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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각예술과 비평의 세대교체와 동역학

임근준, 권시우

한국의 정치와 사회 면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세대의 교체는, 현대미술과 디자인계도 예외는 아니다. 2014~2015년 활동한 일련의 신생공간에 더하여, 근래 미술과 디자인 전시들에서는 다양한 레이어로 청년 작가의 임시공동체를 보여주거나, 전 세대와 노골적인 종료를 알린다. 하지만 그들만의 전망이 밝아서 기성세대와 안녕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 작품, 작가, 비평이 공생할 수 있는 탄탄한 플랫폼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하다. 이에 대해 임근준 미술·디자인평론가와 권시우 미술비평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LGBT운동가로 활동했고, 이후 계간 『공예와 문화』 편집장, 한국미술연구소/시공아트 편집장,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등으로 일했다. 『현대미술의 끝: 좀비 모던 시대의 예술 생존법』(가제)을 출간할 예정이다.

권시우 비평 동인 ‘집단오찬’(jipdanochan.com)을 운영하고 있다. 동인의 일원으로서 2015년 한 해 동안 신생공간 관련 프로젝트 <동세대 미술에 관한 코멘터리>를 진행했다. 그간 축적된 글들을 일별하며 앞으로의 글쓰기에 관한 향방을 모색하는 중이다.


미술계와 디자인계의 세대교체

임근준 / 현대미술계에서 지난 2014~2015년은 오랜만의 세대교체가 가시화되고 또 구체화된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화제가 된 전시 《서울 바벨》(서울시립미술관, 2016.1.29~4.5)은 소위 신생공간/콜렉티브의 시대를 총괄하는 기획은 아니었다고 해도, 한 시즌을 정리하는 상징적 시공의 성격을 띠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게 때마침 그래픽 디자인계의 세대변환과도 맞물려서, 일민미술관에서는 소규모 스튜디오 중심의 그래픽 디자인 활동을 메타-결산하는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2016.3.25~5.29) 전이 열렸습니다. 디자이너 최성민과 김형진이 기획한 이 전시는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자, 다음 세대 나오세요’ 하며 멍석을 깔아주는 셈인데, 남의 나라에서도 이런 전시는 본 적이 없어요. 게 책임감 넘치는 전시랄까요. 아무튼 저는 올해 상반기가 2018, 2020, 2022년 마의 삼각지를 향해 행군할 채비를 갖춰야 하는 짧은 이행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권시우 /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에서 임근준 씨는 어느덧 ‘구세대’로 분류되는 자신과 신진 디자이너를 매칭한 뒤, 나름의 방향성과 레이아웃을 전제로 작업을 전개한 것 같습니다. 반면 《서울 바벨》은 신생공간이나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참여했지만, 포괄적인 구심점이 있었다기보다는 대체로 각자도생 형식의 뷰view가 펼쳐졌습니다. 이 두 전시 사이에 결절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임근준 / 결이 완연히 다르죠. 디자인 전공자는 모이면 스머프 마을 분위기가 납니다. 남에게 에고ego광선을 쏘지 않아요.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은 90년대생이 두각을 나타낼 차례라는 걸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건 방백 같기도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어설프게 따라 하지 마. 이들에게 허락됐던 소규모 스튜디오 자리는 포화 상태고 주역 몇몇은 중형 스튜디오로 이행 중인데, 미안하게도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창출할 방법은 아직 모르겠어’라는 고백 말이죠. 

반면, 현대미술계에서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전시로 멍석을 깔아주는 장면은 상상이 어렵죠. 세대에 상관없이 서로를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확연하니까요. 작가에게 전시는 본업이고, 화이트큐브는 실재계가 되지만, 디자이너에게 전시는 부업이고, 화이트큐브는 가상계가 됩니다. 여러모로 힘의 작동 방식이 다르죠. 아무튼, 《서울 바벨》에서도 구세대 몫의 이야기는 아예 빠졌고, 2014~2015년에 등장한 신생공간/콜렉티브 가운데서도 덜 주목 받은 곳들을 모아놓은 거잖아요? 신은진 큐레이터가 굉장히 애를 쓰긴 했지만, 개막 당시엔 이런 전시를 최선의 형태라고 호평하긴 어려웠죠. 하지만, 전시 기간 내내 다양한 기획들이 펼쳐졌고, 전시는 서서히 성장하며 의도 이상의 모양새로 자라났습니다. 개막 당일과 중간, 폐막의 모습이 실제로 달랐고, 또 독해하는 입장에서도 추동된 혹은 견인된 자세로 전시를 다르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미술계 구세대들의 노골적인 비판과 악의적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큐레이터를 비롯한 전시의 주역들은 어떤 다층적 임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제 입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권시우 / 《서울 바벨》에서 유추할 수 있듯 최근 신생공간 범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일별해보면 역시나 ‘구세대’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것 같고, 전개한 작업들의 역학이나 방법론 또한 그 이전까지 축적됐던 미술사적 레퍼런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지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해주실 수 있나요?

