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으로서의 파업 그리고 연대
김기조, 옥인콜렉티브 × 임국화
분량8,887자 / 18분 / 도판 5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유형인터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일상은 한고비를 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위기의 문이 열리기 바쁘다. 차라리 게임오버를 선언하는 것이 덜 피곤할 것 같다. 하지만 고독과 불안함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예술과 삶을 분리하고 구분 짓는 일은 더는 불필요해 보인다. 동시대 삶과 예술에 내려진 재앙과 재난을 바라보던 냉소적 무기력함은 그들의 유쾌한 행진을 통해서 거두고, 생기를 가진 협업과 연대를 찾는 과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김기조 독립음반사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디자이너 이자, 일인스튜디오 ‘기조측면’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매체에 국한 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시도 중이다.
옥인콜렉티브(이정민)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로 구성되며 첫 프로젝트의 장소였던 종로구 옥인아파트의 지명을 딴 작가그룹이다. 척박한 도시공간 속의 연구와 놀이,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향유자의 위치와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자

인터뷰어 통상적인 이해에서 ‘메이데이’라고 하면 직장이 있는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한 시대가 공유하고 있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올해의 메이데이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비정규직자들 또는 노동자의 범주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노동과 노동윤리 등에 관한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 메이데이 총파업 행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노동을 멈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김기조 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소속된 직장이 없습니다. 프리랜서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자신을 고용해서 노동하는 건데요. 그렇게 일하다 보면 저 자신을 체력적 한계상황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회사 같은 곳에 묶여있는 노동자처럼 규정 노동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노동시간만큼 일하더라도 프리랜서는 자칫 자유로운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알아서 컨트롤 해야 하다 보니 스스로를 혹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조건들은 구축해놓지 않고 일하다 보니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이상으로 따르는 문제가 많죠. 그러나 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는 무감각하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쉽게 이야기해서 ‘백수의 파업’ 같은 것으로 메이데이에 대한 키워드가 다가왔었습니다. 굉장히 세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성취감이라는 것을 기업에서 이야기 하는 ‘가치’라고 하는 것들에 기준 삼아서 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던 거죠. 이러한 착취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과연 균등하게 몸과 정신에 분배되어 왔는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정민 참여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자면 저도 심정적으로는 비슷할 거 같습니다. 개별적으로 앞서 이야기하신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전달을 해서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똑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번에만 그런 기회가 마련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전엔 딱히 이 문제를 드러내고 대화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있지 않았죠. 총파업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제가 현재 머물고 있는 금천예술공장의 많은 작가들, 주변 작가들 그리고 디자이너들, 또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계속 있었어요. 작년만 하더라도 굉장히 힘들었잖아요. 지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앞으로 작업을 해 나갈 사람들이 겪고 있는 패배감 같은, 정신적으로 너무 견디기 힘든 문제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미술-디자인 라운드테이블>1 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총파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현실에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인터뷰어 ‘총파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이정민 4월 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파업’이라는 게 있으면 그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는 각 계 또는 개인들 그리고 옥인콜렉티브의 경우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김기조 단편선 씨는 거의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구성원들의 소통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외부적으로 준비를 많이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인터뷰어 ‘총파업’ 홈페이지http://generalstrike.kr를 보면 ‘워크그룹’이 있습니다. 총파업은 조직의 형태로 계획, 진행된 것인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인이 하나의 독립적인 워크그룹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워크그룹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큰 모양을 형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정민 워크그룹에 있는 사람들만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워크그룹은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일 뿐이에요. 홈페이지에 총파업 포스터를 올리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나누는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거죠. 옥인콜렉티브도 총파업 참여 포스터를 팀에서 만들어서 올렸어요. <미술-디자인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파트타임 스위트라던지 다른 워크그룹과 함께 가두행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눴죠. 저는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작가든 디자이너든 예술가들의 삶이 피폐했던 것은 하루 이를 사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전에도 다른 방식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화두가 되어 서로 대화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역사가 있었죠.
