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
김성홍 × 김상호
분량4,184자 / 8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인터뷰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인터뷰 김상호 《다큐멘텀》 편집장
김상호 건축의 일상성은 무엇일까요?
김성홍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개발 중심의 시대에는 사회 전반이 거대 담론에 집중되어 있었고 건축계의 담론도 마찬가지였다. 작금의 상황은 그런 거대 담론을 논할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대규모 개발은 점점 줄어 소규모 개발로 전환되고, 부수고 다시 짓기 보다는 있는 것을 고쳐 써야 하는 시대다. 건축가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젊은 건축가들은 작고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부각되는 이유는 한국 현대 건축이 처한 사회 경제적 현실적 상황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일상성은 손에 잡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마이크로(micro)한 것에서 시작해서 매크로(macro)한 것을 보는 것이다. 큰 것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점차 확대해 보는 관점이다.
김상호 일상성이 건물 규모나 생활 수준의 상대적인 차이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성에 좀 더 명확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그것의 반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성홍 일상성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앙리 르페브르를 통해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쓴 난해한 책 『공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pace)』(1974)에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제1의 공간은 물질화, 계량화된 공간이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숫자로 표현되는 공간, GIS 데이터로 변환되는 공간으로 제1의 공간은 ‘지각 공간(perceived space)’이다. 제2의 공간 개념은 자본주의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제2의 공간은 ‘관념 공간(conceived space)’이다. 예술가와 건축가가 대상으로 삼고 추구하는 공간이다. 르페브르는 제2의 공간을 문화 권력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가 제안하는 제3의 공간은 ‘삶의 공간(lived space)’이다. 실천이 수반되고 삶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제3의 공간은 ‘재현하는(representational) 공간’으로도 설명되는데, 재현된 결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공간을 재현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즉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삶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상성은 자본이 독점하려고 하는 지각 공간과 소수 엘리트 중심의 관념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공간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사회학적 균형찾기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사회학자가 아니다. 일상의 건축을 저항의 사회적 공간으로 접근하기보다 삶의 질을 규정하는 공간으로 접근한다. 일상성의 논의에는 공간의 질이 높아져야만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깔려 있다. 건축가는 그런 사고(思考)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디자인 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일상성에 대한 논의는 결국 큰 개념 대신 일상에서 새로운 건축의 동력을 찾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김상호 일상 생활을 해결해 주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출발점을 달리 잡고자 하는 것이 건축의 일상성이 갖는 핵심인 것 같습니다. 건축이 일상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 결국 그 목적은 새로운 건축을 하기 위함에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성홍 그렇다. 일상의 건축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고민이 깔려 있어야 한다. 건축가의 일상에 대한 관심은 사회 운동가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건축을 만드는 일종의 모티브를 조건과 상황 속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을 일상의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바로 지금 그런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 저성장 시대에 건축가들이 대면한 것은 소소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읽기 위한 관점과 태도가 필요하다.
김상호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은 건축가들이 일상과 무관하게 작업해도 되었고 일상에 주목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홍 그동안의 건축 교육이 모더니즘에 바탕을 둔 탓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모더니스트를 양성하는 교육이었다. 모더니즘은 가부장적이며 유토피아적이면서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많아진 건축가 풀(pool)에 비해 기회가 줄어든 것도 일상의 건축으로 옮겨가는 원인이다. 과거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 것 아닌가 싶다. 요즘 동네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도 이를 반영한다.
비슷한 현상은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보인다. 지난겨울 《한일건축교류전》 때 일본 건축가들과 한국 건축가들은 관점과 태도에 차이가 있었다. 양쪽 모두 작은 주택들을 주로 전시했는데 한국 건축가들에게서는 사회에 대한 무거운 주제 의식이 여전히 드러난 반면, 일본 건축가들에게서는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들을 내세웠다.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한다.
김상호 일본 건축가들이 지금은 작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접근이 몸에 익어 있을지라도 과거에는 일본도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김성홍 그렇다.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 등장했던 건축가 집단 ‘메타볼리즘(Metabolism)’은 미래지향적 메가 스트럭처를 꿈꾸었다. 메타볼리즘이 주목받았던 당시 일본에서 일상의 건축이 설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전후(戰後) 급속한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가치가 급상승했던 시기다. 바다를 메워 도시를 만들고, 초고층 건물을 올리고, 콘크리트를 쏟아 붓던 영웅의 시대였다. 1980년대 말부터는 건축가가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건축계가 일상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 건축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환경이 그렇게 유도하는 것이다.
건축가가 스스로 갈 길을 정하는 건축의 완전한 독립적 시대는 한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메디치가(家)를 위해서, 고딕 시대에는 성직자들을 위해서, 모더니즘 시대에는 대량 생산 사회를 향해서 건축가가 움직였다.
김상호 일상성에 대한 주목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전략적인 접근이 되려면 추가적인 논의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성홍 일상성이 대중 건축 포퓰리즘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서민 정치를 외치는 정치인과 같은꼴이될수있다.1980년대의건축사회 운동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일상의 건축은 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치밀해야 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의 구호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건축의 평등주의가 일상의 건축은 아닐 것이다.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해석, 실험과 함께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김상호 건축 교육에서 일상에 대한 눈을 훈련시켜줄 만한 내용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성홍 일상성을 직접 표방한 건축 교육 과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계 교육 자체에 그것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일상성에 대한 이해나 훈련이 주어진 사이트를 읽어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읽어내는 구체적인 노력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장소 기반 워크숍으로 진행된 서울건축학교의 지역 연구가 일종의 일상성 연구와 실험이 아니었나 싶다.
건축학과 학생들이 도시학, 사회학과 같은 다른 분야 학생들과 만나면 부딪힌다. 건축은 뭔가를 빨리 만들려고 한다. 반면 다른 분야 학생들은 현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만드는 것에 대한 성급함을 줄이면 관찰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상호 『길모퉁이 건축』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중간건축’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일상성의 단서를 기대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김성홍 중간건축 개념은 우리 도시 건축의 보편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즉 개념적 평균을 규명하려고 했다. 땅, 층수, 프로그램의 평균을 정량적으로 정의하려고 했다. 중간건축은 도시의 배경이며 맥락이다. 중간건축의 질과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그 위의 건축은 사상누각이다. 이를테면 르 코르뷔지에의 인도 샹디가르 종합건축과 주변의 일상 건축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번 던져볼 질문이다.
유럽 도시들은 중간축의 수준이 아주 높다. 바탕과 배경이 탄탄할 때 반전과 실험이 가능하다. 배경과 맥락 없는 대안은 어떤 의미에서 밖으로부터의 수용이다. 서울의 중간건축을 이루는 3대 공간은 주거, 상업, 업무공간이다. 우리 도시 건축의 실험이 이 지점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중간건측은 도시 건축이고 일상 건축이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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