임근준 / 글쎄요, 여태껏 한국 현대미술계의 본진이라고 간주돼온 이들이 대체로 두 세대의 중첩이라고 봅니다. 제1진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두각을 나타낸 최정화와 이불 작가 세대죠.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정책에 힘입어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생기고, 광주비엔날레가 출범하고, 또 《아시아 산보》와 같은 범아시아를 전제로 한 기획전이 이어지면서 전에 없던 뜻밖의 혜택을 입었던 행운아들이 한국의 포스트 올림픽 세대 미술가들이었습니다. 제2진은, 1997년 12월 외환위기로 국가 경제가 망가지면서, 98년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유학 자유화 세대죠. 이영철 선생의 큐레이팅이 빛을 발했던 《도시와 영상-의식주》 전에 참여했던 김소라, 정수진, 함경아, 함양아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귀국과 서울 데뷔 이후, 쌈지스페이스가 문을 열고 대안공간의 시대가 열렸죠.

하지만, 선순환의 긍정적 에너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70년대 중후반생 작가들은 새로이 형성된 질서에 편입되기 위해 줄을 서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대안공간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은 점차 커리어 평가의 기준이 됐고,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습처럼 작동했습니다. 게다가 방법론에서도 70년대 중후반생 작가들은 앞 세대의 것을 반복해 아류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한데,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야 했던 시기에 미술 시장의 호황이 겹치면서 실험보다는 상업적 가치가 더 중시됐죠. 그런데, 1978/79년생 몇몇이 실패를 단절로 삼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설치미술의 방만한 유행과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물신적 기대가 끝장났죠.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미술관의 초대형화에 맞춰 무작정 작업 규모를 키우던 몹쓸 경쟁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1978/79~88/89년생 작가들은 작업 규모를 휴먼스케일에 맞춰 축소했죠. 

앞선 세대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한국 당대 미술사가 제대로 작성된 바가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도 한국의 90년대 현대미술을 제시하고 해설하는 상설전을 볼 수가 없어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최정화, 박모, 이불 등을 말로만 들었지, 주요 작업을 직접 본 적은 별로 없어요. 미술이론, 미술사를 전공한 이들도, ‘정전 형태의 역사를 작성하는 일은 나쁜 것’이라고 잘못 배웠기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서사화한 형태의 역사적 고찰이 부재하니, 후속 세대의 입장에선 구세대와 본인들 사이의 거리를 파악하고, 그를 통해 작업 방법론을 정교하게 대차대조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교육이죠. 석사 과정을 거친 사람 가운데 1975년 이후 서양 현대미술계에서 전개된 방법론적 변환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을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자꾸 작가들을 유형별로 묶어서 계보화하려 듭니다. 작업의 내적 질서에 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에피소드나 떠벌입니다. 그래서 보면, 단절이 있긴 하지만… 1978/79~88/89년생 작가들은 구세대, 즉 구 386세대의 작가들을 꽤 닮기도 했습니다. 

권시우 / 386세대와의 연속선상에 있는 신생작가를 굳이 거론한다고 할 때, 즉각 연상되는 작가는 아무래도 강정석 작가입니다. 작업에서 스마트폰 시점을 이용해 특정 도시 인프라를 가로지르며 메타 시점을 확보하려 하는데, 동시에 일련의 이미지 재료에선 작가 본인이 속한 세대와 관련한 추동 같은 게 (심지어 전면에) 드러나죠. 

임근준 / 세대 내에서 처음 단절을 가시화하고 담론을 주도하고, 또 주요 신생공간을 설립한 건 78/79년생 라인이지만, 10년 터울의 세대그룹 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데올로그로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아이디어맨들은 1984년생 작가들입니다. 돈선필, 강정석 씨 둘 다 84년생인 걸로 아는데요, 그들은 386세대를 많이 닮았어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제시하며 세대정치 이야기는 꺼리는 것 같지만, 세대정치를 작동시키는 어떤 욕망이 심중에 자리 잡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강정석 작가의 작업들에서 여러 스킨과 가지를 쳐내면 작가의 희한한 에고가 남는데, 그게 박모(박이소)와 상당히 닮았어요. 그래서, 약간 실망한 책이 『메타 유니버스』에요. 훨씬 더 잘 나올 수도 있었는데 작업의 내적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모두가 세대정치만 논해요. 

홍태림 씨는 박불똥 개인전 《박불똥, 1985-2016》(갤러리175, 2016.3.15~3.31)을 기획하면서 “작가 박불똥을 ‘민중미술’이라는 맥락에서 떼어놓고 바라보는 것”이 목표라고 제시했습니다. 아니, 박불똥 작업이 민중미술이 아니라면, 뭐가 민중미술인가요? 젊은 작가를 위한 갤러리에서 구시대 작가의 구작으로 미니 회고전을 열면서 “갤러리175가 주로 청년 작가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청년 박불똥’의 작업들을 만나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상했습니다.

윤율리 씨도 《청춘과 잉여》 (커먼센터, 2014.11.21~12.31) 전의 도록이 정상 출간되지 못한 상황에서 도록을 대신하는 『메타 유니버스』의 편집을 맡게 됐고, 덕분에 담론 생산의 지형에서 주도권을 갖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더랬는데, 1979~89년생 주요 작가들의 문제작을 적절한 양태로 호출해 해석하는 비평적 얼개를 고안·제시했더라면 평론가로서 우뚝 섰을 겁니다. 그런데 연구에 박차를 가했어야 할 귀한 시간에 앞 세대가 잘못 벌여놓은 ‘국선즈’(‘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에 가서 검열 투쟁 행사에 참여하고… 지금 한국 현대미술계가 논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정말 검열인가요? 지금껏 윤율리 씨가 한 이야기는 세대변환에 관한 것일 뿐, 작업의 내적 질서에 초점을 맞춘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 세대의 동역학이 구 386세대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정치적 전유appropriation의 방법론을 탐구한 사례가 없고, 또 담론적 장소성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변주·적용해 새로운 설치미술의 문법을 실험한 경우가 없어요. 

