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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어깨 위에 서서

김형국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네 명의 위대한 히브리 선지자 어깨 위에 사복음서 저자들이 앉아 있다. 그 어깨 위에서 비로소 구약의 선지자들이 열망했던 메시아를 볼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전 물리학을 완성한 뉴턴도 “내가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꼭 거인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앞서 걸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후대에 기릴 만한 유무형의 유산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선조들의 유산 덕에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류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선대들의 노고와 그 결과로 남겨진 유산 덕분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후대에 뭔가를 남기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서 있게 된 ‘어깨’를 잘 이해하고, 때로는 해석하고, 그리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문화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우리 선대들의 유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겸손함과 넉넉함이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빨리 달려야 했기에, 과거를 정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워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건축계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인도 알만한 몇 명의 유명 건축가들만이 한국 건축을 이끈 것같이 여겨지고, 자신의 이름보다는 후대에 남길 유산을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 건축가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건축계는 기술력이나 예술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늘 외국 유명 건축가의 그늘에 가려 있고, 그나마 사람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보다는 외적 규모와 성공이 건축가를 평가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도시화와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을 때 건축가들이 한국 사회에 끼쳤던 영향과 그 유산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의 선친이신 건축가 김정철과 정림건축이 1967년부터 20년 동안 남긴 유산을 정리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아버님은 늘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건축은 홀로 빛나는 작업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을 해오셨는데, 당신의 인생을 바친 건축 작업과 ‘정림’이라는 건축 집단을 세워간 이야기가 처음으로 제대로 정리되고 조명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그것도 아버님 소천 7주기와 정림건축 50주년을 맞아 이 책을 발간하게 되어 더욱 감사하다.

이제 한국 건축계도 선대들이 남겨놓은 유산을 제대로 조명하고 해석하여, 취하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할 것은 극복하여 새로운 유산을 후대에 남겨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선대의 어깨 위에 서서 우리를 따라오는 후대에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가 김정철과 그와 함께 정림건축에 몸담고 밤을 새워가며 “청사진 덮고 쪽잠을 잤던” 수많은 건축가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김형국

정림건축문화재단 이사장

선대의 어깨 위에 서서

분량1,414자 / 3분

발행일2017년 12월 28일

유형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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