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bk-da-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건축

조한혜정

누가 둘러앉는가? 왜 마을인가?

사실 문화인류학에서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기서 공간은 집 그리고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공간적 감각’은 인문학에서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요즘은 ‘공간’이라는 개념보다 ‘장소성(placeness)’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0.1 퍼센트였던 과거에는 어떻게, 어디에 집을 지어야 좋은지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근대 초기에 아무데나 깃발을 꽂고 집을 지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Up in the Air>를 보면 몇십 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든지 마음대로 이동한다. 근대 초기에는 자기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계속 이동을 했다. 오늘날 부모 세대들은 더 넓은 집을 위해서 이동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다. 앞으로는 아파트 값이 오르지도 않을 테고, 아파트를 팔려고 해도 ‘하우스 푸어’가 되어 팔수도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구체적인 공간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마을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아주 가난했던 부모 세대가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다가 잠시 마을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기면 돌봐주던 그때, 아이들은 동네의 사람들을 이모, 부모로 여기면서 컸다. 이것이 마을이다. 내가 도움을 청할만한,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죽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도둑이 들까 걱정하고, 문을 모두 닫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초고가의 아파트 같은 닫힌 커뮤니티에서는 아무리 엄청난 돈을 벌고 죽어도 행복한 죽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회’라는 것이 소멸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건축가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사람과 같이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다.

The Wall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라는 유명 락밴드의 노래 <The Wall>은 근대, 우리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가사는 모두가 국민교육을 받고, 공장에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대량생산이 싫다. 우리는 제대로 새로운 삶을 배우고 싶다. 변화한 삶을 보고 싶다” 이런 정신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히피와 락밴드에서 시작됐다. 한국도 19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음악이 나오면서 “우리는 대량생산의 교육이 싫다”고 얘기한 바 있다.

건축가들은 오늘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정말 누군가가 바라는 집을 이해하고 지어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일어났다. 자기가 짓고 싶은 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도 개개인이 원하는 집을 지어주려 하지만 그런 욕구를 지닌 사람이 없다면 난감하다. 뭔가 될 것 같아 굉장히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난감한 상황에 있다.

탈성장 사회, 탈근대 국가

어쨌든 작금의 상황은 분명 어떤 전환기에 도달해있다. 전환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탈성장’ ‘저성장’이다. 산업 자본주의 문명이 점점 쇠락하고 있다. 거대한 물결 안에서도 저성장, 탈성장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국가공동체도 중요하지만 국가 중심의 사회보다는 마을과 내 삶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지금 청년 세대는 새로운 전환기를 개척해서 살아가야한다. 특히 전환기에서 청년실업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새로운 일자리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열두 명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 덕분에 한 사람이 사백 명 내지 팔백 명까지 관리한다. 청년 세대가 사는 시대는 대기업 조직에 들어가도 사십 대에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리는 계속 대학만 가면 된다고, 취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5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사실 5년에서 10년은 하루살이와 같은 사이클이다. 지금은 시대적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우리는 300년, 500년 혹은 1000년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 없는 성장’ 사회의 청년의 자리는? “아프면 청춘, 견디면 직딩”

어떻게든 취직을 하려고 고등학교 입시생처럼 스펙을 쌓는 대학생들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이야기를 비판하면서도 ‘청춘론’에 대한 글을 많이 읽는 이들도 있다. 『감정 자본주의(Emotion Kapitalismus)』를 쓴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후자를 ‘합리적인 바보(higher rational fool)’라고 이야기 한다. 이들은 머리도 좋고 읽은 것도 많다 보니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하기 싫은지 수백 가지 이유를 생각해낸다. 요즘 청년들도 직장을 갖기 전에는 불안으로 점점 움츠러들면서 머리만 굴린다. 무엇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아주 많이 갖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 ‘노예노동’을 해야 하는 직장에 가기도 꺼린다. 돈이 굴러가는 거대한 체제의 머슴놀이를 하느라 거의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이 일한다. 새로운 존재들도 있다. 돈이 아주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조부모가 주는 돈으로 사는 청년들, 부모의 돈으로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노량진 청년들이다.