권시우 / 저도 그 부분이 의아했습니다. 『메타 유니버스』에 대해서는 임근준 씨가 일전에 SNS에도 관련 내용을 올리신 적이 있는데요. 그 책은 키워드를‘세대, 지역, 공간, 매체’로 세분화해서 00년대를 독파하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정작 매체에 대한 이야기가 누락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비단 『메타 유니버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서울 바벨》의 도록만 봐도, 저를 포함한 필자들이 나름 각자의 관점에서 2015년 한해를 회고하려는 추동이 엿보이지만, 결국 도출된 것은 세대와 플랫폼 이야기였기 때문에, 앞선 전제조건이 마련된 상태에서, 과연 개별 작업들을 어떻게 호명하고 포지셔닝할 것인가, 혹은 그와 연루된 상태에서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작업적 방법론을 전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다시 물음표로 남았죠.

번외로 제가 ‘집단오찬’이라는 유사 동인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와 어느 정도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한창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이 대두되었을 때 몇몇 기성 평론가께서 그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그분들이 신생공간이나 그 안의 주체들이 특정한 기성세대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한 부분에서 일차적으로 ‘뜨악’ 했고, 그와 별개로 가장 큰 위화감이 들었던 것은 신생 작업들을 작업으로서 대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서진석 기획자나 강수미 평론가가 그와 엇비슷한 맥락들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청년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안에 실제로 마련된다고 가정할 때 ‘그 안을 과연 너희들이 작업 콘텐츠로 채울 수 있겠는가’, 혹은 ‘그럴 만한 역량이 있는가’ 하는 날선 질문들에 글로 구체적인 주석을 달아보고 싶었습니다.

임근준 /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구세대가 자신들의 평가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애써 가치 절하하는 비평이 나오는 게 패턴이기는 한데, 그렇게까지 심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거의 ‘청년 증오’에 가까워요. 『월간미술』은, 청년들의 기획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필자들을 지면에 초대해 그간의 성취를 부정 혹은 폄훼하는 글을 꾸준히 지면화하고 있죠. 한데, 역시 작업 이야기는 없어요. ‘너희들은 정치적으로 각성이 덜 되어 문제다’ 라며 싸잡아서 깎아내려요.

권시우 / 최근 신현진 평론가가 쓴 글에서는 신생공간 플랫폼이 《서울 바벨》 혹은 서울시립미술관을 관통하며 자본주의적 헤게모니를 선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진위 여부를 떠나, 젊은 미술생산자들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헤게모니를 선취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원활한 제도로서 구실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임근준 / 사실 한국 현미술계에서의 자본주의적 헤게모니라는 게 무슨 말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주요 대학 교수되면 패권을 잡는 건가? 요즘 서울대나 홍대 교수에게 그런 힘, 없어요. 그럼, 국제갤러리 같은 데서 전속 작가로 전시하면 패권을 잡나요? 그것도 우스운 

착각이고… 주요 미술관에서 한시적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되면 헤게모니를 잡는 걸까요? 그것도 임기 끝나면 끝이잖아요. 헛소리 좀 작작하면 좋겠어요. 

비평의 폐허 속에서 미술비평의 방향

권시우 / 최근 『오큘로(O-K-U-L-O)』에 게재된 강덕구 씨 글에서는 강정석, 김희천 작가를 단일한 연속체 차원에서 재고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강정석 작가가 작업에 활용하는 잉여세대, 혹은 지인과 같은 유사 주체들과 스마트폰 디바이스나 웹상에서 통용되는 정크이미지를 일대일 대응관계로 설정하는 대목이었어요. 양자의 작업재료가 그런 식으로 직접적인 매칭이 가능한 관계인가 싶었거든요.

임근준 / 강덕구 씨의 글은 재밌긴 했지만, 영화 비평의 관점에서, 그리고 영화 비평을 위해 작성된 것 같았습니다. 영화로 실험이 가능하던 시대가 무너졌고 심도 깊은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신작도 안 나오는 갑갑한 상황. 자, 그렇다면 영화평론가와 이론가들은 어떻게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그들에게 손쉬운 대안은 포스트시네마 담론이고, 거기에 부합하는 국내 재료가 없으므로… 물론 재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죠. 〈논픽션 다이어리〉와 〈철의 꿈〉이 있었지만, 두 영화가 개봉 중일 때 새로운 이론으로 그들의 작업을 분석·비평하고 나서서 고사 위기의 영화 담론 지형에 새로운 전선을 그어낸 논자는 부재했죠. 지금에 와서 손에 잡히는 게 김희천, 강정석이니까 필요에 작가와 작업을 두드려 맞춘 것은 아닌가… 저는 그 잡지를 기대하고 펼쳤다가 실망했어요. 판을 만든 이의 욕망과 참여 필자들의 난처한 입장이 그려낸 풍경이 퍽 심란하더라구요.

