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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역사를 애도하는 집,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와이즈 건축 × 박성태

지난 5월 5일 성산동에 개관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전경 / 사진: 김두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지난 5월 마포구 성산동에 문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와이즈건축의 전숙희, 장영철 소장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기승전결이 있는 ‘서술적 박물관’으로 재구성했다.


와이즈 건축(WISE Architecture)  전숙희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Princeton University에서 수학했고, 장영철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U.C. Berkeley에서 수학했다. 2011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Y House>, <이상의 집 예술 프로젝트>, <모바일 갤러리>, <플레이 하우스> 등이 있다.

인터뷰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고백에 접근하여 과거를 마주하는 서사로서의 공간

박성태 이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의 공사 규모는 어떤가요?

와이즈 건축 약 10주, 두 달 반 정도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공사기간은 15주 정도 되었고요. 공사가 진행된 동네에 ‘특검 건축사’1 라는 분이 거주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분께서 밤낮으로 지나다니시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 집이 가진 문제점, 문제가 될 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죠.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리노베이션이고 대수선허가 대상이라 사실 특검 대상은 아니었죠. 그래도 매일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으셨겠어요. (웃음) 이런 것들에 대응하면서도 저희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공사가 미뤄지는 것이었습니다. 소규모 리노베이션 같은 경우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비용이 늘어나서 힘들어지거든요.

박성태 처음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박물관에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와이즈 건축 대부분은 그대로 적용되었고, 좀 다르게 해석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부 구간은 디자인을 변경했습니다. 원래는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으려고 했는데, 계획 과정에서 이 건물이 문화 및 집회시설로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75㎡를 증가시키는 것이었지만 25㎡를 덜어내고 대신 박물관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점은 오히려 잘 된 것 같아요. 물론 면적상으로는 손해를 보았지만, 박물관으로 승인받아 사용하게 되었으니까요.

원래의 아이디어가 잘 살려진 것이라면 일부러 박물관의 동선체계를 길게 해서 작은 건물이지만 다양한 공간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면sequence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계획한 점을 들 수 있겠네요.

박성태 동선을 활용해서 공간을 두루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드신 거군요.

와이즈 건축 네. 1층으로 들어와서 1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올라가서 지상층을 돌아보고 1층으로 다시 내려가서 나가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박물관 관계자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할머니들께서 쓰신 수필도 많이 읽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수필에는 어처구니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가셨던 그 여정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언니하고 꽃밭에 있었는데 갑자기 끌려간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어떤 잘못 때문에 대신 끌려간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이처럼 대부분 강제적으로 끌려간 이야기들을 박물관의 동선으로 활용해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길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길로 진입을 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실 자체도 시멘트 벽돌을 다 노출했습니다. 이건 사실 중간에 변경된 부분입니다. 기존의 계단을 자르면서 나온 엄청난 흉터가 흡사 그분들의 역사 같았습니다. 최초의 위안부 피해자가 발생한 시기와 이 집이 지어졌던 시기가 거의 같습니다. 30년이라는 그 시간을 새기고 있는 벽을 하나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오랫동안 해온 이야기들을 이 벽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그 벽을 드러내더라도 너무 불안정하고 미완성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위, 아래로 마감을 했어요. 의도적으로 벽을 그렇게 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터치들이 들어갔습니다.

박성태 보통 박물관들의 입구에 있는 리셉션reception 같은 것이 없습니다.

와이즈 건축 사실 들어오는 입구의 홀을 ‘무명방’이라고 하는 천으로 된 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끌려갔던 곳이 군용트럭 같은 곳들이 그런 모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중간에 다른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공간 구성이나 전시를 통해서 박물관 자체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도슨트가 항상 있으면서 박물관에 대해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관람객이 ‘내가 왜 여기에 끌려가지’라는 생각을 하며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입구의 홀은 잠깐 모여 있다가 다같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해서 홀이 곧 리셉션이 되는 거죠.

