다. ‘젊은 건축가이기 때문에 뭔가 특이하거나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비슷한 나이의 건축가들과 나의 공통점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건축에 있어 세대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 건축가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대체로 익숙하고 편안하기는 하다. 그와는 달리 젊은 건축가들을 만나게 되면 개별적인 독특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작업에 몰입한 모습과 결과를 보면 언제나 즐겁고 기분이 좋다.
독립하고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이전 건축가들과 어떤 지점에서 다르고 어떻게 비슷해야 할 것인가?’하고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도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옆이나 앞에 의해 내가 변하거나, 나의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작업과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느냐이다.
새로운 영역: 건축, 결국 사물을 만드는 것
김세진 미술관의 전시 디자인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반적인 설계 업무가 아니다 보니 일의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는데, 경험하고 보니 내가 다루어야 하는 것이 돌, 나무, 금속 등 물리적 대상이고 결국 사물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은 비슷했다. 첫 번째 회의에서 개념을 얘기하고 다이어그램을 보여주었을 때, 학예연구사가 단번에 받아들였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실시설계를 마치고 설계 업무가 끝난 다음에는 도록에 싣기 위한 설계소묘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그 이후에 수장고 리뉴얼 관련 프로젝트도 하게 되었다. 다른 미술관에서도 전시 디자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이 이전 전시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막연하게도 학예연구사는 순수예술에 한정된 언어나 개념, 표현 등에만 공감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짐작했던 것이다. 내 생각은 틀렸고 평소 방식대로 개념에 관해 대화하고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설계는 진행되었다.
개념으로 시작해 사물로 향하는 것이 건축 뿐만 아니라 전시나 가구 디자인, 설치물 등 다른 영역에서도 작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축의 과정 자체가 매우 특수하고 한정적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오히려 보편적이고 확장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 건축 분야가 아닌 누군가가 나에게 협업을 제안하였을 때, 개념을 생각하고 도면을 그려 사물을 만드는 일이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건축설계가 아니더라도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어떤 장소에 놓는 것이라면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일지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얼핏 예를 들면 설치 작가의 작품을 함께 만드는 일일수도 있겠다.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으나, 그 직후 실제로 작가와 협업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의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완료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설계!
김세진 건축가의 역할 중에서 가장 기본은 설계라고 생각한다. 당연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고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건축’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2013~1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를 주제로 하는 전시가 열렸다. 처음이 정기용, 두 번째가 이타미 준이었고, 두 전시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감히 말하기도 조심스럽지만, 정기용 선생님은 사회에 대한 선명한 입장과 실천이, 이타미 준 선생님은 내향적인 관심과 감정의 섬세함이 기억에 남았다. 건축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조건과 다수의 합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기본기인 설계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나에게 설계는 최소한 또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방법이다. 이는 공공건축이건 민간건축이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대상이 달라질 뿐 사회적인 필요와 요구는 쓰임이라는 행위로 구체화된다. 이를 만족시켰다면 설계자는 중요한 소임 하나를 이미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가끔 오늘 지나쳐온 수많은 건축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몇이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 모든 건축은 각각의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최적화되어 존재한다. 그렇지만 강렬하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축을 쉽게 만날 수는 없다.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건축에서 공통점이나 유형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잘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특정한 건축 안에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그런 건축을 하고 싶지만, 무척 어려울 것이고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정답이 없기에 나에게도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쉽게 정의하기 힘들고 그 범위도 넓다. 내가 지금 노력해야 할 일은 설계를 통해 사회적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량을 늘리고 기본기를 쌓는 것이다. 어느 정도 건축가로서 준비가 되면 설계 이외의 영역에서도 기여와 책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리라 생각한다.
건축 교육: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김세진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5년제를 나왔고 실무능력이 좋다.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건축학의 교육과정이 체계적이고 촘촘하게 잘 짜여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얼마 전에 어느 학교에서 학생 포트폴리오 심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몇 학생의 신입생부터 졸업까지의 작업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수준들이 높았다. 직접 강의를 나가봐도 학생수행평가기준(SPC)에 사고, 설계, 기술, 실무와 같은 평가 항목이 있고 각 과목마다 세부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또 내가 학생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설계 수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 번으로 교육과정이 바뀐 학교가 많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학생들은 해내는 과제의 양도 많고 그 성과도 내가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수업 중에 학생들과 대화해보니 일주일에 두 번씩 스튜디오 수업이 있어서 개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종종 방학 때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쉴 것이다’, ‘놀긴 놀아야 하는데 너무 지쳤다’는 답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였다. 옆에서 얼핏 보았을 때, 지금의 학생들은 스스로를 관찰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인다.
설계는 개인의 정체성과 상관관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이 가진 고유함을 찾는 것은 절대 시간이 필요하며, 남에 의해 발견되기 전에 스스로 그것을 발견할 때 고유함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술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 능력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그 능력이 어떻게 혹은 왜 발휘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건축은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울 만큼 사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지요건축사사무소
지요건축사사무소는 건축이 다수의 합의와 지난한 과정 끝에 탄생하는 실현의 엄정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생각의 두터움을 가지기 위해 애쓰며, 건축의 전과정에 배어 있는 땀의 정직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아가 건축이 물리적 결과물을 넘어 분위기를 만들고, 특정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며, 신비로운 존재이기를 동경한다.
김세진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지요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다. 종이의 면으로 시작한 건축이 존재의 개별성과 감각의 보편성을 가지고 스스로 깊이 있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2016 서울시 공공건축가, 서울대학교 설계스튜디오에 출강한 바 있다. TSK Fellowship Award, 서울교육공간 디자인 혁신 교육감 표창, 2020 젊은건축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전시설계 및 개방형 수장고 리뉴얼, 수원시립미술관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 전시를 디자인했다.
- 개소 연도: 2015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공공 75%, 민간 15%, 학술연구 10%
(희망) 공공 50%, 민간 35%, 학술연구 15% - http://jiyo.co.kr

지요
분량8,719자 / 17분 / 도판 3장
발행일2021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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