국내 영화 평론을 지탱하던 토대가 무너졌다고, 포스트시네마 담론으로 이동하면서 그에 맞는 대상만을 취사선택해 제 글쓰기의 연료로 쓴다? 이건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작업이 먼저 아닌가요? 문제작들을 다이어그램으로 펼쳐놓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를 규명하려는 분석의 틀을 고안하는 것이 정상적인 접근입니다. 망했으면 망했다고 공표하고 정확히 끊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건 평론가의 윤리적 이슈이기도 해요.

권시우 / 그렇다면 영화비평, 문학비평 등이 망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술비평은 어떤 식으로 망했다고 보시나요?

임근준 / 불행히도 현대미술비평은 아직 완전히 망하지 않았어요. 간간이 문제적 작업이 돌출하기 때문에. 90년대생 작가들의 작업이 나오고 세대변환이 이뤄지고, 그 동세와 파장이 사라질 때까지 비평도 제 목숨을 부지할 겁니다. 잡지가 미비한 미디어환경 변화는 독립출판 양태의 비평지로 돌파할 수도 있고요. 방법론적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로 망한 그 다음을 모색해야 하겠죠. 

권시우 / 90년대생의 시점에서 또다시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앞서 말씀하셨던 90년대 이후에 성사된 컨템포러리 아트의 계보가 존재한다 해도 저에겐 너무나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것 자체가 제가 경험한 게 아니라 이미 지면화된 사건에 가깝고, 반드시 그 대목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2008년 전후에 등장한 파트타임스위트, 옥인콜렉티브, 리슨투더시티 등의 작가들은 여전히 이전 세대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작업들에게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현존한다는 전제 같아요. 그런데 김희천, 강정석 작가가 구현하는 납작한 이미지들을 반추해보면, 물리적 공간의 현존은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디지털에 의해 여과됐을 때 어떤 식으로 망가지는가, 혹은 어떻게 바라봐야 최소한의 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시점 선택이 더 중요해진 거죠. 

임근준 / 파트타임스위트를 비롯한 작가들의 작업에서 뉴미디어 환경이나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의해 재매개된remediated 시점의 문제의식을 찾을 순 없나요?

권시우 / 저는 결국 특정 미디어를 통한 인지방식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2009년 이후 스마트폰이 국내에서 보급되기 시작했고, 그걸 사용자 차원에서 얼마만큼 체감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인지 능력의 메커니즘이 미세하게 갈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러한 분기 선택에 있어서 이전 세대들은 (이를테면, 앞서 언급했던 폐허 특정적 작업을 구사하는 콜렉티브들) 이전까지 추구했던 공간 경험을 사회·경제적 현존성에 오버랩하는 방식으로 재구조화시켰다면, 스마트디바이스와 연계된, 소위 스마트 환경을 경험한 세대들은 이미 몇 겹으로 여과된 차원에서 공간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점차 현존성은 휘발되고 무미건조해지죠. 

임근준 / 저는 파트타임스위트나 옥인콜렉티브의 작업을 보고, ‘젊다, 새롭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이들의 작업을 기동시키는 시각 인지 차원의 시점이란 게, 구세대와 거의 같아요. 미술계 전체에서 대안공간마다 어떤 계보가 있다면, 어느 한 지점에 빗금(슬래시)을 쳐서 자기 자리를 만든 셈이었죠. 지금 두각을 나타낸 젊은 작가들에게 세대교체의 열망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 미술계를 조망하며 ‘내 자리가 어디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실제로 차지할 자리나 기회가 없어서 그렇겠지만. 신생공간들이 제각각 다르긴 해도 그런 이격된 감각은 대체로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권시우 / 신생작가들이 제도적으로 불시착한 현재 좌표가 난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들이 점유한 폐허와 게토로 상징되는 물리적 공간 자체는 그들 작업의 방법론과 연동 지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임근준 / 메타 차원의 폐허로 인식된 구체적 공간에서 벌이는 게임적 프로토콜의 실험이, 신생작가들을 연결하는 감각이고 방법이라고 보면, 저는 ‘지금여기’와 ‘케이크갤러리’는 상황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구식 대안공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자의 시공 인식이나 기획 방법론도 그렇고요.

권시우 / 신생공간의 공간이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니라면, 작가들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공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주의의 전략과는 또 다른 층위의 스펙트럼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혹자가 웹 데이터베이스나 관련 디지털 환경을 토대로 작업하는 사람들을 범주화시키기 위해 포스트프로덕션 개념을 거론하고, 뒤이어 그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덕분에 이전과는 판이한 종류의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순간, 저는 그게 뻥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그런 환경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들을 ‘신생’의 작가로 범주화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포스트프로덕션 자체는 반드시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수렴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특정한 교집합으로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 같은 대상에 가깝잖아요.

임근준 / 2000년대를 주름잡은 구미의 주요 평론가도 어떤 게 정말 새로운 작업인지 가늠 못하는 흥미로운 상황입니다. 뇌시각의 버전이 달라요. 국내 구세대 논자들이 청년 미술가에게 화를 내는 이유도 작업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파편들을 그러모으고는 예술가인 척하는, 게으르고 질 나쁜 애들로 뵈는 거죠. 사회 비판적 메시지나 제도 비평적 접근이 안 읽히니 사회와 미술계의 문제에 등을 돌렸다고 착각하고, 그러니 또 영 괘씸하고.