총파업 내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어떤 조직의 형태는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체계를 갖추는, 이를테면 분과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세분화하는 조직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데 한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들 총파업을 위해 모였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가 다 같았던 것은 아니에요. 제 각각 자신의 배경과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너무 힘들다’는 것에 대한 공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럴 때 이것을 어떻게 일로 가져가서 작동시키고, 현실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관한 생각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운영방식도 전체적인 하나의 틀을 마련하자는 동의가 워크그룹을 움직이게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에서도 개별적인 차이는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총파업을 바라보는 외부시각들 중에도 우려의 시각이나 논란도 분명 있을 겁니다. 대표적으로는 ‘파업이라는 것을 과연 이런 식으로 다뤄도 되는 건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죠. 총파업 결단할 때 얼마나 힘들게 합니까. 극단의 결정이잖아요. 기계를 멈추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것 자체가 아니니까요. 결의에 의해 기계를 멈추는 사람들의 총파업을 작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또는 어떤 직군으로 묶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파업이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김기조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파업을 한다는 것을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는 장난으로 보는 시각들도 있겠죠.
이정민 그런데 저희는 정말 절박하거든요.
김기조 그 절박함은 수치화해서 정도를 측정하는 일이 가능하지도 않고, 그게 중요한 문제도 아닙니다. 외부에서 염려하는 또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절박함이라는 것을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화사하게, 귀엽게 또는 감각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실제로 총파업 행진을 준비하는 참여자들 내부에서도 총파업을 대하는 시각적 태도나 실제의 절박함 사이의 괴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희가 행진할 때 왕관 쓰고 망토 두르고 돌아다녔는데, 시각적으로 봤을 때는 ‘먹고 살 만하니까 저러고 노는구나’ 같은 생각도 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절박함의 정도를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내놓았을 때는 오히려 대중과의 사이에 벽을 쌓게 하는 하나의 장치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정민 그렇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절박함이 덜 느껴진다거나 절박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내가 너무나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뒤로 물러날 수도 있는 것처럼요.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예술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감각과 마음을 열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좀 더 들을 수 있게 하고, 나의 문제를 꺼내놓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일단은 제일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어 월가점령에서 총파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멈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멈춤을 통해서 보이지 않았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죠. 총파업 이후 어떤 변화를 기대하나요?
김기조 우선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대체재가 굉장히 풍부한 직종이기 때문에 누군가 일을 멈췄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별 타격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디자이너가 파업을 한다고 하면 다른 디자이너를 쓰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성실함을 끊임없이 어필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 경쟁 안에서 작은 차이라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번 총파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저는 제 고객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랄까.(웃음)
이정민 좋겠다. 예술가들은 고객도 없어요.(웃음)
김기조 “그날은 제가 좀 쉬어야 해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은 제가 파업하는 날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파업이라는 말이 가진 힘 때문에 클라이언트를 긴장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파업을 통해서 공기처럼 느꼈던 디자이너를 공기가 없는, 그러니까 ‘디자이너가 없다면’하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제가 같이 일하고 있는 붕가붕가레코드를 포함해서 그 당시 맡고 있던 몇 가지 일들의 담당자들이 ‘아, 디자이너도 파업을 하는구나. 이 사람이 일을 멈추게 되면 나에게는 어떤 차질이 생기고 타격을 입히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디자이너가 더는 풍부한 대체재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이정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는 것은 작업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죠. 일전에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각자의 근미래近未來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학자금대출을 갚는다’가 모든 일의 첫 번째를 차지하더군요. 작가를 업으로 삼아 작업할 계획이 있더라도 현실에서는 작업만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힘든 상황인 겁니다. 물론 창조적인 노동이라는 것이 예술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문제와는 달리, 작업을 정말로 하고 싶은데도 유지할 수 없고, 10년 넘게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불안하고, ‘이걸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죠.
