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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번 이슈

박성태

10년 넘게 한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건물들을 지나다가 한강을 만나면 반갑다. 공원 벤치에서 멍하니 숲을 바라보거나, 뒷산에 올라 멀리 있는 도심의 복잡함을 마주할 때의 기분이다.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일 때도 있지만 가슴에 쌓인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다. 건물과 간판이 가득한 이 도시에선 잠깐의 쉼마저 궁핍하다.

쉴 틈 없이 일했다. 지금도 경제성장이 최선의 가치라고 믿고 있다. 국민소득 1만 달러만 되면, 2만 달러만 되면, 우리는 잘 사는 줄 알았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팔리면 팔릴수록 너나없이 행복할 줄 알았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난과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꿈을 꿀 줄 알았다.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가 넘어선 오늘, 우리의 도시 생활은 더 불안하고 팍팍해졌다. 혼자 힘으로 생존해야 하기에 이웃과의 협력과 연대의 물꼬를 트지 못했다.

앞선 세대는 무작정 올라가기만 하면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고, 몇 고개만 넘으면 풍요의 땅이 기다린다고 믿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았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길에서 길을 잃고 어느덧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경제 성장은 했지만, 공동체가 함께 잘 사는 건강한 풍요는 더 멀리 달아나 있는 형국이다. 깨끗한 환경, 협력하는 공동체, 질 높은 교육, 충분한 쉼은 우리 삶의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있고, 그만큼 노동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월세는 매년 오르고, 부동산 불로소득은 커져만 간다. 빈자와 부자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공유지는 사라지고 있다. 세대 간 갈등도 심상치 않다. 그 사이에서 이주민과 난민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되면 ‘행복의 나라’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이 파헤쳐 놓은 4대강엔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이때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노후화된 원자력 발전소는 재난의 징후로 우리를 기다린다. 밤낮없이 일해 마련한 기름진 식탁과 문명의 이기들 사이에서 우리는 기댈 곳 없는 망명자로 불안한 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다. 암울한 상상이지만, 미래판 디스토피아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만 같다.

도시의 역사가 수없이 입증한 대로 지식과 상상력의 힘은 도시 성장과 함께 해왔다. 물을 끌어들이고, 길을 내고, 에너지 자원을 찾아내고,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했다. 대다수가 도시에 사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의 도시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렇다. 또한, 전 지구적 혹은 지역적 문제들이 아찔할 정도로 순식간에 제시되는 상황에서 각 정치 주체들은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대응이 늦고 방향도 잘못됐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큰 재앙이 따른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

도시 정책을 수립하고 진행하는 전문가와 행정가의 말을 듣다 보면 민망해서 움찔할 때가 많다. 도시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단편적이다. 최근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만 떠올려 보자. 해저 지진으로 발생한 치명적인 쓰나미로 인한 원전 붕괴, 전 세계에 도미노처럼 번지는 소수 인종 갈등, 북한의 체제 붕괴 혹은 핵 보유 야심에 대한 우려, 경제 위기로 인한 도시빈민의 확대 등이 서로 얽혀있다.

우리에겐 통합적 시각에서 나온 다양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물론 시나리오만으로는 이런 위험을 극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그 범위를 가늠하고 좌표를 찍어보는 작업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지난 5년간 ‹건축신문›에 실린 글 중에 우리가 당면한 도시의 문제를 언급하고 진단하는 글을 여섯 가지 주제 아래 선별해 출간한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이 모이고,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어번 이슈

분량1,903자 / 4분

발행일2017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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