새로운 세대의 작업 방법과 생존법

권시우 / 포스트프로덕션의 관점에서, 신생작가들을 범주화할 수 있는 동력은 결과값의 이미지를 공간 아닌 공간, 폐허, 게토 등이 지닌 공간적 요철 같은 것에 투사함으로써 공간 자체를 재차 포스트프로덕션 하는 과정에서 그 특정성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이미지와 공간 자체가 겹쳤을 때 과도기적인 영역 자체가 작가에게는 이후 작업의 레이아웃 구실을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렇게 구실하는 공간적 토대 (공간적 토대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미지와 공간이 교접된 그곳으로부터 이후 어떤 작업이 전개될 지 명확한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죠.

임근준 / 이미지와 공간이 교접된 지점에서 정말 뭔가 새로운 걸 창출해내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직 없죠. 그런 면에서, 걱정되는 작가 중 대표적인 이가 돈선필 씨에요. ‘반지하’라는 특수한 판단 유예의 시공을 만들어놓고, 자기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다른 작가들과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형성·배양하는 데 성공했어요. 주변 작가들로부터 암묵적 인정을 얻어냈고, 다른 동료들과 ‘반지하’ 밖으로 나와 세종문화회관에서 ‘굿-즈’라는 성취를 이뤄냈죠. ‘굿-즈’는 사실 ‘반지하’의 바깥은 아니었던 셈입니다만. 돈선필 씨는, ‘반지하’라는 비정상적 공간을 바탕으로, 가상 시점의 문제와 게임 네트워크의 프로토콜을 엮어서, 다른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으로 모종의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그게 자신을 예술가로서 지탱하는 외골격이죠. 그런데 그가 만약 소라게의 소라껍질을 벗어던지고 ‘시청각’에서, 더 나아가 미술관 화이트큐브에서 개인전을 연다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유사한 문제의식을 어쨌거나 전시용 작업으로 풀어온 강정석과 비교해보면 둘의 처지는 사뭇 달라요.

권시우 / 정말 그런 지점이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저는 한진 작가의 작업이 아까 말씀하신 폐허로서의 공간에 최적화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본인부터 회전력이나 편의성 같은 것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결과값으로 튀어나온 작업을 독해해보면, ‘드로잉된 회화’라고 생각해요. 공간적 요철을 향한 조건반사적인 회화랄까요.

임근준 / 그 세대의 시공 안에서 한진 작가는 유달리 빛나죠. 이 작가의 그림을 그대로 떼어다 오브제 자체만 국립현대미술관에 넣었을 때, 그 작업은 여전히 멋있을까? 어쨌든 그 세대 안에서 봐도 유의미하고, 또 세대 밖에서 봐도 유의미하도록, 적절히 0점 조절이 된 작가는 강정석, 윤향로 씨입니다. 영 맘에 안 들지라도, 구세대가 보기에도 그 둘은 명백히 작가인 거죠. 그런데, 그런 종류의 외골격을 갖추는 데 성공한 작가는 소수입니다. 장차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룹 활동 없이 각자도생해야 한다면, 생존할 작가가 몇이나 될지 잘 모르겠어요. 

권시우 /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 안에서 통용된 작업들이 과연 2015년을 통과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체득했는지 자문해봐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네요.

임근준 / 아직은 개별 작업으로 딱히 판가름이 안 나는 상황에서, 신생공간과 콜렉티브의 주역들을 미술관으로 끌고 들어온 게, 《뉴스킨: 본뜨고 연결하기》(2015.7.3~8.9) 전이었죠. 첫 미술관 입성이었기에 당시에 사람들이 대놓고 비평을 안 해서 그렇지, 뒤에선 ‘뉴스킨이 어디 있냐, 올드스킨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죠. 폐허로서의 신생공간을 공통 거점으로 삼고, 자기 작업으로는 새로운 시점과 인지/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를 모아 놓았는데, 옛 작업 그대로 화이트큐브에 옮겨 놓으니 작업의 핵심이 잘 도드라지지 않았어요. 유일한 예외가 김희천 씨였고. 당시 신생공간/콜렉티브의 주역들이 미술관에서 어떤 게임을 재기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논했어야 했는데, 구세대가 말을 꺼내긴 애매하고, 세대 내 비평가도 안 하더라고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장치 소거 

임근준 / 노골적으로, 현대미술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미술계의 중심축은 국공립미술관이니, 청년 미술인의 생존을 위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 청주관 등 공간이 많고 서울시립미술관도 최근 여러 공간을 거느리게 됐죠. 청년들을 위한 작고 실용적인 공간 하나 내놓으라고 왜 말을 못하나요? 과거 대우복지재단의 아트선재센터와 삼성미술관의 로댕갤러리가 문제적 청년 작가에서 국제적 중견 작가로 이륙하는 공항 같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 둘 다 사라지거나 옛 기능을 상실하게 됐어요. 그러면, 청년 미술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권시우 / 결국 자발적으로 플랫폼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까 말씀하신 80년대생 작가들이 국공립미술관에 공간을 요구하는 일이 지금 적기인 이유가, 90년대생 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예술대학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고립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이 예술 대학 졸업 이후에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렸던, 혹은 맞닥뜨릴 수 있는 플랫폼이 무엇인지 되물어보면, 저는 앞서 언급된 오작동의 플랫폼인 것 같거든요. 제도 외부에 산개하던 신생공간들, 즉 2015년 한 해 동안 다소 착시적으로 감지됐던 바로 그 플랫폼들이요. 플랫폼의 주체였던 80년대생이야말로 그들 입장에선 최소한 가늠할 수 있는 ‘선배’인 셈이죠. 아무래도 신생공간 이전의 미술과는 현실적인 접촉면이 부재하니까.