지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독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으려다가 매일 8시간씩 9일에 걸쳐 대대적인 국민토론을 열었다. 토론의 결과로 2023년에는 완전한 탈핵이 결정되었다. 앞으로의 미래세대들을 위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청년세대들은 앞으로 시대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미래를 위해 스스로 발언 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계 사람들도 불안해하지 않고 발언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생산해 방향을 전환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 질 것이다.

직업/노동/일/활동/비활동

노동과 직업 자체를 다른 식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한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는 실제로 3M, 돈(Money), 시장(Market), 자신(Me)의 시대에서, 3E, 탁월(Excellence), 사회적 약속(Engagement), 윤리(Ethics) 시대로의 전환이 요구되기도 했다. 3M 시대에는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 즉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을 통제한다. 이 시장은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같은 명령을 내린다. 우리로 하여금 소비자, 투자자, 투기자가 되기를 부추긴다. 집을 짓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있어서도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집 짓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3E 시대는 무엇인가? 지금 체제에서 탁월한(excellence) 것은 정말 탁월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체제에서 탁월한 것을 키워야 한다. 그때 중요한 것은 관계, 참여이다. 참여는 결과적으로 윤리에 가깝다. 일테면 사회적 운동에의 참여를 통해 맺어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관계와 참여의 과정 속에서 동지가 생기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능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가슴’, 일테면 지불되지 않는 노동, 엄마들의 노동, 돌봄이 돈과 상관없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돌봄 노동’이 모두 고갈되어 ‘임금 노동’이 되었다. 때문에 사회학계에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적 삶의 디자인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축학도들 역시 ‘지속가능한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건축을 통해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 줄 아는 이들이기를 바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간을 위해 ‘마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을 짓기를 제안한다. 이는 적대와 경쟁이라는 단어보다는 우정과 환대의 마을, 학교 그리고 협약, 창의적 공공성 등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근대적인 역할 분담이 되어 있던 시대에서 건축가는 감독의 위치에서 설계도면만 그리는 이로 역할이 나눠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자기 집을 고칠 수 있는 이가 제대로 된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청년세대 건축가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지속가능성이다. 이는 단골 경제, 사회적 경제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사회가 아닌 사회적경제가 주도하는,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의 건설에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즐겁게 배우기를 시작할 수 있다. 배움이란 우리가 그간 학습해온 것과는 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교육 불만의 시대’를 보면 ‘학교도, 대학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가 배우는 배움은 배움이 아니다. 그 배움의 핵심은 기도와 노동이다’라는 말이 있다. ‘기도’라는 것은 정말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때 같이 노동을 하는 것이다. 노동은 잔머리를 굴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자리에 모이면 문제가 풀린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는 몇 개의 재미있는 모임이 있다. 하나는 원탁에 둘러 앉아 난감함을 공유하는 ‘난감모임’이다. 이 모임에서는 해답을 성급하게 내려고 하면 안 된다. 충분하게 무엇 때문에, 어떤 이유로 난감한지에 대해 충분하게 이야기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문제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그 시간을 다 생략하고 정답을 찾아 계속 헛바퀴를 돌고 있다. 또

다른 모임은 ‘심심모임’이다. 모임의 아젠다도 없는 이 모임은 말 그대로 심심한 이들만 모이자는 것이다. 사실 다들 바쁜 사람들이지만 모임에 올 때만큼은 심심한 척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같이 요리도 하고 잡담도 하고 요가도 한다. 그렇게 모여서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많구나’하고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자센터의 커뮤니티 카페는 매주 운영하는 팀이 다른데, 카페를 운영하기로 한 팀이 친구를 데려와서 1주일 동안 그 카페가 팀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모임을 포함해서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여러 가지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 모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진 ‘공통의 감각’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가들도 건축주와의 공통의 감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탁월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건축가와 인문학자의 네트워크 같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의 건축이 시작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조한혜정 

조한혜정 교수는 여성학과 문화 이론, 문화 기술지, 대중문화, 문화 변동, 그리고 질적 연구 방법 등을 강의해왔다. 1984년부터 페미니스트 단체인 ‘또하나의 문화’ 동인이었으며 1999년 서울시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인 ‘하자 센터’를 설립하였고, 성미산 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노동과 삶, 그리고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인류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생태주의적 페미니즘, 에너지 자치, 그리고 ‘마을 만들기’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건축

분량5,169자 / 10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칼럼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