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상에서 시작하는 건축인과 건축 수요자의 관계 회복
유걸
분량3,482자 / 7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서문
건축이 일상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건축은 결과물 이전에 그 과정을 건축가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번 정림학생건축상 ‘일상의 건축’은 가정에 근거한 추상적 결과물보다 내용의 구체성을 주의 깊게 보고자 하였다.
건축가는 흔히 만족보다 불만이 많은 집단으로 비친다. 근래 세계경제의 어려움은 한국은 물론 다른 여러 나라 건축가들에게 또다른 불만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고 최근에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건축가의 불만과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절대적 요인은 아닌 듯하다. 건축가는 이러한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또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세상은 왜 건축가를 필요로 하는가? 등의 문제들은 21세기 이전에도 논의되던 문제였다. 건축이 전문 직종 가운데 가장 보수가 적다는 통계는 1970년대 이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건축물의 착공식이나 준공식에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의 자리가 없다거나, 건축물의 설계자 이름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서 드러나듯이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에 대한 인식은 열악하다. 최근 서울시 신청사 건설 과정에서시공사 중심의 건축과정의 문제점과 건축가의 역할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 영화 <말하는 건축가>와 <건축학개론>의 영향으로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감상적 시선이 자리했지만 건축가가 하는 일의 가치가 현실에서 제대로 실증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건축 수요자들이 건축가와 그들의 일의 가치를 모르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건축가들이 수요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일반 수요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건축의 수요자가 자신의 건축적 필요성을 알기 위해 건축의 전문지식을 숙지할 필요는 없다. 건축가가 하는 일의 수요자는 누구인지,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아는 것은 순전히 건축가의몫이다.이점 때문에 건축이 전문 직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도대체 세상은 왜, 어떤 이유로 건축가를 필요로 하는 걸까? 건축가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현대 건축의 선구자, 혹은 현대 건축에 문제를 제기한 건축가들이 관심을 갖고 추구한 일들은 결국 그들의 수요자와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들이 수행한 일은 새로운 건축이 무엇인지를 찾는 의미 있는 작업이자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유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건축은 그것을 원하는 수요자들과 오랫동안 단절된 것이 사실이다. 현실과 유리되고 구체성이 결여된 건축, 수요자의 필요와 관계없는 일에 몰두해온 건축. 지금 건축이 처한 현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이 수요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현대건축의 선구자들이 추구한 문제는 일견 보편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통해서 나타났다. 그들은 건축의 수요자가 부나 권력을 독점한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라는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작업은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가령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은 고급예술의 대중화 운동이었다. 후기 현대 건축가들은 건축이 부를 독점한 개인의 전유물로 되어가는 것에 저항하여 다수의 수요자에게 그들의 작업을 공급하고자 했다. 이들의 모든 시도와 노력은 일반성과 추상성을 갖고 있었지만, 그 바탕에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상의 문제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구체성과 현실성은 지역성 혹은 지역의 특수성 차원에서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늘을 사는 나, 이름을 가진 개인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서 구체성과 현실성은 확실하게 다가온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 일반적 문제, 추상적 문제, 나아가 거대 담론을 알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내 문제를 이해하는 가까운 이웃의 문제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상’의 문제이자 동시에 수요자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부분이다. 그동안 한국 건축은 구체적 현실로부터 많이 유리되어왔다. 일상에서 읽을 수 있는 구체적 문제들, 다시 말해 보기에 좋고, 위생적이고, 편안하고 기능적인 것에 집중하기 이전에 건축가가 나와 이웃의 삶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거대 담론에 몰두해온, 이른바 유명 건축가들에게 이런 일들은 너무나 사소하게 다가왔다.
여기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전국 어디에나 똑같은 모습으로 들어선 ‘닭장’ 같은 아파트 주거환경, 국적불명의 어지러운 도시로 변모한 서울과 부산에 그들이 몰두한 건축의 거대담론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도시의 주거 문제는 건축의 거대 담론이 다루기엔 너무 세속적인 일이라고 여겼는가? 우리 건축가는 건축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우리 건축가는 건축이 무엇인지, 건축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오늘의 건축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직시하고 있는가? 건축은 불변의 것인가? 아니면 항상 변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 정림학생건축상 ‘일상의 건축’을 심사하면서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따랐다. 본래 건축 작품은 시각언어로 표현되어 그것을 감각적으로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공모전이라는 제도적 특성상 학생들의 글과 건축주와의 인터뷰라는 문자언어로 그것을 마주해야 했다. 그 과정이 다소 낯설고 생소했지만, 시각적 매체의 전달 과정에서 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상세계 속 익명의 사람이 아니라 현실세계 속 실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했다. 실명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동네 건축가’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림학생건축상은 당선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 건축에 순위를 매기는 것만큼 모순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건축에 순위를 정하는 현실은 ‘구체성’과 ‘현실성’으로부터 유리된 것만큼 오늘날 한국 건축계가 처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긴 이게 어디 건축뿐이던가. 우리는 거의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는 데 익숙하다. 교육 현장부터 실제 건축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순위로 우열을 가리고, 심지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행사마저 순위를 정하고 있다. 누군가의 어떤 제안이 무슨 이유로 대상이 되고, 다른 제안이 어떤 이유로 아래에 놓여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믿는다. 건축이 직관적이거나 주관적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객관적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몇 발 양보해서, 건축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건축 현상에 순위를 부여한다 해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만큼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정림학생건축상이 여러 명을 공동 수상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은 그들 모두가 건축의 다양성이라는 의미 있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마치는 시점에서 ‘일상의 건축’이란 주제로 진행된 정림학생건축상이 한국 건축의 관념론을 벗어나 현실성과 구체성으로 회귀하는 작은 움직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선정된 제안들은 건축의 해답이라기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함께 변해야 하는 건축의 새로운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유걸
지난 40여 년간 미국과 한국에서 건축설계 활동을 한 건축가 유걸은 1998년부터 3년 연속 미국 건축사 협회상을 수상하였고, 김수근 건축상과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설계한 밀알학교는 KBS 선정 한국 10대 건축물이며 미국 건축사 협회상, 김수근 건축상 그리고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현재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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