박성태 프로그램 자체가 시간별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이즈 건축 머무르며 감상하는 방법보다는 반드시 움직이며 경험하는 것을 콘셉트로 했습니다. 저희가 최초의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 이 프로젝트를 ‘서술적인 박물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유유히 들어가서 아무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시간의 순서sequence’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박성태 그렇다면 전시 안의 콘텐츠나 내용 자체도 그런 의도에 기초해서 기획될 수밖에 없겠네요.

와이즈 건축 네, 그렇죠. 저희가 전시 공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식이 독특했기 때문에 전시도 그 방식을 많이 따르게 되었어요. 박물관에서도 그 방식을 유지하려고 많이 애쓰셨던 것 같고요. 원래는 나무합판으로 위안소를 그대로 재현하시려는 생각도 있으셨지만 저희는 그 의견에 대해 굉장히 반대했어요. 다행스럽게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저희 의견을 받아주셔서 지금의 방식으로 재현하게 되었죠. 현대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활용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수직전시실로 올라오는 과정이나 빈 공간void을 통해 구성되는 박물관의 이미지를 가지고 좇아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수직 길’에서 할머니들의 유언을 보고 올라오면서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거죠.

건축적인 행위, 건축가의 욕망을 제한하며 증축된 공간

박성태 원래도 전벽돌을 엇나가게 쌓으려고 하셨죠?

와이즈 건축 실제 벽돌 쌓기에서 벽돌 사이를 벌려 쌓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는데, 습식으로 쌓다 보니 폭이 좁거나 높이가 낮아지는 크기의 제약이 있어요. 김창균 소장님이 삼청동 가압장에서 공기를 단축하고 비용을 절약할 방법으로 철근을 넣는 방식을 고안했는데, 조적공이 모르타르mortar로 마감해버리는 바람에 의도대로 마무리되지 않았죠. 전쟁과여성인권 박물관 스크린벽은 모르타르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매스스터디스 건물의 벽돌 디테일도 건식으로 시공 중인데, 다른 점이라면 그곳은 기본적으로 벽돌을 맞춤으로 제작했다는 것입니다.

디테일을 푸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벽돌길이의 반만큼 내어 쌓는 한편 빛이 투과하도록 스크린을 만드는 2개의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저희 시공자도 착공 전까지는 디테일에 확신을 못해 포기하고 싶어했어요. 그러다가 목업mock-up2을 통해 무게중심을 옮기면 가능할 거라 확신을 갖고, 조적공 대신 금속공과 작업하는 방식으로 풀었죠. ‘ㄷ’ 자로 만든 금속 선반에 벽돌을 끼워 놓고 쌓는 방식을 사용해 벽돌의 돌출을 심하게 주고 그 돌출된 부분에 또 다른 활동들을 가능하게 하고자 했죠.

박성태 벽돌에 특별한 의미를 담으려고 하셨나요?

와이즈 건축 박물관이 완공될 무렵 보았던 매스스터디스의 건물은 패턴에 변화를 굉장히 많이 줘서 스크린을 만들었어요. 스크린의 물결무늬가 독특한 음영을 만들어 내는데, 제 각각인 벽돌을 제작한 것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냥 단순하게 하는 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건물은 디자인을 최대한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론적으로는 ‘건축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작업과정을 통해서 과장된 것, 건축가의 욕망을 제거시키는 과정에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작업이 과장하지 않는 제스처gesture로 가는 것, 건축가의 욕망을 낮추는 것이죠. 그렇게 세련된 것이 과연 이 박물관에 적절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멋진 디테일을 만드는 게 때로는 ‘디테일을 위한 디테일’이 되는 거잖아요.