임근준 / 본인들이 살려면 궁리를 해야 하지 않나요? 탈출구를 찾으려는 동역학을 창출해야 1979~88년생 라인은 1991~01년생과 함께 굴러갈 수 있을 겁니다. 1991~01년생은 인구 통계 그래프에서 마지막 파도입니다. 그 이후엔 인구 절벽이라 세대교체를 시도할 수도 없어요. 

권시우 / 누군가 고의로 문화판 자체를 엎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현재의 세대교체 국면은 이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새출발’이라는 건 1979~88년생 세대가 여태까지 구축했던 공간과 이미지를 합성한 레이아웃 형식에서 자생적으로 튀어나온 플랫폼의 형식이 될까요? 혹은 그와 별개로 누가 계속해서 이를 활용해 작가로서 효율적인 연장전을 치를 수 있을까요?

임근준 / 현재 방법론적 차원에서 ‘이 작가가 지금 이곳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입니다’라고 지목할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강정석 작가예요. 세대 내에서도, 세대 밖에 내놔도 말이 되는 지표적 인물이죠. 자신만의 방법론도 만들었고, 글로 자기 비전을 설명할 능력도 갖췄고요. 그래도, 한국에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같은 작가가 한 명 있으면 좋겠죠.

권시우 / 강정석 작가가 점유하는 사회적 포지션과, 김희천 작가가 작업으로서 점유하는 이미지 차원을 접합하면 가능할까요? (웃음)

임근준 / 그렇죠. 그런데 히토 슈타이얼도 사실 작업의 전제가 되는 가설이 재밌는 거지, 작업 자체는 별 재미가 없잖아요. 과대평가됐죠. 어쨌든, 넷상의 저급 이미지가 새로운 현존 방식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분석해 이미지의 새로운 위상을 조명한 에세이(「In Defense of the Poor Image」)나, 수직적 원근법vertical perspective을 이야기하며 자유낙하로 이 시대의 상황을 유비해 낸 에세이(「In Free Fall」)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뮤지엄을 공장으로 재해석해 관련 주체들의 각 역할을 재고찰한 에세이(「Is a Museum a Factory?」) 등을 보면, 아주 쉬우면서도 또 완결된 이론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마치 레고블록과 같아서 다른 이들이 그 아이디어를 빌려다가 새로 조합해서 파생 담론을 만들기 쉽습니다.

주목할 만한 작가 혹은 전시

권시우 / 괄목할 만한 신생공간의 전시를 굳이 하나만 뽑자면 저는 《던전》이었던 것 같아요. 

임근준 / 2014, 2015년 통틀어 미술행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시와 작업이 《던전》이에요. ‘교역소’의 〈상태참조〉나 ‘727NOW!’에서 전개된 밈미우×강재원의 〈#1–7〉도 특기할만했지만, 역시 정점에 〈던전〉이 있습니다. 

좀 이른 것 같지만, 이제 저는 생존 가능한 주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정 세대의 동역학이 사라지고 난 뒤 개인으로 살아남아 역사로 기록되는 작가 수는 대개 일곱에서 열 명 정도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단색화 재조명이라고 막 바람을 잡아도, 결국 현재 주요 작가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이우환, 권영우, 정상화 이렇게 여섯이죠. 그렇게 여섯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각 단계마다 평론가와 미술사학자 등이 활활 몸을 불사르며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방근택, 이일, 나카하라 유스케, 오광수, 기정현(조앤기) 등. 화상의 역할도 마찬가지죠. 명동화랑의 김문호 사장, 동경화랑의 야마모토 다카시 사장, 인공화랑의 황현욱 사장… 지금은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대표. 그래서 지난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의 시공에서 윤율리 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시대가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간극이 좀 있는 모양이에요.

권시우 / 윤율리 씨는 《서울 바벨》에 기고한 글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플랫폼에 대한 역할 욕구가 남아있는 것 같고, 그걸 어떻게 온전한 제도적 장치로서 구현할 수 있을지 고찰하는 것 같은데요. 

임근준 / 플랫폼에 대한 집착은 교육제도가 담당해야할 과제를 밖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오귀인misattribution이 아닐까요? 1950년대생 작가·교수들이 차례로 은퇴하고, 인구 절벽 효과로 대학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테고,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 될 겁니다. 2000년생이 보게 될 미술학교와 미술계는 어떤 모습이며, 엉망진창 오작동하는 교육제도를 거치고 나면 어떤 작가가 될까요? 아마도 역사부정의 태도를 취하게 되지 않을까요?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버리자는 멘털리티가 팽배해지면 여러모로 편하거든요. 전후의 앙포르멜 작가들이 딱 그랬죠.

공존의 생존 프로토콜로서의 플랫폼

임근준 / 미술계의 신생공간/콜렉티브를 디자인계의 소규모 스튜디오와 비교해봐도 흥미롭습니다. 장기 지속하기 어려운 양태였다는 것은 양쪽 다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소규모 스튜디오는 2005~2015년의 10년을 버틸 수 있는 자산이자 전략이 됐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제 몇몇 스튜디오는 중형으로 이행하고 있죠.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전을 통해 시대의 종료를 선포했으니, 다들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됐죠. 하지만, 신생공간/콜렉티브의 사례들은, 각각 다 다르고, 또 그 자체로 작업이기 때문에 타인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기 어려워요. 

