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신청사의 굴곡 혹은 굴욕
이필훈
분량3,472자 / 7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비평
서울시 신청사의 굴곡 많은 건축 과정은 행정 절대주의의 단면을 그대로 노출했다. 턴키 제도 속에 가려진 건축계의 모습을 통해 공공건축이 보여주어야 하는 민주적 절차의 실현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출발은 변형 턴키 제도
2005년 서울시의 신청사 건립계획이 발표되고 잇따라 설계 공모전이 공표되었다. 건축계에서는 광화문 뒤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를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는 일이었다. 역사적 오욕이 담긴 건물의 보존이냐 아니면 아예 철거를 하느냐의 논의를 넘어, 열린 건축적 논의를 전개할 시간도 없이 건설계획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모전의 방식은 현상설계1로 우수작을 선정한 후 건설사가 당선된 안들을 기준으로 공사비를 제안하는 ‘변형 턴키제도’였다. 현상설계로 진행하면 예상 공사비를 넘기게 될 수도 있는 한편, 행정 소요기간이 길어져 임기 내에 대형치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가와 행정수장들의 욕망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턴키로 진행하면 건설사의 뜻대로만 진행되어 좋은 건물을 짓기 어렵다는 중론에 대한, 나름대로는 현명한 타협안으로 다듬어져 공표되었다.
그 당시의 알만한 설계사무소는 다 참여했고, 프로젝트의 상징성 때문에 대학의 건축과 교수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건축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결과는 삼우, 무영, 정림, 원도시, 원양, 시아플랜, 창조의 최종 7개 안이 선정되었다. CG의 물량공세로 점철된 현상설계의 풍토가 자리 잡힌 이 시기부터 대형 현상설계는 대형 설계사무소만의 리그가 된다.
이후 턴키에서 소위 ‘컨소시엄consortium’ 방식이 도입된다. 턴키 때마다 있는 건설사끼리의 이합집산은 물론, 현상설계에서 탈락한 업체가 협력업체로 들어오고, 현상설계에서 선정된 업체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2,000억에 가까운 예상 공사비와 시청이란 상징성으로 인해 턴키에 참여한 업체 간의 과당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제출을 마친 건설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마감시간을 조금 넘어 제출한 안을 탈락시키는, 전쟁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턴키로 제출된 안 중 현상설계 원래의 제안을 보존한 안은 하나도 없었다
대체로 당선을 위한 과도한 형태적 유희가 주류를 이루었고 화장을 위해 해외설계사들이 몰래 동원되기도 했다. 결국 삼성컨소시엄이 당선 안으로 결정되었다. 좋은 안을 선정하자고 현상설계를 하고, 당선된 안을 턴키방식으로 제안을 하는 것으로서의 변형된 턴키방식을 채택한 애초의 목적은 증발해버린 셈이다. 설계능력보다 영업능력으로 설계사를 선정하려는 건설사의 입장으로 인해 우수작으로 선정되고도 건설사의 컨소시엄에서 제외되는 이러한 상황은 턴키제도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결과였다. 당선된 안에 대한 건축계의 비판적 평가와 시민의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인해 삼우는 수많은 대안을 제출했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설계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고, 시장이 바뀌면서 외관은 더욱 강조되면서 신청사 프로젝트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공전을 계속했다. 턴키는 디자인빌드 방식으로 설계부터 공사까지를 일괄로 계약하는 입찰 형식이다. 제안된 설계로 공사할 때 적정한 공사비를 같이 제안하는 것으로, 설계가 바뀌면 당연히 공사비가 바뀌어야 한다. 특히 턴키로 입찰할 시에는 설계가 60% 정도 완료되어 제출하는 것이기에 발주처 측에서 치밀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고 비용발생으로 인한 설계변경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또한 특별한 이유로 발주자의 요청에 의해 설계변경을 하게 되더라도 당연히 변경된 공사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발주자가 설계비를 2,000억에서 3,000억으로 바꿔놓고 공사는 2,000억에 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시공자를 상대로 강도질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서울시는 공사비에 대한 문제는 제쳐놓고 끊임없이 대안을 요구하다가 결국에는 여러 건축가에게 대안을 받아보기에까지 이른다. 턴키 당선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상대가 서울시니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만족할만한 안을 구하지 못한 서울시는 급기야 4명의 건축가를 선정해 서울시 신청사 건축 설계 아이디어 공모를 하게 된다.
설계자와 시공자를 선정해 놓고 다른 건축가를 선정해 아이디어 공모를 하는 행위
신청사 건립 반대 운동을 한 몇몇 소수의 건축가 외에는 이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축집단이 없었다는 것은 건축계의 처량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건축 관련 협회에서 협회사옥 현상설계를 진행해서 당선자를 선정했더라도 협회회장이 바뀌어서 설계자를 바꾸겠다고 일방적 통보를 하는 것이 건축계의 현실이다. 공모전에서 당선 안이 선정되면 늘 이런저런 로비, 학연, 발주자와의 결탁 등 뒷말이 무성하다. 건축계에 있는 사람들은 뒤로는 당선 안의 수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진행의 방식에 하자가 없고 당선작이 탈락할만한 지침 위반이나 모작 시비에 휘말릴만한 일을 안 했다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당선안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다. 현상설계의 진행에 있던 상황상 하자가 없다면 그 진행방식에 의해 선정된 안에 대한 개인적 선호는 공식적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서울시가 진행한 건축가 지명 아이디어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공모전이 결정되고 심사위원을 건축 관련 단체장들로 지명했기 때문에 그 당시 새건축사협회장을 맡고 있던 상황상 거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알만한 건축가들이 끊임없이 신청사 프로젝트에 부당하게 연루되던 당시의 상황을 끊어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당선 안이 선정되었고 그 이후 5년의 세월이 흘러 준공할 시점에 이르렀는데도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슈는 설계자가 설계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건축계가 처음의 공모방식을 받아들여 현상공모 후 턴키제도에 응했기에 신청사 건축의 당선자는 삼성건설 컨소시엄이고 신청사의 설계권은 컨소시엄 내의 삼우설계가 갖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 유걸이 제안해서 당선된 안은 기획설계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내용은 현상설계지침에 밝혀져 있다. 따라서 설계자가 설계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것은 확실한데 먼저 배제된 당사자는 아이아크라기 보다는 삼우설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공공건축의 민주주의 실현 요구
신청사 건립에 관한 의사결정에서부터 발주 방식의 결정, 당선 안 선정 후 건설사에 의한 안 바꾸기, 당선 안에 대한 끊임없는 무시, 유명한 건축가들의 왜곡된 참여와 끌려다니기, 절차를 철저히 무시한 아이디어 공모, 당선 안에 대한 임의 변경, 어떠한 원안도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건축물. 공공건축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닌, 행정 절대주의의 단면을 그대로 노출하는, 그리고 그 밑에 시녀처럼 매달려있는 건축계의 모습에서 진정한 공공건축이 보여주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필훈
포스코 A&C 대표
서울시 신청사의 굴곡 혹은 굴욕
분량3,472자 / 7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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