박성태 깊이감이나 돌출되는 것이 일반적인 스크린 보다는 벽돌로 스크린을 만들고 그 안에 공간이 있게 설계했습니다. 그런 방식을 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와이즈 건축 ‘추모실’의 전벽돌 뒤에는 할머니들의 이름과 얼굴들이 붙어있어요. 전벽돌 구멍의 세 개중 두 개는 저희가 구조적으로 써야 했지만 남은 한 개는 촛불이나 꽃을 꽂아도 될 것 같다고 했죠. 1년 중 많은 날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때 방문하신 분들한테 꽃을 팔거나 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3 꽃을 실제로 거기에 꽂으면 전벽돌의 색과 꽃의 색이 함께 어우러져 색은 물론이고 그림자도 정말 아름다워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정면의 스크린이 외면을 정돈하는 역할을 하면서 빛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벽돌이 단순히 치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임새가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박성태 비슷한 성격의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좁고 어두워서 관람자에게 우울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느낌들을 주는데요. 그런 효과들을 사용해 역사를 증언하는 박물관, 기념관들이 여럿 있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공간의 느낌은 어떤 느낌을 주시고 싶으셨나요?

와이즈 건축 사실 따로 추모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공간적인 여력이 없어서 2층 테라스가 그렇게 활용되길 희망했었어요. 가장 좋은 공간에, 가장 근사하게 공들여 만든 공간이 추모실이 되어 다행이고, 또 기쁘게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저희는 박물관 공간이 갖는 서술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굉장히 절실하게 조경이야기를 하면서 야생화들이 꼭 살아야 하는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잖아요. 야생화들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던 이유는, 보통 전쟁과 관련된 무거운 주제를 가진 대부분의 공간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만들어 사람을 압도하게 한다는 겁니다. 저희는 박물관에 부분적으로는 그런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공간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당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쇄석길처럼 의외의 공간으로 끌어낼 수도 있고, 30년 된 벽 같은 고철을 보며 이런 것을 지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기부자의 벽’을 보며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1층에 내려가서 뜰에서 안락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갈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모든 것들을 박물관 안에서 다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대협에서 전시를 할 때 또는 집회나 행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색을 보면 보라색, 노란색 그리고 ‘나비’ 모양의 상징물을 사용하세요. 공간을 기획하면서 주로 사용하는 색과 상징물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약간 금속성이 있는 것으로 코팅된 전벽돌 스크린이 정면에서 보면 빛을 받아서 굉장히 밝게 빛나면서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부로 들어와서 보면 빛의 1/3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내부에 엄숙한 공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2층 테라스의 외부전시실(‘추모실’이 그런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박성태 꽃, 그리고 조경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색감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들어갈 때 느낌이 좀 어둡잖아요.

와이즈 건축 네, 외부에서 공간을 통해 들어오면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는 사실 건축가가 만들어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조경작업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공간에서는 좀 밝은 정원을 보실 수 있게 해드리고자 했어요. 지금은 꽃들이 어리지만 굉장히 잘 자라는 종이어서 나중엔 훨씬 더 풍성해질 거예요. 제가 조경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아직 어려워요. 그렇지만 거리를 걷거나 공원을 지나가다 나무를 보면서 ‘저 나무가 우리가 심었던 나무인데 이렇게 풍성해지는구나’라고 상상할 수 있겠죠. (웃음)

그리고 계수나무, 자작나무처럼 저희가 좋아하는 나무도 같이 심었어요. 실제로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산단풍이라던가 연달래, 둥굴레 이런 것들은 원래 정원에 있었던 것들이죠.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할머니들께서 언제든지 찾아오시더라도 꽃을 볼 수 있도록.

추모실의 전벽돌 뒤에는 할머니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전벽돌의 구멍으로 추모의 헌화를 할 수 있다. / 사진: 김두호

서술적 박물관 Narrative Museum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기억-추모-치유-기록으로 이어지는 공간들을 박물관 안팎으로 시퀀스로 배치하여 서술적 공간을 구성한다.

1. 기부자 벽돌담 성미산 자락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면, 짙은 회색 전벽돌 담을 마주하게 된다. 박물관의 여정은 5,000명 남짓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박물관 담으로부터 시작된다.