권시우 / 현재 체감하고 있는 막연한 불안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소시키느냐가 큰 관건인 거 같아요.

임근준 / 필요한 것은 불안의 해소가 아니라, 위기를 직시하고 다 함께 불안해하도록 의제화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현재의 위기 상황은 세대 안에서도 똑똑한 작가 몇 명만 아는 거잖아요. 한국은 관료주의 사회라서, 어쨌거나 한 업계의 흥망은, ‘관계’와 ‘학계’와 ‘민간’의 삼각 바퀴가 잘 굴러가느냐 여부에 달렸습니다. 그 삼각 바퀴의 도식으로 오늘의 위기를 바라보면, 미술계의 경우, ‘민간’이 가장 먼저 취약화됐죠. 2008년의 미술시장 붕괴와 함께. 이제 ‘학계’가 취약화될 차례입니다. 그러면, 믿을 것은 ‘관계’ 하나가 남아요. 청와대가 문화융성을 슬로건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리고 문화관광부 장관이 그래도 미대 출신이라,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술대학은 인문대처럼 도매급으로 통폐합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들 합니다만…. 아무튼, 플랫폼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싶다면, 국공립미술관의 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법인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법인화 시대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그저 관장 자리를 놓고 시끄럽게 떠들었을 뿐입니다.

물론 관장의 리더십은 중요합니다. 김홍희 관장이 서울시립미술관을 이끌면서 정말로 많은 것들이 개선됐고, 또 그 혜택은 작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2016년이 임기의 마지막 5년차이고, 머잖아 그는 물러날 겁니다. 그의 퇴임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은 어찌 될까요. 불행히도, 한국에서 후임이 전임의 업적을 그대로 이어받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후임 관장이 전임이 만들어놓은 연간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주요 큐레이터들은 순환 보직을 이유로 한직으로 보내버리면, 상생형 리더십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겠죠.

권시우 / 결국 다시 원점이네요. 제도적 차원에서 독립적인 플랫폼을 요구하고 그들 나름의 동적 공간을 창출해내는.

임근준 /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한국에 온 지 꽤 됐는데 미술관에 정식 요청해서 관장실로 찾아오겠다고 한 면담, 대담 요청 건수가 0건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비공식 채널로만 만나는 모양이에요. 관장 선임을 놓고 그리들 항의를 했으면 공중의 의견을 수렴해서 서한이라도 전달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정책이 잘못 됐다면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쓰고 간담회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과 큐레이터들이 있어요. 비난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세대 내 작품, 비평 간 레슬링의 부재

권시우 / 플랫폼 마련이나 제도 개선의 문제와는 별개로, 제가 작년에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의문은 신생공간을 토대로 작가들이 이렇게나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데 그와 관련한 비평, 평론, 리뷰 등의 사족들이 달리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임근준 /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본인들이 못한 거죠. 전시를 열면, 잡지사에 전화하고, 지면 좀 달라고 조르고, 어느 필자가 좋겠다, 미리 운을 떼고…. 그런데 젊은 세대들은 그걸 잘 모르더라고요. 내 작업이 좋으면 비평이 저절로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알아서 평론할 대상을 가리고, 지면 달라고 잡지사에 전화해서 조르고, 청탁받지 않은 장문의 평문을 써내고, 주목 받아야 할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이목이 쏠리도록 이러저러한 부가 행사를 기획하는 평론가는 십 년에 한 명 정도 겨우 나오는 거죠.

권시우 / 세대 안에서도 필자를 지향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왜 신생공간을 물지 못했을까요?

임근준 / 세대 안에서 미움 살까봐 노골적으로 눈치 보지 않았나요? 일단 서로 비판을 삼가잖아요. 세대 내에서 프로레슬링을 좀 해야 헛에너지가 막 나와서 담론이 활성화되는데, 그게 안 됐어요. 십여 년 전만 해도 미술잡지를 펼치면 강수미, 반이정, 이정우, 셋 모두 서로 충돌하는 비평을 제시하고 있었어요. 누가 옳건 그르건, 아무튼 삼각 스펙트럼이 그려지고 이견이 분명히 제시되는 건 긍정적인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작가들도 판단을 내리기 쉬웠죠. 

권시우 / 저만 해도 세대 내에서 글을 쓰는 다른 분들이 잘 파악이 안 돼요. 애초에 무언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필자를 임의적으로 추려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점인 것 같아요. ‘집단오찬’의 동인들과도 신생공간이란 화두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결과값으로 튀어나온 글도 서로 상이했어요. 당시에 그런 식으로 나름의 논의가 진전됐는데, 지금은 거의 저의 1인블로그처럼 되었죠. 조금만 더 불을 당겼으면 본격적인 동인의 각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구성원들 대부분이 군대에 가버렸네요.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지점들이 있는 거죠.

임근준 / 제 경우엔 『DT(디자인|텍스트)』가 성장을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어요. 비정기 간행물이 뭐 큰 도움이 됐을까 싶겠지만, 박해천, 최성민 씨와 그 이론지를 만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DT’ 동인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구자/필자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서로 성장·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1990년대 후반 이후 담론의 지형이 크게 변화할 때 오판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결국 기적적으로 연구자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계와 미술계 사이에서 담론의 교집합을 발견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동역학을 창출할 수도 있었고요.

