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현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가
안성석
분량3,888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4월 28일
유형에세이

균열된 현판과 광장
경찰, 의경, 자동차 등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한다. 사진을 찍어 이어붙인 이 영상에서는 현실 광화문을 탈각시키고 부유하는 것들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급하는 곳이 광화문 현판과 뒷산이다. 3년 6개월의 복원공사를 끝내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은 석 달이 채 안되어 현판에 균열이 생겼다. 그 해 말 완공예정이었던 복원사업은 G20과 광복절 같은 큰 행사에 의해 앞당겨졌던 것이다. 이 모든 사회적 현상들이 이 장소를 새롭게 의미화 하였다. 1인칭 시점으로 광장을 누비며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실존적 드라마의 현장감을 나타내고 싶다. 일련의 이러한 변화하는 역사 속 공간들이 나의 감각을 자극하며, 그것들은 새로운 미디어 체험와 함께 잠재성의 공간을 나의 의식으로 까지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무한성 그 너머>에 등장하는 광화문은 2010~2011년의 모습. 새롭게 지어진 광화문을 다시 찾았다 (그새 광화문에는 이상한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완공된 지 단 3개월 만에 광화문 현판이 균열됐다. 이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상한 풍경의 광화문 일대를 2년 동안 작은 카메라로 일일이 찍었다 (당시 나는 사고로 인해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광화문을 보고 싶어 작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다). 이후 찍어놓은 하나하나의 사진을 가상공간에 하나씩 배치한 후 카메라 워킹을 통해서 영상으로 제작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분수,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분수로부터 크게 한발 짝 떨어져 있는 어른들, 그 뒤 높게 세워진 이순신 동상, 광장 잔디 위 ‘잔디보호’ 글씨와 잔디를 밟지 않는 사람들, 황금색 세종대왕상, 곳곳에 돌아다니는 형광색 사람들, 균열된 현판. 긴장감이 맴도는 장소에서의 평화로운 사람들과 각종 재현행사 등 이질적이고도 조화로운 요소들이 가득한 이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나하나씩 기록해갔다.

공사중인 광화문
2008년 처음 마주친 광화문. 군 전역 후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여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국동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여행객처럼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보았던 낯선 서울의 모습을 발견했다. 여러 장소와 마찬가지로 광화문 또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광화문이 콘크리트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림막에는 강익중 작가의 작품이 광화문 전면에 있었다.
<사적 현재historic present> 사진 연작에 등장하는 광화문은 서울이라는 낯선 장소의 탐구, 야외 영사 테스트와 의미 연구, 순수한 호기심에서의 과거로의 여행, 시각의 몽타주 등을 실천해보며 사진 탐구와 현실 기록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이 만들어지기 이전 모습들, 바닥의 콘크리트를 한 꺼풀 벗겨낸 상태, 변함없는 북악산의 위치와 형태, 흑백사진 속 흙먼지가 날리는 바닥, 100m 옮겨진 해태상의 위치, 콘크리트 광화문의 공사 현장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 대사관과 광화문
<관할 아닌 관할>에 등장하는 광화문은 2013년 모습으로 온라인 비디오 게임으로 제작되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 후 플레이할 수 있다. 이 장소에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와 사건들이 혼재되어 있다. 컨테이너 박스에 갇힌 광화문, 광장 완공 이후 같은 해에 비로 인한 침수, 미 대사관, 수많은 경찰, 타워에서 들려나오는 미국과의 수교 내용.
산타모니카에 있는 한 아트센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를 위해 미 대사관에서의 비자발급이 필요했고 이에 대한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영사관을 만나 인터뷰를 보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발급 거절. 대사관에서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갖췄으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듭된 거절도장을 받았다. 첫 거절 때는 어리둥절했다. 대사관에 문의를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검색했더니 인터뷰 때 문신이 있으면 가리고, 장신구는 빼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는 팁이 있었다. 썩 기분 좋은 감정은 아니었지만 비자가 필요했기에 노력했다. 하지만 두 번째 거절. 영사관은 다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거절 도장을 찍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나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대했다. 처음으로 제도 앞에 무기력함을 경험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미 대사관을 나오면서 보였던 풍경은 미 대사관을 둘러싸 배치하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이었다. 이전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존재로 느꼈지만, 이때는 달랐다. 왜인지 내가 이런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면 나를 제압할 것 같은 고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도 미 대사관은 광화문 옆에 있었다. 이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미 대사관이 이제야 인지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경찰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고,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대사관을 감싸고 있었다. 다른 대사관에서 이렇게나 많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궁금해졌고, 이렇게 중요한 장소에 미 대사관이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이후 내 눈에 들어온 광화문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형광색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조선고적도보》로부터 시작된 문화 유적을 기록한 사진에 대한 기억과 현시대가 연결되어 이미지가 파생되고, 이들이 변형, 관통되면서 기존의 풍경들은 다시금 새로운 이미지로 발현된다. 그리고 만남, 자연환경, 일상의 사건, 역사, 지역적 특성과 함께 그 장소만의 독특한 감정들이 얽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광화문과 어가행렬
진하게 발광發光하며 움직이는 형광색 빛들이 보인다. 오전 11시 20분, 광화문 네거리의 신호등이 붉게 물드는 순간 ‘그들은’기다렸다는 듯이 도로를 점령, 그리고 통제한다. 5차선의 콘크리트 도로가 텅 비어지고 조선시대 의복을 입은 행렬 연기자들이 거리로 들어선다. 흙 위로 두껍게 깔린 콘크리트 도로와 양 옆을 지키고 있는 높은 빌딩 마천루를 배경 삼아 약 1,000여 명의 긴 행렬이 시작된다. 어제까지만해도 승마코스에서 달렸을 법한 말들과 기수들이, 오늘은 장군복을 입고 광화문 도로를 코스 삼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무거워 보이는 왕의 어령이 등장하고 어령을 옮기는 일꾼들을 쳐다보지만 힘겨운 내색하나 없는 걸 보아 힘 꽤나 쓰는가 싶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발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니 마차에서 아래로 늘어진 천들의 틈 사이로 튼실한 바퀴가 잘도 굴러 가고 있다.
이 행사의 실체를 반증해 주는 한 묘한 모습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데, 현수막으로 제작된 광화문의 현판(光化門)이 교묘하게 복원중인 원형을 가린 채 그 옆은 현수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비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일당 3만 원에 1,200명 선착순으로 당일 모집공고를 본 고등학교 학생부터 수업이 없는 대학생, 종묘공원에서 소일하던 어른 등 선발된 아저씨들과 학생들은 오합지졸이었고 광화문 대로에는 기수가 탄 말이 배출한 변이 도로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역사 속 현장에서 펼쳐지던 무한의 비가시적 풍경이 현실 속에 등장하는 형태이다. 가상의 판타지를 향한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카메라와 플래시 세례는 이 풍경을 더욱 환상적으로 꾸며준다. 상상과 자료를 통해 내 머릿속에 구성되었던 어가행렬은 현대적 시대요소가 층위적으로 겹쳐 새롭게 꾸며져 각색된 새로운 무대처럼 보인다.
*2011년 경복궁에서 출발한 어가행렬을 8mm 필름으로 기록
안성석
급변하는 현실에 대해 집중한다. 인터넷 이후의 확장된 감각을 기반으로 큰 흐름에서의 역사적 현재와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현재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 현재를 있게 한 지난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학구적인 태도로 조사하고, 나의 세대, 나의 성장배경,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sungseokahn.com
급변하는 현실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가
분량3,888자 / 10분 / 도판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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