2. 작은 문 박물관 서쪽 길에서 대지와 건물의 높이 같아지는 곳에 위치한 작은 문은 비어있는 방으로 이어진다. 조용히 비어있는 무명의 방에서 약간의 정적. 어디로 끌려가는지 예상치 못하고 전쟁에 끌려들어 간 할머니들의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을 경험한다.

3. 쇄석길 무명의 방을 나온 이들은 높고 좁고 긴 옹벽의 사잇길을 걷는다. 2층 창에서 나오는 영상들은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콘크리트 옹벽에 비춰지고, 좁고 긴 길 위의 쇄석이 내는 거친 소리는 지하의 방으로 가는 계단 속으로 이어진다.

4. 지하의 낮은 방 방 속에 끼어 있는 더 낮고 어두운 방으로부터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5. 중첩된 방들 계단을 통해 2층에 있는 전시공간으로 들어선다. 각각의 방들은 서로 다른 모양의 창을 통해 박물관을 둘러싼 2중의 외피와 면한다. 오래된 콘크리트벽을 보는가 하면, 새 전벽돌 틈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2겹의 외피는 전시공간의 깊이감을 더하는 한편, 박물관을 기능적으로 보호한다.

6. 사랑방 전시 시퀀스는 ‘치유’와 ‘소통의 공간으로 맺음한다. 할머니들의 기억이 환원된 공간을 경험한 관람자들은 마지막으로 사랑방에 들어서, 박물관에 기록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한편, 할머니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된다.

7. 들꽃 언덕 사랑방 앞으로 확 트인 들꽃 언덕은 할머니들의 유년시절 동구 밖 한가한 풍경 속으로 인도한다.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들꽃 언덕의 사계절 꽃을 피울 수 있는 야생화로 채워져 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시퀀스 스케치 / 자료 제공: 와이즈건축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근사한 진입구, 훤칠한 로비, 친절한 안내공간과 큼직한 전시실은 여기에 없다. 정확히는 뺐다. 성산동 주택가 깊숙이 자리잡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육중한 이름의 박물관은 일반 주택 대문보다 작은 문 하나만 외부로 열어두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큼직한 안내판 대신 안내자가 박물관 안팎을 같이 걸어주며 이야기해 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은 실제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전쟁 속으로 끌려들어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경험과 흡사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100평 남짓의 30년 된 주택과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듯 무성히 자란 정원은 원래 계획되었던 박물관의 프로그램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예산과 주차 확충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맞물려 일정 규모 이상의 증축이 어려웠기 때문에, 기존 주택과 담장, 옹벽 사이 공간들은 반외부 공간으로 부족한 공간을 채워주도록 하였다. 전벽돌 주택과 그것을 에워싼 전돌벽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은 작은 문을 통해 들어온 관람객들에게 내부와 외부를 교차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명설계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8월 둘째 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시민단체 참가자들, 어린 학생들이 어김없이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문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시위가 진행되었지만, 대사관의 폐쇄회로 카메라만이 시위를 주시할 뿐 아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붉은 벽에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의 모습을 보며, 작아도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박물관을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성미산 자락에 한 덩어리로 보이는 박물관이 그려졌다.

4만 5천장의 전벽돌, 3만 글자가 새겨진 기부자벽, 20년간의 모금과 9년의 산고 끝에 지난 5월 5일 드디어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건식으로 벽돌 하나하나를 짜서 만든 전벽돌 스크린의 뒷면을 이용해 만든 추모실에 박물관을 찾아온 이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역사를 직설적으로 재현해 놓은 많은 박물관들과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곳이 전쟁이 없어져야한다고 말씀하셨던 한 피해자 할머니의 절규처럼, 역사의 공부방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쓰이길 기대한다.

어긋난 역사를 애도하는 집,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분량8,451자 / 17분 / 도판 3장

발행일201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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