오늘의 청년 미술가 세대에도, 비평적 연결고리가 되는 이론지가 필요합니다. 시청각의 안인용 씨와 함께 비평지를 내면 어떨까요? 위로는 윤원화 씨, 아래로는 권시우 씨가 포진한 이론지라면, 새로운 성취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권시우 / 앞세대에 대한 바톤터치의 개념으로 이후의 세대가 플랫폼을 만들고 개별적인 논의를 전개한다고 해도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담론화의 지형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요.

임근준 / 공통의 기억을 바탕으로 당대의 성취들을 역사화하는 과정에서, 비평 담론이란 것은 아말감 역할을 합니다. 해석의 방향성을 창출하는, 비평적 동세를 창출하는 필자들의 네트워크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이론지가 새로 출범해야 할 시점이에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비평과 이론의 차원에서 되돌아보는 기획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요즘 대학원 강의에서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서 근원 김용준과 이경성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강독 세미나를 하고 있어요. 한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 가운데에도 당대의 시각성 체제 이론을 제시하고, 자신의 비평 방법론을 확립한 경우는 희귀합니다. 한국의 미술사를 역사화하는 기본 틀을 제시하고, 각 분야를 포괄하는 통사로서의 미술사 서술을 추구-성취한 비평가는 이경성 이후 없습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아요.

제 생각에 그건 연구자 연합의 형태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따라서, 연구나 비평가에게도 그룹이 중요해요. 그래서 1979~89년생 구간에 속하는 논자 여러분을 보고 있으면 갑갑합니다. 어서 추구하는 가치를 분명히 드러내 ‘나’를 중심으로 비평적 동세를 창출해야 하는데, 왜 자꾸 방황하는 것인지. 그 말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추동이 어디로 향하는지 읽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조만간, 한국 당대 미술을 일군 주요 인물들이 줄줄이 은퇴합니다. 호랑이굴이 비는 셈이기도 하죠. 그러면, 누가 호랑이 역할을 해야 좋을까요?

그래서, 누가 문제적 작가인가?

임근준 / 어쨌든 다음 단계로 이행하려면, 역사를 다시 재조명하는 일이 필수입니다. 신생작가/콜렉티브 가운데에서도 구체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하나하나 호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미술계도 2005~2015년의 십 년을 결산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2018년 12월쯤, 2008~2018년으로 십 년을 끊어서 결산해보는 것도 좋겠죠. 지난 십 년을 결산하기 위해 걸작을 꼽아야 한다면,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을 고르겠습니까?

권시우 / 지금 당장 특정 작가를 호명하기엔 무리가 있고, 우회의 전략이라면 방법론적으로 겹치는 일군의 작가를 선별한 다음 대질을 시켜 공통 속성을 밝히고, 이로써 당대의 시각성을 역추적해보는 메타 독해를 시도하는 것이겠죠. 지금 활동하는 개별 작가들 중 일부만을 문제적인 작가로 호명하는 일은 아직까진 회의적인 것 같아요. 솔직히 잘 모르겠기도 하고. 윤향로, 백경호 작가는 ‘레이어 회화’, 강정석, 김희천 작가는 X라는 ‘연속체’ 등의 키워드 도출은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정말 개별 작업의 몸체에 온전히 들어맞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인지 자문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현재 ‘신생’이라는 작업 언어를 구성하는 의미소를 분별하는 시도에 가깝겠죠.

다만 국내의 2013,14,15년의 구간을 하나의 징후로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를테면, 강정석 x 김희천 연속체로 서울을 상연하고, 〈던전〉의 표본과 강재원 x 밈미우의 〈#1-7〉의 표본을 공간 재연하고, 한진의 드로잉 회화와 백경호의 레이어와 김정태의 하이퍼스레딩을 일종의 모듈로서 제시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이런 걸로 순회전을 돌면 뭔가 세상이 한층 더 우울해지겠지만.

그보다 시간을 더 거슬러가보면 (제 정보량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난 10년은 거듭 언급했듯 제게는 지면화된 사건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어렴풋이 알지만, 작업 자체를 호명하기에는 역시나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임근준 / 그렇다면, 김형진, 최성민 씨가 했듯이, 지난 10년을 총괄하는 인덱스를 작성해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전을 위해 〈101개 지표〉를 만들었다곤 하지만, 사실 별개의 작업이고, 또 곰곰이 들여다보면 계속해서 지난 십 년을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하도록 유도되거든요.

권시우 /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특정 작업을 이미지로, 혹은 담론적 차원의 텍스트로 마주한 채 일방적으로 소화하거나 체해버립니다. ‘지면’이란 것도 엄밀히 말하면 강의 PPT인 셈인데, 사용되는 이미지를 보면 도판에서 체계적으로 발췌한 것이 아닌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처럼 뇌 속에 적절하게 색인 처리된 데이터베이스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감이 잘 안 잡힐 때가 있어요. 저의 기억은 온통 저화질이죠.

임근준 / 연구자들의 구심점 노릇을 하는 아카이브가 하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라인으로 공동 작업을 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연구센터를 애용해도 좋겠네요. 그게 다 시민 세금으로 만든 거라 여러분 것인데 말이죠. 

현대 시각예술과 비평의 세대교체와 동역학

분량20,631자 / 40분

발행일2016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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