전시를 몇 번 하는 것이 기업이나 직장에서 인정해주는 경력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이건 내가 그만두면 끝인 거예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작업을 꼭 해야 한다고 곁에서 붙잡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콜텍티브collective나 그룹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나아가서 <미술-디자인 라운드테이블>이 마련된 것도 현실적인 조건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예술가의 노동력과 자본의 증식에는 굉장한 괴리가 있고. 지금은 그 차이가 최대한으로 증폭되어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예술의 노동력과 경제적인 가치가 맞물려서 유기적인 순환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의 청사진이라도 그릴 수 있어야 뭔가 기대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이번 총파업에서는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민 기본 소득은 사회권과 연결됩니다. 인간으로서 먹고사는 최소한의 것들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잘 된다면 디자이너나 예술가가 다른 생각 안 하고 작업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김기조 사실 그 기본소득이라는 문제는 소위 디자이너, 예술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벌고 덜 일하게 되면 그만큼 남는 시간을 다른 것에 쓸 수 있고 또 그런 것들을 문화예술계로 들어오게 하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보면서 굉장히 복잡해졌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다 엮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왜 예술작품이 안 팔릴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문제와 결부해서 자기가 사는 공간, 거주지를 꾸미고 애정을 담는 것이라는 문제로 전환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과연 누군가가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주거할 공간을 가지고 있나요? 없습니다. 문제는 부동산 문제로 확장되어, 집이 주거하는 공간이 아니라 가격이 오르면 판매하는 ‘물건’이 되어버렸고, 그러다 보니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집의 의미를 더는 가지지 않게 된 겁니다. 그런 이유로도 예술작품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비단 예술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이었을 때 간판디자인을 보면서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서 부터도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서울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기형적인 상업지구를 만들게 되었고, 건물들도 방편적으로 올라가고 건물에 입주하는 상인들도 생계를 위해 방편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가업이라든지 장인의식에 관한 것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간판이라는 것이 소비재가 되고,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소모성 물품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미감으로 불평하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모른 척하고 결과물만을 가지고 불평할 수 없는 겁니다. 디자이너이기에 앞서 사회의 구성원, 시민이고 디자이너의 문제를 곧 사회의 문제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뷰어 총파업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나 조건들과 같은 추상적인 삶의 현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없는 투쟁으로서 새로운 운동의 형태로 월가점령과 총파업을 주목하는 시각들도 있고요.
이정민 어쩌면 오히려 더 구체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총파업은 어떤 기업 또는 국가와 같은 차원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오히려 <미술-디자인 라운드테이블>의 경우에는 어떤 대상에 대한 반발로 방향을 모색했다기 보다는, 그 내적인 것을 바라보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좀 더 방점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단위만의 목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료가 해고된 것에 대해서 복직을 요구한다는 것 이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거죠.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불합리함 같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 연대가 가능해야만 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할 때는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아주 적은 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도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고 입장이 있고 이익이 다르니까요.
김기조 젊은 층들이 불안감이나 상실감에 비례하는 분노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방향성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상이 없고 방향이 없는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이 운동이 그들만의 무엇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를 발견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적이 필요할까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다양한 생각의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김기조가 디자인한 총파업 포스터 / 자료 제공: 김기조 
옥인콜렉티브가 제작한 총파업 참여 포스터 / 자료 제공: 옥인콜렉티브
Twitter로 바라본 메이데이 총파업
@BI44ck99Hermit
oo 데이가 참 많은데, 하루 정도는 메이데이해서 나 좀 살려줘
@Ge8eral888888KR
총파업 이후에 관한 고민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요구를 가진 이들이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현 체제를 정지시킬 다음의 #총파업은 언제 어떻게 행해져야할까?
@8a8ka88n
오늘날 야심찬 젊은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산참사에 대한 수기를 쓰는 것이거나, 어중간한 노동문학을 기획하는 것이거나, ‘총파업’에 대한 회고적 후일담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총파업 행진에서 사용한 피켓과 그날의 사진, 영상들이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됐다.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전시는 6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총파업 이전부터 웹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총파업 포스터와 글이 모두 출력되어 지금, 여기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한다. 전시에는 리슨투더시티, 두물머리 밭전위원히, 랑첸, 믹스라이스, 파트타임스위트, 옥인콜텍티브, 대학생사람연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다시모임, 성노동자권리모임GG, 김기조, 박정근, 랜디, 인민보녕이, 달팽이공방, 잡년행동, 이수성, 조혜진, 하박국,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반자본주의연구회, 연우주, 지로, 정용, 기잉, 수유너머N을 비롯한 2012년 총파업 워크그룹들 혹은 메이데이 개인 참가자들이 참여했다. 전시가 시작하는 6월 9일 오후 1시에 홍대정문에서 행진이 있었고, 6월 16일에는 “우리는 왜 거리로 나갔나?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가능성으로서의 파업 그리고 연대
분량8,887자 / 18분 / 도판 5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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